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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14:57
샹크스도 알고 있다. 샤를리아 왕녀가 자신과 많이 닮았음을. 또한 왕녀는 생모를 빼닮았으니 한낱 시종일 뿐인 여성이 늙은 왕에게 간택당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름도 존재도 잊힌 존재라 하나 붉은머리 여성의 고결한 성품과 아름다움은 한번이라도 마주한 이라면 절대 잊지 못했다. 때문에 마리조아 궁에서 오래 일한 상급 시종들은 샤를리아의 모친을 보고 ‘그 사람’과 닮았다며 놀라지 않았던가. 붉은머리가 아닌 게 아쉽다는 말도 했고. 그렇게 일년쯤 같은 얘기를 듣다 보니 생긴 호승심 반, 호기심 반으로 머리를 붉게 물들인 날, 그녀는 늙은 왕의 눈에 들었다. 이때 샤를리아의 모친은 하급 시종으로 허드렛일이나 하던 치였다. 때문에 원래라면 늙은 왕과 그녀는 수십의 사람을 사이에 두고 스칠 인연에 지나지 않았다. 실로 그녀는 동기 시종들과 함께 제일 끄트머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중이었으니. 그런데 돌연 값비싼 구둣발이 눈앞에서 멈춰선다 싶더니 당일 밤 왕의 침소에 부름을 받은 거였다. 이후 샤를리아가 크면서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니 샹크스도 나름 해군에 둔 고급 정보원으로부터 넌지시 의심 섞인 물음을 듣게 된 것이고. 샤를리아 왕녀가 사실은 네 아이 아니냐며 말이다. 샹크스의 고급 정보원이자 과거 상관이기도 한 대참모 츠루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부러 놀림거리 삼은 거였다. 그가 드물게 당황하는 걸 보는 게 좋았으니까. 이렇듯 지난밤 로우와 얘기를 나누며 떠오른 일화에 낮은 웃음을 흘리던 늦은 아침, 샹크스는 또 다른 재미진 광경에 빠져있었다.

“쟤는 아침부터 왜 저러냐?”
“누구… 로우? 나도 몰라.”

지난밤 과거사를 말해주는 대가로 샹크스가 내건 조건은 오늘 조로와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달라는 거였다. 한시도 조로를 곁에서 떼어놓지 않으려는 로우에 샹크스는 제대로 얘기할 틈이 없었으니까. 조로는 로우가 있는 자리에서 루피를 언급하지 않으려 했고 말이다. 실상은 샹크스에게 묻고 싶은 것투성이었으면서. 덕분에 겨우 성사된 오늘에 샹크스가 옆 방을 방문했을 때 로우는 나사 하나가 빠진 상태었다. 마치 느슨해진 고무줄처럼 평소와 달리 순한 반응에 조로를 데리고 나오던 샹크스가 힐끗 돌아보며 묻게 된 것이고. 뒤를 졸졸 따르던 조로는 로우가 이상한지도 않은지 어깨를 한번 들썩이는 게 다였다. 그보다는 얘기 좀 하자는 말로 불러낸 샹크스 주위를 살피는 게 혹시 매의 눈은 같이 안 오나 찾는 모양새였다.

“미호랜드는 레오랑 같이 글로버씨한테 씨감자를 받으러 갔어. 글로버씨는 레오네 할머니인데 어제 씨감자를 받으러 오라고 했거든. 이 씨감자는 톤타타족이 교잡 육종으로 만든 신품종인데 병충해에 강하고 기존 대비 보존 기간이 두 배 이상이래나? 아무튼 걔가 원래 그런 걸 좋아해.”
“씨감자…….”
“예상 외지? 근데 걔 취미가 농사야. 그래선지 걔가 나보다 더 여기 생활을 즐긴다니까?”

조로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샹크스가 말을 붙였다. 마흔이 코앞인 남성임에도 중저음의 부드러운 음성이나 매끄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봄햇살마냥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반걸음 앞선 그는 중간중간 조로가 넘어지지 않도록 돌부리를 조심하라는 추임새를 넣어주거나 손을 잡아끄는 등의 세심함을 보였다. 덕분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온 조로의 눈앞에는 어느새 높고 맑은 하늘과 푸르게 펼쳐진 바다, 그리고 녹색 잎이 풍성한 지상과 연결된 백사장이 자리했다.

“와…….”
“마음에 들어? 톤타타 친구들이 알려준 곳이야. 이 섬에서는 여기서 보는 바다가 제일 예쁘대.”

조로는 로우의 여벌 잠옷을 입고 있었다. 덕분에 원치 않게 바지도 소매도 한번씩 접어야 했고. 그래서인지 샹크스는 정글 같은 숲을 지나 드넓은 백사장에 서는 동안 조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몸과 얼굴에 붕대며 거즈를 달고 있는 녀석이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었고. 그는 왠지 조로에게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던 로우가 이해됐다.

“샹크스, 저기 뭐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투명한 물빛 바다를 보며 감탄하던 조로의 표정이 이상해진 것은 금방이었지만. 샹크스가 손끝이 가리키는 정면을 보니 바다에서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이쪽으로 직행하는 게 보였다. 그 여파로 섬 주변에 우글대는 투어들이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게 보였는데 샹크스는 한번에 상황을 알아봤다.

“개돌아!”

마침 얕은 수위에 고동색의 거대한 몸체가 보일 때 샹크스가 한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그에 반응하듯 더 속도를 올리던 녀석이 눈에 보일수록 당황한 건 조로였다.

“자, 잠깐! 저건 너무 크잖ㅡ 우악!!”

뭍으로 완전히 모습을 보인 녀석은 앞발 역할을 하는 두 개의 가슴 지느러미를 이용해 백사장을 가로질렀다. 성체 향유고래만큼 커다란 놈이 물속에서와 다름없는 속도를 내는 것에 조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저렇게 큰 녀석이었나 싶으면서 어느새 머리 위로 지던 그림자에 깔리겠다 생각한 조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야생에서 살아온 세월에 두터운 표피 곳곳이 흉터투성이였던 놈은 압도적이었다.

“……?”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슬며시 한 눈을 뜨니 조로 앞으로 샹크스의 넓은 등이 보였다. 그 위로 머리를 한껏 치켜든 놈의 거대함은 말할 것도 없으나 녀석을 올려다보던 붉은머리의 존재감이 더 컸다. 샹크스의 기개 넘치는 모습을 본 조로의 눈동자에 순수한 감탄의 빛이 어렸다.

“개돌아,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우웅, 웅!”
“우리 개돌이는 진짜 개코라니까. 매번 나를 귀신같이 찾아내잖아. 그치?”
“웅! 웅!”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는 초저주파의 음역대인데 피식자가 이 소리를 들으면 겁을 먹고 돌처럼 굳어버리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샹크스가 개돌이라 부르는 놈의 울음 역시 이 초저주파의 영역대였다. 때문에 녀석의 울음은 청각보다 피부로 느낀다고 봐야 했는데 그 반작용으로 조로는 살갗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물개를 닮았다하나 놈의 눈빛은 날것 그대로였으니까. 그런 놈이 치켜든 머리를 수그리고 아양 떨어봐야 살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때문에 녀석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킬킬대는 샹크스가 비범한 것일테다. 그럴수록 조로는 루피가 왜 그를 잊지 못하고 찾아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지만.

“조로 너도 만져볼래? 이녀석 엄청 착하고 순해.”
“아니, 난…….”
“봐봐, 귀엽지?”

샹크스가 조로를 돌아볼 때 마주친 녀석의 눈빛은 살벌했다. 놈은 샹크스만 좋은 거였다. 그러나 그가 저어하는 조로의 손을 잡아끌었을 때는 머리를 백사장 위로 납작 붙이고 눈이 감기도록 웃는 형상을 취했다. 조로는 얼결에 놈의 축축하고 맨질맨질한 표피를 쓰다듬어야 했다. 그럼에도 물개와 꼭 닮았던 개돌이는 샹크스에게 주둥이를 들이밀며 애교부리는 게 개와 다름없었다. 샹크스의 손길에 연신 낮은 울음을 내는 건 개의 낑낑거림과도 같았고. 녀석은 한 사람을 향해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유, 이녀석. 내가 먹이 잡아다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정말 다 컸다니까? 나한테 자꾸 대왕오징어 같은 걸 갖다줄 때는 처치곤란이었거든. 그 큰 걸 어떻게 먹으라고. 그래서 자꾸 거절했더니 대왕 조개 같은 걸 물어다 주더라. 안에서 진주가 얼마나 쏟아지던지. 덕분에 창고 하나가 진주로 가득차서 그것도 됐다고 했더니 이번엔 너희를 물어오지 뭐냐?”

이게 미호크가 말한 구애의 선물이라는 걸 조로는 알 수 있었다. 개돌이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쓸어주던 샹크스는 장성한 자식을 보는 눈빛이었지만 둘 다 만족스러워보이니 이 또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로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로 넌 괜찮은 거야?”
“응? 뭐가?”
“아니 너 며칠 전에 납치당해서 험한 일 겪었잖아. 상처 입고 절벽에서 떨어진 것도 있고. 보통은 트라우마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일인데.”
“아아, 그거?”

며칠전의 거친 파도가 거짓말인 양 잔잔하게 밀려오던 바닷물에 조로는 발을 담그고 서있었다.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어올리고서. 맨발 위로 드러난 발목은 개돌이가 물고 온 날의 붉은 실선이 사라져 있었다. 그보다 조금 뒤에서 앉아있던 샹크스는 이를 눈치챘다. 조로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발목까지 차고 빠지길 반복하는 바닷물을 느끼며 기분 좋게 미소지을 뿐이다. 때문에 샹크스도 녀석을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어. 잘 수습됐으면 된 거지. 그리고 녀석이 필사적으로 와줬으니까.”
“녀석이라면 로우 왕자 말이지?”

샹크스의 말에 조로가 고개를 돌렸다. 그 뒤쪽으로는 일광욕을 하는 개돌이도 있었다. 그린비트 섬 주변은 특히 물이 맑고 아름다웠으나 때로 파도를 이용해 뭍에 있는 먹이감을 사냥하는 투어로 인해 바다를 제대로 즐길 수도 없었다. 하지만 미호크가 말하길 바다의 폭군이라는 개돌이가 있으면 투어들이 접근하지 않았다. 그 덕에 조로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않았나. 샹크스는 여전히 개돌이를 순둥이로 알고 있다지만. 이제 조로는 다시 제 발을 감싸고 사라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끝을 모르던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본 로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달려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그런 내가 우는 소리해봐야 복에 겨워하는 것밖에 더 되겠어? 다친 것도 로우 덕분에 금방 괜찮아지잖아. 녀석이 치료하면 통증도 훨씬 덜하다니까. 이거야말로 호강하는 거지 뭐.”

발치를 향한 조로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둔한 건지 아니면 회복탄력성이 타고나게 높은 건지 모를 모습을 멍하니 보던 샹크스도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몸도 마음도 우직하고 건강한 녀석이었다. 샹크스는 조로가 마음에 들었다.

“트라우마는 로우 왕자가 생긴 것 같지만 조로 네가 있으면 괜찮겠지 싶다.”
“괜찮기는 무슨. 걔는 착해빠진 게 쓸데없이 책임감만 강해서 문제야. 거기다 머리도 좋아서 잊어버리지도 않아. 그러니 툭하면 악몽에 시달리지.”
“에? 그래? 예민한 타입인 건 알겠는데 다른 건 좀 아니지 않아? 너도 미호크랑 같은 소리를 하네?”
“매의 눈이 뭐랬는데?”

남의 역린을 서슴없이 찌르고 조로와 둘이 얘기할 시간을 달라는 말에는 대놓고 싫은 티를 내던 녀석이었다, 샹크스가 본 로우는. 그에 반해 미호크도 로우를 연약한 어린애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야 로우가 키도 덜 크고 뼈밖에 없던 어린 시절에 처음 만났으니 이해된다지만 조로는 아니지 않던가. 오히려 키도 덩치도 로우가 더 큰데 말이다.




성기를 쥐는 조로의 손길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로우는 손을 겹쳐서 제것을 쥐고 움직이도록 유도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달아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음이었다. 매일같이 검을 쥐고 훈련하던 손은 거칠고 투박할지나 로우의 손에 쏙 들어왔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조로의 손이라는 것이지만. 때문에 로우는 상대가 환자임을 상기하며 자제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사이 하는 방법을 얼추 파악한 이는 자세를 바꾸자는 제의를 했고 말이다. 로우가 요구에 응해 움직였을 때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발을 내렸고 바닥에 앉은 조로는 허벅지 사이로 들어온 상태였다.

‘잠깐, 조로야. 이 자세는 좀 그런데…….’
‘입이랑 얼굴 어디다 쌀래?’
‘……!’
‘오, 팔딱였다. 건강해서 좋네.’

목까지 다 빨개진 로우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로가 한 말을 듣고 상상해버린 탓이다. 이제 로우는 녀석이 어디서 저런 말을 듣고 배웠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저급한 성인물에서나 나올 법한 외설스러운 말들은 조로가 직접 들은 말일 것이다. 지난날 상디의 성교육부터 다시 해야 된다는 뜻은 잘못 배운 성관념을 재정비할 필요도 포함해서였다는 것 또한. 때문에 로우는 여기서 조로를 멈추게 하고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눈앞의 모든 게 너무 자극적이었으니까.

‘조로야, 그만… 나, 더는 못 참…….’

성기를 쥐고 흔드는 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반쪽에 거즈를 대고 집중하듯 한 눈을 내리깐 얼굴이 이토록 자극적이었던가. 푸릇한 잔디머리, 시원하게 떨어지는 이마, 날렵한 콧대를 지나 환자 특유의 거스러미가 진 생기 없는 얇은 입술까지 모든 게 다 로우의 음심을 건드릴 뿐이었다. 그는 저 입술에 제것을 박아넣고 목구멍 깊숙이 사정하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라 눈물짓는 것 또한. 로우는 조로가 몸도 마음도 충분히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혼자여도 잘 살아갈 거라는 것 역시. 그래서 로우는 문득문득 조로가 제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제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모습을. 오롯이 저만 기다리고 자신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세상이 저뿐이라면. 하지만 로우는 조로가 행복하기를 바라므로 자신의 비틀린 욕망을 삼킬 뿐이었다.

‘아… 조로, 나 더는…… 읏!’

그냥도 묵직한데 발기하니까 눈에 띄게 커진 녀석은 조로의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조로는 오메가여서 느껴도 완전히 단단해지지 않는 제 남성기와 비교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더불어 로우가 달아오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보면서는 제 다리 사이도 저릿해지는 감각이 피어오를 정도였다. 때문에 자꾸 가랑이를 조이듯 힘이 들어갔던 조로는 손을 움직이는데 더욱 집중했다. 그때 결국 참지 못한 로우가 사정했을 때 얼굴 위로 묵직하게 뿌려지던 우윳빛 점액질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시간도 길고 양도 많아서 조로를 내심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정액은 반사적으로 감은 눈꺼풀과 머리에까지 튈 정도였다. 그리고 로우는 제 정액을 뒤집어쓴 조로를 보면서 또 한번 단단해지는 성기를 느꼈다.

“근데 조로 너 얼굴 거즈는 언제 또 새로 갈았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기는. 어젯밤이랑 반창고 위치도 다르고 거즈 크기도 조금 다른데. 하는 거 보면 로우 왕자도 지극정성이네.”

샹크스와 얘기 나누던 해변에서 조로는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설마하니 새벽에 수음해준 걸 들켰나 싶어서다. 톤타타족은 서로가 다 한가족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개인공간이라는 개념이 약했다. 때문에 지하 공동의 집들도 문은 최소한의 눈가리개용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방음은 기대할 수도 없고 말이다. 하니 얄팍한 문 하나로 가로막힌 호박집은 어떠하겠는가. 이를 감안해 로우도 소리를 억누르고 최소화했건만 설마 들렸나 싶어서 조로는 눈치를 봤다. 그에 반해 샹크스는 백사장 위에 앉아 쉬는 모습이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이른 아침에 벌어진 일로 난감한 건 이쪽이었다.

“……들렸다고?”
“……그래.”

로우가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내서 묻자 미호크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레오의 할머니로부터 출항날에 맞춰 씨감자를 받기로 한 뒤 호박집으로 돌아온 미호크는 혼자 있던 로우와 대화를 요청했다. 그는 이른 아침 일로 마음이 한껏 풀어진 것도 잠시, 샹크스가 조로를 데려간 시간이 길어질수록 뭘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중이다. 드레스로자에 온 이래 한번이라도 마음 놓고 푹 쉰 적 있어야지 말이다. 십대는 후계 수업이다 뭐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빡빡한 스케줄이 꽉 차있거나 아니면 수업의 일환으로 예고 없이 어딘가 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삼개월에서 육개월 주기로 드레스로자를 오가는 등의 더욱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한데다 이십대의 서막은 대리청정부터 아니던가. 이러니 잠자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쉴 때조차 로우는 손에서 일감을 놓은 적이 없었다. 업무 서류 아니면 의학 서적이라도 읽고는 했으니까. 그런데 베르고의 배려로 일주일의 휴식기가 생겼다. 평소라면 휴가를 준대도 반납하거나 일감을 챙겼을 텐데 이번에는 조로를 치료하고 보살피고 함께 보내기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최소한의 옷가지가 전부다. 읽을거리조차 하나 없었으니 로우는 조로가 사라지고 붕뜬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러던 차에 대화 요청이 들어온 거였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만 너도 알다시피…….”
“알아. 방음이 전혀 안 되지, 여기는.”
“그래.”

원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로우가 달아오른 얼굴과 난처한 표정이 선명하다면 미호크는 창백한 안색과 무뚝뚝한 모습이 평소와 같음이었다. 하지만 내심은 그 또한 로우와 다르지 않았다. 이른 아침 문 하나를 두고 제자의 신음을 듣는다는 게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렇다고 잘못 움직였다가는 예민한 녀석이 눈치챌까 내내 얼음처럼 굳어 있어야 했다. 덕분에 방금 쌌는데 왜 또 커지는 거냐는 투덜거림이라든가, 이차전이 시작되는 소리라던가를 미호크는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이중에서도 제일 타격이 컸던 건 조로의 툭툭 던지는 말이었지만.

‘읍!’
‘미안, 조로야!’
‘아냐, 괜찮은데…… 진짜 많네. 이러다 네거로 세수하겠다.’
‘……!’
‘뭘 그렇게 보냐? 내 얼굴에 두번이나 싼 게 누군데.’
‘미안하다니까…… 이리 와. 너 얼굴 닦아줄게. 거즈도 새로 갈아야 하고.’
‘근데 너 진짜 상처난 거나 사람 아파하는 거에 흥분해? 전에 나한테 사디즘이라고 말한 적 있잖아. 그래도 나 아픈 건 제법 잘 참는 편이니까. 응?’
‘그건ㅡ! 아…….’

아픈 거 잘 참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마지막에 쓸데없이 해맑던 조로가 로우를 더 환장하게 했다. 긴 속눈썹에 걸쳐 아롱진 사정액을 매달고서. 때문에 로우는 조로를 조심스레 일으키면서도 사정 후 밀려드는 허탈감보다 죄책감이 더 커져버린다. 이런 애한테 제가 무슨 짓을 했나 싶은 생각에. 그래서 로우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깊게 탄식할 때 문 너머의 미호크는 차라리 기다 아니다 확실히 말해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하지만 로우는 한번 더 묻던 조로에게 거즈를 갈아야 하니 입 다물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갑갑해진 미호크를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저기, 그럼 혹시 샹크스란 사람도…….”

로우가 제일 걱정한 걸 물으니 미호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놓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에게서 미호크는 여전한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에 와서는 제자의 전혀 예상 못한 성적 취향을 제가 왈가왈부할 게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 미호크는 애초에 하고자 한 말의 방향을 틀기로 했다.

“샹크스는 나랑 교대해서 자고 있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로우야. 저래봬도 눈 감으면 깊게 자는 성격이니까.”
“몸이 저 지경인데 푹 잔다고? 그게 더 미친 소리 같은데?”
“본능적인 감이 좋다고 생각해라. 지난밤 일은 녀석이 과음을 한 탓도 있고 우리 두 사람이라 더 안심했던 거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거 자세히 좀 말해봐. …나도 얼마 전에 어젯밤이랑 비슷한 걸 봤으니까.”

로우는 서의 최고 귀족이 북궁 연회에서 보인 이상행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서쪽 제도에서 놈의 아들을 고문해 얻은 정보 역시도. 지난밤 샹크스가 보인 반응은 최고 귀족과 닮은 데가 많았다. 단지 조로가 의식이 없던 나흘 사이 로우가 두 사람에게 들은 정보가 애매했을 뿐.

‘왕자는 이 팔을 엄청 경계하는구나. 라프텔에서 검은 수염한테 당한 거야. 내 왼쪽 눈에 난 흉터랑 같은 거지.’

먼저 정신이 든 로우가 미호크를 보고 반색한 것도 잠시, 샹크스의 등장보다 그에게 붙은 마물의 팔을 대놓고 경계했던 게 사실이다. 마물을 본 적 없는 톤타타족은 해왕류를 수족으로 부리고 기이한 왼팔이 달린 샹크스를 신이라 그런 거라 멋대로 납득했다지만. 덕분에 샹크스도 그들 앞에서는 왼팔을 감추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로우는 욘디 일행에게 들어 마물 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나 다른 생명체에게 붙은 그것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본 다음이 아니었던가. 때문에 샹크스도 서의 최고 귀족처럼 언제든 돌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 그런 불안을 잠식시켜준 건 내가 있으니 괜찮다는 미호크의 말이었고. 로우가 지난밤 샹크스의 이상한 상태를 목도하기 전에 들은 정보는 이게 전부였지만 미호크니까 납득할 수 있던 거였다. 그는 로우에게 몇 안 되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연회에서 귀족 하나가 샹크스랑 비슷한 일이 있었어. 이 경우는 눈이어서 티가 거의 안 났던 거지 나중에 문제가 생겼거든. 놈이 마물을 불러들인 건지, 아니면 근처에서 때를 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원래라면 지병으로 두 눈이 멀었어야 할 귀족은 한쪽 눈이나마 멀쩡한 상태로 나타났더군. 내 생각에는 그 눈이 샹크스의 왼팔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어.”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르다. 샹크스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놈의 신체를 받은 게 아니야.”
“그럼?”
“절반의 핵을 받았지.”
“핵이라고? 그게 무슨…….”
“지난밤 일도 있으니 어차피 네게 얘기할 생각이기는 했다만 그전에 로우 네게 할 말이 있다.”

이 주제는 샹크스와 지난밤에 오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에 거침이 없던 미호크는 샹크스가 없을 때 해야 될 주제가 시급했다. 드디어 마물의 실마리가 풀리나 싶던 로우도 미호크의 진지한 모습에 다급함은 잠시 눌러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탁 위에서 두 사람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롤로노아는 중환자다.”
“응, 알아.”
“물론 네가 있으니 치료는 순조롭겠지만 그래도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뭐가?”
“적어도 상대방에게 네 성적 취향을 요구할 거라면 다 나은 뒤에 하라는 말이야. 환자한테는 아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에 잠시 생각해보던 로우가 당황해 몸을 물린다. 그리고는 손을 내저으니 차분하지 못한 모양새가 오해만 더 불러일으켰다. 미호크의 미간에 슬며시 주름이 잡히는 건 로우가 익숙히 보아오던 스승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그런 거 아니야!”
“롤로노아에게 사디즘이라 고백했다는 말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ㅡ!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고! 자, 잠깐! 왜 일어나는 거야? 요루는 왜 손에 쥐는데!”
“따라와라. 나는 네 타고난 취향을 존중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때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훈련으로 다스릴 수 있을 테니 오랜만에 상대해주마.”
“그건 지금 날 죽이지만 않겠다는 거잖아!”
“말이 많다, 로우야. 지금 롤로노아가 샹크스와 있다는 걸 잊은 거냐? 그러니 당장 네 검을 들고 날 따르는 게 좋을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호크는 언성 한번 높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늘하기 짝이없는 금안이 내려다보는 시선은 손에 쥔 요루와 함께 가장 위압적일 수밖에 없었다. 화내는 것도 잔잔한 스승을 잘 알던 로우는 그가 한 말의 의미도 바로 이해했고. 아마도 샹크스는 전보벌레를 갖고 있을 것이다. 조로는 로우가 갖고 가라며 챙겨준 것도 귀찮다고 팽개쳤지만. 그리고 로우는 샹크스와 미호크를 상대로 조로를 뺏어올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결국 선택지는 귀곡을 들고 따르는 것뿐이었다.










한조각
2024.04.19 15: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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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합니다
[Code: 5751]
2024.04.19 15: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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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진짜 상처난 거나 사람 아파하는 거에 흥분해? 전에 나한테 사디즘이라고 말한 적 있잖아. 그래도 나 아픈 건 제법 잘 참는 편이니까. 응?’
이 말을 두번이나 조로 얼굴에 싸놓고 들었으면서 고쳐주질않으니 미호크가 오해할만도하지ㅋ 거기다 미호크한테도 말을 제대로못함ㅋㅋㅋ와 미호크가 로우 하루종일 굴리면 또 조로가 부러워하겠네 훈련해서 늘어져있으면 조로 치료도 못할거고 조로는 샹크스랑 더 가까워지거나 미호크랑 얘기도해보고???! 꺄 신난다ㅋㅋ
[Code: 5751]
2024.04.20 08:22
ㅇㅇ
추천할 수 없음ㅜㅜ
얼굴이랑 온몸에 붕대가 치렁치렁한데 로우 다리사이에 앉아 올려다보며 대딸해주는 조로라뇨.. 응 미호크한테 혼난다 이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잘못된 썰이 하나하나모여서 큰일나는거야 로우야!! 이렇게 조로야한테 야금야금 이상한 지식쌓이는거 내버려뒀다가 진짜 큰일나면 어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지금당장 너무 흥미롭고!!!
[Code: b691]
2024.04.20 08: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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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Code: 3de4]
2024.04.20 09: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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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킁킁 센세 냄새 킁킁킁킁 멍멍멍멍 센세 좋아 너무 좋아 붕붕붕붕 센세 내꺼 낼름낼름 센세 내꺼 킁킁킁킁 센세 어디가 머ㅡ엄멍멍 센세 좋아 붕붕붕붕
[Code: 94b1]
2024.04.20 21: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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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너무재밌다 센세 센세없으면 못살아
[Code: a739]
2024.04.20 22:35
ㅇㅇ
로우는 왜 이렇게 자꾸 오해당하는가 로우가 조로를 얼마나 아껴주는데.. 조로 정작 필요한 성지식은 부족한데 잘못된 지식만 갖고있어서 매번 로우 환장하는거 볼때마다 너무 귀엽고 웃기고ㅋㅋㅋ 하지만 두번이나 얼싸했으니 감당하자 로우야!
[Code: 0b34]
2024.04.21 00:04
ㅇㅇ
로우 이러다 ㄹㅇ변태왕자로 낙인찍히는거 아니냐고오오!!
[Code: 6e81]
2024.04.22 00:13
ㅇㅇ
미호크가 진짜 아끼는 제자같은데 이렇게 무력행사해야하는 날이 오다니 조로야 얼렁 와서 구경해라
[Code: fc94]
2024.04.28 07: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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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로 경험도 없으면서 겁도없이 저런 말 하나했더니 자기가 들어온 말이구나ㅜㅜ 상디의 성교육이 다른 의미로 필수였네 그러고도 안 고쳐주다니 로우 양심있냐!! 미호크한테 뚜까 맞아야함ㅋㅋㅋㅋㅋㅋ 첨엔 미호크가 오해(?)해서 강요했다 생각하나했는데 지금 상황보니 "아픈" 조로에게 흥분해서 얼굴에 2번 싼 걸로 충분히 오해가네ㅋㅋㅋㅋ
[Code: 4a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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