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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15:07
스모크스크린은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옵틱이 셧다운과 재가동 사이를 오갈 때마다 자신을 구타하는 사운드웨이브의 모습이 어둠 너머로 흐려졌다가 도로 나타나길 반복했다. 통증 신호 수신이 원활하지 않은 걸 보니 브레인 모듈에 심한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자신이 서 있는지 혹은 쓰러져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팔 안에서 무언가를 우그러뜨리는 중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셧다운 중인 레이저 비크였다. 내가 이걸 왜 끌어안고 있더라? 이유를 잊어버렸지만 내보내줄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세상이 점멸을 거듭한 끝에 사운드웨이브가 있던 자리에 대장님이 대신 들어섰다. 공포를 흠뻑 머금은 그의 조리개가 한계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우리 대장님. 대장님을 아프게 하면 나도 네가 아끼는 걸 망가뜨릴 거야. 스파크를 소진해서라도 남김없이 파괴할 거야. 그러나 어느새 팔 안의 레이저 비크는 사라져 있었다.


의식이 온라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므로 쥐도 새도 모르게 기절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다가붙던 대장님을 찾았으나 보이는 건 라쳇의 얼굴이었다. 배경도 메디베이로 바뀌어있었다.


“대… 장님…”


스모크스크린은 미약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보이스박스가 거슬리는 노이즈를 함께 송출했기 때문에 듣는 이가 알아들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라쳇이 비현실적으로 자상한 목소리를 냈다.


“옵티머스는 무사하니 눈 좀 더 붙여. 수리가 끝나면 훨씬 나아질 거야.”


파멸의 의사님에게 저 정도의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나 상태가 나쁜걸까? 아니면 그냥 꿈을 꾸고 있는 걸 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스모크스크린은 다시 오프라인의 수마에 빨려들어갔다.


세 번째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조용하고 어두운 방 안이었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대장님의 쿼터였다. 헤드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몇 사이클에 걸쳐서 간신히 고개를 돌렸을 때 리차징 베드 옆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연인의 안테나가 보였다. 대장님은 본인의 무릎 위에 팔과 얼굴을 묻고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여기 같이 누우시면 되지 왜 리차징도 못 하고 불편하게 구겨져 계신담. 겨우 희미한 어스름에도 헤드 뒷면에 작게 움푹 파인 자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운드웨이브의 촉수가 내리친 자리였다.


분노와 함께 주기억 장치가 으르렁거리듯 작동하는 소음을 냈다. 일단 라쳇을 제외한 전 대원이 아이다호의 에너존 정제소에 침투했던 건 기억났다. 대장님의 명령에 따라서 노동용 비콘들은 대피하도록 내버려두고 강화된 경비를 뚫는 데에 집중했다. 정제 탱크와 냉각 타워 등을 반파했고, 벌크헤드가 에너존 저장고를 확보한 뒤에는 재빨리 큐브를 나르는 범블비를 위해서 엄호 사격해주었다. 알씨가 미상의 그라운드 브릿지 개방에 대해서 경고했을 때 그들 모두 인섹티콘 군단이 쏟아져나올 것에 대비했으나, 대부분 비콘 지원군이었고 인섹티콘은 몇몇에 그쳤다. 머지않아 인섹티콘들이 아군과 적군을 혼동하며 닥치는 대로 공격해대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수 투입에 그친 이유는 명료해보였다. 라쳇의 예상대로 스타스크림이 개발한 인섹티콘 조종기의 파장이 그들의 인지체계에 일시적인 손상을 입힌 모양이었다. 거기까지는 일이 수월하게 흘러갔다.


본격적인 문제는 브릿지가 닫히기 직전 사운드웨이브가 걸어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소문이 무성한 디셉티콘의 정보참모를 육안으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도록 전면 바이저를 착용한 그는 인섹티콘을 해치우고 있던 대장님에게 곧장 접근했다. 이전에 자료를 통해서 확인했던 것처럼 사운드웨이브의 전투 스타일은 가장 효율적인 동작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적조차 감탄할 정도로 철저한 방어를 점차 공격으로 뒤바꿔나가면서 상대를 몰아붙이다가, 중요한 순간 레이저비크나 촉수를 은밀하게 조작해서 허를 찌르는 식이었다. 시선을 차단하는 바이저 탓에 어디를 보고 있는지, 다음에는 어느 부위를 공격할 요량인지 일말의 실마리도 얻기 힘들었다. 그런 메크를 상대로 대장님은 서서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스모크스크린은 상대하던 비콘의 흉부 플레이트에 구멍을 내자마자 그 쪽으로 달려갔다. 둘의 전투 현장까지 거리가 다소 있어서 도착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사운드웨이브는 근접전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물러서는 척 하며 촉수로 대장님의 헤드 배면을 가격했다. 그가 휘청이는 틈을 타서 드릴과 같이 회전하는 또다른 촉수가 달려들고 있었다. 감탄스럽게도 대장님은 그 짧은 순간 허공에 블래스터를 발사하더니 반작용의 힘을 빌어서 공격 범주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그러나 시야 사각에서 전기 충격을 준비하는 레이저 비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듯, 그를 가차없이 공격하며 주의를 끄는 촉수들을 절단내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각자 비콘이나 인섹티콘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대장님이 쓰러지면 사운드웨이브가 그를 끝장내려 들 것이다. 오토봇 수장의 스파크를 꺼뜨릴 수 있는 천운의 기회를 지나칠 리 없었다. 스모크스크린은 옵틱에서 불똥이 튀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비콘 하나가 발목을 잡자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레이싱 카로 변신했다. 우측 바퀴 두 개만 지면에 붙을만큼 아슬아슬하게 코너링하면서 루프에 매달렸던 비콘을 날려버린 뒤, 최대 속도까지 때려밟았다. 자신과 레이저 비크, 대장님이 거의 일직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잘못 사격하면 대장님마저 부상입힐 위험이 있었다. 칼로든 손으로든 직접 쳐내야 했다. 레이저 비크가 대장님의 등에 부착되려는 찰나, 스모크스크린은 팔부터 트랜스폼 했다. 로봇 형태로 다 돌아오기도 전에 그 못돼먹은 자식을 붙잡고 나동그라졌다. 전류가 브레인 모듈을 굽기 직전 시선이 마주친 듯한 사운드웨이브는 처음으로 미세한 빈틈을 보이고 있었다. 이 작은 부속로봇이 그의 정신적 약점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바스러뜨리기로 작정했다. 대장님을 향하던 사운드웨이브의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오기에는 이것만한 게 없을 것이다. 전신을 관통하는 전기 충격에 경련하면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캐논이나 블레이드를 꺼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순수한 완력으로 악착같이 짓눌렀다. 그 와중에도 눈 깜짝할 새에 대장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레이저 비크를 구하고자 공격해오는 사운드웨이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장님의 얼굴, 그 얼굴. 메가트론에게 배반 당했을 때나 엘리타원이 기능정지했을 때에도 그런 표정을 지으셨을까? 가여운 우리 대장님. 아마도 사운드웨이브가 부서진 레이저 비크와 함께 퇴각한 뒤였을 것이다.


스모크스크린은 메모리 재생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대장님이 뒤척이면서 옆얼굴이 조금 드러났다. 옵틱 기능 저하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눈꼬리가 촉촉한 것 같았다. 고개도 가누기 힘든 몸으로 대장님을 리차징 베드에 눕힐 자신은 없었기에, 그는 줄기차게 통신을 보냈다.


<일어나요, 대장님.>

<이리 와서 리차징 하세요.>

<대장님의 잘생긴 귀염둥이가 부활했다구요.>

<저 설마 통신 기능도 고장난 거 아니죠?>


다행히 통신에는 지장이 없었는지 대장님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스모크스크린은 씨익 웃어보였다. 도금이 벗겨진 립 플레이트가 따끔하게 당겨왔다. 대장님은 여태껏 스모크스크린이 본 것 중 가장 단시간 내에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는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옵틱 가득 감사어린 환희의 세척액이 차올랐다가, 스모크스크린의 부상을 본인이 입은 것 마냥 나지막하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다가, 화가 난 것처럼 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그 결심도 허물어진 듯 오로지 애틋한 얼굴이 되었다. 스모크스크린은 그의 최종 반응을 기다리다가 물었다.


“저 혼나요, 아니면 안겨도 돼요?”

“...괜찮은가?”

“아뇨, 안아주세요. 머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입도 말할 때마다 땡겨요.”


대장님이 그를 그 어느 때보다 살포시 안아주었다. 오디오 리셉터가 이명에 초점을 맞추는 탓에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히 감별할 수는 없었으나, 최소한 메디베이에 있을 때보다는 나아진 듯 했다. 그러니 대장님도 말을 알아들으셨겠지.


<통신으로 얘기하면 괜찮겠나?>

<네, 안기니까 훨씬 덜 아파요. 으응, 역시 대장님 손이 약손이다.>

<라쳇이 최소 오 솔라 사이클간은 자네를 침대에 묶어두라고 했네. 브레인 모듈에 큰 충격을 받았어. 시급한 부품은 교체했다지만 아직도 손볼 곳이 많네.>

<그래도 고칠 수는 있나보네요. 오 솔라 사이클간 침대 붙박이 신세라, 듣기만 해도 지루한데.>

<제발 이번만큼은 말 듣게. 나도 그동안은 평소보다 빨리 일정을 마치고 쿼터로 돌아올테니.>

<그럼 저 상은 그 때 받을래요.>

<상?>

<상 없어요? 저 환자인데… 이렇게 한 몸 바쳐 대장님을 지켜냈는데… 이 달의 특별 대원상 그런 거 없나.>

<....>


대장님이 엄한 표정으로 변했다.


<진짜 없어요? 저 상... 예쁨받고 싶은데.>

<스모키, 이번에 너무 무모했어. 위기에서 날 구해준 건 고맙고 기특하네만 지나치게 위험했네. 자칫 잘못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몰라… 더 자세한 훈계는 자네가 회복한 다음에 하기로 함세.>

<아이고, 아파라. 뒷골도 당기고 여기저기 삭신이 다 쑤신다. 대장님이 나란히 누워줬으면 좋겠다.>

<하아…>


그제야 대장님이 조심스럽게 스모크스크린의 곁에 누워서 리차징을 시작했다. 따뜻한 손바닥이 안정감 있게 등을 토닥여왔다. 한숨 쉬신 것 치고는 한없이 섬세하고 애정이 듬뿍 서린 동작이었다. 스모크스크린은 그의 품에 뺨을 부비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여전히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두들겨맞는 것처럼 아팠다.


<좁진 않나?>

<딱 좋아요. 이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서 토닥여주세요.>

<아, 미안하네. 아팠나보군.>

<아뇨, 골고루 토닥임 받고 싶어서요. 그 다음에는 도어윙 쓰다듬어주시고요.>


대장님이 설핏 미소 지었다.


<자네도 참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스파클링 같다고요? 아닌데요.>

<그런가? 지금 두 살배기처럼 안겨있는 건 누구고?>

<대장님 애기?>


립 플레이트를 내밀어서 키스를 조르자 대장님이 못 견디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당연히 다가올 줄 알았던 입술은 더 멀어졌다.


<키스하면 상처가 덧날걸세.>

<그럼 뽀뽀만요.>

<자네가 다 나으면 하세나, 오 솔라 사이클 후에.>

<엥? 거짓말. 겨우 뽀뽀인데요?>

<진심일세.>

<뽀뽀 한 번 한다고 도대체 생명에 무슨 지장이 있는데요?!>


억울함을 담아서 호소해도 대장님은 그저 은은하게 미소지으실 뿐이었다. 지금 타이밍에 왜 저렇게 아련한 분위기를 뿜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부당하고 또 부당했다. 그 뒤로도 열심히 고개를 뻗어서 대장님의 립 플레이트를 찾아갔지만 안정을 취하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 누우시기까지 했다. 나 설마 대장님 지켰다고 벌 받고 있는건가? 무모했다고? 그게 어디가 무모했는데? 아니면 당분간 침대에 잘 누워있으란 뜻에서 일부러 호락호락하지 않게 구시는 거? 다발로 던진 질문 끝에도 등 뒤로 팔을 뻗어서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있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불쌍하고 아픈 척 엄살을 떨려고 했지만, 아직 온전치 않은 시스템이 리차징을 명했다. 스모크스크린은 속수무책으로 잠에 빠지는 자신을 느꼈다.






트포 스뫀옵티
2024.04.28 15:23
ㅇㅇ
모바일
흐으으응 스뫀이 멋있고 귀엽고 다한다
[Code: f1e8]
2024.04.28 15:49
ㅇㅇ
모바일
스뫀이 너무 든든한데 대장님 얼마나 맘이...ㅠㅠㅠ
[Code: 07cd]
2024.04.28 18: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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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첫문장 보자마자 기절할뻔했네 스뫀아ㅠㅠㅠㅠㅠ
[Code: 9e70]
2024.04.28 19:38
ㅇㅇ
센세 최고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134]
2024.04.28 23: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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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천재야? 일요일 밤 최고의 선물...
[Code: 66e0]
2024.04.29 00: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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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뫀이 옵대장 지키려다 다쳤구나 ㅜㅠㅜㅜㅠㅜㅜ하
그나마 이 정도로 그친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레이저비크를 잃을뻔한 사웨가 가만히 있을지..ㅜ전쟁때문에 각자에게 소중한걸 지키려고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오토봇에게도 디셉에게도 너무 각박해요 센세ㅜㅜ
[Code: 590d]
2024.04.29 03: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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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센세의 대작을 읽고 읽다가 여기까지 왔어... 이제 나도 매일 센세를 기다릴게 센세는 나의 행복이야......
[Code: 0b3c]
2024.04.29 23: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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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겁나 필력 개쩌는 천재..영원히 함께하자ㅜㅜㅠㅜ
[Code: a831]
2024.04.29 23: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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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뫀이 순애 미치겠음 ㅠㅠㅠㅠㅠ 저러니까 대장님이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거겠지?? 대장님에 대한 사랑이 매순간 드러나서 진짜 너무 좋다... 센세 사랑해 ㅠㅠㅠ
[Code: 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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