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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21:58
두번째 편지는 사흘 정도 서랍에 잠들어 있었어. 어떤 내용일지 감도 안왔을 뿐더러, 고질적인 회피성향이 고개를 든 탓이었지. 새벽이면 괜한 감상에 젖어 책상 앞을 서성이기도 했고, 일터에서도 실수를 연발했어. 급기야 딴 생각에 빠져있다가 주방을 불바다로 만들 뻔하고 나서야 결심이 섰지. 일단은 부딪혀보기로.

"불쇼가 멋있긴 했는데, 담엔 안보고 싶어요. 뭔 뜻인지 알죠?"

"실수였어. 진짜 미안하다니까."

"오늘은 푹 주무세요."

캐피는 가늘게 뜬 눈으로 피트를 한동안 응시했어. 꼭이요. 한번 더 못을 박고 돌아서는 모습을 뒤로 하고, 피트는 서랍을 열어 편지를 꺼내들었지. 심호흡 10번, 예스,오케이,준비됐어, 등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말들을 50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봉투를 열 수 있었어.

내용을 확인한 피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어. 이내 '왓더퍽, 아이스맨'을 중얼거리며 녹아내리듯 완전히 기대었고. 이번에야말로 '본론'에 들어갈 차례였다고 생각했어. 한번은 그렇다치는데, 두번이나 편지를 보내는데엔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고. 피트는 다시 한번 편지를 들여다 보았어.



술은 멀리해. 되도록이면 담배도.



...아무리 봐도 그것 뿐이었어!

피트는 씨근덕대는 숨을 겨우 눌러앉히며 투덜거렸지. 술은 나보다 네가 더 많이 마셨잖아. 담배도 네가 훨씬 많이 폈고. 처음 만났을 때가 문득 떠올랐어.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술을 한숨에 들이키고는 빤히 쳐다보던 얄미운 자식. 첫인상은 정말 최악에 가까웠어. 구스의 말을 듣고 잠깐이나마 호의를 품었던게 화가 날 정도였지. 쿠거를 들먹이며 시비를 걸 때는 잔디머리에 제초제를 뿌려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 ...음, 이건 취소. 사실 아이스맨의 눈동자를 보느라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지. 회빛의 눈동자는 어딘가 신비로웠고, 속절없이 빠져들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어. 괜한 죄책감에 사실을 정정하면서도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아이스맨은 내가 편지 하나로 밤잠을 못 이룬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고 그러나?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했던걸 복수하려는 걸지도 몰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제와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에 그날 밤도 결국 잠을 설쳤어. 당연한 수순으로, 캐피는 다음날 아침에도 불쇼를 봐야만 했지.





요즘 날씨가 많이 덥지? 그래도 밥은 꼭 챙겨먹어. 아이스크림은 적당히 먹고. 배탈나지 않게 조심해.





"허."

매버릭은 실소를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베어물었어. 날 아직도 애로 보나본데, 카잔스키, 그럴 일은 없다고. 아이스맨이 눈 앞에 있다면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어. 매버릭은 반항기에 접어든 사춘기 소년마냥 남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먹어버렸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신경질적으로 쭉 밀어버리고는 스패너를 고쳐잡았어.

아이스맨의 편지는 주에 한번은 꾸준히 배달됐어. 동요했던 몇주가 지나고, 지금은 벌써 다섯번째로 편지를 받은 참이었지.

편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별 내용이 없었어. 걱정, 또는 안부를 묻는게 대부분이었지. 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매버릭은 그걸 확인할 때마다 조금 심술이 났어. 동시에 궁금했지. 편지를 도대체 왜 보내는거야? 답장도 안하는데. 풀리지 않는 의문이 쌓이고 쌓였어. 날도 더운데 속에 열이 쌓이니 어떻게 해? 매버릭은 결국 그 날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10개나 까먹었어.





"...그래서 배탈이 난 거라고요?"

"...응."

"한마디만 해도 돼요?"

"하지마,제발."



캐피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어. 난 엄마가 장염에라도 걸린 줄 알았다고요. 짜증 반, 걱정 반 담긴 볼멘소리가 뒤따랐지. 피트는 창피해서 죽고싶을 지경이었어. 캐피가 어렸을 때도 아이스크림으로 배탈이 난 적은 기필코 없었거든. 잘한다, 진짜. 모범이 되네. 피트는 배가 아픈 척 몸을 돌려 누웠어. 캐피가 나가고, 해가 기울어 곧 사위가 어두워졌어. 똑딱이는 시계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지. 그러고보면, 여름이 다가올 때엔 꼭 한번씩 이런 이유로 앓아눕곤 했어. 아이스맨을 떠난 이후로는 그럴 겨를이 없어 잊고있던 사실이었지.

아직은 서로 어색하던 시절, 아이스맨이 매버릭의 관사로 찾아왔던 날이 있었어. 구스와 아이스크림 파티를 하고 나란히 침대신세를 지던 날이었지. 아이스맨은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문을 두들겼어. 매버릭이 거의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열어주자 아이스맨은 잠시 말을 잃었어.

"너 왜 그래?"

"알아서 뭐하게."

투덜거리면서 도로 침대에 눕는 매버릭을 얼빠진 낯으로 바라보던 아이스맨이 다가와 한번 더 말을 걸었어.

"괜찮아?"

"참을만 해."

마주치기만 하면 개처럼 -슬라이더의 증언,'너네 진짜 개같이 싸워.'- 투닥거렸던 둘로서, 이 대화는 정말 기념할만한 것이었어. 비꼬지도 않았고, 화에 못이겨 서로를 밀치지도 않았거든. 아이스맨은 매버릭의 관사를 둘러보았어. 굴러다니는 아이스크림 통을 세어보다가 이마를 긁적였지. 매버릭은 아이스맨이 제가 아픈 이유를 알아챘다는 것을 눈치챘고, 민망한 얼굴로 별 거 아니라고 중얼거렸지.

"엄청 아플텐데."

"아, 괜찮다니까."

"오한도 들고."

"한숨 자면 나아."

"배도 계속 쑤실걸."

"... ...."

매버릭은 아이스맨이 한마디 툭툭 던질 때마다 움찔거렸어. 아이스맨은 피식 웃더니, 침대에 걸터앉았어. 그러고는 매버릭의 등을 쿡 찌르며 손짓했지. 바르게 누워봐. 꾸물거리며 자세를 고쳐잡는 모습에 아이스맨이 열심히 웃음을 참는게 보였어. 매버릭 성격상 두번 웃으면 주먹이 날라올지도 모른단 걸 알아서인지, 단순 배려인지는 모를 일이였어.

매버릭은 눈을 세모꼴로 뜨고 아이스맨을 째려봤어. 뭐 어쩔건데? 하는 태도였지. 아이스맨은 이상한 거 아니니까 뭐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별안간 솥뚜껑같은 손을 매버릭의 배 위에 얹어두었어. 그리고는 살살 쓰다듬었지. 황당함에 입을 뻐끔거리는 매버릭에 아이스맨은 변명처럼 후두두 말을 덧붙였어.

"어렸을 때 배탈이 나면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셨어. 이러면 금방 괜찮아졌던 기억이 나서."

"...넌 왜 배탈이 났었는데?"

"그게 중요해?"

"응."

"... ...얼음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뭐? 하하! 너 그래서 '아이스맨'인거야?"

"어렸을 때라고,매버릭.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아이스맨의 말에도 매버릭은 한참 더 웃었어. 배가 찌르르 아파올 때에서야 웃음을 멈췄지. 커튼을 쳐두어 시야가 어두웠지만, 매버릭은 왠지 아이스맨의 표정이 상상이 갔어. 뚱한 얼굴로,어쩌면 얼굴이 조금 빨개졌을지도 몰라. 마냥 딱딱한 얼음맨일줄 알았더니 이런면도 있었네. 아무튼 웃기는 놈이야... 아이스맨에 대한 인식이 변한 순간이었지.

"배 더 아프겠다."

"알면 더 열심히 문질러."

"... ...."

대화가 뚝 끊기자 정적이 흘렀어. 두명분의 숨소리에 바람이 창문에 부닥치는 소리, 배를 살살 쓰다듬는 손을 보던 매버릭은 고개를 들어 아이스맨을 바라봤어. 아이스맨도 마침 매버릭을 보고있었고. 둘은 멍하니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지. 이거 진짜 이상한데. 결국 참다못한 매버릭이 입을 열었어.

"너 배 아플때말이야, 어머니께서 말없이 배만 문지르셨어?"

"그건...아니. 이야기를 들려주시거나,음,노래를 불러주셨어."

"해봐."

뭐? 이번엔 아이스맨이 황당한 표정을 지을 차례였어. 해보라니까. 매버릭이 장난스레 웃었어. 아이스맨은 다시금 얼빠진 낯으로 바라보다가, 로봇처럼 그날 배웠던 수업 내용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어. 매버릭은 "진심이야?"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잠자코 들었지. 듣다보니까 잠이 밀려오는 것 같기도 했어. 아이스맨이 부지런히 쓰다듬어줘서 괜찮아진 덕분도 있었지. 매버릭은 잠결에 한번 더 중얼거렸어. 네 목소리 듣기 좋다. 가물가물한 시야로 아이스맨이 보였어. 커튼 사이로 들어온 달빛은 아이스맨의 얼굴을 일부 비췄어. 그렇게 보게 된 얼굴은, 확실히, 붉었지.

그때의 매버릭은 그 이유를 몰랐지만, 현재의 피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어. 피트는 제 배 위에 손을 얹었어. 그리고 꿈결에 젖어 중얼거렸지. ...네가 그리운 것 같기도 해. 인정하고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었지.




아이스매브
2024.04.25 22:13
ㅇㅇ
모바일
내 센세가 어나더를 주셨다!! 근데 술은 멀리해. 되도록이면 담배도. 이 편지 내용이 왜 이렇게 찜찜한거지.....?
[Code: 8ab6]
2024.04.25 22:19
ㅇㅇ
모바일
센세! 와락! 내센세가 어나더를 주셨어! 센세 사랑해
[Code: 6a8a]
2024.04.25 22:24
ㅇㅇ
모바일
아직도 잊지 못하면서 왜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한걸까? 아이스는 왜 지금에서야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걸까? 궁금한게 너무 많아 ㅠㅠㅠㅠ
[Code: 6a8a]
2024.04.25 22:29
ㅇㅇ
모바일
센세 손에 모터 달았어???? 어나더라니 너무좋아서 그래ㅎㅎㅎㅎㅎㅎ 아맵 과거엔 분위기 좋았던거 같은데 왜 헤어진거야.... 그리고 아이스는 왜 편지로만 등장하는거야...
[Code: 2849]
2024.04.26 05: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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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가 왔어 !!!!!
아무래도 캐피가 맵 일상을 다 아이스한테 전달해주나보다 편지 내용들이 너무나 ㅋㅋㅋㅋ 네
[Code: 3754]
2024.04.26 08: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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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는 뭔가 알고있지않을까? 999나더까지 계약합시다 센세
[Code: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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