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1310725
view 6349
2024.04.18 08:33










아직도 저런 말을 대놓고 하는 자가 있다니. 제리는 그쪽을 흘긋봤다. 넬슨 백작의 적대적인 시선과 똑바로 마주쳤지만 제리는 웃음으로 답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웠다. 왜냐면 저 치는 이 제국의 2인자인 공작에게 이를 드러낼 정도로 현 황제를 아끼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의 황제께서 이렇게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계시다니.


제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 제국의 황제이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곳으로.


"폐하-."


하지만 그곳엔 불청객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국서가 황제 바로 옆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폐하를 올려다보지 못할망정 건방지게 내려다보다니. 저였다면 그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아양을 떨었을진데. 하지만 이런 생각을 들키기라도 했다간 그게 바로 정부와 정실의 차이라며 비웃음을 살게 뻔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긴 했지만 제가 아직 미숙했던 날,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내뱉었다가 저보다 한참은 어렸던 저 핏덩이에게 한방 먹었던 기억이 있는 제리는 주먹을 꽉 쥐며 평정을 되찾았다.


"저번에 긴밀히 말씀하셨던 사안을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어떤 건이냐."


제리는 그들 앞에 공손히 섰지만 황제의 물음에 입을 다물고 옆에 국서를 잠시 바라봤다. 그녀와 똑같은 까만 머리에, 그녀의 탄생석인 루비를 박아넣은 듯한 아름다운 붉은 눈을 가진 국서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황제는 너그럽고 제 사람을 아꼈지만 일에 있어선 가차없었다. 멍청하게 여기서 매달렸다간 국서고 뭐고 성가시다고 생각할터였다. 대가리 빈 눈치없는 놈에게 시간 쏟는걸 가장 싫어하는걸 이곳에 있는 이 중 모르는 자는 없었다.


"제가 폐하의 시간을 너무 뺏었습니다. 이만 물러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뺏다니. 같이 시간을 보낸 것이지. 그리 시무룩해하지 말거라."
"폐하..."
"그대가 한 얘기, 긍정적으로 생각해볼테니."
"폐하!"


제리에게 밀려 이 방을 나서야 하던 국서의 시무룩했던 얼굴이 단박에 활짝 펴졌다. 제리의 심기를 뒤틀기 위해 연출한 모습이 아니었다. 어리고 고운 얼굴의 양 뺨이 복숭아 빛으로 예쁘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뺨을 검지손가락 등으로 살짝 쓸며 예뻐한다. 국서는 경망스럽게 황제의 손을 덥썩 쥐고 감사인사를 몇번이고 조잘거리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제리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지나쳐 방을 나갔다.


"그래, 대공. 긴밀한 사안이라는게,"
"지금껏 저를 찾지 않은게 국서랑 재미보고 있었기 때문이셨습니까? 제게 한 말씀을 벌써 잊으신겁니까? 저 어린놈이 국서 자리에 올라도 변하는건 없을거라고...!"
"대공."


언성이 높아지는 제리에 황제가 엄한 얼굴로 그를 불렀지만 근 한달간 그녀의 머리카락 한올 보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듣지도 못한채 방치된 제리에겐 들리지 않았다.


"제가 무슨 마음으로 국서 자리를 넘겼는지 제일 잘 아시는 분이 폐하 아니십니까. 그런 분이 제게 이럴 수는 없으십니다."
"식 올린지 얼마 안된 정실을 두고 너를 찾을 순 없지 않느냐."
"하!"


기가 막혔다. 이럴거였으면 그냥 절 국서자리에 앉히시지. 하지만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얼굴에 제리는 힘이 빠졌다.


"모든게 처음인 아이라 가르칠게 많아서 그랬다. 의지할게 나밖에 없는 아이 아니냐. 그 모습을 보니 어릴적 네가 생각나 내 어쩔수가 없었다."
"..."
"아무것도 모르고 귀엽게 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선 소리나 지르고."
"...그런 말씀 마십시요. 다 큰지가 언젠데..."
"다 크긴. 뺙뺙 거리는게 아직 한참 남았다."
"폐하아..."


눈썹을 잔뜩 늘어트린채 말을 늘이는 모습에 황제가 웃었다. 독이 바짝 오른 제리의 독기를 한차례 쫙 빼고서야 제 곁으로 불렀다. 의자 팔걸이를 툭툭 치는 손짓에 바로 반응하는 개새끼처럼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책상에 두고 안쪽으로 들어가 황제의 발치에 무릎 꿇었다.


제리는 지엄하신 이 제국의 황제를 우러러 보며 감히 세상의 태양과 동등해지려하는 건방진 국서를 몰아낼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단 한번도, 감히 품어본 적도 없는 불경한 생각을 애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 감히 나의 말을 자르고 날 째려볼 수 있는 이는 너밖에 없을거다."
"...제가 이러는 걸 좋아하시잖습니까."
"좋아하지. 좋아하고 말고."


정말 오랜만에 제게 뻗어진 손길을 눈을 감은채 느낀 제리는 파르르 떨리는 제 속눈썹을 매만지는 느낌에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이 손길이 그리워 그리도 날을 세웠다. 제리는 거울을 통해 보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황제의 눈동자에 비친 제 표정이 얼마나 선정적일지, 그걸 그녀가 얼마나 좋아할지 알기에 한껏 풀어질 수 있었다. 


"좋아만 하십니까..."


못 본 동안 많이 달라진 점도 없을텐데 다정하게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에 어느정도 만족하자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어릴 때야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건방진 말을 내뱉으면 화들짝 놀라 바들바들 떨기만 했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황제는 이런 발칙한 한마디를 좋아했다. 앙칼지고 도도하게 굴지만 결국 제 무릎에 누워 귀염을 떠는걸 한껏 귀여워해주곤 했다.


"설마, 내가 그저 좋아만 할까."
"...그럼요..."


제리는 기대감에 눈을 흘겼다. 듣고싶은 말이 있단게 한눈에 보여서 황제는 기껍게 웃었다. 양 손으로 제리의 뺨을 쥐고 끌어왔다.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상체만 일으켜 자연스레 그녀의 다리사이에 몸통을 끼워넣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입술이 코앞이었다.


"사랑하지."
"..."
"짐이 사랑하는건 그대뿐이다."
"그대가 누군데요..."


끝까지 심술을 부리는 제리에 황제가 웃었다.


"제리 레인이지. 내 유일한 사랑. 그러니 이제 그만 내 이름을 불러다오."
"키스 먼저 해주, 읍,응-..."


한동안 질척한 소리와 함께 격한 키스를 즐기던 둘은 숨을 몰아쉬며 겨우 입술을 뗐다.


"허니, 허니..."
"그래."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건 저 뿐이에요..."
"그럼. 걱정 말거라."


그 대답에 안심한 제리가 다시 입술을 붙였다. 원래 지금 일을 치룰 생각이 아니었던 허니는 매달려오는 색정적인 제리에 생각을 바꾸고 그의 목선을 따라 입술을 미끌어트리며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런데 그런 허니의 손길을 제리가 잡아 제지했다. 제 사랑에게 관대한 황제는 여유롭게 말을 기다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던 얘기가 뭐에요?"


아, 이런. 허니가 순식간에 난감해져서 볼을 긁적였다. 이렇게 분위기 좋을 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미 제리가 던진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을 순 없었다. 지금 말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수를 써서든 무조건 알아내서도 있지만... 제 입으로 얘기하지 않고 다른 이를 통해 이 소식을 듣는다면 여린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테니까.


"그 아이가 후계자를 갖자더구나."


허니가 말해준다고 커다란 상처를 입지 않는단 소린 아니었다. 적어도 몇날 며칠을 울고 불며 난리치는 그 곁을 지켜줄 순 있으니.



















빵발너붕붕
2024.04.18 10:11
ㅇㅇ
모바일
센세를 기다렸다우
어나더 가자💦💦💦💦💦
[Code: 52df]
2024.04.19 23:45
ㅇㅇ
모바일
분위기 오진다... 💦
[Code: f946]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