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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23:39
종착역은 후카츠였으면 좋겠다 갑작스럽게 비오는 날 어김 없이 이별선고 받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 다 맞고 서 있는 미츠이 등 뒤로 우산 씌워주면서 그간 쌓아온 마음 고백하는 후카츠..
초번역체.. ㅈㅇ..






「어디서, 세상 무너지는 소리가 나길래 와 봤더니 청승맞게 여기서 뭐하고 서 있어. 봄감기는 오뉴월보다도 지독하다뿅.」

「…여어, 왔냐. 별로 세상이 무너진 건 아닌데, 보시는대로— 거하게 차여 버려서 말이다. 같은 곳에서 고백도 받고, 실연도 하고…. 이거야 원, 공교롭게도 계절도 같을 줄은.」

「…봄은 만남과 헤어짐의 계절이니까. 딱히 이상할 건 없다뿅.」

「그런가…. 답지 않게 오래간 것 같더라니 벌써 1주년이라잖아. 생각해 보면… 얼굴에 그렇게 설렘이 가득했었는데. 조금은 들떠있던 것도 같고… 근데 그게, 지금에서야 떠오를 건 뭐람. 이제와서,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을….」

「…미츠이는, 깨닫는 거 늦으니까.」

「뭐… 반박할 수가 없고만, 오늘은. 딱히 변명의 여지가….」

평소때라면 이보다는 더 발끈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난 역시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혼자 애쓰는 것도 지쳤고, 사람 마음도 몰라주는 나는 이제 질색이라며 더는 감당할 수 없겠다나…. 이번에는 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하, 그래서 그나마 오래간 편에 속하려나. 근데도… 나한텐 역시 평범한 연애는 무리였던 걸까, 하하….」

「미츠이 탓이 아니다뿅.」

「…?」

「물론 미츠이 탓도 있지만.」

「어이….」

「아마, 계절때문일지도.」

「!」

「봄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니까. 눈앞의 세상이 색을 바꾸고 겨우내 얼었던 기분이 녹아내리면 사람은, 잠깐이라는 시간 동안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조금 이상해지기도 한다뿅.」

「아… 그런 거냐.」

「응, 그런 거, 뿅. 그래서,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생각들이 증폭된다거나 감정이 교란된다거나…. 그래서 봄은 매혹스러운 마물과도 같다 뿅.」

「마물… 생각의 증폭, 감정의 교란이라… 하나같이 어려운 말 뿐이고만. 나는 봄이라고 딱히… 아, 근데 그거 꼭, 왠지 술 마신 기분이랑 똑같지 않냐, 위험하게시리….」

「맞다뿅. 세간에서는 봄을 탄다고 하지. 취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게는 지금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은 얼굴 옆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과 함께 흘려버리고 싶었지만, 녀석은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

「이제 그만, 그런 미숙한 사랑은 관두고 나로 해 보는 건, 뿅.」

「…어쩐지 요새, 통수가 영 따갑더라니. 왜, 너도 뭔가에 잔뜩 취한 거냐.」

「그것도 그렇고, 상대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공략하는 건 전술의 기본 중의 기본뿅.」

「하핫, 이 약은 녀석. 그럼 때는 정확하게 골랐네. 뭐, 연애 상대로서 권유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 나름 세심한 편이니까. 근데… 분명 일전에 사귀는 상대가 있다고… 어라, 그러고 보니 요새는 통 본적이….」

「차였다뿅. 지금의 너처럼.」

「뭐, 차여? 네가? 언제, 아니 아니, 대체 왜… 사이 그닥 나쁘지 않았잖아. 어떻게 된 거냐.」

「숨이 막힌다고뿅. 내 경우는….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라는데 굳이 없기도 하고,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기도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대화 부족이었을까. 네 말대로 그다지 무신경한 편은 아니었는데. 남들은 다 아는— 꽤나 오래된 얘기를 꺼내게 만드는 누구처럼은 뿅.」

「아하하, 알겠다 알겠어. 확실히, 그 반대라면 모를까…. 무신경이라, 나도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게 서운하게도 만들었던 모양이라…. 다 내 잘못이지.」

「그 정도가 딱 적당하고 보는데, 난. 너다워서뿅.」

「나… 다워….」

「안 그러면… 그렇지 않은 미츠이란, 오히려 당황스러울 걸.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옷케에… 무슨 말인 줄 알았다— 한마디로 캐릭 붕괴라는 말이잖아. 그렇게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지만, 나 그런 이미지?」

「…뭐, 그런 에고까지 포함해서 그 안의 네 생각을, 진심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내가 그리 예리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뿅」

「푸훗, 거… 어렵게도 돌려 말하기는. 왜. 솔직하게, 그걸 모르는 그 애들이 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

「물론 아니지. 그런 것이 오히려 보통이고, 둔감한 건 역시… 미츠이뿅.」

「아앙? 뭐야, 잘 나가다가 또 이렇게 시비라니깐. 쳇, 이래 봬도 네 인간성이 어떤지 정도는, 네가 어떤 눈으로 날 보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고.」

「알고- 있어.」

「응.」

「내가… 어떤 눈으로 널 보는지.」

「…응.」

『끄아아아, 당연히 알고 있지. 감출 생각도 없이 그렇게 뒤에서건 옆에서건 잡아먹을 듯 쳐다보면, 누군들 모를 리가..! 그런데다, 그렇게… 절절하게—』

「헤에, 그걸 알고도 잘도 태연한 척한 거야. ‘밋짱’은.」

「척한 거 아니거든! 네가 딱히… 별 반응이 없으니 나라고 뭐 별 수 있냐. 흥, 애초에 그렇게 보는 영문을 모르겠다고. 그 전 애인인지 하는 사람 말처럼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해야…」

「그럼, 이쪽도 더 망설일 필요는 없겠군.」

「뭐를…」

「좋아한다.」

「……….」

「……….」

「…으음, 아까 거 설마…… 농담, 아녔냐.」

「아니었고, 그러니까 기다리는 것도 버티는 것도 익숙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문제고. 어쨌거나 넌— 네 마지막은 나로 정하면 나쁘지 않을 거다뿅. 아니, 그러는 편이 좋아.」

「하…. 내 마지막이라니… 아주 딱 잘라 말하는데 그래. 네가 무슨 슈퍼컴퓨터라도 되냐.」

그러나 그의 말은 그저 예상이나 추측 같은 게 아니었다. 감히 어떤 종류의 예언과도 같은 가능성을 가진 확률이라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록 빛이 있으라— 해서 있게 되는 절대 권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언제나처럼 확신에 가득 찬 눈동자가 가르키는 결과가 빗나간 적은 없었으니까.

「이런 이런… 그래도 언제나, 가이던스 하나는 명확해서 좋다고. 캡틴.」

「그래서, 대답은. 예스, 오어 노.」

「…예스— 라고 해둘까, 일단은….」

『암튼 거절하기 힘들단 말이다, 네 녀석. 맹수같은 놈이 이렇게 눈앞에서 똑바로 직시해 오면 대충은 얼버무릴 수가—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흐음, 뭐 의지는 제법 확고해 보인다만,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각오는 단단히 돼 있겠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런 나라도….」

「그런 너라도— 바라던 바. 뿅」

「자식,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미츠이는 어때. 이런 나라도, 감당할 자신—」

「뭐, 그거야… 예스라고 수락한 이상.」

그러겠다고, 그래야겠다고, 그래도 된다고 마음이 움직인 순간.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올봄은 왜 이렇게 흐린 날의 연속인 거냐. 피차 차인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하는 마당에 어울리는 우울한 날씨기는 하지만….」

누가 이렇게 봄을 시기해서 자꾸 울리기라도 하는 거냐고—

피식하고 실없이 덧붙이는 말에도 살짝 한번 따라 웃어 주는 네가 있어서, 이젠 그리 외롭지가 않구나.

「그래도.」

「응?」

「아까보다는 듣기 좋아졌을지도.」

「그러게…. 조금 전까지 처량하게만 들리던 소리가… 언제 이렇게 차분히도, 것보다 후련해지기 시작했을까.」

그건 아마,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넉넉한 커다란 우산이 머리 위로 씌여졌을 때부터—.

「봄비는….」

「?」

「어쩌면 이대로 조금은 더 내리고 있어도 괜찮겠다. 이렇게… 네 눈에 내가 비추는 것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 네가 있다면, 그건 분명 나쁘지 않을지도. 그럼, 굳이 우산같은 건 필요 없겠지.」

「……….」

어중간하게 젖어 있느니, 차라리 내리는 빗소리만 가득한 이 고요한 침묵 속에 완전히 잠겨 버리고 싶게 만드는 안락한 기분은. 결코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차가운 이 빗줄기처럼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는 따끔한 일침마저— 그래. 그것은 어느 것이든 내게 필요한, 날 향한 너의… 너다운 관심의 안배였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나,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걸까. 아까부터 어쩐지 사고가 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비가 안 그쳐도 될 거 같다느니 그래도 우산은 필요 없겠다느니 네가 있으니까… 라거나, 맙소사. 이거 진짜 지독한 봄감기라도 걸려 버린 건….」

「제대로 이성적이니까 괜찮다뿅. 사랑에 빠진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뿅.」

「하핫, 뭐야… 혼자서 진도 너무 빠른 거 아니냐. 사랑이라니—」

가볍게 탓하는 듯 대꾸했지만, 나 역시 이제 막 깨달았을 뿐인데도 떠오르는 건 온통, 그간의 그의 온기들 뿐. 그것은 마치 할아버지가 남겨준 시계가 고장난지도 모른 채 지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기억나 버린 따뜻한 손길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내일은 그쳤으면 좋겠다. 으흑, 추워. 얼른 돌아가자. 진짜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고.」

대답 대신 오던 길로 방향을 틀어 길을 잡는 담담한 얼굴에 비치는 미소 정도가 좋다. 우리의 관계가 이후로도 크게 변함 없이 흘러간다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크게 나쁘지는 않을 테니.

다만, 나는 네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던 적은 없다. 늘 무심한 듯 건네오던 것이 네 마음이라서 나 또한 그것을 무심하게 내지는, 당연히 받아들였던 거야.

편함 혹은 편안이라는 가랑비 아래서 우리는,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젖어 들어서.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은— 이제 와 구태여 따져 볼 마음은 없다.

그저 그것이 언제고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기분 좋은 감정을 안겨 주기에. 그래서 이것은 아마도 내게는.

「『하츠..코이(첫사랑)일까….』」

「어이, 후카츠.」

「뿅.」

「내가 지금 엄청난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 같거든.」

「……시원찮은 소리 할 거면 다리나 열심히 움직여라뿅. 바람까지 세져서 얼어 죽을 것 같다뿅.」

「봄바람,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시원찮은 소리라니..! 장차 우리 관계에 중차대한 사실이 될 만한 사건이구만.」

「푸흡, 주-웅차대한 사실 뿅.」

「이것 봐라, 계속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럼 나도 평생 안 알려 줄…」

「하・츠・코・이・ 뿅.」

「헉, 어떻게-!」

『이런 귀신같은 놈..!!』

「미츠이는 말야. 생각에 빠지면 가끔 자기도 모르게 무슨 말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으니까. 표정은 되도록 적에게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뿅.」

「그거야, 뭐… 네 전공이니까. 그렇게 드러나는 편인가, 나.」

「드러나는 편, 굉장히.」

「흠, 그건 좀 곤란한데. 역시 훈련을… 이 아니라-! 하츠코이라고, 하-츠-코-이-. 후카츠는 그럼, 하츠코이 상대 따로 없었어.」

「그건…. 비밀, 뿅.」

「얼레, 남의 얘기는 다 들어놓고 그러기냐.」

「미츠이는 자백한 거고.」

「…됐다— 췟, 치사해서 안 듣고 말지.」

「이번 대회, 심체대 애들 꺾으면 말해 줄 수도 뿅.」

「그건, 역시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쯔읏—」

「알았다— 녀석, 표정 드러내지 말라는 사람 얼굴이 더 무섭구만.」

「기선제압뿅 그리고 미츠이는 적이 아니라 소・중・한・ 팀메이트니까, 그때까지는 컨디션 조절이 생명뿅.」

「옷케 옷케, 염려 붙들어 매시라… 푸엣취—!!」

「!!!!!」

「아, 이런. 역시 뭐라도 챙겨서 나올 걸 그랬나. 꽤 쌀쌀하잖아. 비 온 뒤라 그런가….」

「꽤…라니— 얇은 셔츠하나 덜렁 입고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뿅… 겉옷이라도 챙겨서 다니랬더니 분명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게 틀림없다뿅.」

「하하핫, 괜찮아 괜찮아. 일년에 감기 한번 안 걸리는 건강한 몸이라니까, 나?」

「그건… 바보라서…」

「앙?」

「어째 난 미츠이를 만난 후로— 한숨만 는거 같다 뿅….」

「그래서, 불만이냐.」

「글쎄… 어떨까뿅. 조금은 더, 다채롭다고 해야 하나. 미츠이를 보고 있으면—」

「흐흐흐 그치? 내가 좀 원체 한 인물 하니까.」

「한 인물이고 두 인물이고, 오늘부터 당분간 아이스 디저트는 금지뿅.」

「아니, 그건 안돼에— 스프링 한정 찾기 힘들었는데 밤마다 하나씩 까먹는 게 낙이라고 플리즈..!」

「대회 끝나면 얼마든지뿅 안 그래도 일정 당겨져서 스트레스뿅」

「그럼 봄 다 가버리거든요. 한정맛은 그때 먹어 줘야-!」

「안 들린다, 뿅.」

「저기 후키츠상, 카즈나리군, 야박하게 굴지 말고 오늘까지만……」


이렇듯 방금까지만 해도 인상적인 고백을 들려주던 입에서는 앞으로도 변함 없이 단호하게 삼가는 말이 흘러나올 것이고, 그 옆에 선 난 그에게 여전히 불만, 혹은 찬사의 반응을 내어 놓을 것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기까지는 조금의 노력과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이고,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지만, 이런 사소하고 소소한 지금이 계속된다면—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 그 정도가 딱 좋은 것은 분명했다.

크게 행복할 필요도 크게 불행할 필요도 없는 것이 바로 가장 어렵다는 평범한 일상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는 편이 내게는 좋을 거라는 말도, 대강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근데 좀 이상해.」

「뭐가뿅」

「네가 그렇게 말했어도 우리 사이가 그렇게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다. 전에 사귀던 애들은 뭐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잘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조금 부담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있었는데. 너는, 내가 특별히….」

「특별히?」

「과하게 애쓸 필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아,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 그… 아무튼 왠지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자주 듣는다뿅.」

「그치, 그러니까 이런 건 처음이라고. 네게 필요한 건 대체 뭘까 고민해 봐도 감도 안잡혀. 이래서 맨날 차였던 건가. 상대가 뭘 원하는지… 항상 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으니까. 막상 상대는 아닌 경우가 많았던가 그러고 보니 하하하, 이제 좀 알 것 같기도 하네…. 이런 게 네가 말한 미숙한 사랑어쩌고 라는 거냐. 남들이 보기에는, 역시 형편없어 보이려나.」

「글쎄. 별로 그렇게 볼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것이 보통사람들의 연애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오히려 나는 그 반대, ‘후카츠군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잘 알아? 조금, 무서워.’라고들 하니까….」

「아, 그건 알 것 같다. 확실히 마음이 읽힌다는 건 좀… 아아, 그런 문제였구만. 왠지 알 듯… 말 듯 한…」

「말하자면…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는 거. 사람 바이 사람, 상황 바이 상황. 즉, 케미스트리뿅.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종류의,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누가 함부로 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뿅.」

「호오, 뭔가 굉장히 그럴싸한데. 그러니까 그게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최고라는 거 아냐. 과연 나이스 통찰력.」

『그러니까, 아까 너로 정하면 좋을 거라고 한 말은….』

기다리고 버티는 것이 익숙한 네게, 알아차리는 것이 늦는 나는—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다뿅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니까. 미츠이처럼 한방에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재주뿅. 그리고… 때로는 그리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경우도 있거든. 자신이 상정한 것 이외의 결과가 나올 때가… 이를테면, 내 마지막 인터하이 때와 같이.」

「아아- 그건 뭐 당사자들도 예상 못한 거라…. 물론 난 질 거라는 생각은 안했지만, 훗.」

「맞아. 사람의 가능성이란 그렇게 무궁무진뿅. 그래서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를 한다 해도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 또한 충분히 계산범위에 포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뿅. 그건… 패배를 염두한 것과는 달라. 이길 가능성을 높이고 질 가능성을 낮추는 걸로는 약 98프로쯤 가능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2프로의 변수— 가 승운을 좌우하는 건, 꼭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뿅.」

변수 얘기를 꺼낼 때 슬쩍 이쪽을 본 것은, 아마도 기분 탓은 아닐 터였다.

「헤에, 그 이프로의 변수라는 건 좀 무섭네. 백프로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존재는… 아무렴 뼈 아프지. 아니 용서할 수가 없다—」

「…본인을 그렇게 칭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뼈가 아프긴 했다뿅. 지금도 가끔 시리… 큼큼 아무튼 웬만하면 적으로 두고 싶지 않다거나, 다시 붙는다면 리벤지로 갚아주겠다고 철-저-하-게- 다짐했으니까, 뿅.」

그러니까 반으로 줄어드는 그 날렵한 눈매가 무섭다니까….

「하하… 역시 그거 내 얘기였냐.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그건 뭐… 피차일반이라고 해 둘까.」

「음, 근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설득력 대단한 걸. 뭐랄까 되게 능숙해 보여. 나는 그렇게까지는… 깊게 뭘 생각해 보려고 한 적도 없는데.」

「줄곧, 그런 걸 눈여겨 봐야 할 자리에 있었으니까. 사고나 관점이 조금, 그쪽으로 치우친 걸지도 뿅.」

하여튼, 처음에는 그저 요상한 농구머신같은 놈인 줄로만 알았더니, 여러가지로 떠안고 살았구나. 너도—

왠지 그 순간 나오려던 천상 리더라는 말은 그에게 칭찬이 되는 걸까, 짐이 되는 걸까— 그때는 분간이 가지 않아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응?」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뿅. 난 이제…」

「…?」

「미츠이때문이라면, 지옥에라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뿅. 이거, 심각한 캐릭터 붕괴, 뿅.」

「…푸후훕, 뭐야 그거. 그게 그렇게 캐릭터 붕괴일 것까지야—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아까 누구씨가 그랬더라?」

사실, 사랑이니 연정이니 하는 말은 솔직히, 지금도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에 눈앞의 존재가 없을 것을 떠올려 보면, 어딘가 쓸쓸해지고 명치 끝이 답답해져 오는 것은 적어도 내 안에서도 무언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예컨대 꿈을 잃었던 순간의 절망과 비교하면, 이 쪽은 좀 더 안타깝고도… 녀석이 나를 보던 눈빛과 닮아 있으리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일까.

「야, 근데 왜 하필 지옥이냐. 난 천국 가고 싶은데.」

「천국에 가고 싶으면 내 뒤를 잘 쫓아오면 된다뿅. 평소 선행으로 잘 예약해 뒀으니까.」

「예약은 무슨, 누구는 악행을 베풀었냐, 웃기지 말라고 넌 이제 내가 지옥에 가자면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자면 가야 되는 거야, 알겠냐.」

「그건, 미츠이가 하기 나름뿅.」

「뭐야? 역시 이래서는 아까 전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쳇.」

「…그렇지만, 이제는 이렇게 손을 잡아도—」

「?!」

더는 내 마음을 몰라서 뿌리칠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고 말하고 있는 걸까. 이 천연덕스럽게도, 귀여운 녀석은.

「왠지… 따뜻해.」

「당연하지뿅. 주머니에 핫팩도 챙겨 왔으니까. 추운 건 아무튼 질색뿅.」

겨울이 다 물러가 버린 봄에도 말이다. 넌 정말, 빈틈이 없구나….

하지만—.

「후카츠 너, 그러다가…」

「뿅?」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저기 저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처럼 빨리 져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벌써 저렇게 봄바람도 봄비도 맞아 버리면— 흠, 풀잎도 나기 전에 앙상한 가지만 남았잖아. 이제 초봄인데도 가엽게….」

「……….」

「응, 뭐야 왜. 갑자기 멈춘…」

「방금」

「응?」

「심장이 지끈, 했다 뿅.」

「엉?」

「아니 욱신—거렸어.」

「무슨…」

「나는… 빨리 지고 싶지 않다뿅…」

「아, 그거야 만약의… 만약의 이야기니까…」

「꽃은 좋아하지만… 역시 지는 것이 숙명뿅….」

『꺄아아아아… 거짓말이지. 얘가 이렇게 감성 충만한 앤 줄은..! 아니면 신종 괴롭힘이냐고 젠장, 또 그 눈빛이잖아..! 길에 떨어진 꽃잎 무쟈게 보고 있어..! 이런..!』

「저기 후카츠, 그럼 나무로 하자. 나무로… 그건 사시사철 푸르니까.. 응..?」

「그럼… 대나무가 좋다뿅.」

「그래, 그래 멋있잖아. 대나무, 너랑 잘 어울려 하하하….」

『대쪽같은 성미가 말이지…』

「음, 실은 나보다는 미츠이가뿅.」

「아, 그러냐… 고맙다.」

「절개와, 기개의 상징뿅. 내가 보아 온 사계절의 미츠이는—」

「오, 그건 진짜 멋지네.」

「그렇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는 건 옛말이고, 사실 잘 부러지지는 않고 엄청 잘 휘거든 뿅. …쏴도 쏴도 오늘은 죽지 않는, 좀비처럼. 그거, 딱 미츠이.」

「일단은… 칭찬하는 말이지.」

「응. 상당히 의지가 된다뿅. 아군이라면.」

「그럼— 오늘까지만 아이스…」

「그건, 기각.」

「짜식, 쩨쩨하기는. 이럴 때는 꼭 스크루지 영감같다니까.」

「그 전에… 따뜻한 물로 씻는 게 먼저뿅.」

「…!」

「왜, 싫어?」

「아니아니 그럴 리가— 하하핫. 그럼, 그 첫사랑 얘기도 아직 유효인 거네.」

「물론. 한 입 가지고 두 말 없음 뿅.」

「에효. 하여간 뭐 하나 쉽게 들어주는 법이 없어요. 우리 캡틴씨는.」

「너무 쉽게 얻으면 너무 쉽게 잊혀 버리니까. 그에 비해, 죽을 힘을 다해 손에 넣은 것은— 다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다뿅 나에게 그것은 곧 승리고… 앞으로는 미츠이도 그랬으면 좋겠다뿅.」

그가 고교시절 이룩한 무패의 기록은 아마도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겠지.

하지만, 수라의 길을 걷는 것은 비단 너 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그 앞에 펼쳐지는 것이 지옥도가 될지 천상도가 될지 하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늘 그랬듯 그저, 밟고 올라설 수밖에—.

『뭐, 언제는 안 그런 적이 있었냐고요.』

이쪽이 걸어온 길도 만만치 않거든— 쿡, 하고 속으로 실소가 터짐과 동시에 밀려드는 것은 내겐 익숙한 투쟁심.

「…아아, 그래야지. 나야말로 바라던 바다 흐흐흐… 까짓거 심체대 놈들이 대수냐, 그놈의 국내 최고 타이틀 이번에야말로 받아가 주마, 다 덤벼 보라고-!」

「아니, 그건 좀 오버…」

「아오 후카츠. 이럴 때는 딴지 금지라니깐? 괜히 내 마음이 꺾여 버리잖냐.」

「…쏘리뿅. 빗줄기도 많이 얇아졌으니… 서두르자.」

「예써—.」

한번 피식하더니 금방 원래의 포커페이스로 돌아가는 조형과 같은 반듯한 얼굴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제와서 굳이 남의 첫사랑 상대가 궁금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것은 꼭 내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고,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마음에 들어 했을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역시 너라는 사람은 과연— 이라고.

그냥 그렇게 ‘너’의 이야기가,

단지 나는.


『궁금해졌어—.』




명헌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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