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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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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ygall.com/589499971 필과 제게 반응이 다른 게





탁.


이마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이 거슬려 쓸어올린 에디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의 표면이 온도차로 인한 상변화로 금세 불투명해졌다. 서늘한 축축함이 느껴지는 감각이 손에서 전신으로 퍼지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나신에 소름이 오르게 하는 걸 느꼈지만 에디는 별다른 행동 없이 침대로 되돌아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물 한 모금을 들이켜기까지 내내 시선에서 떼지 않던 핸드폰은 생수병을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고 짧은 피드백을 적어 보내고서야 화면이 꺼졌다.


"야. 다 좋은데..."


베개에 고개를 박고 있는 탓에 짓눌린 게 이유일까 방금 전 바르르 떨어대며 사정 없이 간 게 이유일까 뭉개진 아담의 목소리가 영 불안정했다. 둘 다겠지, 뭐. 에디는 대수롭지 않게 속으로 왜 일 처리를 그렇게 밖에 못하지? 하는 아담과 상관없는 일을 생각했다. 핸드폰으로 전달받아 읽은 보고서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어나. 물 마셔."
"좀만 빨리 싸면 안 되냐..."
"겨우 참았는데 웬 서운한 소리."
"허..."
"몰랐어? 아까 쌀 것 같아서 자세 바꾼 건데."
"염병 진짜."


드라이로 간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뻔히 눈물 뺏을 걸 아는데 티 내고 싶지 않았는지 아담이 손을 올려 닦는 대신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비벼댔다.


하지 마, 살 쓸려. 곱게 말을 듣는 법이 없는 아담 존스라 에디는 말과 동시에 엎드린 아담의 어깨를 돌려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역시나 눈꺼풀이 붉었다.


맞닿아오는 사나운 시선이 목소리와 다르게 흔들림이 없다. 에디는 조금 전, 추위를 느낄 새가 없던 때를 회상했다. 자세를 바꾸기 직전에 정상적으로 체액을 분출하며 사정한 아담의 입장에서는 그때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을 내는 거겠지만 에디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그거 좋아하잖아."


아담의 눈가에 남은 물기를 훔치고 생수를 쥐었던 손바닥을 덮어올렸더니 뜨끈하게 열기가 올라왔다. 한두 달 뒤면 벌써 몸을 섞기 시작한 계절을 다시 맞이할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그 계절엔 병 주고 약 주냐며 신경질이나 냈을 아담이 조용히 변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데 아직도 에디는 명확한 주관 없이 매번 아담의 충혈된 눈이 주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온순해진 언행에 반감이 일거나 여전한 성미의 언행이 지겨운 일도 없었다.


아담은 시원한 게 나쁘지 않은지 눈을 내준 채 얌전했다. 손의 냉기가 빠르게 식어 곧 온도가 엇비슷해지자 에디는 손등까지 동원해 한쪽씩 번갈아 대어주고서야 손을 치웠다. 목을 가다듬고 혀를 내 마른 입술을 훑은 아담이 느리게 눈꺼풀을 들썩이다 샐쭉 눈을 흘긴다.


"아, 적당히 하라고."
"나이 들어서 그래? 침대에서 왜 몸을 사리지."
"뭔 나이는 나만 먹냐?"
"적당히 하면 아쉬울 거면서."
"넌 나를 무슨..."


아니야? 그게 좋아서 나랑 자는 거잖아. 목이 메이는 게 아무래도 물을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몸을 틀었는데 아담에게 뒷목이 잡혀 끌려내려갔다. 도달할 입술을 찾느라 내리뜬 눈이 도로 올라와 시선을 맞추더니 이내 스르륵 눈꺼풀 사이로 숨었다. 입술로 입술을 물고 아직도 열이 덜 식어 뜨거운 혀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맞닿을 혀를 찾았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손가락이 누르는 압박감에 매트에 손을 대고 더 기울여주자 힘이 빠진 손이 목에 머물다 곧 등으로 내려갔다. 팔로 버티는 터라 튀어나온 날갯죽지를 훑는 뜨거운 손이 좋아, 에디는 불편한 걸 참지 않는 아담이 올려 둔 팔이 무거워 내려버릴까 팔뚝을 잡아 무게중심을 대신 잡았다.


혀를 쓰는 건 뭐든 불호가 될 수 없는지 아담은 입 맞추길 좋아했다. 때때로 그걸 핑계로 신음을 숨기는 걸 알아도 순순히 넘어가 줄 만큼 답지 않게 다정하고 두말할 것 없이 야하게. 헌데 무른 혀가 느릿한 게 어째 살며시 주도권을 넘기는 걸 보니 머리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한 몸의 피로가 느껴져 에디의 입꼬리가 길어지고 광대가 올랐다. 아. 얘는 도대체... 버릇처럼 팔의 안쪽에 닿은 엄지로 연한 살을 쓰다듬었더니 등 뒤로 아담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고 시야에 분홍빛 다분한 눈꺼풀 대신 푸른 눈이 가득 찼다.


이런, 실수했네. 이미 지친 아담이 다시 불을 지피자고 붙어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아, 부추김으로 느껴질까 냉큼 엄지를 떼었다. 미안. 오가는 숨 사이로 작게 건넨 사과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아담은 그저 푸른 눈을 다시 감추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에디는 남들보다 배는 느린 시간을 갖고도 그 순간 무심히 흐르는 시간이 아쉽다고 느꼈다.


-


[비상]
[네 시원찮은 좆질에 실망한 아담존스 구멍엔 흥미 떨어진 게 분명함]
[너만 박으면 다냐??]
[쓸모없는 새끼ㅗㅗ]


한창 수업 중 아닌가. 기사가 뜬 건 아침이었는데 내내 조용하다 이제야 연락이 오는 걸 보니 학생들에겐 문제 풀이나 시키고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디는 메시지 창에 타이핑을 하는 대신 구글맵에 게이바를 검색해 나온 첫 번째 가게를 공유하고 핸드폰을 뒤집어 내렸다.


아침 일찍 아담의 열애설이 터졌다. 아담 하나로는 기사감으로 쓰이지 않았을 텐데 엮인 이가 무명이라 하기 어려운 배우라 기사화가 불가피했다. 파파라치 특유 저화질의 사진 몇 장이 첨부된 기사를 훑은 에디의 감상평은 취향 여전하네,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손에 꼽을 수만큼을 제외하면 과거 아담과 관계된 여자들은 다들 밝은색의 머리카락을 갖고 늘씬한 키를 가졌었다. 지금의 사진 속 상대처럼.


그러게. 흥미가 떨어졌나. 한 달 전 당 내부 균열로 새벽도 거르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다녔던 때를 무사히 넘기고 나니 다음엔 아담이 바뀔 계절에 맞게 메뉴판을 뜯어고치느라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이른 출근이나 늦은 퇴근 혹은 지배인실에서 밤을 보냈겠지. 하지만 전보다 이른 개편과 아직 에디의 핸드폰 백그라운드에 열려있는 아담의 기사. 길어진 공백에 명백한 이유가 있는데도 에디는 필의 말을 곱씹었다.


인간 메트로놈이라도 된 듯이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는 에디의 책상엔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읽기 시작하면 금방인 걸 알면서도, 제 기분과 상관없이 문해 능력이 떨어지는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에디는 일할 맛이 나지 않아 괜히 딴청만 피웠다. 답잖게 굴고 있다는 걸 느낄 만큼 일할 뇌세포를 남겨뒀다면 딴청을 피울 리도 없었다.


지잉-


방금 전까지 귀찮다고 생각했던 필의 대거리가 이젠 반가워진 에디가 성큼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이따 영업 끝나고 올래? 메인이랑 디저트만 줄게]
[필도 데려올 거면 오는데]
[솔직히 난 그게 재료 낭비지 무슨 의민지 모르겠다]


예상과 다르게 핸드폰을 울린 발신자는 아담이었다. 이미 결과물을 확신하면서도 홀에 내놓기 전까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담 존스도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고심해서 바꾼 메뉴가 확정되면 늘 랭험으로 불러들였는데. 확정된 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드디어 메뉴를 정한 모양이었다. 긍정의 짧은 답변을 보내고 품에 핸드폰을 넣은 에디가 손목을 돌려 근육을 풀었다. 반대쪽 손을 뻗어 내선 연결을 하자 연결음이 한 번의 울림으로 끊어지고 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한데, 차 한 잔만 들여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은 에디는 그대로 손을 옮겨 높게 쌓인 서류 중 가장 위에 있던 서류를 펼쳤다.


-


불 꺼진 랭험의 입구를 지나자 에디는 한눈에 제 자리를 찾았다. 새하얀 시트만 올려진 수많은 테이블 중 식기 세팅이 된 자리는 주방과 이어진 통로와 가장 가까운 테이블 위 단 한 곳이었다. 빈 랭험에 코트를 받아줄 직원이 있을 리 없고 처음도 아닌 에디가 자연스럽게 세팅된 자리 옆 의자에 겉옷을 올려두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잡이가 없는 문은 걸리는 곳이 없어 소리 없이 밀렸다. 홀과 다르게 대낮인 양 환한 주방 안엔 등을 보인 아담이 조리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 그걸 내가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합니까? 통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에 걸린 불이 붙지 못한 담뱃대를 위태롭게 흔들면서 뱉는 어투가 제법 신경질적이었다.


아담의 짧은 물음만 봐도 원하는 게 있는 건 아담이 아닌 게 분명했다. 에디가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매만지는 아담의 앞에 서기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순식간이었다. 굳이 붙들고 있지만 아담에게 중요한 전화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에디는 간만의 시간을 알 수 없는 상대에게 할애해 줄 마음이 없었다.


앞에 선 기척에 아담이 고개를 들기 전 허벅지 밑을 받쳐올려 조리대 위에 앉히자 놀라 톤이 올라간 목소리가 야! 하고 저를 부르느라 입술에 간당이던 담뱃대가 떨어졌다. 제가 이름도 아닌 부름에 곱게 대답이나 하고 앉았을 리가.


에디는 다급히 어깨 위로 올라온 손을 그대로 둔 채 아담의 목에 입술을 붙였다. 입술로 물고 혀를 내 핥는 살이 달아 에디는 순간 맛보러 오라는 게 본인이었던 걸 제가 오해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좁아진 거리감에 여전히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남자의 웅웅대는 목소리가 에디에게도 들려왔다. 밀어내고자 힘을 들이는 아담의 손은 하나였고 단추가 풀린 유니폼 속으로 들어가 등을 당기고 반팔 밑을 비집고 들어가 허리를 쥐고 문대는 에디의 손은 둘이라, 수적으로 불리한 아담이 난관 끝에 전화 상대에게 적절치 못했을 소리를 흘리자 끝내 적절한 전화예절을 지키지 못하고 연결을 끊었다.


바라는 바를 얻은 에디가 양손을 쓰기 시작한 아담에게 밀려주자 붉어진 귀 끝이 눈에 들어왔다. 어지간히 싫었나 보네.


"씨발 새끼, 진짜."
"오랜만이라 그런가? 인사가 너무 격한데"
"재밌냐?"
"아니, 별로."
"야."
"끊고 싶은 것 같은데 못 끊길래. 아니었어?"


에디는 태연히 앞치마에 끼워진 수건을 빼 목을 두드리며 물었다.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건 쉬웠다. 아담과 필과 제 사이에. 수건을 뺏어들어 목을 훔친 아담에게서 더는 날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적당히 그럴만한 이유를 대면 적당히 넘어가게 된 지 오래였다. 아니었음, 진작에 서로 안 보고 살았겠지.


"누가 귀찮게 해?"
"니네가 제일 귀찮아."


아담이 손등으로 옷 앞자락을 툭툭 쳐댔다. 둘 사이에 짓눌려 대가 꺾인 본체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새어 나온 조각난 담뱃잎이 정전기에 이끌려 붙은 모양이었다. 털어져나간 잔해가 그대로 아담의 하얀 앞치마 위로 자리를 옮겼다.


"네가 불렀잖아."
"그래 오래된 내 과오지. 다음부터는..."
"먼저 올게."


에디는 평소와 다르게 조리대 위에 올라앉아 생긴 단차에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네가 부르기 전에, 먼저 올게."
"... 귀찮게 하겠단 말을 누가 그렇게 느끼하게 하냐."
"예쁘게 말하면 좋잖아."
"말을 말지."


왠지 질린 얼굴이길래 에디는 다른 말없이 눈썹을 들썩였다. 재가 붙은 앞치마를 털 생각이 없어 보여 에디는 대신 손을 올렸다. 두어 번 휘두른 손짓만으로 앞치마는 뭔가 붙었던 흔적 없이 깨끗해졌다. 대신 옷을 털고 떨어졌던 아담의 손목 안쪽에 못 보던 붉은 반점이 보였다. 동그란 모양이 기름이 튀어 데인 것 같은데 아직 붉은 게 다친 지 얼마 안 되었구나 싶었다. 물집이 생길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아직 화끈거릴 것도 같은데. 검지를 뻗어 쓱 훑었더니 아담이 반사적으로 팔을 물렸다.


"넌 도대체가 뭐가 문제냐?"


놀랍지 않게 짜증이 돌아왔다.


"흉지는 거 아니야?"
"그러든지 말든지. 비켜, 싸패 새끼야."


가슴팍을 미는 손에 반항 없이 발을 물린 틈으로 아담이 조리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디뎠다. 에디는 아담의 역정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왜 매번 아담이 달고 오는 자잘한 상처들에 손을 대는지 그럴만한 이유를 만들지 못한 탓이었다.


밑으로 동맥이 흐르는 위치의 반점에 맥박을 확인하겠다는 구실로 엄지를 대고 문대 일그러지는 얼굴이나 밀어내는 몸짓 같은걸, 아님 기어코 충혈된 눈의 시선이 오로지 제게 박혀 떨어지지 않는 순간을 상상하는 이유가 그런 성격장애의 증상이라면 얼추 맞을지도 몰랐다.


"근데 좀 이르지 않아?"
"날씨가 이상해서 그래. 재료가... 야. 날씨가 이 모양 이 꼴이 돼가는데, 네가 세금만 축내지 하는 일이 뭐야?"
"그런 말을 하기에도 좀... 이르지 않아?"
"이 나라 정치는 대통령만 하나."


아담의 들으라는 듯 흘리는 혼잣말에 에디가 키득댔다.


"내 법안에 손대고 싶으면 베갯밑송사를 해."
"지랄. 나 세금 내. 더럽게 많이 내. 세금으로 일하라고, 청탁으로 일할 생각하지 말고."
"뭘 바래, 정치인이 다 그렇지."


고개를 숙여 유니폼의 단추를 채우기 시작한 아담을 보던 에디는 누군가에게 80억 인구를 제치고 가장 귀찮은 존재가 되는 기분을 상상했다. 건설적이라고는 빈말로도 할 수 없는 생각이 연이어 이어졌다. 아. 잠이 줄어 그런가. 에디는 지난 보름간의 수면 시간을 떠올렸다. 덧없는 생각을 밀어내고 좀 더 괜찮은 대화 주제를 꺼내려던 찰나 조리대 위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담이 내려뒀던 핸드폰엔 발신인의 이름과 직관적인 수신 화면이 뜨고 잠시 멈췄던 진동이 다시 이어졌다.


"홀에 있을게."


여전히 화면을 주시하던 에디가 뒤늦게 시선을 돌렸다.


"아. 혹시 갈 거면."
"..."
"굳이 귀찮게 나오지 말고 문자로 해."


에디가 주방을 뒤로하고 나오자 같은 문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하던 전과 다르게 끼익- 날카로운 소음이 일었다. 준비되어 있던 자리로 돌아가면서 핸드폰을 꺼내 켜져 있던 인터넷 탭을 전부 지웠다. 에디는 기사를 닫지 않고 남겨둔다고 종일 신경이 쓰인 이유로 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조리대를 울리던 발신자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에디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사진 속의 금발의 여자였다.


-


기다림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지난 한 달을 생각하면 아주 짧았다고 봐야 하지만 원체 에디의 시간은 남들과 달랐고 몸이 멀었던 한 달과 겨우 몇 걸음을 두고 떨어져 있는 지금을 비교할 일은 아니었다. 에디는 지난 반년 동안 아닌 척 질척이는 자기 자신과 내외 중이었다. 남의 영업장 문간에 서서 불현듯 제 삶에 유일한 무언가가 나타난 걸 깨달았던 때가 벌써 반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흘러간 시간에 이유를 붙이자면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다음엔 현재에 안주하는 전혀 답지 않은 짓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에디에게 사람들은 수단의 하나일 뿐이지만 필이나 아담의 인생을 남의 인생 주무르듯 휘두르지 않겠다 정해둔지 오래였다.


강제로 쥐면 망가질 테고 에둘러 당겨도 결국 결과는 같았다. 에디가 가는 길을 아담이 고분히 견딜 리가 없었다. 그래서 에디가 내세운 목표는 현상 유지가 전부였는데,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은지 오래인 아담을 알아 몸이 닿는 바람에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되어버린 게 너무 달콤했던 탓이었다.


아담은 서빙이 능숙한 웨이트처럼 한 팔에 접시를 두 개나 들고 나머지 손엔 물이든 유리병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들어 좌우가 제법 상반되는 모습으로 나왔다. 두 접시를 모두 제 앞에 놔주고는 물병을 열어 잔을 채우기까지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옆자리에 앉은 듯 속삭이는 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니까 저게 깡패야, 셰프야? 동족 포식 시키는 거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어린 고기면 어떻게, 자기야. 나 초딩들한테 알레르기 있다고!'


제발 조용히 좀 해, 필.


그냥 안부전화였어. 에디의 맞은편에 앉고서야 분위기를 험하게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 아담의 못마땅한 듯 꾹 다물린 입이 열렸다. 커트러리를 쥐던 에디는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에디가 아는 아담의 '그냥'은 그저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 앞에 붙이는 말이었다.


"예쁘네. 이건 안부, 이건 전화?"


나이프로 메인 디쉬를 하나씩 콕콕 가리키며 물었더니 말없이 사나운 눈초리가 매섭다. 하려던 거나 하자는 뜻과 말장난 중 뭐가 더 거슬려 성을 내는지 묻고 싶었지만 에디는 얌전히 기다리기를 택했고 아담은 곧 불퉁하고 간결하게 재료들을 서술했다.


타인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왜 생기는 걸까. 그것처럼 불가능한 일이 없는데. 에디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물인지 자주, 가끔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느꼈다. 얼마큼 도덕적이고 얼마큼이나 고결한 뜻을 가졌든 헌신의 주체를 찾아 들어가면 결국 자기만족으로 이어져 있었다. 하물며 제 앞의 아담 존스는 어떤가. 적당히 불우한 가정사와 적당하지 못한 재능, 그리고 쉽게 꼬여댄 사람들까지만 봐도 타인에게 매여 정처 없이 흔들리거나 맹목적인 믿음으로 기대오는 부류는 아니었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뭘."
"둘 사이가 뭐든 부인은 하는 게 좋아.“


에디는 말하는 동안 적당 크기로 자른 고기를 접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구역을 나눈 소스에 스쳐 첫입을 뗐다. 다네. 사심 담은 종용보다는 오로지 걱정으로 꺼낸 말이었다.


"좋을 거 뭐 있어, 네 유명세만 해도 감당 못하면서."


아담은 명성이 주방 밖에서의 언행으로 더러워질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해놓고도 모르는 척하기 다반사였다. 항상 무언가 중독된 상태였던 과거와 비교하기엔 억울한 감이 없진 않겠지만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위치인 걸 부정할 순 없었다.


"그딴 거 감당 안 해."


새로운 소스나 바뀐 부위의 고기에 대해 말도 못 꺼냈는데 아담의 목소리가 들썩였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말 아니었나. 에디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손을 비웠다. 왜 화가 났지.


"그러니까. 안 하니까."
"할 말 있으면 똑바로 말해."
"내 말이 어려워?"
"......"
"그냥 더 귀찮아진다는 소리잖아."
"상관 안 한다고."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게 느껴졌다. 에디는 아담이 말 그대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건지 관계로 인해 붙어오는 불편을 감내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도 마음은 된다는 얘긴가. 꼬리를 문 생각들 끝에 이 또한 너무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다시 이따금 둘이 아닌 셋이 만나 식당 문 앞에서 헤어지는 게 전부인 사이로 돌아가자는 건가 싶어서.


그거라도 하자고 내내 발을 물렀으면서 막상 가까이 직면하자 목을 긁고 넘어간 음식이 썼다. 에디는 고깃덩이가 식도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물 잔에 손을 대고서야 입을 열었다.


"...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데."
"귀찮아지니까 뭐든, 부인만 하라고."


에디가 불편해지자 아담은 오히려 한숨 한 번에 속을 가다듬었다. 들끓었던 눈이 한풀 가라앉고 줄곧 눈을 떼지 않던 아담이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드러난 목으로 침을 삼키는 껄떡임이 그대로 보였다.


"넌 하고 싶은 말이, 그게 다냐?"
"아담."
"야. 내가 뭘 감당할 땐 여기 빈자리가 늘었을 땐데. 여기 오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랑 자는지 상관도 안 해. 너나 신경 써."


아. 숨통을 조이던 짐작들은 아직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에디의 생각과 반대로 아담은 다음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단호한 시선과 마주하자 에디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성큼 선을 넘은 아담을 두고 환희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탓이었다. 그런데도 에디는 그 단단한 시선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아담의 눈을 피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시작과 함께 끝을 생각하는 성능 좋은 머리는 시간 차도 없이 다시 발을 물리는 때의 아담을 떠올리게 했다.


"못 들었어? 너나 신경 쓰라고."


하지만 아담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 그 여자는 왜 만났는데."


아담 존스의 입꼬리가 휘어 올랐다.


"기사에선 데이트라는데. 아님 아직 원나잇?"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마, 대충 봐도 네 취향이던데."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아주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되는 듯, 마땅히 그런 권리가 있고 대단히 화가 났다는 듯 인상을 쓰며 탓하는 척을 시작하자 하, 하고 코웃음을 친다.


"오보니까 닥치고 평이나 해."


아담의 메뉴가 계절에 따라 개편되듯 에디는 아담이 원하는 정도의 얽힘으로 엮이다 내내 그 마지막에 실타래 하나라도 남기는 계획이나 세우게 될 걸 예상했다. 그러니 이번엔 복잡하게 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풀어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풀어지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도록. 근데 그건 그거고...


"야."
"뭐."
"나 얹혔어."
"하. 진짜 별..."


도르륵 눈알을 굴린 아담이 의자 다리로 바닥을 긁으면서 일어나 다가왔다. 뒷목을 잡아당겨 어깨를 기대게 하더니 툭툭 등을 두드렸다.


"진짜 더럽게 귀찮게 하네."


원하던 바라, 에디는 이마를 아담의 몸에 기대 몰래 웃었다.





+ 아담 존스 답지 않게 자꾸 자낮하게 구는 에디가 마음에 안 들었을 듯..


뿌꾸자공자수 에디아담
2024.04.25 22: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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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센세ㅌㅌㅌㅌㅌ
[Code: 4020]
2024.04.26 0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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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야 대통령이 돼서 아담존스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유명세 가진 사람이 되어 복잡하게 얽히자ㅜㅜ
[Code: 3526]
2024.04.26 1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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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다 문학이야 이런 미친 엄청난 심리묘사라니.........하 진자 센세가 말아주는 에디아담 너무 맛있어 진짜 최고야
[Code: 90b6]
2024.05.01 01: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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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가 있다고?? 너무 좋잖아... 진짜 분위기 미쳤어 에디 시점으로 전개되고 묘사되는 모든 감정과 묘사가 좋아요 센세...
[Code: 1b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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