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2354075
view 4958
2024.04.28 23:15
아이스맨과는 그 후로 쭉 냉전상태였어. 알게모르게 내향인이었던 매버릭이, 딴엔 용기내어 내민 호의가 보기좋게 무시당하자 마음이 많이 상했던거야. 새우등이 터질대로 터진 슬라이더는 둘을 최대한 화해시키고 싶어했지만 구스는 딱 잘라 거절했어. 지 맘도 모르고 울 아들 홀대하는 사위는 싫다. ...하고. 

주말, 오랜만에 캐롤과 브래들리를 만났어. 구스는 그 둘에게 뽀뽀를 퍼붓고는 꽃을 내밀었지. 매버릭은 멀찌감치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봤어. 가족이란 울타리를 너무 일찍 잃어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꺼웠어.

매버릭은 구스와 캐롤을 위해 브래들리를 맡아 돌보기로 했어. 거위커플은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기러 갔고, 매버릭과 브래들리는 근처 공원으로 향했어. 날씨가 정말 좋았지. 기분도 최고였어. 아이스맨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을거야. 아이스맨은 양 옆에는 금발의 쌍둥이가 있었는데, 아이스맨을 그대로 줄여놓은 것 같아 보였어. 

"...여긴 어쩐 일이야?"

묘한 대치상황 끝에 아이스맨이 먼저 입을 열었어. 매버릭은 당장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이스맨의 옆에 있던 쌍둥이들이 먼저였어.

"안녕, 난 닉이에요! 니키라고 불러요!"
"형아는 팝콘 좋아해?"

매버릭의 다리에 각각 달라붙은 쌍둥이에 브래들리도 성을 냈지. 매브는 내거야! 셋이 투닥거리는 걸 보다못한 아이스맨이 쌍둥이들을 떼갔어. 

"미안. 좀 제멋대로라..."
"우리랑 같이 놀면 안돼요?"
"톰 형은 너무 재미없어."
"씁."

매버릭은 브래들리를 살폈어. 브래들리는 (어느새 아이스맨의 품에서 탈출한) 크리스가 내미는 팝콘을 넙죽 받아먹고 있었지. 사실 매버릭은 브래들리를 어떻게 즐겁게 해줘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브래들리에게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매버릭의 어린시절은 즐거움보다는 불안하고 외로웠던 기억들 뿐이었거든. 나보다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게 더 즐거울지도 몰라. 여전히 아이스맨이 싫었지만, 매버릭은 결국 카잔스키 삼형제와 함께 어울리기로 했어. 



-



캐피와 야구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어. 캐피는 오랜만에 잔뜩 신이 나 있었어. 같이 경기를 본 캐피의 친구를 데려다주기 위해 피트는 자주 다니지 않던 길목으로 운전대를 돌렸지. 늦은 오후, 노을이 스며드는 하늘과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정말 끝내줬어. 차 안에 노래를 틀어두고 달리는 창 바깥으로 관람차가 스쳐지나갔어. 



-



아이 셋과 차를 타고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 닉은 희한한 노래를 불러대며 탭댄스를 추려했고(덕분에 아이스는 닉이 안전밸트를 풀려고 할때마다 차를 세워야 했어.), 크리스는 직접 개발한 희한한 기계를 쏘려했어. 광선총이나 뭐라나. 브래들리는 창 밖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매버릭이 불러도 대꾸도 안할 정도였으니까.

셋은 놀이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기념품 샵에 들렀어. 매버릭은 어른처럼 굴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띠를 비롯한 온갖 소품들을 써보며 신나게 즐겼어. 브래들리에게는 병아리 선글라스를 씌워주었지.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브래들리는 활짝 웃었어. 

크리스는 판다 귀마개와 외계인 머리띠를 샀고, 닉은 질새라 장난감 말과 나비넥타이를 샀어. 넋이 나간 얼굴로 계산하려는 아이스맨에게 둘은 매버릭의 것을 고르라고 소리쳤지.

"형은 멋쟁이 선글라스 있어서 괜찮아."
"기념품이 아니잖아!"

쌍둥이의 호통에 매버릭은 결국 아이스맨이 고른 소품을 받아들었어. 다람쥐 귀와 리본이 달린 머리띠을 한 매버릭을 아이스맨은 빤히 쳐다봤어. 간죽간살인 매버릭으로서 그건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었어. 그걸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얼마 뒤 아이스맨은 서벌 귀마개와 꽉 끼는 요정 날개를 멘 괴상망측한 차림으로 놀이공원을 돌아다니게 되었어.

범퍼카, 아동용 롤러코스터, 동물원까지. 아이들은 쉼없이 돌아다녔어. 매버릭은 어쩐지 자신이 없어서 한걸음 떨어져 걸었지.

아이스맨은 아이들을 돌보는게 익숙해보였어. 떼를 쓰면 단호히 타이르는 한편으로, 가능한 건 해주려 노력했지. 배탈이 난 자신을 대하던 태도가 변덕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아이들은 아이스맨이 다트게임으로 딴 인형을 하나씩 껴안고 잔뜩 신나보였어. 그와 반대로 매버릭은 더 시무룩해졌어. 



​-



기분이 한껏 업된 셋은 근처 유원지에 들렀어. 시골 동네라 별 거 없을 줄 알았는데, 나름 구성은 잘 되어 있었어. 캐피가 친구와 다트던지기 게임을 하는 동안 피트는 구석에 -거의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회전목마로 다가갔어. 소름끼치게 끼익거리는 소릴 냈지만 칠이 덜 벗겨진 회전목마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지.



-



"맵, 나랑 마차 타자!"



브래들리가 매버릭의 팔을 잡아당겼어. 회전목마에 있는 마차를 타고 싶다나봐. 근데 매버릭이 타버리면 브래들리는 닉, 크리스와는 함께 못타게 되는 거잖아. 매버릭은 괜찮다고 거절했어.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라는 나름의 배려였지만, 그 대답에 브래들리는 울음을 터트렸어. 매버릭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브래들리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어. 매버릭이 밉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 결국 아이스맨이 브래들리를 안고 자리를 피했어. 둘이 이야기를 나눌동안 매버릭은 닉, 크리스와 함께 벤치에 앉아 기다렸지. 

닉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 매버릭의 볼을 벅벅 문질러댔어. 크리스는 풍선을 내밀며 매버릭의 무릎을 두들겼고. 둘이 동시에 괜찮냐고 물어볼 때가 되어서야 매버릭은 자기가 울고있단 걸 깨달았어.

얼마 뒤 돌아온 브래들리는 눈물을 멈춘 상태였지만 여전히 매버릭에게는 성을 냈고, 아이스맨은 쌍둥이에게 브래들리와 회전목마를 타고 오라고 했어. 그리고 회전목마가 잘 보이는 벤치에 매버릭과 함께 앉았지. 잠자코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이스맨이 말문을 열었어.

"오늘 하루 너랑 놀 생각에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이야. 어제 잠도 못잤다더라."
"... ...."
"무슨 일 있어?"

매버릭은 입을 꾹 다물었어. 아이스맨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었지. 마른 세수를 대여섯번을 한 후에야 겨우 입이 떼졌어.

"...나, 이런데 와본 적 없어. 어떤게 있는지, 어떤게 재미있는지도 모르겠고."
"... ...."
"사실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브래들리에게 최고의 하루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죄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브래들리의 선물을 사줄 때도 항상 구스가 도와줬거든. 내 말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

마차에 앉아 있는 브래들리가 보였어.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있었지. 닉과 크리스가 원숭이와 유명 가수 흉내를 내며 열심히 달래주고 있는데도 여전했어.

"난 오지 말걸 그랬어. 괜히 분위기만 망치잖아."
"그건... 아닐걸."
"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하자, 아이스맨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지.

"매버릭. '슬라이더와 교본 10시간 읽기'와 '제스터 소령님과 비치발리볼 하기.' 둘 중 어느게 좋아?"
"둘 다 싫은데? 차라리 비치발리볼을 할래."
"... ...어, 구스와 교본 10시간 읽기는?"
"그럼 그거."
"왜?"

매버릭은 눈동자를 데구르 굴렸어. 글쎄, 그냥 그게 더 좋아보여. 아이스맨은 대답을 듣고 슬쩍 웃었어.

"중요한 건 뭘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랑 하느냐지."
"...아."
"브래들리는 너랑 있는게 너무 좋은데, 넌 즐거운 것 같지 않아서 내내 속상했었나봐. 회전목마도 사실 말을 타고 싶었는데 너랑 같이 앉으려고 마차 탄다고 했던거고."
"......."

"매버릭, 너무 부담갖지마. 누굴 만족시키려 할 필요 없어. 같이 놀러온 거잖아. 즐겁기만 하면 되는거야."



매버릭은 쌍둥이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브래들리를 안아들었어. 브래들리, 삼촌이 미안해. 매버릭이 진심을 다해 사과하자 브래들리는 매버릭을 꼭 껴안았어. 둘은 다시 회전목마를 탔어. 힘차게 발을 구르고 있는 말 모형을 골랐지. 브래들리는 신나서 어쩔 줄 몰랐어. 매버릭의 손등에 손을 겹쳐 올리고는 "출발!" 하고 소리쳤어. 설렘과 즐거움으로 온 몸이 붕 뜨는 것만 같았어.

"—매버릭!"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이스맨이 캠코더를 들고 있었어. 아이스맨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렌즈를 보고 있었지. 매버릭이 저도 모르게 웃자, 아이스맨이 고개를 드는게 보였어.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흩날렸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어. 

곧 회전목마의 운행이 종료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어. 동시에 크리스가 내내 가지고 있던 풍선을 놓쳐버렸고, 풍선이 시야를 가려 매버릭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어. 산발하는 빛 사이로, 아이스맨과 눈이 마주쳤어. 눈꼬리를 접으며 웃는데,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음,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더없이 다정해보였어. 심장소리가 시끄럽게 울렸어. 브래들리의 것이라 변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컸지. 




재생다운로드val20-수정.gif


KakaoTalk_20240428_225803614.jpg
2024.04.28 23:19
ㅇㅇ
모바일
맵ㅜㅜㅜ 브래들리한테 좋은것만 주고싶었는데 방법을 몰랐구나ㅠㅠㅜ아이스는 저렇게 다정했는데 왜 현재에는 없는걸까ㅜㅜ
[Code: 92a5]
2024.04.28 23:42
ㅇㅇ
모바일
내 센세가 어나더를 주셨어! 센세 사랑해 ㅠㅠㅠㅠㅠㅠ
[Code: 4541]
2024.04.28 23:49
ㅇㅇ
모바일
매버릭과 함께라면 뭘하든 브래들리는 신나고 행복했을텐데 그걸 아이스가 알려줬구나 매브 안쓰럽다ㅠㅠㅠ그래도 다행이야 마지막은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낸거잖아 회전목마를 탄 매브와 브래들리의 모습이 아이스의 캠코더에 그대로 담겨있겠네
[Code: 4541]
2024.04.28 23:51
ㅇㅇ
모바일
왜 아이스와 매버릭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캐피가 다 클때까지 연락도 없다가 이제야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걸까?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잠이 안올 것 같아 센세
[Code: 4541]
2024.04.29 08:17
ㅇㅇ
모바일
짤글일치 ㅠㅠㅠㅠㅠ 너무 좋다
[Code: 3ff5]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