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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14:33
갑자기 생각난게 있어서 또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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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동안 망설였다. 룸으로 돌아가 조 회장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망설이던 일언이 결국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머뭇거려도 이제 뒤로 갈 수는 없다.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이든.

룸 앞에 선 일언이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의 준비를 할 때였다.

“늦으셨네요.”
“……!”

벨을 누르기 전에 문이 먼저 열렸다. 조 회장의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호흡을 미처 고르기도 전이라 놀란 일언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목이 아파서 크게 기침을 할 수도 없는 통에 잔기침이 여러 번 콜록거렸다.

“이쪽으로.”

비서가 능숙하게 일언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조 회장이 그새 자신을 찾았나?’ 일언의 눈이 스르르 구르는 것을 본 비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정일언 씨가 잠시 나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걸… 회장님이 용납하셨다고요?”

허락 없이 나갔다고 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일언이 대놓고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비서는 조 회장의 사람이니 자신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닐 터였다. 회장이 분노하는 등의 일을 대비하라고 알려주는 것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비서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회장님이 즐기시는 브랜드의 담배가 마침 떨어졌거든요.”

비서가 우아한 디자인의 시거 케이스를 내밀었다. 일언도 아는, 하지만 ‘즐길’ 정도로 자주 접할 수는 없는 한정판 시거였다. 다른 이들과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회장이 일부러 과시하듯 즐기는 종류이기도 했다.

일언은 비서가 자신에게 이것을 주는 이유를 먼저 의심했다. 조 회장의 담배를 챙기는 것은 비서의 의무인데, 그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자신을 도울 리 없었다.

쉽사리 받지 않은 일언이 설명 먼저 하라는 눈빛을 던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서는 무표정하게 일언의 손을 당겨다가 케이스를 쥐어 주었다.

“가지고 들어가시면 변명이 성립하는 겁니다.”
“왜 도와주십니까?”
“호의를 베푸는 거라고 하죠.”
“이유 없이 그럴 리 없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비서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좋으면 이용하기도 까다로운 법이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데 이골이 난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회장의 손아귀에서 굴려지면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십여 년을 살아남은 정일언이라면, 비서 역시 내줄 것은 내줘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시계를 잠시 바라본 비서가 시간이 없다는 뜻을 표현했다. 일언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짧은 설명을 용납했다.

“회장님의 아드님들 사이에 문제가 조금 있다는 것, 정일언 씨도 이미 아시리라 봅니다.”
“…….”

일언이 침묵으로 긍정했다. 돈만 주고받는 관계에서 끝나야 할 자신이 조 회장의 사정을 알고 있다고 덜컥 답하면 곤란했다. 게다가, 문제가 ‘조금’ 있는 게 아니며, 그 문제라는 것이 조 회장의 어마어마한 자산을 물려받을 후계 자리 때문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면 더 곤란했다.

…말하지 않아도 비서는 일언이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다 알고 있겠지만.

어쨌든 부정은 해야 했다.

“저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일언이 선을 그었다. 물론 비서는 듣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투자’가 유지될지, 회수될지, 혹은 더 많이 들어올 지 계산해보셨을 텐데요.”
“…….”
“무리한 부탁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회장님 앞에서 몇 마디 정도 거들어주시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일언 씨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의 제안을 일언이 승낙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일언은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조 회장을 모시는 동안 비서도 함께 만났다. 말을 자주 섞은 건 아니지만 성향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예상을 벗어난 말과 행동을 당당하게 할 줄은 몰랐다. 언제나 필요한 말만 하던 이가 이렇게 길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 말이 일언까지 위험으로 몰아넣을 험로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남의 장단에 춤출 수는 없다. 일언이 당황을 숨기고 싱긋 웃었다.

“위험합니다. 차라리 조금 전의 얘기를 회장님께 전해드리는 게 제게는 더 이득인 것 같군요.”

칼날을 반대로 돌리려는 일언에게, 비서 역시 웃어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입꼬리를 슬쩍 들어올리는 모습이 어쩐지 더 오싹했다.

“서로 알 거 다 아는 처지에 떠보지 맙시다.”

비서가 시거 케이스를 쿡 찔렀다. 내가 당신을 한번 눈감아 주는 거니 당신 역시 한번 내 말을 들으라는, 쉽게 말하자면 서로 돕고 살자는 얘기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서로’ 돕는 게 아니라 일언이 일방적으로 도울 일만 많을 것 같았다. 여차했다가는 앞으로도 쭉 엮일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일언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비서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 들었다.

“자, 이제 슬슬 시간 됐습니다. 들어가시죠. 회장님과의 대화는 나중에 제게 알려주시고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일언이 버텼다. 다시 시계를 확인한 비서가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더 늦어서 조 회장의 심기가 상하면 아주 곤란했다.

비서가 일언에게 정말 모르겠냐는 눈빛을 던졌다. 담담하다못해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가 일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똑똑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꼭 입으로 들어야겠다면 말씀드리죠.”

이어진 비서의 말은 빠르고 명확하지만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개’의 처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흘레붙는 개새끼에게는 찬물 좀 끼얹으면 알아서 떨어질 거라고 하셨습니다만, 그 물이 얼마나 찬지, 얼만큼을 어떤 방식으로 뿌릴지는 앞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비서의 말투는 감정이 없다 못해 기계가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매우 부적합했다. 하지만 일언은 지나칠 정도로 탁월한 학생이었고, 상대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핵심과 숨겨진 뜻까지 파악했다.

일언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계원을 들먹이는 행태에 한 번 열받고, 계원이 자신의 약점이라는 것을 비서의 입으로 전해들은 부분에 두 번 열받고, 이 일이 조 회장의 선이 아니라 비서의 선에서 다뤄진다는 점에 세 번 열받았다.

일언은, 적어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유계원에게 홀린 티를 내지 않았다. 최소한 비서가 맨눈으로 알아볼 정도로는 흘리지 않았다. 게다가, 알아차려도 계원이 알아차려야지 비서가 쥐고 흔드는 것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맞는 게 뭐 어쨌다고. 나와는 상관없습니다.”

일언이 시거 케이스를 비서의 품에 던지다시피 돌려주었다. 쉽게 받아낸 비서가, 다시 일언의 품에 꾸욱 눌러서 강제로 쥐게 만들었다.

“정일언 씨는 그렇다 치고,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당연하다. 자신이 뭐라고 계원이 굳이 연관되려 한단 말인가. …잡아넣기 위해서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러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정하게 닿았던 체온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계원이 ‘물’을 잘못 맞아 문제가 생기는 것도 싫었다.

“원하신다면 상대분의 생각을 알아봐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 몇 장 보내면 반응 올 것 같은데요.”

그 순간 일언의 눈에 불꽃이 팍 튀었다. 조금 전까지는 습관적인 미소를 걸친 채로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정도였다가, 이제는 적을 대하듯 발톱을 세웠다.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비서님.”

이를 너무 꽉 물었던 탓에 발음이 조금 흐트러졌다. 그래도 일언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오만하고 건방지고 경박하지만 눈치 빠르고 영리하고 상대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야 속이 시원했다. 가장 자신있는 자신의 모습을 방패로 내세운 일언이, 발톱을 단단히 세우고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떨려서 회장님 앞에서 말실수를 할지도 모르겠군요.”

비서는 나아가고 멈출 선을 정확히 알았다. 일언이 회장에게 호소할 말의 내용과, 회장이 일언에게 귀기울일 가능성, 그리고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 확률까지 순식간에 계산했다.

“제가 과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는 정일언의 선을 밟은 것을 담백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하여 일언이 스스로 위험을 깨닫고 더욱 얽매이게 될 것임을 알았다.

결국, 회장에게로 향하는 일언의 손에는 비서가 건넨 시거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

투숙객 명단을 너무 쉽게 얻은 게 문제였을까. 계원은 첫번째 조사 단계부터 덜컥 돌부리에 걸렸다.

“이거, 개인이 아니라 기업명으로 되어 있는데요?”

팀원이 난감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기업도 그냥 기업이 아니었다. 영국인들이 실질적으로 거의 지배한 홍콩 시장에서, 그 영국인들의 머리를 돈으로 찍어누르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일언과 관계 있는 게 분명하다.

기업의 이름을 제 이름처럼 쓸 정도라면 보통의 직원은 아닐 터였다. 오너 일가와 가까운 친척을 아우르는 로열 패밀리부터 최고위급 임원까지 전부가 계원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 난감한 얼굴을 한 다른 팀원이 계원을 불렀다.

“팀장님, 부장님이 부르시는데요…. 지금 당장 튀어오라고….”

부장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인데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니, 부장이 말보다 행동으로 더더욱 날뛴 모양이었다. 계원은 팀원을 안심시키듯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부장실로 향했다.

“유계원, 너 미쳤어?”

계원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부장이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마침 꼬투리를 잡았다는듯 의기양양한 기색이었다.

“한위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래? 엉?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나까지 같이 죽게 만들어?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 책임질 거냐고!”

부장은 소리소리 지르는 내내 부장실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이유는 뻔했다. 다른 이들에게도 경고하는 것이다. 계원처럼 부장의 지시 없이 마음대로 날뛰지 말라고, 대기업과 적대하지 말라고, 삼킬 수 없는 덩어리는 혓바닥도 대지 말라고, 아니, 아예 본 척도 하지 말라고.

한참 부장의 헛소리를 들어주던 계원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공방이 뒤바뀌었다.

“부장님.”

단지 한마디를 한 것뿐인데도 부장의 입이 합 다물어졌다. 여기저기서 뒷돈을 받아먹으며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안위에 대한 촉이 대단했다.

“너, 너… 설마, 벌써….”

부장은 뒷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은 이 감각을 위기감이라고 해석했다. 아랫사람에게 공포를 느꼈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탓이었다.

“벌써 한위를 들쑤신 거냐?”
“아뇨.”

계원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면서도, 부장의 눈은 이미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카르멘을 파다 보니 알게 된 게 있는데 말입니다.”

계원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언젠가 들었던 일언의 말을 또렷이 떠올렸다.

‘당신 윗선이라고 이런 거 안 할 것 같아요?’

계원은 본래도 머리가 좋은 편이었지만, 일언에 관한 것이라면 기억력이 극대화되었다. 일언의 목소리와 말투, 어조와 표정, 몸짓, 한발 더 나아가 당시의 공기 흐름과 향기까지 모조리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이 수집한 일언의 정보는 당시 그가 사실만을 말했음까지 짚어냈다.

“카르멘 그룹이 뿌린 접대와 향응이 염정공서의 내부까지 닿았다는-”

계원이 하려던 말을 먼저 알아차린 부장이 입을 뻐끔거렸다. 소리나지 않는 비명을 힘껏 내지른 그가 쾅! 부장실의 문을 닫았다. 그래봤자 계원의 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야! 냅다 크게 외친 부장이 일단 눈을 부라렸다.

“즈, 증거! 증거 있어?”
“제가 증거 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 부장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씨발…….”

부장이 애꿎은 머리를 와락 쥐어뜯었다. 어느 부분에서 추적당했는지를 중얼중얼 되짚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위에 찌르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응?”
“그 이유 역시 부장님이 잘 아실 텐데요.”
“그래, 역시….”
“자수하시면 정상참작 하겠다는 뜻입니다.”

계원이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동안 부장의 얼굴이 제멋대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노래졌다 파래졌다를 오갔다.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씨발….’ 작게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봤을 때, 그리고 염정공서에서 자신의 부하로 계원이 들어왔을 때 이미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참작, 약속했다?’ 중얼거리는 부장에게 계원이 살짝 목례했다. 부장실 밖에 나오자 팀원들이 일제히 계원을 바라보았다. 안절부절 못하고 부장실 안의 동향에 귀기울이다가 막판에 멍해진 것이었다.

부하들이 계원과 부장을 번갈아 힐끔거렸다. 지시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계원이 ‘조용히 모셔.’ 말했다. 부장은 이제 부장이 아니라 사건 관련자가 될 것이었다.

…사실, 조금 전의 대화에 약간의 블러핑이 있기는 했다.

계원은 부장에게 평소처럼 직접 증거를 보이는 대신 입부터 털었다. 이 일의 증거는 일언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하기 때문이었다. 부장이 제정신이라면 약간 부족한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가 증거 자체를 무효화시켰을 것이었다.

하지만 계원은 언제나 바르고 곧고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계원의 이미지는 입으로만 떠든 증거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거기에 주눅든 부장이 실토하는 몇 마디는 모자란 증거보다 더욱 확실한 증언이 되어줄 것이었다.

계원은 증거우선주의이던 자신의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여기에 책임을 물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건 역시 정일언이다. 그가 알든 모르든, 자신을 바꾼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우고 싶었다. 바짝 옭아매어 자신의 곁에만 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원이, 팀원들에 의해 ‘모셔지는’ 부장을 돌아봤다. 장애물 하나를 치웠으니 다시 한위를 파볼 시간이었다.

*

바로 돌아갈 줄 알았던 조 회장은, 의외로 호텔에 며칠 눌러 앉았다. 자신의 앞에서는 늘 헤헤거리던 일언이 잠시 눈을 떼면 바로 푹 가라앉는 모습이 눈에 걸린 탓이었다.

조 회장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인물이 아니었지만, 너무 과하게 일언의 기를 죽였나 싶어서 조금 미안하기는 했다. 예쁜 얼굴인데 입가에 상처가 난 게 안타깝기도 했다.

조 회장은 직접 사과하는 대신 돈으로 마음을 보여주었다.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수천 억을 쉽게 움직이는 이답게, 조 회장은 일언의 손가락에 8캐럿짜리 다이아를 끼워 주었다.

알이 크고 무거워서 끼자마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그 반지를 구해온 사람은 비서였다. 경매 매물로 올라간 물품을 사전 협상으로 따내기 위해 수많은 인맥과 노력이 들어간 것은 당연했다.

비서는 정일언이 조 회장의 앞에서 자신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았다. 하지만 일언의 화는 다 풀리지 않았으며, 이런 식의 ‘소소한’ 화풀이는 더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알았다.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조 회장의 질문에 일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게 웃기는 하지만 평소보다 힘이 빠진 미소였다.

‘일언의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냐!’ 조 회장이 비서를 질책하듯 바라봤다가, 일언이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내젓자 다시 정신을 빼앗겼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조금 어지러워서 그래요. 화내지 마세요, 회장님.”

그러고 보니 일언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촉촉한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고, 눈가와 뺨이 발긋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열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언을 앓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니 좀 더 미안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긋해진 일언이 음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조 회장이 일언의 허리를 지분거렸다.

사람을 실컷 굴렸으면 쉬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이 색마 영감탱이.

신랄한 속마음을 애처로운 웃음 속에 숨긴 일언이 머리를 조 회장에게 기댔다.

비서가 자리를 비켜야 하는 시간을 알아차렸다. 조용히 물러났던 비서가, 몇 초 후 다시 들어왔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조 회장의 표정이 변했다.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비서가 조 회장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힐끔 일언 쪽을 보고는 손을 펼쳐 입모양까지 막으려는데, 일언이 뭐라고 반응하기 전에 조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됐으니까 그냥 말해.”
“…알겠습니다.”

평소라면 일언이 엿듣고 영악하게 굴 것을 먼저 경계할 조 회장이,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물렀다.

비서는 이런 부분까지 잘도 주무른 일언이 대단하다고 해야할 지 무섭다고 해야할 지 판단하지 못했다. 어쨌든 당장은 조 회장이 시킨 대로 행동하는 게 우선이었다.

“염정공서 측에서 냄새를 맡은 것 같습니다.”

조 회장이 바로 일언을 바라보았다. ‘염정공서’ 단어에 무슨 반응을 보이나 탐색하는 시선이었다.

일언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얌전히 장난치듯 반지만 손으로 문질렀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알이 손가락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조 회장이 미약하던 의심을 거뒀다. 아무래도 자신이 과민했던 모양이었다. 면을 먹다 보면 빵이 당기는 법이고, 그러다가 밥도 탕도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단 것 짠 것 신 것을 다 먹을 수 있는데 새로운 맛을 한 번 접했다고 너무 과하게 혼을 낸 것 같았다.

일언을 옆구리에 딱 낀 조 회장이 비서에게 간단히 말했다.

“내가 홍콩에 있다는 걸 그쪽에서 어떻게 알았지?”
“객실이 그룹 이름으로 대여되어 있는데, 혹시 회장님이 아니냐고….”
“확신은 없다는 거로군. 내가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하면 출입국 기록까지 조사할 테지만, 그때쯤이면 조 회장이 다시 출국한 후일 테니 상관 없었다. 여유를 위해 시간을 조금 더 버는 방법 역시 간단했다.

“지금 누가 근처에 있지?”
“큰 도련님이 마카오에 계십니다.”
“그럼 그 녀석이 머무른 걸로 처리하면 되겠군.”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누가 귀찮게 달라붙는지….”

조 회장이 불만을 중얼거리는 것인지 ‘누구’를 알아내라고 하는 것인지 애매했다. 비서가 숙였던 고개를 조금 들며 조 회장의 눈치를 살피려 할 때였다.

조 회장의 손에서 인형처럼 가만히 주물럭거림을 당하던 일언이 내리깐 눈을 슬쩍 들었다. 비서와 시선을 마주친 일언이 작게 웃으며 입술을 꾹 다무는 시늉을 했다.

못 알아듣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인 지시였다.

…정일언이 제정신인가?

비서가 이제 와서 새삼 고민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언의 간이 컸던 것이다.

조 회장의 코앞에서도 허튼 짓을 하려고 드는 인간이다. 기회가 닿는 순간 자신의 뒤통수를 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서는 자신이 먼저 일언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잘못된 상대를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은 꾹 눌러두었다.

“제가 잘 처리해 두겠습니다.”

조 회장이 상대를 알아보라거나 치우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에 비서가 먼저 자체적인 처리를 말했다.

“그래, 알아서 해.”

평소 같으면 비서가 처리하겠다는 말까지 죄 의심하고 의도를 파헤칠 조 회장이지만, 이번에는 일언이 달라붙어 있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부분을 보면 최적의 상대를 고른 것 같기도 했다. 비서는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내내 고민하다가, 어차피 쏟아진 물이라면 최대한 넓게 퍼져서 조 회장의 시야를 가려주기를 바랐다.





일언이 따로 말 안해도 사람 신나게 죽이는 쩐주들인데
대놓고 대립각 세운 계원이 끝까지 안죽고
일언도 내가 죽이려고 했으면 네가 살아있었겠냐(대충 이런 뉘앙스) 말하는거 보면
일언은 계원을 죽이려고 안한거뿐만 아니라 쩐주측에서 못죽이게 커버친거 아니냐는 뇌피셜이 있음

그리고 조 회장은 눈치챘겠지만 쬬 모티브가 맞음미다 성숙한 남의떡 조아하는 쬬 ㅋㅋㅋㅋ
큰도련님은 원래 장남 아니었지만 이제 장남이 된 조비 맞음 미인 조아해서 아빠가 찜한 미인 훔쳐가는... 보고싶다 보고싶다ㅠㅠㅠㅠㅠㅠㅠ

계원일언 덕화조위 유덕화양조위 화양비
골드핑거 금수지
2024.04.20 14:47
ㅇㅇ
모바일
어나더다어나더 잘볼게
[Code: dc4d]
2024.04.20 14:58
ㅇㅇ
모바일
아 센세 이건 대작이야 정말 금수지 속편보는 느낌이야 정일언이 쩐주 뒤에서 계원이 지키려고 더 요망하게 구는거 찐이 아닐리없다고ㅠㅠㅠㅠ 유계원도 자기 부장한테 입털고 발톱세우는거 존무고요ㅎㄷㄷ
유계원은 자기 안 죽이게 정일언이 쩐주한테 더 대주면서 커버쳐준거 알면 슬퍼하려나 ㅠㅠㅠㅠ 아 어나더어어어!!
[Code: 4f5e]
2024.04.20 15: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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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그럼 조회장의 장남도 정일언 노리고있는건가? 헉헉 일언이 더 구르겠네 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 그렇게됐다 일언아 네가 이쁜탓ㅌㅌㅌㅌㅌㅌㅌ
[Code: c45e]
2024.04.20 17: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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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요르힝 센세다 ㅠㅠㅠ 개츄는 왜하나박에 안되는것이며 ㅠㅠㅠㅠ
[Code: 4eef]
2024.04.20 17: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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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 센세 오셨다ㅠㅠㅠㅠㅠ!!! 조회장이 쬬 모티브였다니 어울린닼ㅋㅋㅋㅋㅋ 비서랑 기싸움하는거보니 역시 일언이 자존심 엄청 센데 조회장한테 납작 업드려서 애교부리는거 꼴림ㅌㅌㅌㅌㅌㅌ 하지만 조회장 몰래 머리 굴리는거 진짜 골때리넼ㅋㅋㅋㅋㅋ 조회징 큰아들도 등장해서 아버지랑 일언이 차지하려고 기싸움 혼파망 일어나는거 보고 싶다.....
[Code: 16a5]
2024.04.22 01: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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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틴 센세무순보고나면 영상을 본거같아 하 정일언 그잡채 아니냐고 눈치빨라서 상황파악 잘하고 영악하고 당황스럽게 간은크고 하아아 조회장 그렇게 굴리고는 다이아 주면서 또 일부러 대놓고 말 흘리면서 반응 떠보는거 뭔데 진짜 비서까지 해서 머리돌아가는게 무섭다ㄷㄷㄷ 정일언은 속으로 딴생각하지않는 인간이 없는 세계에 살고있자나 근데 또 유계원 얘기 나오니까 흔들리는게.. 하 ㅜㅜㅜㅜ 정일언이랑 유계원이랑 너무 정 반대라서 그게 조와 유계원이 원래 고수하던 방식에서 변한게 정일언 때문이란것도 ㅌㅌㅌㅌㅌㅌㅌㅌ 미친 대꼴 존좋미쳤네요센세 ㄹㅇ 내가맘만 먹었으면!! 그거내가 안그런거야!! 이러던게 사실 쩐주한테서 오히려 보호하고서는 괜찮은지 보러왔던거면 반전에 존맛탱이다 센세는 천재만재야 헉헉
[Code: ba17]
2024.04.24 00: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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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회장얼마나좋을까 개부럽다
[Code: 9a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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