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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02:21
2017년 9월 16일 토요일

잭은 퀸젯의 가장 안쪽 구석진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아직 임무의 긴장감과 흥분감으로 인한 아드레날린이 혈관에 팽팽 돌고 있어서 졸음이나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임무 막바지에 꼬박 사흘 간 포복 자세로 저격 대기를 하고 있었던 터라 등과 어깨가 결렸다. 이제는 등에 커다란 타올을 두르고 있는 데다가 따뜻한 히터 바람이 사방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푹 젖은 유니폼이 묘하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저격 대기 중에는 당연히 방수포를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스콜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정글에서 사흘 간 한 곳에서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자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용 부츠 안이 질척하게 젖어있는 느낌은 잭이 사막 다음으로 정글 임무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퀸젯 안은 엔진 소음과 다른 녀석들의 대화소리 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잭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도 되는 양 모른 체 했고, 잭 또한 그들을 그렇게 취급했다. 그는 그저 본부에 도착해 무기고에 들렸다가, 샤워실에서 씻고 헌터스 포인트에 갈 생각 뿐이었다. 럼로우에게로. 도착하면 거의 밤 9시나 10시가 될 거였다. 아직은 허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 때쯤엔 배가 고파질테니까 가는 길에 적당히 뭔가를 테이크아웃 해서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저녁 메뉴나 고민하기로 했다. 비를 잔뜩 맞고 나면 왠지 수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버거나 피자 같은 게 생각나곤 했다. 아마 어릴 적에 수영 수업이 끝나면 종종 먹었기 때문에 생긴 기호이려니 싶었다. 잭은 특별히 수영을 즐기지 않았지만, 부모는 그를 여러 운동 수업에 보냈었고 수영은 그 중 하나였다. 특히 그가 아직 열 살 즈음이던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애는 사회성이 조금 어색할 뿐이야'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래서 또래들과 섞여서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업에 잔뜩 보냈었고 운동은 거기에 딱 맞는 것이었다. 수영이나 농구, 축구 같은 것들. 잭으로서는 그냥 따분하고 혼란스러운 시간들일 뿐이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고, 그건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애들이라 '잭은 이상해' 같은 말 정도로 밖에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지만 잭은 남들과 자신이 뭐가 어떻게 다른 거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간만인 것 같은데 버거나 먹을까. 늦은 시간까지 여는 곳을 찾기 어렵지도 않을 거였다. 본부 근처에도 두 군데 있었다. 하지만 버거집에는 럼로우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게 없었다. 그렇지. 그래서 한동안 먹지 않았었지. 럼로우의 아파트 근처에 있는 딤섬집이 나을 것 같았다. 새벽까지 여는 곳이고, 완탕이라면 럼로우가 조금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여전히 눈에 띄게 말랐지만, 그래도 요즘은 음식다운 걸 조금씩 먹고 있었다. 그게 그냥 시간이 지나서인지, 상담 덕분인지, 아니면 윈터가 알파향으로 뭘 해주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어쩌면 윈터의 영향이 제일 클지도 몰랐다. 러트가 왔을 때 녀석은 계속해서 럼로우에게 마킹을 했고, 그 전에도 잭은 럼로우의 목덜미에 잇자국이 남아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본딩이 되거나 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윈터가 곁에 있거나 맨 살이 닿아있으면 럼로우가 한 결 편안해 하는 건 분명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윈터가 없을 때에는 인공 알파향 스프레이를 필요로 할 만큼.

그러니까, 윈터는 좀 성가신 강아지 같은 것이긴 해도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집을 좀 자주 어지럽히고, 요리를 잘 못 하고, 청소나 세탁이나 설거지 같은 게 좀 엉성하고, 설탕이나 팜유만 잔뜩 들어간 이상한 군것질 거리를 좋아하고, 산책 중에 모르는 사람들이랑 시시한 잡담을 하는 걸 좋아하는 성가신 녀석이지만 어쨌든 청문회가 끝나고 여길 떠날 때엔 그 녀석도 데리고 가야할 거였다. 럼로우가 좋아하기도 하고 필요로하기도 하니까.

저쪽에서 가까이들 앉아 얘기 중이던 다른 녀석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자 잭은 반사적으로 눈을 잠깐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냥 웃는 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저절로 눈이 뜨였다. 잭은 어깨가 조금 덜 결리는 자세를 찾아 몸을 뒤척였다. 저쪽에서는 웃음소리는 금방 잦아들고 (누가 웃긴 소리를 했던 모양이었다) 다시 대화가 간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잭은 역시 관심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럼로우가 이끄는 팀에 있었던 시절이라면 그래도 적당히 대화에 끼어들려는 노력은 했었다. 다른 녀석들이 자신을 대단히 달가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같은 팀이고 같은 편인데다 좋든 싫든 임무지에서 서로 등 맞대고 목숨을 빚지거니 갚거니 해야 하는 사이이니 적당히 잘 지내는 편이었다. 물론 노력을 하더라도, 결국엔 다들 자신이 다르다는 걸 눈치챘고 (잭으로서는 대체 자신의 무엇이 그렇게 티가 난 건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아마 영원히 미스테리일 것이다.) 굳이 자신과 가깝게 친해지려고들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무난히 잘 지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로 무난할 수 있었냐 하면, 알파팀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는 때면 잭이 부사령관으로서 팀 식사 자리를 만드는 게 패턴이 될 정도로.

하지만 그건 사람들 속에 잘 섞여 들어 제가 그들과 다르다는 걸 잘 숨기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들과 무난히 잘 지내는'게 럼로우를 보좌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했던 것일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초에 자신이 남들과 적당히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제 노력보다는 럼로우가 사령관이었던 게 큰 역할을 했겠지 싶었다. 적어도 알파팀 내에서는 그 누구도 농담으로라도 자신을 싸이코패쓰라고 부르지 않았고, 다른 팀 녀석들도 럼로우가 근처에 있으면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럼로우가 남들에게 그걸 금지시키거나 한 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평범하게 똑같이 대했고, 그게 알파팀이었을 때든 델타팀이었을 때든, 럼로우가 자기 팀원들에게 자신과 같은 행동 기준을 요구한다는 건 암묵적인 명령과도 같았다. 누가 '롤린스는 좀 이상하지 않냐'는 취지의 말을 하면 빤히 쳐다보다가 '그래서 임무에 문제 있었던 적이 있냐'고 물을 뿐이었다. 그 질문을 들은 녀석들은 하나같이 입이 없어진 것처럼 대꾸하지 못했다. 그 중 태반은 잭의 저격 덕에 목숨이나 팔 다리를 건진 적이 있는 녀석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잭은 럼로우가 없는 스트라이크의 녀석들과는 임무는 할 지언정 그 이상의 것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었다. 임무에서 주어진 제 몫만, 그게 평범한 군인 역할이든 저격수 역할이든, 제 몫만 제대로 했으면 그걸로 된 거였다. 그 외에는 관심도 없었고 동기도 없었다. 잭이 남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 건 오로지 그들의 입에서 럼로우의 이름이 나왔을 때 뿐이었다. 그가 복귀한 초반에는 그런 녀석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럼로우의 충성심이 하이드라에 있는지 쉴드에 있는지에 대해 지껄이는 녀석들도 있었고, 인사이트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온갖 상상을 덧붙이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제일은 그가 하이드라의 손에 크로스본즈로 개조되었던 것에 대해 말하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잭이 복귀 후 세 번째 임무에서 '어쩔 수 없는 여건'으로 인해 럼로우를 입에 담던 녀석들 중 두 명이 자살 폭탄 테러에 휘말리는 걸 구해주지 '못한' 뒤로는 다들 적어도 잭의 근처에서는 럼로우를 입에 담지 않았다. 물론 그 둘의 사령관이었던 감마팀의 대런 라이트는 임무가 끝나고 본부에 퀸젯이 착륙하자마자 잭을 끌고 퓨리의 집무실로 쳐들어갔지만, 잭은 태연한 얼굴로 퓨리에게 당시 제 위치에서는 감마 녀석들에게 접근한 민간인 아동이 폭탄 조끼를 입고 있는 게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폭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을 뿐이며, 상부에서 (폭탄이 없으니) 발포 허가를 내리지 않아서 저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통신 녹음본과, 잭의 바디캠 기록은 그의 주장과 한 치도 어긋난 게 없었다. 결국 그는 프로토콜을 어긴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퓨리 역시 잭의 손을 들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럼로우가 이끄는 알파팀에서 일어난 상황이었다면, 잭은 프로토콜은 좆까고 자살 폭탄 테러범일 가능성이 높은 민간인 아동의 다리에라도 발포했을 것이다. 그래야 럼로우의 팀원들이 폭발에 휩쓸릴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니까. 럼로우는 자기 책임 하에 있는 녀석들이 다치거나 죽으면 꽤 오랫동안 자책하는 편이었고, 잭은 그걸 보고 싶지 않았다. 뭐, 설사 결백한 민간인이었다 하더라도 치료비를 지원해주면 되잖아.

하지만 이제 그의 사령관은 럼로우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필요 이상의 일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감마 녀석들은 시신 조각도 수습하지 못해 텅 빈 관으로 장례를 치렀지만 잭으로서는 그건 제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군인은 언제든 순직할 수 있는 거고, 자신이 태만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장례식 후에 감마 팀의 다른 녀석들이 라커룸에서 잭에게 시비를 거는 일도 있었지만, 덤벼든 녀석들만 영구 장해를 입고 퇴역하게 된 뒤로는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 일로 퓨리에게 불려가긴 했지만, 왠지 싸움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잭이 제 라커 안에 비스듬히 세워둔 휴대폰에 찍힌 영상을 보고는 퓨리도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잭은 처음에는 그들을 퇴역까지 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걔들이 먼저 나이프를 꺼내 든 걸 별 수 있나. 그러고 보면 멍청한 건 감마팀 특징인 건가? 내가 저격만 할 줄 안다고 생각했나? 여튼 이후로는 제 귀에 럼로우에 대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일이 없었으니 잘 된 일이었다. 그 날 집에 돌아가서 럼로우를 봤을 땐 그가 알면 싫어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약간 뜨끔하긴 했지만.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인 데다가, 럼로우가 화를 낸다 해도 자신이 감마 팀을 거의 없애버려서는 아닐 거고, 아마 징계 같은 걸 받을 가능성 때문에 걱정되어 잔소리를 하는 게 다일 테니 결국 괜찮지 않나 싶었다. 어차피 스트라이크나 쉴드에서 출세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안 하니까. 예전 같았으면 럼로우의 곁에 붙어있기 위해서 적당한 진급은 필요했겠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두 시간이 지나 퀸젯이 착륙하는 게 느껴지자 잭은 조용히 눈을 떴다. 쉴드 비행장에 내리고 나서도 평소대로 다른 이들과 조금 떨어진 채였고, 빨리 제 저격 장비만 무기고에 반납하고, 샤워실에서 씻고 럼로우에게 갈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바튼이 곁에 오더니 말을 걸었다.

"내가 반납할게."

잭은 발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눈을 약간 찌푸리고 바튼을 쳐다보았다. 바튼은 럼로우와 친했던 사이였고 자신도 덩달아 훈련을 같이 하거나 대련을 상대하거나 한 적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럼로우가 있어서 그랬던 거고 자신과 바튼이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건 인사이트 이전의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하지만 바튼은 잭의 뚱한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그와 발걸음을 맞춰 나란히 걸어가며 다른 이들이 충분히 멀어진 걸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한테 맡기고 22층 가봐."

22층. 쉴드 건물의 22층은 홍보팀과 회계팀이 있는 사무실일 뿐이니 바로 옆의 스타크 인더스크리 얘기인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 22층은 병동인데. 일반적인 곳은 아니고, 돈이 넘치는 vip 놈들 넣어두는 병동 아니던가? 거길 왜?

럼로우.

잭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럼로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씨발 이 좆같은 바튼 새끼. 바튼은 이번 임무에 후발대로 합류했고, 합류 후부터는 자신과 똑같이 개인 통신 기기를 쓸 수 없는 임무지에 처박혀 있었다. 그런데 럼로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 그래서 22층 병동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 이 새끼가 후발대로 합류하기 전에 이미 문제가 생겼었단 얘기였다. 후발대가 합류한 게 목요일이고 지금은 벌써 토요일 저녁이었다. 이 개새끼가 그런 중요한 얘기를 이제야 했다는 게 화가 나 손이 절로 나이프로 향했지만, 이런데서 시간을 허비하면 럼로우를 보러 가는 것만 늦어질 테니 실제로 나이프를 꺼내진 않았다.

"미안해. 알아. 근데 내가 얘기했으면 넌 임무 팽개치고 혼자 퀸젯 끌고 돌아왔을 거고 그럼 우린 저격수 없어서 절반은 죽었을 거야."

잭은 자신이 공격한 것도 아닌데 먼저 항복의 의사로 두 손을 들어보이며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는 바튼을 빤히 쳐다보며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삼켰다. 럼로우가 위급한데 스트라이크 팀 두어개쯤 뒤지는게 뭐가 어떻다고 저딴 소리를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니 뭘 한다 한들 분풀이에 지나지 않을테고, 그래봤자 럼로우를 보는 것만 지연될 뿐이니 저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잭은 어깨에 메고 있던 저격 장비를 바튼에게 집어던지다 시피 건네고는 건물 연결 통로를 향해 성큼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퀸젯 안에서 어느 정도 마르긴 했지만 (잭이 앉아있던 구석 자리는 히터 바람이 세지 않았다) 여전히 축축한 유니폼이 살갗에 달라붙는 게 갑갑하게 느껴져 잭은 방탄 조끼의 지퍼와 버클을 약간 풀어내렸다. 출입증은 임무에 나가기 전에 라커에 넣어둔 채였기 때문에 연결 통로의 보안 요원에게 제 대원 코드를 대고 얼굴과 홍채 스캔을 거쳐야 했다. 아직 11층이었으니 일단 엘레베이터 쪽으로 향했지만, 하나는 점검 중이었고, 다른 두 개는 이제 막 12층을 지나 올라가고 있었다. 남쪽에도 엘레베이터가 있긴 했지만 그쪽까지 가는 데만도 2-3분은 걸릴 거였다. 잭은 곧장 옆에 있던 계단으로 향했다. 10개층 정도면 이게 더 빨랐다. 22층에 도착했을 때, 숨이 약간 차 있긴 했지만 다리가 피로한 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럼로우가 걱정되는 초조함 뿐만 아니라, 바튼에게 화가 난 게 아직 덜 가라앉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럼로우에게 빨리 도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 없었다.

22층은 vip층이어서인지 별도의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고, 잭은 성가시게도 그들에게 잠시 붙들려 있어야 했지만 (그냥 치워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럼로우의 병실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 그래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병실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 vip 병동의 구조는 좀 다른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럼로우의 병실로 향하는 복도의 모양새가 쉴드 병동이나 민간 병원에 견주어 가늠하건대 중환자실 같은 곳으로 향하는 것 같진 않았다. 잭은 그것만으로도 요동치던 심박이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직원이 그를 병실 문 앞까지만 안내하고는 눈치를 보며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웅얼거리는 것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제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럼로우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잭은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고 대신 아주 천천히 문을 열었다. 불 꺼진 병실의 문 맞은 편에 바로 보이는 건 반쯤 열린 창문과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이었다. 예상대로 잠들어 있는 건지 자신을 맞이하는 럼로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에 잭은 조용히 병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며 왼편의 침대로 시선을 옮겼다. 구름이 많이 낀 밤이라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도 거의 없어서 병실 안의 불빛이라고는 침대 옆 바이탈 측정기계의 녹색 모니터 빛 뿐이었다. 아직 어둠에 눈이 익지 않아 잘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침대에 잠들어 있는 럼로우였고, 곧이어 그의 왼편에 있는 IV 폴대와 산소통의 윤곽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그 이상의 거창한 기계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럼로우 쪽으로 두어 걸음 다가서고 나서야 잭은 병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상대방이 약간 움직여 인기척을 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제 눈이 어둠에 좀 더 익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롤린스."

잭은 인사를 하는 건지 경고를 하는 건지 모를 로저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럼로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산소줄을 끼고 있기는 했지만 숨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심박을 측정하는 기계음도 균일했다. 하지만 기계의 희미한 초록 불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럼로우의 모습이 어딘가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청으로 강화된 게 아닌 평범한 책의 눈에는 이 이상으로 어둠 속이 더 잘 보일 리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을 켜서 럼로우가 깨게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냥 그대로 곁에 있으려 했다. 침대 반대편에 앉아있던 로저스가 일어나는 것도 상관 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꺼져주면 차라리 좋은 일이었다. 왜 저 녀석이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튼이 럼로우 일을 알고 있었던 걸 보면 자신과 윈터가 없는 사이 로저스가 끼어든 거겠지.

병실 문가 쪽에서 희미하지만 자신이 충분히 방 안을 볼 수 있을 만큼의 노란 불빛이 켜져 잭이 홱 돌아보자 로저스가 문가의 풋램프를 켠 게 보였다. 밝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빛 때문에 럼로우가 깨는 건 싫어서 다시 끄라고 하려는 찰나, 로저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약기운에 잠든 거라 괜찮아."

잭은 수액팩과 침대 주변을 쭉 훑어보았지만 일반 병원과 달리 차트 같은 건 없었다. 언제 올 지 모르는 의료진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로저스에게 들어야 한다는 소리였고, 그게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냥 럼로우가 괜찮은지만 다시 보고 로저스를 병실 밖으로 불러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둡게나마 병실을 밝히는 풋램프 불빛 아래 럼로우를 다시 보자, 얘기고 뭐고 로저스 새끼는 그냥 오늘 여기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럼로우가 어딘가 어색해보였던 건 그가 생체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잭의 시선이 다시금 럼로우의 오른팔 안쪽에 꽂힌 IV 바늘과 그의 코에 걸쳐진 산소줄을 훑었다. 지난 주보다 확연히 더 마르고 창백한 럼로우가 심지어 병실에서 저딴 걸 쓰고 있을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애초에 여기에 저게 있는 것부터가... 로저스가 앉아있던 의자 옆쪽에 낯선 짐 가방이 보였다. 럼로우가 입고 있는 게 환자복이 아니라 그의 외출용 긴팔 티셔츠인 걸 보면 로저스가 짐을 챙겨다준 거겠지. 잭의 손가락이 IV 바늘 때문에 걷어올려져 있는 럼로우의 오른쪽 소매를 살짝 쓰다듬듯이 훑었다. 잭이 보기엔 럼로우가 긴팔 티를 입고 있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등과 어깨의 화상 자국이 옷에 쓸리면 아프기 때문에 집에서는 늘 헐렁하고 얇은 반팔 면티 차림이었으니까.

"잠깐 얘기 좀-"

"기다려."

개에게 명령이라도 내리는 것 같은 어투에 로저스가 인상 쓰는 게 주변 시야로 보였지만, 잭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도리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약기운에 잠들어 있다고는 했지만, 로저스 역시 잠든 럼로우 옆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원치 않았던지 그는 잭이 병실에 붙어있던 화장실에서 타올 두 개를 차가운 물에 적셔 오는 동안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잭은 혹여라도 제 유니폼 소매가 럼로우를 스치지 않도록 (방탄 조끼는 화장실에서 이미 벗어둔 뒤였다) 걷어올린 뒤 조심스럽게 럼로우의 양 턱선에 손가락을 살짝 얹어보았다. 마스크와 긴 팔 티셔츠로 가려지지 않은 목덜미만 보더라도 화상 자국이 아플 정도로 건조해져 있다는 건 확연히 보였지만 어쩌면 생체 마스크를 쓴 지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마스크 너머로도 럼로우의 왼쪽 얼굴에 열감이 올라와 있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잭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차갑게 적신 타올을 곁에 댄 채 천천히 마스크를 떼어냈다. 럼로우는 잠결에도 약하게 신음하며 조금 뒤척였지만 다행히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잭은 붉게 일어나고 일부는 갈라져 피가 맺힌 살갗을 타올로 덮어두고는 생체 마스크를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겔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작은 조각들이 사슬처럼 연결되어있던 마스크의 결합부는 손쉽게 부서졌고, 잭은 그 조각들을 화장실 휴지통에 버려버리곤 럼로우의 상태를 다시 살폈다. 얼굴에는 아무래도 연고를 발라야 할 것 같았고, 얼핏 보이는 목덜미로 짐작하건대 등과 어깨, 팔에는 로션이나 크림이 필요했다. 로저스가 마스크는 꼬박꼬박 가져오면서 정작 그런 건 챙겨오지 않았다는 게 그를 더 화나게 했다. 하지만 럼로우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는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로저스 자식을 부르고는 문쪽을 향해 고갯짓을 하며 앞장서자, 예상 외로 그는 순순히 자신을 따라나섰다. 애초에 먼저 얘기를 하자고 나오던 건 녀석이니까 그런 거겠지 싶었다. 잭은 복도로 나와 병실 문을 닫자마자 얘기를 시작하려는 로저스의 말을 자르며 복도 끝편의 테라스로 향했다. 럼로우를 대하는 그의 행동이 무신경함 투성이인 게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요일에-"

"여기서 말하면 다 들려."

하이드라가 만들어낸 슈퍼 솔져는 그들이 카피하고자 했던 원형, 그러니까 로저스에 비하면 전반적인 능력치나 안정성이 낮았지만 그래도 그보다 뛰어난 부분도 있었다. 윈터는 후각이 특히 예민했고, 럼로우는 청력이 그러했다. 좀 더 정확히는, 럼로우는 청력의 예민함이 들쭉날쭉한 편이었다. 때로는 그냥 귀가 조금 밝은 정도라면, 컨디션이 나쁠 때에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두통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 고작 문 하나를 두고, 그것도 소리가 울리는 복도에서 얘기를 하는 건 잭이 보기엔 결코 안 될 일이었다. 그나마 잠들어 있는데. 로저스가 그걸 생각치 않았다는 것도 화가 났다. 모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화가 났다. 하이드라에서 그를 막 구출했을 때에 의료진이 갖가지 검사를 했던 의료 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곁에서 조금만 있어보면 그가 같은 슈퍼 솔져인 윈터보다 소리에 예민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냥 관심이 그 정도일 뿐이란 뜻이었다. 마스크나 긴팔 티셔츠를 가져올 생각은 하면서.

테라스는 vip환자들을 위한 것인지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잭은 몸을 돌려 로저스가 출입구를 등지고 서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냥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도 분명 있었다. 저격 장비는 바튼에게 넘겼지만 아직 유니폼 차림 그대로이니 일일이 무기고에 반납하지 않는 개인 물품들은 전부 소지하고 있었다. 나이프라든가. 물론 혈청으로 강화된 데다 오랜 시간 군인이었던 캡틴 아메리카를 평범한 인간인 자신이 정말로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데미지는 줄 수 있을 거였고, 로저스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다. 이 새끼 때문에 럼로우가 겪었던 고통에는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갚아주고 싶었다. 슈퍼 솔져여도 폐에 나이프가 박히면 아프긴 할 거 아냐. 결국엔 멀쩡히 회복하겠지만 그래도 횡경막을 끊어버리거나 하면 아프긴 할 거 아니냐고.

"어떻게 된 거야?"

잭은 왼쪽 허벅지 벨트에 채워진 나이프에 손을 얹은 것을 감추지 않았고, 로저스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만 잠시 머물렀을 뿐, 로저스는 나이프에는 별 다른 반응 없이 대답만 했다.

"럼로우가 죽으려고 했어. 나랑 클린트가 제때 발견해서 망정이지-"

"자살 시도를 어떻게 했는데?"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묻는 잭을 보고 스티브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잭 롤린스가 싸이코패쓰라는 소리는 숱하게 들어왔지만 적어도 럼로우에 대해서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금껏 제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살 시도를 어떻게 했냐고? 럼로우가 죽으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제일 처음 보이는 반응이 그거라고? 만일 잭이 믿을 수 없어 하는 표정을 조금이라도 내비쳤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반응일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잭은 언제나처럼 무표정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라면 심지어 성가셔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뭐라고?"

"네가 말한 자살 시도가 뭐였냐고."

잭은 럼로우가 죽으려고 했다는 로저스의 말이 기가 찼다. 이 새끼는 또 뭐를 지 좋을대로 해석해서 저딴 개소리를 한담. 럼로우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자신과 윈터를 두고 그가 그랬을 리가 없었다. 만에 하나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으면 바튼이나 로저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아마 그의 아파트였을 것이다) 그랬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자신이나 윈터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종적을 싹 감춰버리고 죽었을 것이다. 애초에 언제든 쉴드에서 나와서 셋이 어디든 숨어들어 조용히 살 수 있는데 굳이 청문회에 증언하겠다고 여기 붙어있는 건 자신과 윈터가 더 이상 쫓기고 살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건데. 그래서 나중에 쉴드에서 딴 소리 하며 수작 못 부리게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자신은 쉴드에 복귀하라고 한 거고 윈터는 어벤져스 일을 하고 있으라고 한 건데. 그런데 럼로우가 죽으려고 했다고? 그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였고, 로저스가 그런 걸로 제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게 성가셨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했어. 최대 복용량 세 배도 넘게-"

"그럼 사고네."

뭐야. 정말 만에 하나 럼로우가 자신과 윈터를 두고 죽을 생각이었고 심지어 그렇게 발견되기 쉬운 곳에서, 그러니까 자신과 윈터가 뻔히 볼 수 있는 곳에서 그럴 생각이었더라 하더라도 고작 수면제를 여섯 알 정도 먹는 걸로 시도했을까봐? 정말 그런 거였으면 아주 확실하게 수 초 내에 사망할 수 있는 방법을 럼로우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그도 오랜 세월 군인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나이프로 목의 동맥을 끊을 수도 있었고, 총으로 뇌와 척수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고, 목을 매달아 목을 부러트리거나 할 수도 있었고,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마약을 사다 치사량을 복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면제? 고작 세 배 쯤? 스타크가 준 약은 정확한 성분을 모르니 치사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대충 그 정도만? 게다가 로저스와 바튼이 곧장 발견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까, 꽤 늦게 발견했는데도 구할 수 있었단 거였다. 아마 그 과다복용이라는 것도 한 번에 그만큼까지 먹은 게 아니고 시간 차가 있었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수면제를 먹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다시 먹었겠지. 잭은 반쯤은 어이가 없고, 반쯤은 화가 나서 웃었다. 럼로우가 자신을 두고, 그것도 그렇게 뻔히 제가 알 수 있는 곳에서 죽어버릴 수 있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어이가 없었고, 로저스의 태도가 마치 럼로우가 저렇게 누워 있는 게 제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이게 전부 누구 탓인데.

"팔목도 그었어. 자해한 흉터가 꽤 있던데. 알고는 있었나?"

스티브는 이런 일을 멋대로, 저렇게 가볍게 '사고'라고 넘겨버리는 롤린스를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서 럼로우를 떼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이 없다는 듯이 웃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토니에게 부탁해서 스타크 인더스트리 병동에 계속 머물게 하든, 아니면 헬렌에게 빌어서라도 자신이 붙어서 돌보든... 어떻게든 저 정신나간 녀석을 럼로우와 분리해야겠다고. 버키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저런 보호자로부터 버키라도 럼로우를 보호해줬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왜 그 둘이 곁에 있었으면서 럼로우의 상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바로 방금 전 병실에서 봤던, 롤린스가 마치 럼로우를 유리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루던 모습과는 잘 맞지 않았지만, 미친 녀석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거였다. 롤린스가 싸이코패쓰라느니, 싸이코라느니 하는 얘기는 숱하게 들었지만 어쨌든 럼로우를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어."

태연한 반응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혼자 두고 집 안에 나이프며 식칼이며 버젓이 둬? 이런 놈이 럼로우 근처에 있게 두다니, 버키는 정말로 무슨 생각인 걸까?

"그래? 영양실조인 것도 알고 있었겠네? 집에 음식이 아무 것도 없던데.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단순한 비난이 전부였다면, 잭은 로저스가 저를 비아냥대든 말든 상관 없었다.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서 병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실상 음식이 없는 럼로우의 아파트를 전부 둘러보았고, 자신과 윈터가 그를 방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결과 럼로우가 자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 이상의 문제였다. 병실 화장실의 거울이 급하게 아크릴 거울로 교체되어 있는 건 잭도 봐서 알고 있었다. 쉴드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럼로우가 죽으려고 했다고 보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로저스는 단순히 어벤져스일 뿐만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이기도 했다. 그의 말이라면 퓨리도 쉽게 무시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이 녀석들이 럼로우를 저 병실에 가둬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결코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청문회가 끝나면 어떻게든 떠나버릴테지만, 청문회 때까지 쉴드 도청기가 어디에 얼마나 있을지 모를 저딴 병실에 럼로우가 갇혀있게 할 수는 없었다.

"브록에 대해서 아주 잘 아나 본데. 그럼 왜 제대로 못 먹는지 그것도 훈수 둬보지 그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겠지만, 화가 난 것도 있고 해서 잭은 여전히 나이프에 손을 얹은 채 로저스에게 위협적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일부러 럼로우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럼로우가 언제부터 의식이 돌아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음식이랄 만한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병실에서도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걸 로저스가 못 해도 한 번은 목격했을 거였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건 로저스 탓이었다. 적어도 잭이 보기엔 그랬다. 애초에 럼로우가 임신하게 된 것도, 인사이트 때 건물 붕괴에 휩쓸린 것도 로저스 때문이었고, 만삭인데다 화상까지 입어서 멀리 도망치지 못해 하이드라에 붙잡혔던 거였고, 그 후에 그가 죽었다고 말하며 찾을 생각을 안 한 것도 로저스였다. 럼로우는 심지어 미국에 있었는데. 하루라도 더 빨리 구했더라면... 그래서 기억 복원 따위를 하게 된 거고 그가 기껏 잊고 살아왔던 것들이 전부 생생하게 떠올라서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된 거였는데. 겨우 조금 나아져서 새모이 만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음식다운 걸 먹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그에게 소홀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게 화가 치밀었다. 럼로우를 챙기지 않은 건 본인이면서.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고,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으면서. 자살 시도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한테 생체 마스크를 가져오는 건 뭔데? 이래도 저 새끼는 캡틴 아메리카고 싸이코패쓰는 나인 건가?

"내 탓으로 돌려야 속이 편하겠지. 하지만 브록이 저렇게 된 건 전부 너 때문이잖아."

"그래서 바로 잡으려고-"

"필요 없어. 네 오메가한테나 가."

로저스가 럼로우의 근처에 오는 것조차 싫었다. 조 박사가 없었다 한들 럼로우가 저런 녀석과 다시 그 어떤 종류든 접촉 하는 꼴은 보기 싫었을 거지만, 럼로우가 죽었다고 넘겨버리고 그새 조 박사와 본딩까지 해버린 건 더 분개할 일이었다. 그렇게 금방 잊어버리고, 털어버리고 저 좋을대로 잘 살 새끼 때문에 럼로우가... 제 사령관을 그렇게 취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싫었고, 그런 새끼를 제 손으로 죽여버릴 수 없는 것도 싫었다.

잭은 조 박사가 언급되자 선뜻 반박하지 못하는 로저스를 뒤로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때마침 카트를 끌고와 럼로우의 상태를 살피며 그의 IV에 뭔가 앰플을 주사하고 있던 두 명의 간호사는 그의 등장에 눈이 동그래졌다. 당연히 로저스일 줄 알았던 것 같았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화를 내봤자 럼로우에게 도움 될 건 없으니 속을 억누르고 나름대로 정중하게 차트 기록을 요청했다. 마침 둘 중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이 수기용 차트였던지 둘은 잠시 머뭇대다가 서류철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잭이 상처용 연고와 보습용 크림도 요청하자 그들은 조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알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잭은 럼로우의 얼굴과 목덜미에 대어두었던 타올을 다시 찬 물에 적셔 교체하고는 구석에 있던 스툴을 하나 끌어다가 그의 오른편에 앉아 차트를 읽기 시작했다. 지독히도 불편한 스툴이었지만 침대 반대편에 있는, 로저스가 앉아있던 일인용 소파를 이 쪽으로 옮기자니 소리에 럼로우가 깰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럼로우의 왼편에 앉을 생각도 없었다. 그가 구태여 한 손만으로 차트를 넘겨가며 왼손은 럼로우 머리맡의 옆에 가만히 올려둔 것은 그가 종종 잠결에도 이불 끝자락이나 제 팔 같은 걸 붙들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면 럼로우가 제 쪽으로 돌아누워야 하는데, 왼편은 화상을 입은 쪽이니 그 쪽으로는 누울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뭔가를 이마에 그렇게 대는 게 럼로우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윈터 같은 알파향은 없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점점 거슬러 올라갈수록 혈액투석 같은 것까지 나오는 차트 기록에 이대로 쉴드 건물을 죄다 날려버리고 당장 럼로우를 데리고 잠적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걸 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다시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 한 명이 그가 요청한 연고와 크림을 가지고 온 거였고, 잭은 차트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럼로우의 왼쪽 얼굴과 목덜미를 덮고 있던 젖은 타올을 걷어내고 얼굴에 살갗이 갈라진 부분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바르고 난 뒤 건조함에 살갗이 붉고 하얗게 일어난 쪽에는 크림을 발랐다. 긴 팔 티셔츠는 어떻게 해도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나이프를 꺼내 옷을 잘라 벗겨낸 뒤 럼로우를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눕히고 목덜미와 어깨, 등, 팔의 화상 자국에 크림을 발랐다. 쓰라림이 있었던 지 럼로우는 조금씩 뒤척였지만 다행히 잠이 깰 정도는 아니었다.

연고와 크림을 정리하고, 풋램프 불빛도 더 낮추고 나니 그제야 임무의 피로가 밀려들었다. 잭은 잠시 고민하다가 화장실에서 아직 젖어있는 제 유니폼과 부츠를 바지와 티셔츠만 남기고 벗어낸 뒤 하나 남아 있던 새 타올을 꺼내 다시 럼로우 곁으로 향했다. 물기가 어린 맨발이 병실 바닥에 닿는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쉴드 건물의 샤워실에 다녀오려면 못해도 2-30분은 걸릴테고 럼로우 곁을 그 정도로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 티셔츠 소매를 걷어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트나 베갯잇 같은 게 젖어들지 않도록 타올을 댄 채 럼로우의 오른편 침대 머리맡에 비스듬히 엎드려 기대 그의 곁에 제 손을 내어두었다. 로저스는 결국 새벽 중이나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다시 돌아 오겠지. 녀석은 캡틴 아메리카고, 여긴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병동이고, 바로 옆에는 쉴드 건물이니 제가 아무리 그에게 꺼지라 한들 정말로 떼어낼 수는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잭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럼로우텀 스팁럼로우 버키럼로우 롤린스럼로우
2024.04.29 04: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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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쉴드 건물을 다 날려버리고 롤린스랑 버키랑 럼로우 데리고 잠적해버리면 좋겠다... 셋이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ㅜㅠㅠㅠㅠ 스팁는 뭐.. 후회하면서 알아서 살던가.......
[Code: 5fa2]
2024.04.29 06: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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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주변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끊임 없이 하는데 그게 결국 다 럼로우 관련이라는게, 럼로우 아니면 그런 생각 하는 것 조차 관심 없을거라는게...!
[Code: 2b8a]
2024.04.29 07: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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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 너무 좋아
[Code: 5275]
2024.04.29 07: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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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너가 스팁이랑 럼로우가 붙는게 싫다지만 난 스팁이랑 럼로우가 붙어있는거 보는게 좋다ㅌㅌㅌㅌㅌㅌ 네같살 보고 싶다ㅌㅌㅌㅌㅌㅌㅌ
[Code: 940f]
2024.04.29 14: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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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실 나도 그래ㅋㅋㅋ
[Code: 234d]
2024.05.14 23: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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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333
[Code: 8eb9]
2024.04.29 07: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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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가 진짜 플라토닉 사랑의 정석인득
[Code: c4be]
2024.04.29 07: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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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무슨일이야 센세 사랑해ㅠ
잭이 럼로우를 위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일까지 할수있는거 이거 사랑아닙니까ㅜ 쉽게 딸칵 버튼 하나 누르는일도 아니고 자기가 주체적으로 럼로우를 위해 움직이고 대가를 바라거나 알아주길 바라는것도 아니잖아ㅜ 근데 캡틴은 단편적 사실과 자기 편견으로 가득차서 저 좋을대로 럼로우를 판단하고 제멋대로 주변에 영향력행사하는게 정말 잭이아니라 얘가 싸패인거아니냐고여ㅠ 잭 돌아와서 다행이야 곧 윈터도 오겠죠? 히트터지면 큰일인데ㅠ 잭 윈터 외에 아무도 모르면 좋겠어요ㅠㅜ 럼로우 아프지마ㅠㅜ
[Code: 1fcb]
2024.04.29 08: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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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ㅠㅠㅠㅠㅜㅠ 진짜 잭이랑 버키랑 럼로우 행복했음 좋겠어요 센세ㅜㅜㅜㅜ
[Code: eb45]
2024.04.29 09: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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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가 사랑하는 방식이 심금을 울린다 센세... 진짜 캡틴은 롤린스한테 뭐라고 할 자격 없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난 정말 롤린스같은 탑은 본 적이 없다ㅠㅠㅠ흑흑 윈터랑 세같살 해피엔딩ㅠㅠㅠㅠㅠ럼로우 죽지마ㅠㅠㅠㅠㅠ
[Code: 9bef]
2024.04.29 1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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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럼로우한테 롤린스 있어서 다행이야..
[Code: 5d5b]
2024.04.29 21: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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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랑 럼로우랑 평생 행복하게 해주새요 ㅠㅠㅠㅠㅠㅠ
[Code: 87b4]
2024.04.29 22: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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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스가 럼로우가 퓨리한테 당한일 알게된다면... 그땐 진짜 난리나겠지?ㅋㅋㅋ큐ㅠㅠㅠㅜㅜㅜ아 어쩌냐 진짜 살얼음판길 걷고있는거같다ㅠㅠㅠㅠㅜㅜ퓨리미친놈아 그냥 럼로우 놓아줘ㅠㅠㅠㅠㅠㅠ
[Code: 79f1]
2024.04.29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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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시발시발시발미쳤다센세는미쳤다 엇캐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진짜 대미쳤다 센세가 말아주는 롤린스럼로우에 내 인생 전부를 걸겠어
[Code: 55e4]
2024.04.29 2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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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니 미친 이제까지 이런 탑은 없었다 싸이코패스탑 집착탑인데 다정탑일 수 있다??? 심지어 벤츠다???? 이건 역사에 기록되야 한다 진짜 엇캐 이런 이런 이런 캐해를 하셨어요?? 나 진심 소름돋아 내가 한국어화자에 롤럼을 파서 센세의 이런 금무순을 읽을 수 있는게 진심 인생의 큰 행운이야 그것도 존나게 큰 행운
[Code: 55e4]
2024.04.29 23: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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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지금 너무 좋아서 코인노래방이라도 가서 소리지르고 와야겠다 시발 아니 롤린스가 럼로 쓰러진거 알게 되면 엇캐될까ㅠ 존나 자기 전에 매일 색창 새로고침하면서 존나 애타게 상상하고 기대했는데 시발 심장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린것 같아 존나 맛있어 미쳤다 시발
[Code: 55e4]
2024.04.29 23: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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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너무 좋아요 센세 센세의 캐해 그리고 그걸 풀어가는 능력 너무 좋아요 롤린스의 싸이코패스적인 부분이 들어나는 면 : 럼로우가 자살하려고 했었다는 말에 어떤 방식으로 자살시도를 했냐는게 첫 반응이자 질문일 때. 여기서 럼로우가 절대 자기나 버키를 두고 자살하지 않을거라는 그 믿음이...씨발 나 진짜 돌것같아요 센세ㅠㅜㅜㅠㅠㅠㅜㅠㅠ
아무리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버키는 충격받을 것같은데 롤린스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예상하고 대처법을 생각하고 있다는게 진짜 고지능 싸이코패스+럼친놈인것 같아서 진짜 개좋다 진심
[Code: 55e4]
2024.04.29 23: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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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야... 근데 사회화되있음. 시발 진짜 나 미칠 것 같아... 다 버리고 도망치거나 사고 치지않고 적당히 쉴드일을 하는 이유가 럼로우 때문이라는게... 시발ㅠㅠㅠㅠㅠ 모든 행동의 이유가 럼로우야.... 진짜 존나 사랑꾼인데 싸이코패스야....시발 진짜 시발 센세 이거 영화로 만들자ㅠㅠㅠㅠㅠㅠㅠ시발 진짜 나 진짜 너무 억울해 이건 역사에 기록되야해ㅠㅠㅠㅜㅠ
[Code: 55e4]
2024.04.29 23: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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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고 배고프고 샤워하고 싶은데 럼로우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의자도 불편한거에 앉아서(럼로 깰까봐) 수건깔고 기대서(시트젖어서 럼로가 싫어할까봐) 오른편에 손 걸쳐두고(럼로가 필요할 때 잡으라고) 대충 잠든다????? 시발...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기절할 것 같아.. 이대로 죽어도 ㄱㅊ음.. 시발.. 진짜 센세가 내 종교다
[Code: 55e4]
2024.04.29 23: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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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럼로우와 자신 뿐이라는 게 좋았고, 
[Code: 55e4]
2024.04.29 23: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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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완전 크고 근엄한 멍멍이 같다.. 진짜 센세가 외전으로 써주신 롤린스 강아지되는 편에 나온 그 강아지 종 찰떡인것 같아요 하 진짜 나 미칠 것 같아
[Code: 55e4]
2024.04.29 23: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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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롤린스 등장하니까 스팁이 얼마나 럼로우한테 무신경한지 대비된다ㅠㅜ 스팁 얼른 닦개되라ㅠㅠㅠㅜㅠㅜ
[Code: 55e4]
2024.04.30 00: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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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심 센세 천재
[Code: 0d9e]
2024.05.01 14: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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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5월의 첫날을 앞두고 센세의 예술품을 날밤까며 읽고 정신을 차릴수가 없네요.. 이걸 왜 지금에서야 읽은거지...? 서사부터 캐릭터까지 GOAT 그 자체..... 우리 오래오래 봐요 센세 좋은 무순 써줘서 너무 고맙슴다ㅠㅠㅠㅠㅠ
[Code: 1481]
2024.05.05 12: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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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할 수 없음 ㅅㅂ 니가 뭔데 센세에 대한 내 마음을 가로막는건지.... 할수만 있으면 추천 오백개 때려박고싶어요 센세 ㅠㅠㅠㅠ 잭이랑 럼로우랑 버키랑 행복했으면 좋겠다,,
[Code: 1cd9]
2024.05.06 2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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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
[Code: d4e9]
2024.05.07 00: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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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잭이랑 버키가 있어야돼ㅠㅠㅠㅠ
[Code: 0a99]
2024.05.11 19: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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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이다 여기가
[Code: 3b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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