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려면 중요한 게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예복이었다. 매버릭은 그냥 정복입고 하자는 실용주의자였으나 아이스맨은 이왕 하는 거 예복을 맞추자고 제안하는 탐미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작은 실랑이 끝에 아이스맨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매버릭이 실랑이의 댓가로 신상 가와사키를 받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바쁜 군인이었으므로 예복을 맞추러 가는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스맨이 널널하다 싶으면 매버릭이 또 다른 작전에 참여해야 했고, 매버릭이 널널하다 싶으면 아이스맨이 연이은 출장을 다녀와야 했다. 벌써 세 번째 미뤄진 예복 예약에 아이스맨의 비서는 침착하게 다른 날짜를 들이밀 수 밖에 없었다. 업체에서는 받은 돈이 있으니 불쾌해하진 않았으나 예약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랑들의 얼굴을 궁금해했다.






무려 네 번의 연기 끝에, 아이스맨과 매버릭은 드디어 테일러샵 입구에서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뵙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미스터 카잔스키."
"네. 들어갈까요?"



담당자는 쾌활하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각자의 취향부터 사이즈까지, 심지어는 식 진행순서도 묻는 그에게 매버릭은 살짝 기가 빨렸지만 아이스맨이 있었기에 얼굴에 티가 나지는 않았다.


곧 죽어도 어두운 계열의 수트를 고집하는—남자는 블랙수트라고!—매버릭때문에 아이스맨이 밝은 계열의 수트를 입기로 했다. 매버릭은 정복이 좋다면서 예복이 귀찮다고 했던 과거와 다르게, 펼쳐진 원단들에 눈알을 굴리며 열심히도 골랐다. 예복을 안 골랐으면 큰일날 뻔 했겠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으나 뱉진 않았다. 살짝 진한 네이비색과 패턴이 살짝 들어간 블랙 사이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매버릭과 달리 아이스맨은 여유로웠다. 담당자가 아이스맨에게도 이것저것 제시하긴 했으나 그가 보고 있는 건 원단이 아니라...

매버릭이었다.



"아이스, 그래도 무난한 네이비가 나으려나? 패턴까지 있으면 좀 과하겠지?"
"과하긴, 네가 입으면 뭔들 안 예쁘겠어? 하고 싶은 걸로 해."
"그건 네 눈에나 그렇지! 큼. 밀러 씨,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에서 봐주세요. 뭐가 나을까요?"
"미첼 씨는 얼굴이 워낙 화려하셔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시는 걸요? 이건 취향 차이인 옷이라 정말 원하시는 걸 선택하시는 게 좋겠어요."



입이 부루퉁 나와서 몇 번이고 다시 들춰보는 바람에 헬퍼 분들이 애를 먹긴 했지만 그마저도 아이스의 눈엔 귀여웠다. 매버릭 것이 대충 추려진 듯 싶어 보였는지 담당자는 이제 책자 여러 개를 아이스맨 앞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매버릭에게 보여줬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얼른 고르라는 뜻이겠지. 담당자의 손짓을 본 아이스맨은 자연스레 매버릭의 고개를 살짝 돌리게 했다. 영문을 모르고 고개가 돌려진 매버릭은 아이스맨에게 무슨 의미냐는 듯 눈썹을 움직여댔다. 하지만 아이스맨은 작은 턱 끝을 놓지 않았다.



"골라줘."



뻔뻔하게 던진 말 한 마디에 매버릭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과 마주 앉아있던 담당자는 입술을 가만두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정작 말을 던진 아이스맨은 평온한 표정으로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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