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억을 잃어버리는 거 보고싶다



루스터행맨 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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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머리를 짚으며 일어나자 곰 같은 사내가 다가와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본다. 처음 보는 얼굴에 고개를 갸웃하자, 어설프게 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자신이 나의 남편이라고 소개한다. 



"저는... 브래들리 세러신입니다, 제이크님...과 결혼한 사이고요.... 알파입니다... 지금, 음... 사고로 3년치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제이크님과 결혼했고요.... "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오는 모습이, 솔직히 썩 내 취향에 어긋난 사람은 아닌지라. 손을 잡으며 잘 부탁한다고 하자, 그는 또다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치, 이런 적이 처음이라는 듯.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이 상황이 어색한 듯했다. 남편이라는 지위로 이렇게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내가 애써 말을 붙이면 몸을 꼿꼿이 하는 것도. 어떤 사연이 긴 사이인줄은 모르겠으나, 깨어난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부부사이는 영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만지는 것조차도 그는 어색해했다. 



"....왜 그렇게, 저를 피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피하는 게.... 아니라요... 그저, 익숙치 않아......"
"그렇다기에는 너무...."



뒷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너무 저를 티나게 피하시는데요, 지금도. 

그는 마치 할일을 다했다는 듯, 얼굴을 닦은 물수건을 쥔 채 자리를 피했다. 대체 내 남편이라는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의문은 더해져만 갔다. 










업무를 복귀한 직후, 나는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 어림짐작을 하게되었다. 비서가 건네온 이혼 서류 때문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 진행하시던 이혼은 어떻게 할까요?"
"....이혼사유가 뭐였습니까?"
"글쎄요, 저희에게 그런 얘기를 일절 하시지 않던 분이라.... 그저, 때가 되었다는 얘기만 하셨지요."
"이혼을... 그 사람도 원했습니까?"
"아마.. 사모님은 아직 모르실겁니다. 아직 말씀 드리지 않은 걸로 알거든요."



나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직접 얘기해보겠다며 비서를 물렀다. 비서는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어물거리다가 결국 말하지 못한 채 이사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서는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부사이의 일에 참견하는 것만큼 민감한 일도 없을 테지만, 이건 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대뜸 이혼이라니. 역시 배타였다가 오메가가 되신 분들은 생각은 남다른 걸까.


알파에게 이혼하자는 말은 나가 죽으라는 말과 같다는 걸, 아마 이사님은 모르는 듯했다. 오메가가 된 지 이제 막 4년이 넘으신 분이니, 아직 이 사회에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으시겠지. 

비서는 목에 감겨있던, '알파표식'을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서류봉투를 쥐고 별채로 들어서자, 본가와는 다른 느낌의 공간이 펼쳐졌다.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 마치 '그 사람'이 저택으로 나타난 모양새였다. 변호사에게 오메가와 알파 사이의 이혼 절차에 관해 듣고 곧장 집으로 온 참이었다. 비서에 이어, 변호사 역시 무언가를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궁금해하는 제이크에게 직접 얘기를 하시는 편이 나을거라며, 부부 관계를 끼어드는 건 안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이혼이 그렇게 별 거인가, 제이크는 배타였다가 오메가가 된 지 4년이 채 안 된 사람이었다. 오메가 각성 중에서도 아주 늦된 나이였고, 다른 오메가들이 성교육을 받던 시절 제이크는 일반 배타들의 성교육을 받아 매우 무지한 상태였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사회에 관해 뒤늦은 성교육을 받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특히 알파들이 받는 대우에 관해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알파들의 인권은 엉망이었다. 



"브래들리?"



그를 찾으며 저택을 헤매자, 정원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해가 뉘엇뉘엇 져가는데 정원을 가꾸던 모양이었다. 그는 곧장 정원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고, 이내 이 행동이 매우 익숙하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여러번 이곳에 왔던 걸까, 부부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 생각은 이내 깨졌다. 정원에서 날 본 브래들리가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눈동자만 굴리던 그는 내 손에 든 서류 봉투를 보더니 후다닥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브래들리, 이게 무슨...."
"잘...잘못했어요, 부디... 부디 용서해주세요....."
"이러지 말고 일어나세요, 네? 우리 앉아서 얘기해요."
" 제가 더 잘할게요..... 제발,... 제발 저 버리지 마세요.... 네?...."



무릎을 꿇었던 브래들리는 행맨의 무릎께를 살포시 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망울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그가 왜 이러는지 알 길이 없던 제이크는 안절부절 못한 채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브래들리는 꿈쩍도 안한 채 그의 잘못을 빌기만 했다. 




"아무..아무 말도 안할게요.... 끅.... 죽은 듯이 살게요..... 제발,히끅.... 제발... 제발 이혼만은......"
".....이게 이혼서류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야....., 그야.... 알파에게 오메가님이...... 주실 서류란 게 달리... 달리 뭐가 있겠어요....."



브래들리는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제이크의 질문에 착실히 대답했다. 이것도 그 '알파 교육'의 일종일까. 한숨을 푹 내쉬자, 브래들리가 움찔하더니 입을 닫는다. 그러고는 눈만 굴려 그의 눈치를 살핀다. 그의 짓무른 눈가가 마음이 쓰여 한 손으로 닦자, 그 손에 자신의 뺨을 부벼온다. 나는 대체 왜 당신과 이혼을 하려고 했을까, 제이크가 잠시 말이 없자 브래들리도 덩달아 초조한지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제이크는 여즉 그가 무릎을 꿇은 채 인걸 생각해내고는 그를 일으켜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는 내내 브래들리는 말이 없었다. 몇번 시도하려 입을 열었다 닫았지만, 끝내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은 없었다. 




"제가 온 건 이혼하려던 게 아니라 제가 사고 이전에 이혼을 하려고 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네......?"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였던 건지, 브래들리의 눈은 커지고, 황급히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전혀.... 전혀, 몰랐어요.....흡...."



애써 눈물을 참은 브래들리가 힘겹게 대답했다. 한줄기였던 눈물은 퐁퐁 나오고 있고, 충격받은 얼굴의 그는 진실된 대답을 한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물어야 했다. 왜 나는? 



"짐작가는 일이라도... 없으신지요?"
"제...제가... 미욱하여....."


겨우 눈물을 그친 브래들리는 풀이 죽은 채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제가 봤을 때 그런 이유는 아닌 듯했다. 브래들리는 사치스러운 알파도, 방정맞은 알파도 아니었다. 외모도 이 정도면 자기 취향이었고...



"제가 다른 알파가 있습니까?"
"그..그런...질문에 제가...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요?"
".....질투....할수도 있기 때문에..... 오메가님의 다른 알파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알 수 없습니다....."


힐긋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브래들리는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망할 알파인권, 이렇게까지 바닥인지. 



"후... 일단 저는 당장 이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과거의 제가 어떤 생각을 가졌던지에 상관 없이요."
"아...! 감사합니다....."
"저와 당신은 이전에도 각방을 썼나요?"
"예.....? 어....."

혼란스러운 얼굴로 브래들리는 답변을 이어갔다. 


"....저어, 저는 여기서만 기거합니다. 제이크님은 본채에서 오시고 싶으면 오는 거고요.... 각방...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길게 이어진 설명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러니까, 남편을 창부 취급한 거냐고..... 슬슬 머리가 아파져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짚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동안의 쌓인 얘기가 궁금해서요. 내일도 와도 됩니까?"
"언제든지 이곳은 제이크님께 열려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도 오겠다는 얘기에 브래들리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어쩐지 그가 더 궁금해졌다. 왜 당신이 그런 표정이 짓는지. 왜 당신이 날 이렇게나 반가워하는지. 






며칠 간의 별채 방문 끝에 내가 알아낸 정보라고는, 내가 개쓰레기 남편이었다는 사실일 뿐이었다. 이런 놈팡이를 왜 브래들리는 그토록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건지 이게 더 의문이었다. 여느 날보다는 일찍 별채에 방문했더니 브래들리가 없었다. 그의 행방을 묻자, 오랜만에 '에어쇼'를 보러갔다는 답변이 들린다. 



"에어 쇼? 그 전투기?"
"....예"
"그런 걸 좋아했나?"
"......예"



해가 모두 질 무렵에야 들어온 브래들리는 별채에 앉아있는 날 보고 당장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무릎부터 꿇던 이였는데, 그래도 며칠 간의 방문 끝에 고개를 숙이는 정도로 용서를 빌기로 했다. 잘못했다며 대뜸 무릎부터 꿇어댔기 때문이다. 


"와...와 계신줄 몰랐어요... 차가 막혀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에어쇼 보러갔다고 하던데요."
"예에.... 그... 비행기... 좋아해서....."
"진작에 알았다면 같이 갔을텐데, 아쉽네요."
"아아.. 이런 거 안좋아실 줄 알고..."


또다, 어쩐지 그는 내가 아쉽다거나 슬프다는 표현을 하면 제가 더 울상이 되어 대답을 한다. 이것도 알파가 받은 교육이라는 걸까. 




"그냥 해본 말이예요. 사고 이전의 제가 에어쇼를 관람하는 건 허락하던가요?"
"......별 말 없으셨어요..."




브래들리 속 사고나기 이전의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브래들리가 바깥에 나가는 걸 싫어하면서도 브래들리와 말을 섞길 꺼려하던 사람. 브래들리와 함께 식사하는 걸 거절했지만 매 끼니 브래들리의 식사는 챙기던 사람. 브래들리의 별채에는 몇번이고 드나들었지만 브래들리가 본채에 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던 사람.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이상하지.. 않으신데.... 이렇게 지내는 부부들도 많을 거예요. 그중에서도 저는 좀 자유로운 편이고요. 항상, 감사하다고...."
"입에 발린 말은 됐어요. 내일 뭐해요?"
".....진짠데...."



입이 부루퉁해진 브래들리가 말대꾸를 하는 모습을 보다니, 나는 질문한 것도 잊고 잠시 벙찐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꽤나, 귀여웠다. 아니지, 많이...?



"핫! 아, 죄송해요... 내일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저랑 어디 좀 갑시다. 기대해도 좋아요."



그렇게 말한 내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쥬얼리샵이었다. 아무래도 반지 하나 그의 손에 없는 게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부담스럽다며 도리질쳤지만, 결국 그의 손에 반지를 끼운 사람은 나였다. 



"....고마워요,.. 너무 감동적이예요....."



저렇게나 좋아할 거면서, 브래들리는 오늘 산 반지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내 손에 끼인 반지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저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그렇게 사양을 했을까. 오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쌓여만 갔다. 









@






잠들기 전까지 반지를 손안에서 도록도록 굴린 나는 눈을 감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말도 안되는 날들의 연속이다. 커플링이라니, 이 꿈이 언제 깰까 너무 두려운 마음에 애써 눈을 부릅떴다. 기억을 잃은 이후부터 다정해진 제이크는 정말이지... 너무 위험했다. 자신의 남편이지만, 누구보다도 위험한 사람이었다. 까닥하다간 몸도 마음도 모든 것도 그에게 가져다바치게 생겼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이혼서류에 가닿는다. 왜 그는 나와 이혼하려고 했을까. 또 그런 생각에 몸이 축 늘어지는.... 아, 아니다. 이건, 러트였다. 




잠이 확 깬 브래들리는 일단 소중한 커플링부터 반지케이스에 빼놓았다. 더러운 정액이라도 묻을까 애지중지 서랍에 잘 보관한 브래들리는 가까운 응급함에서 일단 주사부터 놓았다. 벌써부터 팔다리가 축축 처지고 나른한 기분에, 자지가 바짝 설 것만 같았다. 침대가 더러워지면 안되니까 수건을 깔고, 급한대로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별채라도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안되니까. 주사의 효과가 덜 돌았는지, 나태한 기분이 들고 앉아있기도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눅진하게 풀린 페로몬 사이에, 최근 제이크가 주었던 서류봉투가 눈에 보인다. 이혼사유가 비어 있던 이혼 서류, 애석하게도 그에게 남아있는 오메가 페르몬은 이것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던 과거에 비하면 감지덕지지만. 그는 서류봉투에 남은 아주 희미한 제이크의 흔적을 쫓아 코를 박았다. 짙은 종이 냄새에 미세하게 그의 페로몬이 남아있다. 첫날밤 이후 한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야생장미향. 장미향을 상상하며 수건 위에서 자신의 것을 흔들었다. 한 발 빼는 건 금방이었지만, 러트라 그런지 금세 다시 서버린다. 




그는 손수건을 꽉 깨물며 생각한다. 조용히,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해. 




처음으로 본채에서 자던 날, 갑자기 온 러트에 방을 비워주던 제이크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아픈 거냐며 사용인을 불러왔다. 알파 사용인은 금세 자신이 러트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러트가 왔음에도 안아주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었다. 러트라면 응당 한번 빼주기라도 할텐데, 그의 주인은 사용인을 불러 간병하라고 했으니까. 그만큼 내가 형편없다는 거겠지. 묘한 소문을 알아챈 제이크는 브래들리를 더이상 본채에 부르지 않았다. 브래들리에게 그 소문보다 상처였던 건 제이크의 대처였다. 그게 아니라고 해명하는 게 아니라 아예 못듣게 해버리는 그 대처는 마치, 브래들리에게 "너는 형편없는 알파"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브래들리의 러트는 단 한번도 누구와 함께였던 적이 없다. 예전부터도,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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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에서 브래들리가 앓아누웠다는 이야기에 나는 의사를 보냈다. 마침 미국에 여행 와있던 친구였다. 나의 남편이니 잘 봐달라는 얘길 하며 그를 들여보냈는데, 그는 화가 잔뜩 난 채로 나에게 돌아왔다. 




"너,... 후, 야 너... 성교육 받을 때 잤냐?"
"....뭐?"
"아니, 자기 알파 러트에 오메가 의사 보내는 놈이 어디있냐?"
"러트? 러트가 뭐야?"
"와, 이 새끼.... 잠깐, 너 그럼 이때까지 네 알파랑 한번도 러트를 보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러트가 뭐냐고."
"아오, 알파들의 히트사이클! 너 힛싸 와본적 있어 없어?"
"있지... 한 달에 한번씩 오는데...."
"그때마다 네 알파는 뭐해? 봉사하러 오잖아"
"으응.. 그렇지?"
"알파는 그게 3개월에 한번씩 와. 봉사까진 아니더라도 페르몬을 풀어주는 정도는 해야지, 오메가가! 아니면 하다못해 옷가지라도 넣어주던가!"
"뭐....?"
"와, 그럼 3년동안 4번씩 12번을 그냥 홀로 러트를 버틴거야...? 그 알파도 징하다, 징해...."
"아...아닐껄? 기억 잃어버리기 전에는 해줬을껄?"
"해주긴 무슨. 그 별채에 오메가 냄새 나는 거라고는 이거 하나밖에 없던데."




의사는 툭, 그의 앞에 서류봉투를 내놓았다. 제이크는 이게 대체 무슨 봉투인가 싶어 열어보는데, 제일 처음 별채에 들고갔던 그 이혼서류였다. 




"왜 이혼하려고 했는지 알겠네. 응, 명백히 네가 귀책사유다. 와, 세상에 이혼서류 쥐고 러트 보내는 알파가 어디있냐고...."


친구는, 그렇게 쓸거면 나 주라는 말로 대화를 끝내버렸다. 제이크를 바라보는 눈빛은 친구 새끼에서 한심한 새끼로 한 단계 내려간 이후였다. 제이크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대체 그는 어떤 삶을 버텨온건지 짐작도 어려웠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단지 아프다고만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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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모든 러트는 끝나있었고, 그의 옆에는 제이크가 손을 잡고 잠들어있었다. 브래들리는 온기가 느껴지는 손에서, 방을 가득채운 장미향에서 그만 눈물을 쏟아내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던 결혼 생활이었기에 더욱 눈물이 났다. 



훌쩍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제이크는 울고있는 브래들리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다고, 러트란 게 있는 줄 몰랐다고. 브래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제이크는 착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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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혼을 해야겠지. 처음 브래들리를 만나던 제이크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겨우 부잣집 며느리, 이런 거하면 안되는 거잖아. 브래들리는 모르겠지만, 제이크는 브래들리의 에어 쇼날에 관중석에 앉아있었다. 그곳에서의 브래들리는 압도적이었다. 모든 에어쇼 부문에서 석권한 브래들리를 '알파의 기적' 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아니꼬운 아버지가 브래들리를 점찍은 이유도 분명했다. 그는 옆에 세워두기만 하면 빛나는 사람이었다. 



브래들리는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제이크는 브래들리와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딱,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그는 브래들리를 위해 새롭게 경비행기를 들이고, 그의 에어쇼 관람을 언제든지 허용했다. 이혼 위자료를 주기 위해 귀책사유가 있도록 러트 때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듯, 본채에서 밥을 먹고 쉬던 브래들리가 잠이 들면 몇번 본채에서 재우기는 했다. 그 마저도 러트를 모른 척한 뒤로 사라졌지만. 브래들리는 몰랐지만, 그 소문을 낸 사용인은 잘리고 본채의 사용인은 모두 물갈이 되었다. 그럼에도 브래들리를 본채로 들이는 건 마땅치 않았다. 그가, 아무것도 몰랐으면 해서. 그게 그렇게 상처가 될 줄은 몰랐지만. 




한바탕 기억이 돌아온 제이크는 멍한 기분이었다. 내가, 대체 뭘 한걸까. 기억이 온전해진 제이크와 온전하지 않았던 제이크 사이는 큰 충돌이 일었다. 저렇게 빛나던 사람이 고작 이 저택 안에만 있냐는 게 말이 되냐는 쪽과 어차피 이혼은 글렀다는 쪽이 치열하게 대립되었다. 그 사이 문을 열고 그의 방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 브래들리는 한쪽 무릎을 꿇고 막 일어난 제이크에게 물 한잔을 건냈다. 



"일어나셨어요?"
"브래들리, 너.... 다시 하늘을 날게 해준다면..... 할래?"
"그때도... 이렇게 여쭤보셨었죠."


뭐, 내가 언제? 말을 잇기도 전이었다. 


"할 생각 없어요. 전 이미 제이크님의 목줄을 찼으니까요."



아아, 그제서야 생각났다. 사고가 나던 그날, 제이크의 옆자리에 앉았던 브래들리는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너무 놀라서 브래들리를 쳐다본 잠깐의 순간 사고가 일어났고. 



"기억이.... 모두 돌아오셨나요...?"
"....방금, 네 덕에...."
".....그럼 다시, 저를 또 멀리하실건가요....?"
"그 대답을 들었으니... 그러진 못하겠지."
".....제이크님, 저를....."



사랑해주실건가요? 브래들리의 질문은 울음에 먹혀 이어지지 못했다. 브래들리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없어 그저 고개만 숙였다. 




"내가 미안해.... 내가... 더 노력할테니까, 응? 내가 널 사랑하면 안될까?"
"....으흑... 흑.... 제가 그 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 내가... 내가 미안해...."


 고개를 숙였던 브래들리는 제이크의 품안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마침내 닿았던 진심의 순간, 그동안의 설움이 눈물로 씻겨내려가고 있었다. 




 
2024.04.29 02: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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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루스터가 나쁜짓 했나 긴장했던 내가 쓰레기다ㅜㅜㅜ루행은 순애를 하고 있는데ㅜㅜㅜㅜ
[Code: d244]
2024.04.29 02: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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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츠.. 깊고 진한 사랑을 어쩜좋니ㅠㅠㅠ 영원히 러트힛싸 같이보내고 넘치게 사랑해라!!!
[Code: 07d0]
2024.04.29 03: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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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인씹도 존맛이네... 고분고분한 루스터 안쓰럽기도 한데 또 한편으론 순종적이어서 좋고 마음써주는 행맨도 좋고.. 이제 오해는 풀었으니까 러트같이 보내주라ㅠㅠㅠㅠㅠ
[Code: 1484]
2024.04.29 08: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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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인씹 개존맛! 잠깐 기억 잃은 동안의 일들이 이해가 간다ㅠㅠㅠㅠ행맨은 행맨 나름대로 루스터의 행복을 쭉 바라고 있었네ㅠㅠㅠㅠㅠ
[Code: e9bd]
2024.04.29 09: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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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인씹 맛있네... 맛있어.. 역시 둘은 사랑을 하고 있었어ㅠㅠ
[Code: 9bef]
2024.05.03 00: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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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피스
[Code: 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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