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떠서 코 앞에 맨가슴이 있는 걸 보고 이 두부가 얼마나 놀랐는지 매트리스까지 덜컹했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금방 눈 뜨길래 소리 지를 뻔한 입 틀어막았고 느릿하게 눈 깜빡이더니 자기 몸을 훑어보길래 그제야 암것도 안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음
주섬주섬 시트 끌어올려 덮은 채로 바닥을 더듬었더니 너덜해진 그 헤픈 복장이 잡혀서 잠깐 침울해졌고 곧 바지를 꿰입은 러스트가 그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는 목이 꺾일만치 입을 맞추길래 울 것 같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더라면 정말 슬프고 상처였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모르는 척 안하고(모르는 척 한 적은 없음) 굿모닝키스까지 찌인하게 받았더니 볼이 내내 빵실한데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를 깡통 음식 퍼먹으면서도 헤헤
씻으면서도 헤헤
머리 말리면서도 헤헤
짝사랑 성공한 틴에이지 마냥 실실 웃더니 막상 당사자랑 눈만 마주치면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마냥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며 참 투명하다, 하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얘기했다가는 속상해할 게 빤해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음
같이 차 타고 출근하는데도 애가 들떠서는 자꾸 운전 중인 자기를 흘깃대길래 좀 웃기기까지 함 밤새 울더니 얼굴도 좀 붓고 목소리도 살짝 잠겼다
그도 그럴게 좋아하던 사람이랑 처음한 거고
그 상대는 절대 넘지 못할 벽같아 보였는데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매달리는 입장에서 가슴앓이를 꽤 했으므로 끝내주는 보상임과 동시에 가슴이 벅찼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코 끝이 찡한 걸 삼키느라 간밤에도 고생을 제법 했다
어젯밤 다른 생각은 도저히 못할 정도로 안아줬으니 오전까지도 좀 졸려서 꾸벅대기도 했을텐데 졸다가 눈을 뜨면 쳐다보고 있던 러스트랑 눈이 마주쳐서 후다닥 잠 깨고 집중하려고 했을 듯
‘공사구분은 철저히 해야 하니까 서에서는 티 내지 말자’ 라고 말한 건 허니 본인이었고 알아서 하라던 건 러스트였는데
사실 본인 걱정을 해야함 러스트는 원래 뭐든 티가 안 났고...
문득 러스트한테는 어젯밤 일이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다 큰 성인 남녀가 약기운 술기운에 몸 한번 겹친 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만 엄청 의미부여하고 설레고 좋고 그런 걸지도 몰라 <-> 그치만 아침에 뽀뽀해줬는데...!
우리 무슨 사이예요? 하고 물어보기도 겁나고 자존심 상하고 별 사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 암담한 기분을 어떻게 감당하겠음
결국 다시 축축이 슬픔이로 돌아가버렸고 코 앞에서 실시간으로 얘가 또 감정의 롤코에 올라탄 걸 보던 러스트는 손을 뻗어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집중해
그 말에 또 후다닥 불안 스위치 내려갔는데 그거 잠깐 바라보고 신경써줬다고 금세 기분이 나아질 듯
조사 차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미 샌드위치 사먹으면서 내내 고민하다가 이따 퇴근 같이 할래요? 하고 슬쩍 물어봤고
이번에는 벨트부터 매, 라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와 기분이 꽤 좋았다 (아침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벨트 매는 거 깜빡했다가 한소리 들었었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뭔가 더 벅차고 좋고 그랬는데 한편으로는 더 겁도 나고 갑자기 다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겠지
평소처럼 시니컬한 얼굴로, 냅킨 건네주면서 자기 뺨 툭툭 쳐보이고는 여기 닦아라 알려주는 파트너에 하루에도 몇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중임
퇴근하기 전에 근처 식당 들러서 밥도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비상걸려서 퇴근도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다녀야 했음
끝나고 같이 저녁 뭐 먹지 생각하면서 취조실 밖에서 취조 중인 러스트 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크고 긴 손이랑 두툼한 팔뚝 따위에 갑자기 엄한 생각이 확 들어서 얼굴이 벌게졌다
비, 괜찮아?
갑자기 두 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리는 두부에 옆에 서있던 동료가 괜찮냐 물었고 좀 피곤해서 그렇다고 어물쩡 넘겨버렸지만 머릿속에서는 어젯밤 러스트가 얼마나 그렇고 그랬었는지에 대한 회상이 가득했을 듯
같이 퇴근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러스트 쪽 일이 길어졌고 잠깐 외근까지 다녀와야했는데 다녀오니 캄캄한 사무실에 스탠드만 켜두고 엎어져서 자고 있었을 듯
이때가 벌써 새벽 세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먼저 가라고 전화라도 했어야했는데 우리의 일치광이 잠깐 집중하느라 다른 건 다 잊고 있었다
먼저 퇴근한다고 문자 남겨두고 그냥 혼자 퇴근했어도 되는 일인데 얘는 혹시라도 방해될까봐 연락도 못 남기고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어버렸는데
어차피 서너시간 후면 출근해야하고 다른 형사들은 거의 다 퇴근했는데 얘는 자기 기다린다고 이러고 앉았고... 회사에서 티내기 싫다고 했으면서 이렇게 대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임
잠깐 엎드린 뒤통수 보다가 뒷목에 지그시 손 얹고 가볍게 주물렀더니 움찔하면서 꾸물럭 일어났겠지
우리 퇴근 실패야...?
제프가 입을 늦게 열더라고
어어, 대충은 들었어... 꼴통이라고
아무튼 진술은 받아냈어
알지 그러니까 나한테 왔죠
또 대꾸가 없었는데 무언의 긍정인 것 같아 배시시 웃으며 뻑뻑한 눈 부비니까 살짝 눌러잡아 손 떼놓더니 그대로 잡아끌어서 주춤주춤 일어났을 듯
당직실에 가서 자라며 등 떠미는 손을 굳이굳이 끌어당겨다가 침대 맡에 앉혀놨는데 공사구분 하자면서 침대 구분은 하기 싫었나보다
물론 그때보다 훨씬 가깝고 상황도 다르지만 처음 러스트 집에서 잤을 때처럼 등을 보고 누웠는데
매캐한 담배 냄새랑 옅은 섬유유연제 향 맡으며 스멀 몰려오는 잠에 다시 빠져들고 있을 때쯤 러스트가 일어나길래 나가려나 싶었다
뜻밖에도 나가서는 컵이랑 서류를 들고 돌아와 침대 맡에 다시 앉아서는 담뱃재를 몇번이나 털고서도 계속 옆에 앉아있는거지
물론 다정하게 팔베개를 해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거는 아니었지만 굳이 여기 앉아 불편하게 고개를 숙이고 서류철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좋기도 하고 새삼스레 울컥해서 뒤돌아누웠다
진정하고 자야지 다독여보는데 살짝 내려간 담요를 어깨까지 끌어다 덮어주길래 못 참고 일어나서 답싹 안겨버렸을 듯 사실 두부는 아까부터 안고 싶었거든
참형가 러스트너붕붕 맥커너히너붕붕
내용 산으로 간다 둘이 좀 꽁냥대게 하고 싶엇음 캐붕 미안하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