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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06:09
아나킨은 결심했다. 유동식 외의 음식을 먹어보기로. 혼자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이지, 아나킨이 그 결심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나 실천할 의지는 아직 없었다. 정확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루하루 숨만 쉬며 그의 아들 루크가 주는 대로 먹고 소화시키는 것이 일과였다. 아나킨은 그런 삶도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빛으로 돌아온 이후 그의 숨은 루크의 것이라 결론 내렸다.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복잡한 마음을 지녔으나 생각은 단순한 편이었다.

아나킨이 보는 루크는 늘 바쁘다. 새로운 제다이 오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드로이드에게 아버지를 돌봐달라 부탁하고 며칠씩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루크는 언제나 돌아왔다. 집으로. 아나킨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이 루크의 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유동식이 아닌 음식을 소화시키고자 하는 결심도 그 즈음에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변화의 때였다. 마침 겨울도 지난 봄이었으니. 다시 말하지만 아나킨은 그 결심을 루크에게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아나킨은 붉은 색의 열매가 잔뜩 담긴 접시를 받았다. 그것들을 아버지의 앞에 갖다 둔 루크는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피하고 입술을 깨물기도 하면서. 루크는 더워보이기도 했고, 이 상황에 대해 겸연쩍어 보이기도 했다. 표현한 적은 없어도 그는 다짐한 적이 있다. 다른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그러나 이렇게 눈 앞에 잔뜩 있으니 기가 죽는다. 아나킨은 한참이나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결국 그 무엇도 입에 대지 않았다. 루크가 거의 울상이 되어 그릇을 치우고나서야 아나킨은 묘한 불편감과 함께 해방되었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계절이 한 바퀴 돌 동안 아나킨은 종종 그의 아들이 가져온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루크가 그릇을 치우면서 굉장히 슬퍼했기 때문에 그것의 정체를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나킨은 그 애의 아픔을 가장 끔찍이 싫어했다.

그와 별개로 아나킨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전보다 더 튼튼한 의수와 의족을 달 수 있게 되었음이 첫 번째고, 루크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갈 기회를 받은 게 두 번째다. 루크가 오래된 제다이 사원이 있다는 행성에 갈 때마다 자문 역할로 아나킨을 동행시켰다. 루크는 신공화국과 척을 질 기세로 싸우면서도 아나킨을 동반하길 원했고, 그의 집요함은 잘 통한 모양이었다. 정작 아나킨은 할일없이 루크의 뒤만 따라다녔으므로 알투디투보다도 쓸모없는 존재였긴 하지만. 아나킨은 집 안이나 밖이나 크게 관심 없었다. 그러나 루크는 그와 함께 나갈 때마다 뛸듯이 기뻐했으므로 아나킨 또한 좋다고 말했다.

루크는 아나킨이 좋다고 말할 때마다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봄. 식사를 마친 아나킨은 루크에게서 익숙한 붉은 과일을 받았다. 이번엔 작은 것 딱 하나만 담긴 채로. 어찌나 작은지 그릇이 넓어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루크는 이전과 비슷하게 혹은 그 때보다 더 긴장한 듯 했다. 귀를 기울이면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동식만 먹어왔던 그는 포크로 애꿎은 과일을 툭 건드려보았다. 잘 굴러갔다. 그것은 작고 동그랗고 씨앗이 표피에 콕콕 박혀있었다. 과일을 집어들고 이 끝으로 살짝 베어물자 그는 오랜만에 맛을 느꼈다. 너무 오래간만이라 어떤 맛이 나는지까지 모르겠지만 무에서 유를 깨닫는 역사적인 순간임에는 틀림없다. 어색하게 빨간색의 과실을 씹고 있자니 루크가 안도했다. 그러더니 자신도 같은 것을 한 개씩 먹기 시작했다. 루크가 큼직하고 잘 익은 과일을 한 소쿠리 가득 먹는 동안 아나킨은 가장 작은 한 개를 겨우 다 먹었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후로 루크는 잊을만 하면 그 과일을 한 두개씩 내어줬고 그는 조금씩 맛봤다.

팔다리가 튼튼해진 아나킨은 집 밖을 산책했다. 그동안 집 밖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루크를 따라 여러 행성을 방문하면서 집 밖과 집 안이라는 개념이 새로 정립됐다. 그러면서 혼자 하는 산책도 즐기게 되었다. 여기는 새로운 제다이 사원을 건축하는 장소, 저기는 루크가 자주 가는 대나무 숲, 그리고 또 거기는 엑스윙이 있는 이륙장.

아나킨은 이번에 또 새로운 데를 발견했는데 빨간 열매를 단 식물이 빽빽히 자라고 있는 밭이었다. 그는 루크가 가져온 과일이 이곳에서 따온 것이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어느 제다이가 이렇게 작물을 키운단 말인가? 그가 과거를 되짚어보기론 아나킨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부자는 의외의 곳에서 닮은 점이 있었다. 어쨌든 아나킨은 산책 장소에 그 밭을 포함시켰고 이 발견을 흡족해했다. 그러나 다음 산책 시간에 그곳에 있는 루크와 마주쳤는데 루크가 굉장히 성을 냈다.

“왜 여기 있어요? 빨리 나가요!”

그동안 다른 장소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웃어주었는데. 이 밭에서의 루크는 신경이 날카로워보였다. 이유를 모르겠거니와 괜히 심술이 난 그는 이렇게 빈정댔다.

“이렇게 쫓아낼 거라면 왜 나한테 자유를 줬나?”

“나가라고요!”

루크가 소리를 높였고 아나킨은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나킨은 제 방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루크가 괘씸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들에게 화낸 일을 후회했다. 그의 아들은 신경질을 부린게 아니라 불안했던 것 같다. 제다이였을 시절의 아나킨도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똑같은 반응을 했으리라. 제다이로서 옳은 일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것을 깨닫자 모두 다 그의 잘못 같았다. 애초에 산책이라고 부르는 탐색을 허락받은 적도 없었다. 아나킨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루크가 허용했을 뿐이다. 그동안 그의 아들과 좋은 사이라고 못해도 나쁜 사이는 되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감정적으로 싸워본 적이 없는 관계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그에겐 광선검을 맞대는 결투 쪽이 훨씬 더 쉬웠다. 루크의 화가 영원하면 어떡하지?

얼마나 우울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식사도 몇 끼 걸렀던 것 같다. 산책을 나가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예전처럼 그는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튼튼한 팔다리를 얻기 전처럼. 이대로 아나킨이 숨을 잃는다 해도 그건 주인의 뜻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데 갑자기 그의 방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루크가 씩씩거리며 빨간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다시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 밭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나본데. 원하시는 대로 가져왔어요.”

여전히 심통난 말투였지만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아나킨은 입맛이 없어 거절하려 했지만 비어있는 배가 굶주림을 호소했다. 결국 그는 그것을 입에 댈 수 밖에 없었다. 과육은 깨무는 대로 살이 눌렸고 새어나온 과즙은 마른 혀를 축였다. 어쩌면 루크가 가져오는 그것이 아나킨에겐 절실히 필요했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한 개를 통째로 씹고 삼키며 아나킨은 이것의 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달다.”

“달아요?” 루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믿지 못하겠는지 루크는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같은 답만 들려줬다. 루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동안 아나킨은 굶주림을 달달한 과일로 채웠다. 맛있었다. 그동안 루크가 가져온 과일들은 전부 같은 맛이었을까? 아나킨이 접시를 다 비우자 루크가 그에게 입맞췄다. 입술이 맞닿고 혀가 부드럽게 그의 입안을 파고 들었다. 얽히는 혀에서 익숙한 단 향이 났다.

그날 아나킨은 배앓이를 했다. 원하는 것이어도 잔뜩 먹으면 탈이 난다는 교훈을 그는 아주 오래간만에 깨닫게 되었다. 루크가 옆에서 지극히 간호했다. 이제 루크는 아나킨이 과일 밭을 산책해도 화내지 않았다. 이 과일을 키워도 되는지, 그에 대해 옳고 그름의 명제는 그들에겐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게 딸기라고?”

“네…. 저도 이게 이만큼 잘 자랄 줄은 몰랐어요.”

아나킨은 전보다 두 배로 커진 딸기밭을 보며 주저 앉았다. 루크가 머쓱해하며 그 옆에 따라 앉았다. “저걸 어느 세월에 다 먹지?” 아나킨이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다 안 먹어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루크는 오늘 아침만 해도 그들의 침대에서 늦잠 자던 아나킨을 깨우더니 딸기와 설탕을 잔뜩 넣은 주스를 마시게 했다. 아나킨은 이제 유동식 외에도 다른 음식을 씹고 소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딸기만 잔뜩 먹게 생겼다. 이 많은 걸 루크 혼자만 먹게 할 수는 없으니까.

거대하다고 표현해도 될 딸기밭 앞에서 아나킨은 멍하니 구경했고 루크는 쑥쓰럽긴 해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나킨이 팔을 휘둘러 이파리들을 건드리다가 손가락에 걸린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루크가 경악했다.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그동안 아버지에겐 제일 예쁘고 달아보이는 것들만 골라 드린건데.”

“똑같이 맛있는데….”

그건 아버지가 둔한 거라며 루크가 핀잔을 줬다. 아나킨이 여러 음식을 먹고 다양한 맛을 느끼게 되면 어느 것은 더 달고, 덜 달고, 시고, 떫은 것까지 다양하단걸 깨닫게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어쩌다 딸기를 키우게 됐냐고 묻자 루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엔 식용가능한 식물이 있길래 키워봤다가…. 이게 딸기라는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이걸 아버지에게도 드릴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용기내서 드렸는데 하나도 입에 대지 않으시길래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방치하는 동안 이게 더 쑥쑥 자라나서 제가 어찌 할 새도 없이 엄청 많아졌지 뭐예요.”

“그리고 내가 맛있다고 한 이후엔 제대로 키우기로 다짐한 거야?”

“네. 힘내서 키우다보니 밭이 더 커져버렸네요….”

정말 힘껏 키웠는지 과일크기도 이전보다 더 커졌고 색도 탐스럽게 붉고 예뻤다. 문제는 너무 많다는 거였다.

“이제 어떡하죠?”

“맛있게 잘 키워 봐야지….”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제 아나킨도 딸기밭을 가꾸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이제 이건 루크의 딸기밭이 아니라 그들의 밭이고 마음이고 사랑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들에게 이 과일은 사랑이었다. 알고보니 딸기가 아니라 사과였든, 석류였든. 설령 과일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들 별로 중요하진 않다.







루크아나
2024.04.28 07:28
ㅇㅇ
아 센세 이게 뭡니까 ㅠㅠㅠㅠ 루크아나 사랑이 봄의 딸기와 같이 달고 예뻐요 ㅠㅠㅠㅠㅠㅠㅠ
루크를 위해서 유동식 외에도 음식을 먹어보려고 마음 먹고 산책도 하고 함께 외출도 하는 아나킨이랑 아버지를 위해서 딸기밭 가꾸는 루크라니 으아아아 ㅠㅠㅠ 거기다 열심히 키워서 아버지한테 딸기 줄때 긴장하고 안먹으니까 시무룩하고 딸기밭 들켰다고 심통부리는 루크 너무 커여움 ㅋㅋㅋㅋㅋㅋㅋ
[Code: 89da]
2024.04.28 07:28
ㅇㅇ
루크의 사랑으로도 저만큼 커진 딸기밭이 아나킨의 사랑까지 더해져 딸기농장 되겠다 ㅋㅋㅋㅋ 어쩌긴 어째 스카이워커 딸기농장 차려서 뉴제다이오더 애들도 먹이고 신공화국에 레아한테도 보내고 그래야지! 하.. 너무 좋아요 센세 사랑해 ㅠㅠㅠ
[Code: 89da]
2024.04.28 08:44
ㅇㅇ
모바일
아 달달하다ㅠㅠㅠㅠㅠㅠㅠ 아버님 드릴려고 열삼히 딸기 기르고 고르고 골라서 제일 이쁘고 달아보이는 것만 주는 루크 졸커ㅠㅠㅠ 딸기밭 들켜서 승질내는 루크도 너무 귀여움ㅠㅠㅠㅠㅠ 루크가 힘내서 열심히 기른건 딸기도 있고 아나킨을 향한 사랑도 있다는 것이 달달하고 좋다....ㄹㅇ 윗붕 말대로 딸기농장 차려서 레아랑 한, 영링들한테 나눠주자ㅋㅋㅋㅋㅋㅋ
[Code: e83d]
2024.04.28 09:22
ㅇㅇ
모바일
아름답다 아름다워ㅠㅠㅜㅜㅠ아버지에 대한 루크의 사랑만큼이나 그냥 둬도 어찌할 바 없이 빨갛고 탐스럽게 자란 딸기를 아나킨이 어떻게 거절하겠어ㅠㅠㅠㅜㅠ 루크가 주는 사랑이라면 뭐든 다 맛있는 아나킨도 그렇고ㅜㅠㅠ센세 너무나 아름다워요ㅠㅜㅠㅠ
[Code: fa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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