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부터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윌과 찰리는 택시에서 내려서 서둘러 걸어가는 것보다 느긋하게 걷는 걸 선택했지. 서로의 향과 체온을 맡고 싶은 마음이 통한 결과였어. 하지만 찰리의 다친 팔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건 두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어. 찰리가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해도 둘은 각인된 사이이고 윌은 단번에 알아차렸지.

“비가 오니 더 아리지? 얼른 가자.”

“아냐.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이러고 있다가는 깁스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

“알겠어. 비서가 보스 말을 들어야지. 안 그래?”

찰리는 피식 웃으며 윌이 입고 있던 상의로 팔을 가렸고 둘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어.

캄캄한 밤,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 번쩍이는 번갯불, 그르렁대는 천둥소리. 나열한 말의 이미지로만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두 사람에겐 무엇도 방해가 되지 않았어. 그저 서로만이 보였지.

“손부터 씻어야겠다.” 레버를 돌려 흐르는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손길이 분주해. 고작 상처 소독에 온도조절까진 과한데. 찰리는 어쩌다 흘끗 바라본 윌의 속눈썹이 참 길고 예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 속눈썹에 맺힌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발견하고 계속 관찰하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따끔한 느낌에 정신이 들었지.

“아,”

“따가워도 참아. 구급상자도 없는데 깨끗하게라도 씻어야지.”

네 말이 다 맞아. 윌 데이비스. 있잖아. 아까 나한테 했던 말, 그거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인 거지? 내가 널 믿어도 되는 거, 맞지?

“뭘 그렇게 빤히 봐. 일단 손수건으로 감싸자.”

“응. 그래야겠네.”

“그래야겠네. 는 무슨, 진통제도 드셔야죠.”

윌은 찰리가 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도 살뜰하게 챙겨와서는 손이 불편한 찰리가 입을 벌리길 기다렸어.

“뭐야, 이리 줘.”

“그냥 입만 벌려.”

“왜?”

“내가 넣어 줄 테니까, 삼키라고.” 제 앞에서만 곧잘 붉어지는 찰리의 얼굴을 즐기는 윌의 소소한 장난이었어.

“나 놀리는 게 재밌어 죽겠지, 아주?” 찰리는 윌이 들고 있던 약통을 얼른 뺏어 들고 알약을 꺼내어 삼켰어.

“물도 마셔야지.” 언제부터 물을 머금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윌이 또 찰리의 입술을 독점해.

자물쇠가 다 무슨 소용이야. 찰리는 새벽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에 눈을 뜨며 커다랗게 하품을 해대는 윌을 보며 한숨을 쉬었어. 윌 데이비스, 널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빼도박도 못할 사실이니까.

“어제부터 왜 빤히 쳐다보는 거야?” 윌은 찰리의 시선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찰리의 생각은 읽을 수가 없기에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궁금했겠지.

“그냥. 그리고 네가 약속을 안 지키니까.” 찰리는 윌에게 자꾸만 말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교제 초반에 나름의 기강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아, 어젠 암묵적인 동의하에 잔 거 아니었나?” 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어.
진통제를 먹고 약간 몽롱해진 상태의 자신이 분명 그랬던 것 같거든.

“윌, 이리 와, 쭉 내 곁에 있어 줘.”

얘들아 많이 많이 사랑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존나 사랑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