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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02:15
처음 본 남자를 따라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어.


밤 거리를 걸으며 차가운 공기를 쐐도 머릿속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하포드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 크게 다를 것 없는 업무, 귀여운 딸과 늘 자신을 기다려주는 아내. 자신은 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이 일상은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라 믿었다. 아내의 고백에 드는 이 감정은 질투같이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이 감정은 차라리 자신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 할 미지의 공포에 가까웠다. 영원토록 바뀌지 않을거라 믿었던 일상의 한 축이 무너지는, 끝을 알 수 없는 혼돈과 공포. 어쩌면 여기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훗날의 하포드는 회상했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식히고자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발 가는대로 걸었더니 어느새 처음 보는 거리에 도달하고 말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낯선 풍경만이 펼쳐지자 그제야 하포드는 당황하여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택시라도 잡아 돌아가고 싶은데 지나가는 차는 많아도 택니는 콧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신호등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하포드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채셔캣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삐딱하게 선 남자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짧게 깎은 금발이나 얇은 은테 안경 때문에 지적이고 단정한 인상이었지만 동시에 셔츠 위로 골동품 상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즈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하나면 족할 시계는 양 손에 끼고 있었고, 시계 위아래로 팔찌도 여러개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남자에게서 나는 향 때문이었다. 남자와 마주보는 것 만으로도 인공적인 꽃 향기가 뇌까지 직접 파고드는 듯 했다. 절대 자연스런 꽃 향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향수 같지도 않았다. 하포드는 혹시나 정신을 잃게 하는 약물 냄새는 아닌가 경계하며 남자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남자는 잔뜩 긴장한 하포드의 얼굴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금욕적으로 보이던 얼굴은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가자 사납고 호쾌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자신을 몽고메리라 소개한 남자는 듣기 좋은 미성으로 사근사근 속삭였다. 길을 잃었나 보군요. 이 거리는 복잡해서 처음 오는 사람이 발을 들이면 십중팔구 길을 잃는답니다. 몽고메리가 나가는 길을 알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자 하포드의 경계는 조금 누그러졌다.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아세요? 하포드의 물음에 몽고메리는 어깨를 들썩여보였다. 저 토끼를 따라 가면 답을 알 수 있을거에요. 몽고메리가 팔짱을 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엔 정말로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뉴욕 한복판에 토끼? 그것도 멋들어진 턱시도 무늬를 가진 토끼가 준비된 것 처럼 하포드를 바라보고 있다니. 하포드는 제가 잘못본 게 아닌가 싶어서 눈을 비볐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토끼는 그 자리를 계속 지키는 중이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도하자 오히려 머리가 차분해졌다. 하포드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며 토끼에게 다가갔다. 인형처럼 앉아있던 토끼는 하포드가 움직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고, 하포드는 홀린 듯 토끼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조그마한 토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렵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도망가는 토끼를 뒤쫓다보니 또다시 거리의 풍경이 달라졌고, 코너를 돌자 토끼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하포드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낱낱이 살펴봤다. 몸집이 작으니 어디 풀숲에라도 숨어있는 게 아닐까? 토끼를 찾는데에 온 신경을 쏟던 하포드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내와 같은 오렌지빛 금발을 가진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띄우며 하포드와 팔짱을 끼어왔다. 저희 집에서 티파티를 하는데 같이 가 주실래요? 당황한 하포드는 어색하게 팔을 빼내곤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여자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티파티에 가자는 제안을 건넸다. 그런데 문득, 아내의 고백이 또 다시 머릿속에 맴돌았다. 당신만 처음 보는 사람과 일탈을 꿈꾸는 게 아니야. 나 역시 그런 용기가 있어. 하포드는 결국 유치한 반발심리에 넘어가고 말았다. 여자의 집은 좁고 지저분했고 준비된 테이블은 티파티라기엔 너무나 초라했다. 그러나 하포드는 이미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여자와 마주보고 있었다. 여자는 웃으며 하포드에게 접시에 놓인 쿠키를 건넸다. 한 입 드셔보세요. 방금 구워서 버터향이 생생할거에요. 가면처럼 일관된 미소가 어딘지 꺼림직했다. 하지만 집 주인의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고민하던 그 때, 여자가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였다. 쓸데없는 의심은 그만두고 본능에 몸을 맡겨요. 욕망에 충실해져요, 닥터 하포드. 쿠키를 집으려던 하포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의자가 쓰러지던, 여자가 부르던 말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왔다. 그는 여자에게 자신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려준 적 없었다. 저 여자는 누구고 대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뒷목의 솜털이 쭈뼛 솟아올랐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빠르게 걷던 도중 지나치던 누군가가 속삭였다. 피식자의 본능인가? 토끼답게 눈치가 빠르군. 이 목소리는 분명 몽고메리였다. 황급히 옆을 돌아봤지만 무심한 얼굴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 뿐이었다. 당황한 하포드의 시야 끝에 토끼의 하얀 꼬리가 들어왔다. 그 순간 하포드는 여자의 티파티도, 몽고메리도 잊고 토끼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도망가던 토끼는 어느 가게의 열린 문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 다급하게 토끼를 쫓던 하포드는 그제야 가게의 간판을 살펴보았다. 네온사인으로 커다란 피아노와 섹소폰 심볼이 있는 걸 봐선 재즈 바인 모양이었다. 하포드는 가드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의식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는 조명으로 장식한 계단이 나타났다. 바는 예상한 것보다 넓었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구조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쓸 법한 원목 테이블이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벽 한 면에는 네온사인으로 쓰여진 Carpe diem이 형형색색으로 번뜩였다. 어딘가 은밀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와 달리 안은 평범한 재즈 바 같았다.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과 부드러운 음악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여느 재즈 바와 다를 것이 없었으나 딱 한 가지가 특이했다. 피아노 연주자가 흰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연주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예전에 알던 사람인가? 연주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려던 그 때, 등 뒤로 작은 기척이 빠르게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 토끼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하포드는 이미 뛰고 있었다. 발견하자마자 뛰어 나갔는데도 하포드는 또다시 토끼를 놓지고 말았다. 토끼가 도망치며 흘리고 간 쪽지를 집어들자 피델리오란 메모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저택에 들어가려면 가면과 의상이 필요해요, 닥터 하포드." "눈에 띄지 않게 검은 망토를 고르세요." 화단의 꽃들이 앞다투어 속삭였다.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란 걸 알면서도 하포드는 도로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코스튬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사실은 전부 다 꿈이 아닐까? 몽고메리에게서 맡은 향이 수상한 약이었던 거야. 하포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택에 가야한다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 저택에 가면 분명 토끼도 몽고메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면 이 기묘한 장난의 끝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몽포드
아이스매브
2024.04.29 02:18
ㅇㅇ
모바일
찾았다 내 센세 내가 찾던 센세....분위기 미쳤다.....
[Code: ffb4]
2024.04.29 02:19
ㅇㅇ
모바일
제목에 상이있다니 기절
[Code: aa62]
2024.04.29 03:56
ㅇㅇ
모바일
상이라니... 상이 있다는 것은 중도 있고 하도 있다는 거고 서론으로만 해서 상, 중1중2중3--- 하 이런 식으로 토지나더의
대작이 나온다는 뜻 아닌가요?! 이것은 센세가 내게 주는 상?????
[Code: 3621]
2024.04.29 19: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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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Code: 68bd]
2024.04.29 19:54
ㅇㅇ
모바일
와 분위기 뭐야 환상동화 느낌 하포드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그 호기심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센세의 어나더를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
[Code: 3e28]
2024.05.01 00: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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톢포드 진짜 몽고메리한테 한입감이야.......
[Code: 54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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