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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00:36
어제 꿈을 꿨는데
나는 꿈 속에서 소설가 지망생이었음. 뭐, 말이 좋아서 소설가 지망생이지 백수나 다름 없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이웃집 아주머니 부탁으로 그 집 아들이 약 먹는 걸 매일 챙겨주곤 했었음. 근데 그 아들이 어린애도 아니고 20대 초반쯤 되는 파리한 인상의 음침한 청년이었는데 왜 내가 그걸 도와줘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음. 어쨌든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해주고, 이웃청년하고 가끔 농담 따먹기도 하고 나름 살가운 사이였던 거 같음.

여느 때처럼 이웃 청년에게 약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시시껄렁한 잡담 나누다보니까 이 이웃 청년이 자길엄청나게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하게 됨. 뭐 금전 문제며 여자친구 문제며 뭐가 얽혀서 크게 틀어졌다나 어쨌다나...... 나하고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 같아서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는데, 듣다보니 엥 시발 그 사람이 내 친구인거임. 그까짓 일로 왜 유난을 떨어대는지 모르겠다며 내 친구한테 그동안 저질러 온 나쁜 짓들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이웃 청년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올라서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남.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가 않아진 나는 더 놀다 가라는 이웃 청년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 길로 집에 돌아옴.


근데 침대 속에 들어가 누운 순간 떠올린거야. 내가 이웃 청년에게 먹여야 하는 A약이 아니라 엉뚱한 B약을 먹이고 왔다는걸. A 질환을 가진 사람은 B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사망 위험성까지 있다는걸. 그리고 내가 이웃청년에게 약을 건네주면서 이건 B약이라고 설명까지 했다는 걸.

이 미친 새끼, 어떻게 매일 먹는 약을 헷갈릴 수가 있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을 하면서 나는 황급히 뛰쳐나와 이웃집으로 향했는데 누군가 먼저 그 집에 들어가고 있었음.


내 친구가 손에 칼을 들고 흉흉한 표정으로 그 집에 들어가고 있었음. 나는 친구가 이웃집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음.


다음날 뉴스에는 살인사건 이야기가 떠들석하게 보도됨. 20대 청년이 살해됐는데, 범인은 역시나 원한 관계가 있던 내 친구였고...... 피해자의 등을 여러번 칼로 찔러서 살해했다고. 나는 폐인처럼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뉴스만 봤음. 혹시라도 피해자에게서 B 약물이 검출됐다거나, 이미 죽은 시신을 난도질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다든가...... 아무튼 내 사소한 실수가 들키기라도 할 까봐 먹지도 못 하고 씻지도 못 하고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뉴스만 들여다 봄.


다행스럽게도 그 이웃청년의 죽음에 대해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시간이 지나 그 사건도 세간에서 잊혀져 감. 나는 몇 년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정도 몸을 사리다가 서서히 일상으로 복귀함. 밥도 먹고 목욕도 하고 잠도 잘 자고...... 그리고 내 실수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했지. 약을 잘못 먹인 정도는 아주 사소한 실수였을 뿐이야. 어쩌면 B약을 먹었더라도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잖아. 사망 위험성이 있다는 거지 100% 죽는다는 건 아니니까...... 칼로 찌르면 100% 죽지만 말야. 나중에는 그 날 친구가 그 청년을 죽이러 와줘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음. 비록 죄책감 때문에 감옥에 있는 친구 면회는 한 번도 가지 못 했지만.


몇 십년 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범죄, 미스테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됨. 인기 많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근근히 벌어먹고 살 정도는 되었음. 그러다 간만에 타 지역으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주인장 얼굴이 익숙한 거임. 알보고니 그 이웃청년의 어머니, 내 이웃집에 살던 바로 그 아줌마가 하는 식당이였음!

처음엔 뛰쳐나갈까도 싶었는데 수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아주머니가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 하는 눈치라, 그냥 조용히 식당 구석자리에 앉았음. 생각보다 두렵거나 떨리지는 않았음.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내가 스스로를 합리화 해 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임. 나는 그냥 밥을 먹었음.


그러다 카운터석에 앉은 누군가와 얘기하는 소리가 언뜻 들려왔음. 죽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음. 그럼에도 나는 담담하게 아주머니가 내주신 밥을 씹어삼키면서 빨리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함. 그러다가......

"그러고보니 우리 애가 죽기 직전에 B약을 먹었다는 얘기를 했었어. 이상하지, 그 약을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본인이 제일 잘 알텐데 말이야. 왜 그런 착각을 한 건지 모르겠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섬. 다행히 아주머니는 그 소리를 못들었는지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경찰에 얘기라도 해볼 걸 그랬나", 하며 웃고 계셨음. 이성적으로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걸 아는데 너무너무 무서워서, 몇 십년 동안 숨겨오던 진실이 탄로나서, 그래서 내 이 보잘것 없는 일상마저 파탄나버릴까봐 두려워서, 당장 저 아주머니를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음.

근데 아주머니를 죽이면 이 진실이 감춰지는 게 맞나? 지금 대화 나누고 있는 저 친구도 죽여야하는건가? 제발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이거 꿈이다. 꿈이어야 된다, 제발......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손발 벌벌 떨며 제발 꿈이길 간절히 빌었는데



진짜 꿈이더라고ㅋㅋㅋㅋㅋㅋ
나는 귀신 꿈보다도 이런 사람 죽이고 내 인생 좆되는 꿈 꾸는게 더 무섭더라........
깨고나서 진짜 사람 죽인 거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사람이 죄 짓고 살면 안됨 ㄹㅇ
2024.04.28 00:41
ㅇㅇ
모바일
와 진짜 무서운 꿈이다...
[Code: a816]
2024.04.28 00:42
ㅇㅇ
모바일
나도 죄책감이나 탄로남??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라서 엄청 공감됨...
[Code: a816]
2024.04.28 00: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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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ㄴ 영화같애
[Code: 3f44]
2024.04.28 00: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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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재밌다 숨참고 읽음
야 진짜 모른척해줄게 이거 빨리 소설로 써봐
[Code: c84f]
2024.04.28 00: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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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삭제하고 글써라 존잼이다야
[Code: 93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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