첫만남은 우연이었음. 본즈가 한달에 한번쯤 아빠집 와서 자고가는 딸한테 중요한 책을 한권 놔두고 갔다는 연락을 받았지. 이혼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이랑은 꾸준히 보고 지내서 못해도 1~2달에 한번씩 조안나가 와서 자고감. 그보다 더 자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본즈가 병원일로 바빠서이고 조안나도 크고 나니까 자기 생활이 생겨서임 ㅇㅇ 아무튼 맘같아서는 본즈가 갖다주고 싶은데 자기도 동료의사 당직 대타라 30분 뒤에 병원으로 가봐야하고 조안나는 또 인턴설명회 나와서 학교에 발이 묶였다고 해서 난감했음. 근데 조안나가 그럼 알겠다고, 그 동네에 사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걔한테 부탁해보겠다고 한 뒤에 전화를 끊었음. 

그래서 본즈도 출근준비하면서 별생각없이 있었으면 좋겠다. 쇼핑백에 책 담아두고 어차피 아저씨 혼자 사는 집에 다 큰 아가씨를 들일수도 없으니까 적당히 문만 열고 건네줄 생각으로 샤워하고 머리말리고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음. 걔가 알겠다고 한 모양이었지. 본즈는 내심, 자기 딸이 그런 부탁 받았으면 말리거나 같이 갔을거라는 생각 하면서 문을 열었음. 그리고 문 밖에 서 있던 말쑥하게 키가 큰 남자애랑 눈이 마주쳤지. 운동을 하다 왔는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금발이 인상적이었어. 폼을 잡는다고 뭘 발라 넘긴게 아니라 한참 뛰고 굴러서 망가졌는데 그게 더 자연스러운 그런 느낌이야. 교복은 남의 걸 물려입었는지 이름표 뜯은 자국이 보이는데다 입고있는 녀석에 비해 좀 컸음. 그리고 눈... 눈은 인공색소를 첨가한 칵테일만큼 시린 물색이었고. 

안녕하세요, 조안나 아버님이시죠.

...어, 그래

짐 커크예요. 동아리 친구인데 조가 자기 집에 좀 들렀다 오라고 해서요.

의외였음. 조안나한테 남자인 친구가... 없진 않겠지만 이런 사적인 부탁까지 할만큼 친한 애가 있을줄은 몰랐거든. 그야 좀 있으면 대학가는 딸한테 친구관계를 꼬치꼬치 캐묻는 부모는 없잖아. 커크는 본즈가 쇼핑백을 건네주자 바로 인사 꾸벅 하더니 뒤돌아 가버렸음. 어쩐지 그게 몹시 아쉽게 느껴졌음. 좀 더 천천히 건네줄 걸. 아니면 뭐라도 좀 내어주거나... 아니, 조안나 가고 냉장고 정리 해서 아무것도 없잖아. 젠장. 바쁜 애를 붙잡아서 어쩔건데? 본즈가 한숨을 내쉬었음. 설마 남자친구인가? 아무리 제 딸이 털털하다고 해도 아빠 집에 사귄다는 말도 하지않고 남자친구를 보낼리가... 아, 혹시 남자친구 후보군. 뭐 그런건가? 내 딸이지만 조안나는 귀엽고, 저 애는...... 하-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젠장. 젠-장.

아무튼 그렇게 본즈가 자꾸 커크한테 관심 생기는걸 딸의 남친후보에 대한 관심일뿐이라고 위안삼았으면 좋겠다. 다음번에 조안나가 자고 가려면 아마 한두달은 더 지나야하고, 그 사이에 둘이 사귈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이미 사귀는지도 모르고... 뭐 그러면서 한두번 커크가 나오는 꿈도 꾸는데 오프여서 오후까지 늦잠자다 초인종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으면 좋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보니 방금 꿈에 나왔던 그 남자애가 빗줄기에 쫄딱 젖은채로

...안녕하세요, 저 며칠 전에 왔던 짐 커크예요. 혹시 조안나 있나요? 우산 좀 빌릴... 까지 말했을때 거칠게 잡아채서 안으로 끌어당겨버리는거 보고싶다 


본즈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