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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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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쟤랑 친구지.
 

파티의 음악은 언제나 머리를 울릴 정도로 시끄럽다. 그 쿵쿵거리는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아이들과 손에 들린 빨간 컵들 사이로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진짜 어떻게 된 일일까. 나를 파티장에 끌고 온 아이는 사람들에게 둘려쌓여 모든 이들의 관심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누군가의 이상, 학교의 유명 인사, 한 번쯤은 대화해보고 싶은 상대. 그 주제가 고작, 이라 불릴 만큼 사소할지라도.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티모시의 가벼운 농담에 꺄르르 웃으며 넘어가는 여자애의 고개를 쳐다보며 손에 들린 음료를 홀짝였다. 이 집에는 어디서 구해 온지 모를 싸구려 알코올이 넘쳐나긴 했지만 구태여 취한 채로 집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저 가식적인 눈웃음만 봐도 속이 뒤집어지게 생겼거든.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맞지 않게 구석진 벽에 혼자 기대어 하고 있는 생각 치고는 영양가 없었다. 끌려나온 주제에 재밌게 즐길 거리도 없어서.
 

이쪽을 돌아보는 티모시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시선을 떼지 않길래 컵을 들어보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대충 혼자도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재밌게 놀라는 뜻이었다.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옆에 있던 누군가가 거는 말에 다시 고개를 돌리는 모양새를 보니 나에게 집중할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친구’라는 이름은 가벼운 힘으로 우리 둘을 한 데 묶어놓았다. 부모님의 친분 탓에 미들스쿨 때 서로를 알게 된 이후 티모시와 나는 나름의 베스트 프렌드에 가까운 학교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 관계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도 이어졌다. 하이틴 영화 속에 나오는 학교 내 위치에 따라 묶여 기싸움을 하는 절대적 그룹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속해있는 무리 없이 하이스쿨을 나는 것은 사실 어려운 게 맞았다. 그게 티모시에게 문제일 리는 없었다. 타고나게 다정한 성격과 친화력, 그리고, 글쎄, 훤칠한 외모 탓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같은 건 잊어버릴 만도 한데.
 

그런데도 티모시는 그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빠짐없이 점심을 같이 먹는 것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애꿎은 교과서를 뺏어 들어주는 것도, 혼자 하교하고 있으면 멀리서 달려와 어깨에 팔을 것도 전부 짜증나게 정다웠다. 그게 밥을 ‘먹어주고’, 같이 ‘다녀주는’ 것으로 해석할 만큼 꼬여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냥 뭐든 그려러니 했다. 본래 성정이 따뜻한 아이다. 거기에 익숙해진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음료수 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여전히 즐거워 보이는 티모시를 잠깐 바라봤다. 오늘 파티에 온 것도 온전히 내 의지만은 아니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이불을 두르고 영화나 볼 생각이었던 나에게 너는 바람을 좀 쐬어야 한다면서 파티에 같이 가자는 티모시의 손에 붙잡혀 끌려온 것에 가까웠다. 바람 쐬려면 동네 한바퀴 산책이면 되지 왜 굳이 시끄러운 파티여야 하냐고 징징댔지만, 오늘 티모시가 향하는 곳이 파티가 열리는 이름 모를 남자애의 집이였기 때문에 결국 그의 뒤를 따랐다. 나름의 파티라고 꾸미고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차에 티모시가 한 말이 떠오른 게 문제였다.

 

- 너 저번에 산 옷 예쁘던데.



그 한 마디에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 검은색 자켓과 치마를 꺼내입었고. 덕분에 몸이 답답해져 점점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여전히 사람들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머리칼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후덥지근한 공기에 취하지도 않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팔을 위로 뻗어 스트레칭을 하며 옷을 좀 벗으려는데,



 

“안 추워?”


“아, 깜짝이야.”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꺠가 튀어올랐다. 벗던 자켓을 반쯤 팔뚝에 걸친 채로 뒤를 도니 티모시가 고개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인 채 서 있었다. 아씨, 놀랬잖아! 하고 소리치니 티모시가 킬킬거리며 다가왔다.



 

“허니 비 놀래키는 맛에 살지, 내가.”


“재밌냐?”


“응.”


“그래, 너가 재밌으면 됐다...”



 

티모시가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걸치고 있던 옷을 완전히 벗었더니 반팔 아래로 드러난 팔에 찬 공기가 그대로 닿았다. 자켓을 반으로 접어드는 동안 내 앞에 선 티모시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는 게 보였다.



 

“더워?”


“아니, 너 추워.”


“엥. 나 방금 이거 벗은 거 안 보이니.”


“조금만 있어봐, 너 떨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추위 많이 타는 애가 왜 반팔로 나와.”





내 손으로 넘어오는 티모시의 겉옷을 밀어냈다.





“너나 입어.”


“나는 안에 긴팔, 너는 반팔.”


“추워지면 이거 다시 입으면 돼.”


“너 그 자켓 불편하잖아.”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물어봐봤자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대답일 것 같아서 얌전히 옷을 받아들어 팔을 끼워넣었다. 답지 않게 소매가 늘어졌다.





“왜 나왔어?”


“답답해서.”


“집에 갈까?”


“죄송한데 너가 저 여기 끌고 온 거든요. 나는 파티를 안 좋아하고.”


“알아.”





티모시가 하나도 안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너는 파티와 사람을 즐기는 사람이지. 화제를 돌렸다.





“너 친구들 안 기다려?”


“누구?”


“그, 아까 같이 얘기하던 애들.”


“아, 걔네. 뭐 열심히 마시던데 지금 나 없어진 것도 모를 걸.”





그렇군. 근데 얘는 취한 것 같진 않은데.



 

“난 안 마셨어.”
 

“아, 그렇구나. 왜?”


“집 못 들어가고 찻길에 드러누워 잘 일 있어?”





얼굴에서 질문이 읽혔나보다. 진지한 투로 술을 마시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늘어놓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대충 부모님의 잔소리가 두렵다는 요지였다. 어깨에 티모시의 손이 닿으며 한 마디가 더 붙었다.





“그리고 너 집 데려다 줘야지.”





티모시가 나를 보며 윙크했다. 거기에 토하는 시늉을 했다.





“내가 애인 줄 아세요?”


“안 통하네.”


“하루 이틀이어야지.”





어깨에 올려진 손을 떼어냈다.





“술 안 마셔도 더 놀거면 이제 들어갑시다.”


“너는?”


“나는 뭐 또 구석에서 펀치나 마셔야지. 그게 파티의 핵심이자 목적 아니었어?”





부러 마지막 문장을 비꼬자 티모시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이제 와서 데려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건지. 거기에 또 마음이 약해졌다.





“농담이야, 농담.”


“알아. 근데 너 피곤해 보여. 집 가자.”


“더 안 있어도 되겠어? 나야 좋지.”


“집주인이랑 인사만 하고 나올게. 여기 있을래?”





다시 탁한 파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 열린 문가에서 갔다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티모시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자 멀리서 이름을 부르는 그의 친구들이 보였다. 아까 그 고개를 젖히던 여자애도 포함이었다. 확실히 취해 보이긴 한다. 어깨에 팔을 두르는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뒤를 돌아 화단에 기대 티모시를 기다렸다. 이런 파티에 오는 게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집에만 박혀 있는 날 위해 좀 돌아다니라며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티모시에게 나름의 고마움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냥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것에. 다만, 이런 좁은 공간에서도 따로 노는 듯한 모습을 보면 조금은 씁쓸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위치에 있는가를 실감하는 것 같아서. 물론 마음의 거리도 포함해서.





“허니! 가자!”





문을 나오며 소리치는 티모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집을 향해 나란히, 발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내일 뭐해?”


“하루종일 잘 거야.”


“그래, 그게 허니 비 주말 루틴이지.”


“뭐 할 거 있어?”


“아니, 그냥.”





똑같이, 어깨에 팔이 둘러졌다.





“내일 할 거 없으면 오늘 못한 영화 보기나 같이 할까 했지.”


“오, 좋은데?”


“피자 시켜 먹자.”





영화엔 피자지. 헛소리를 하는 티모시의 옆모습을 올려다봤다. 추위를 타는 것 하나, 피곤해 보이는 것 하나, 영화보기를 놓친 것 하나까지 캐치하는 게 그렇게 별일인가 생각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게도, 별 일이 맞았다. 이제 곱슬머리만 봐도 심장이 아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상 온갖 것들의 무게가 올려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심각했다.

































원래 짝사랑 클리셰가 맛있는 법 킬킬




티모시너붕붕
2024.04.18 00: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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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
[Code: 4311]
2024.04.18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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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나 재밋고 술술 읽히네요 센세
[Code: 4d58]
2024.04.18 01:13
ㅇㅇ
모바일
아 티모시 유죄다 유죄...!
[Code: 5f03]
2024.04.18 08: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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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 아 티모시 대유죄네
[Code: 6cf7]
2024.04.21 10: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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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나더 억나더 억나더
[Code: 5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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