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5038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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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짹으로 번역 허락 받음. 작가님 개인적인 이야기는 지웠다.
- 현대 AU
- 의역 많음, 심각한 오역 및 맞춤법 지적 감사


** 아주 조금씩 번역할 예정
** 폴아보의 a dark alley, a bad idea에서 제목을 따오셨다고 한다. 함께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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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rk alley, a bad idea

Chapter 1



대부분 사람들은 이혼을 당하면 지나친 음주로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반면에 오비완은 글이 안 써지는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모아뒀던 재산의 반이 사라지고 은퇴 자금이 급격하게 줄어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주머니가 가벼워진 게 이혼이 가져다준 가장 잔인한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오비완에게는 슬럼프가 온 게 더 큰 문제였다. 수입의 대부분을 책 판매에 의존하기도 했지만 글쓰기는 결혼 생활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도 기쁨의 원천으로 남아 오비완에게 그나마 작은 즐거움이라도 안겨줬었다. 그리고 이제 글은 거실에 걸려있던 샤갈의 그림과 봄에도 구식 코르덴바지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나갈 용기와 함께 이사 상자에 담겨 전 아내의 차가 되어 버린 벤들리 트렁크에 실려 사라져버렸다.

모든 서류에 서명을 하고 일을 정리하는 데는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오비완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불면증 환자처럼 텅 비어버린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최악인 점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끔씩 세 가지 이혼 후유증 중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 점심을 먹다 깜박 졸아서 치킨 스프 그릇에 얼굴을 박았던 적이 있었지만 글이 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퀸란은 (신이시여 퀸란을 축복하소서) 그런 오비완에게 전문가를 소개해줬다. 검은색 잉크로 양각된 심리 상담사의 이름이 적힌 크림색 명함을 건네주며 퀸란은 '입이 무거우면서도 효과는 확실하지'라고 말했다.

상담사는 뿔테 안경 너머로 오비완을 슥 보더니 일말의 자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케노비 씨에게 필요한건 변화입니다."

상담사의 이름은 릴리안 블루먼탈이었다. 상담을 하러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블루먼탈에 대해 찾아봤던 오비완은 그녀가 인지 행동 치료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밝은 오렌지색 머리를 가진 블루먼탈은 마치 60년대의 영화배우처럼 생겼다.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잘 다듬어진 손톱 사이에 길고 얇은 담뱃대만 있었더라면 방금 흑백 TV에서 튀어나왔다고 믿길 정도였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오비완은 블루먼탈이 아주 약간 무서웠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동시에 안정감을 주는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 생각이 저절로 났다. 어쩌면 커서만 깜박거리는 두려울 정도로 새하얀 페이지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문제를 해결한 뒤에 오비완은 블루먼탈에게 사실은 당신의 눈빛을 마주하면 엄마가 떠오른다고 말을 꺼내 상담을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비완은 상담실을 방문할 때마다 블루먼탈의 비서에게 상담 전날 밤에 어쩌면 냉장고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새것처럼 청소하거나, 집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제 1장'이라고 적힌 화면이 저절로 넘어가기를 바라며 깜박거리는 커서를 노려보는 일을 늦게까지 할 수도, 아니면 안할 수도 있으니 예약을 오후로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오비완의 상담 시간은 변함없이 오전에 고정된 채 바뀌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 정확하게 아침 10시가 되면 코르덴바지와 낡은 잠바를 입은 오비완이 반쯤 잠에 취한 채로 불안에 떨면서 터덜터덜 시내에 위치한 블루먼털의 상담소가 있는 건물 입구에 나타났다.

"케노비 씨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네 번째로 상담을 받았을 때 릴리안은 마치 오비완이 지난 몇 달 동안 죽어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고독과 함께 집안에 갇힌 채로 아무런 자극 없이 몇 시간동안 틀어박혀 있잖아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새 이야기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만 있으면 영감이 생기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밖으로 나가세요. 산책이라도 하고요. 몸을 더 움직여요.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정신이 깨어납니다." 그리고 블루먼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펜으로 코를 톡톡 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발 부탁드리는데 다음 내담자를 위해 오실 때마다 민트 사탕을 전부 드시는 건 자제해 주세요."

그래서 오비완은 산책에 나섰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때는 산택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예전에 오비완은 산책에 나설 때면 항상 새틴과 함께 나갔었다. 하지만 둘 다 일이 너무 바빠져 키우던 개를 돌볼 시간이 나지 않아 결국 어쩔 수 없이 반려견을 입양 보내고 난 뒤부터는 산책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오비완이 하는 운동이란 현관문에서부터 우편함까지 짧은 산책을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가끔씩 모험심이 솟구치는 날이면 옛날에 사뒀던 실내 자전거를 콘센트에 연결하고 30분 동안 사이클을 탔다. 오비완은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블루먼털은 정신에 자극을 주기에는 어림도 없다고 단언했다. 블루먼탈에 의하면 오비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육체적으로 벗어나는 변화였다. 오비완은 자신도 변화를 줘봤다고 반박 해봤지만 블루먼탈은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 상쾌한 공기를 집안으로 들이는 건 충분한 변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현관문 앞에 깔린 Welcome이라고 적힌 매트를 밟고 밖으로 걸어 나가 우편함을 지나 길가에 실제로 발을 디디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래서 오비완은 블루먼털의 충고를 전부 따랐다. 다음날 아침에 운동화를 신고 운동바지를 입고서 조심스럽게 산책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산책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해진 일상을 벗어나면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비완은 이 사실을 새틴과 결혼한 지 5년차가 되던 해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배우게 되었다. 이전에도 출판사는 여러 번 오비완을 세미나에 초청했었지만 그때마다 오비완은 거절을 했었다. 그리고 첫 세미나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니 새틴은 짐을 다 실은 차를 차고에서 빼고 있었다. 그렇게 오비완은 벽에 걸려있던 샤갈의 그림까지 사라진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잠에 들어버린 나머지 오비완은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계획보다 한 정류장 뒤에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빗방울은 규칙적으로 쏟아지면서 아주 친절하게도 아침 내내 있었던 푸른 하늘과 산책하기 적당했던 햇살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오전 9시 이전에 여는 가게가 없는 이 마을에서 머리를 가릴만한 곳을 찾는 건 헛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오비완에게 행운이 남아있었는지 길 끝에 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과 붉은색 줄무늬가 번갈아 그려져 있는 차양막과 길가에 있는 가게 중에서 유일하게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눈에 곧바로 들어왔다. 문손잡이에 삐뚜름하게 걸려있는 안내판은 오비완에게 '네, 우리는 영업 중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안내판과는 다르게 어두침침한 가게 외부와 대부분 불이 꺼져있는 내부를 보면 문을 닫은 것처럼 느껴졌다. 또 창문에는 오래전에 찍힌 수많은 지문이 마치 유화 그림처럼 겹겹이 얼룩덜룩하게 유리창을 장식하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물청소가 필요해 보였다. 오비완은 재킷 소매 사이에 손을 끼워 넣은 채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에 달린 종은 카페에 내려앉아있는 무거운 정적과 고요를 깨면서 오비완이 왔음을 알렸다.

카페는..... 음....... 예전에 오비완은 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비록 지금은 근처 마을을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지만 전에는 많은 나라에 가봤고 다양한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수많은 카페와 상점을 돌아다니며 장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을 어느 정도 본 경험 덕분에 적어도 가게 인테리어와 장식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평범한 수준을 벗어난 인테리어를 봐도 흠칫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카페는......

카페의 이름은 오더 66였다. 여기가 카페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구조물은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하여 가게의 반 이상을 잡아먹은 널찍한 화강암 카운터뿐이었다. 카운터 뒤편에는 주방과 카페의 나머지 부분을 나누고 있는 벽이 있었는데 벽에 붙어있는 검은 판에는 손으로 직접 쓴듯한 분필로 적힌 메뉴가 있었다. 카페 내부는 바깥의 차양막과 어울리게 전부 단색 페인트로 칠해진 가구만 있었다. 흉측한 크림색 의자와 테이블이 벽을 따라 쭉 놓여 있고 검은색 칸막이가 그 사이사이를 가려주고 있었다. 또 체인점이 아닌 이 마을의 소위 '힙'한 카페들이 전부 그렇듯 바닥에는 공장에서 쓸 거 같은 회색 타일이 깔려있었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카페였다. 하지만 4계절 내내 코르덴바지만 입고 쉰 살을 바라보는 남자가 '트렌드'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도 웃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무균 수술실 같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카페였다. 어느 정도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로 따스했고, 구석에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동안 영원히 스마트폰에만 달라붙어있기 보다는 진짜 종이책을 들여다보는데서 휴식처를 찾는 손님들을 위한 책장이 놓여있었다.

오비완은 조심스럽게 혹시 자신의 책이 책장에 있는지를 살펴봤다. 하지만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냥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마지막 책이 나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었고 범죄 소설은 천천히 죽어가다가 마침내 미미한 숨만 겨우 내쉬고 있는 장르였다. 오비완이 몸담은 출판사에서는 도전 삼아 요즘 유행하는 연애 이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실제 역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역사 소설처럼 로맨스 소설은 언제나 팔린다고 말이다. 오비완은 출판사의 제안을 잠시 고민해 봤었다. 아니, 사실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아 내면이 완전히 죽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로맨스 소설을 쓰겠는가.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오비완은 아무도 없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릴 수 있는 벨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카운터 위에는 '팁을 가져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는 동전이 가득 담긴 유리병과 포스기만 놓여있었다. 

"계세요?" 오비완은 손마디로 카운터를 똑똑 두드리며 외쳤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카페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 속에 서있으니 만약에 여기 살인마가 있다면 자신을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어둡지만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무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에는 주방 뒤편에 시체를 하나 숨기는 게 가능할 정도로 커다란 창고가 있을 것만 같았고 조명은 한두 개만 켜져 있는 가게에서 오비완은 혼자 서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여기는 오비완이 쓴 소설속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러니 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지는 침묵은 살인마가 희생자를 덮치기 위한 기회가 아니라 그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시간의 흐름에 불과했다.

카운터를 다시 두드리는 순간 오비완은 갑자기 발걸음 소리도 없이 주방에서 빠르게 튀어 나온 남자 때문에 너무 놀라 뛰어오를 뻔했다. 앞치마를 입은 남자는 순식간에 오비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카운터 뒤에 섰다. 한쪽 손에는 묵직한 렌치를 쥐고 있었는데 마치 그게 무기라도 되는 듯 언제라도 휘두르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진 것처럼 곧게 들고 있었다.

"어....." 오비완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서 남자가 어떤 신호라도 주기를 기다리며 우뚝 솟은 렌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남자의 얼굴로 빠르게 눈길을 돌렸다.

오비완은 침을 삼키고 다시 말을 걸어봤다. "Hello, there." 약간 떨리는 인사말이 나가는 순간 때를 맞춰 오비완의 얼굴은 역사상 가장 미적지근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오비완보다 적어도 10살은 어려 보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풍성한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20대 후반 정도 되어보였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실망감에 좌절해본 적이 없었을 것처럼 젊음이 넘치는 남자였다. 비록 남자의 얼굴에는 이미 강철 같은 언짢음이 살짝 드러나 있었지만 오비완은 손님이었고 손님은 이미 주문을 내릴 준비를 마쳤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아무런 억양도 없이 남자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건 흔히 젊은 사람이 생각하는 커스터머 서비스의 정의겠지. 

"커피 한잔 되나요?" 오비완은 질문을 하고 나서 카운터 뒤편의 메뉴를 흘낏 봤다. 메뉴판에는 어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시럽과 우유와 커피의 조합이 끝없이 적혀있었고 모든 메뉴는 뜨겁게나 차갑게 가능하다는 문구도 적혀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런 메뉴를 보고 있으면 두통이 찾아왔다. 그래서 오비완은 그냥 언제나 마시는 평범한 커피 한잔에 매달렸다. 간단하고 비싸지 않으며 어디서 시키든 기본은 할 거라는 믿음이 깔린 메뉴였다. 오비완은 이런 자신의 심리에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상담사가 옆에 있지 않는다면 굳이 파고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 남자가 답했다. 그제야 앞치마에 달린 이름표가 눈에 들어오자 오비완은 남자의 이름이 아나킨임을 알게 되었다. 아나킨은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화강암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최신 커피기계를 바라봤다. 오비완 역시 마치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기계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마침 커피기계가 고장 났네요." 남자는 노골적일 정도로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오비완은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네?" 오비완은 다시 눈을 깜박였다. "그렇다면..... 차는 되나요? 그렇게 복잡한 주문은 아니잖아요."

아나킨은 코를 긁적이며 오비완을 바라봤다. 순간 주방에서 낮은 쿵 쿵 소리가 여러 번 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소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서로를 노려봤다. 눈이 아파서 더 이상 노려볼 수 없을 때까지. 아나킨은 이를 악물더니 오비완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오비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나킨은 재빠르게 주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주방에서 나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쿵쿵 소리가 점점 커져가다가 힘껏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언가 무거운 것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략 5분정도 지나자 아나킨이 여전히 렌치를 든 채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 아나킨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어 엉켜있었고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나고 있었다. 아나킨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손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면서 혀로 이빨을 훑어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비완은 아나킨의 이빨을 물들인 딸기잼을 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뒤쪽에 쥐새끼가 들어와서요."

"쥐라고요?" 오비완의 억양에 경계심이 섞여있었는지 아나킨은 공중에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아, 제가 보기엔 별일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쪽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는 손짓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제 다 해결되었으니까요." 아나킨의 어색했던 미소가 어느새 다정하게 변해있었다. 아나킨은 오비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카운터에 몸을 기대어 허리를 뒤로 쭉 뺐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거 같더니 들고 있던 렌치를 뒤로 던져버렸다. 뒤편에서 뎅그렁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나킨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오비완을 바라보면서 다시 카운터에 기대 방금 전과 같이 탄탄한 몸매가 잘 들어나는 자세를 취했다.

"뭘 주문하고 싶다고 하셨죠? 차였나요?"

아나킨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오비완은 그대로 뒤로 돌아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는 대신 뒤숭숭한 감정을 잠재우고 카페에 계속 있겠다고 결정 내렸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중이었고 오비완은 비 오는 날에 신을만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이혼 후의 정신 상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신경질적인 폭우를 용감하게 마주하느니 책과 함께 따스한 카페 안에 있는 게 훨씬 나아보였다.

"얼그레이로 부탁드립니다. 우유를 조금만 넣어서요." 오비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나킨은 다급하게 오비완의 주문을 포스기에 입력했다. "얼그레이 한잔, 우유를 약간 얹어서. 바로 대령해 드리겠습니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아나킨을 보고 있으니 살짝 불안해진 오비완의 코가 움찔거렸다.

계산이 끝나자 오비완은 바깥 거리가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편안하게 앉았다. 드디어 동네가 깨어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 한두 명이 카페 앞을 지나갔고 개와 함께 걸어가던 남자가 길모퉁이의 사거리에 멈춰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오비완은 재킷을 벗었다. 아니, 벗으려고 하는 순간 차를 다 만든 아나킨이 얼그레이가 담긴 찻잔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바람에 팔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아나킨은 몇 초 동안 재킷을 벗으려고 버둥거리는 오비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와드릴까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마침내 오른쪽 팔을 꺼내는데 성공한 오비완은 재킷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손을 내저었다. 최근에 거의 움직이지 않은 덕분에 살이 조금 쪄서 재킷을 벗는 게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살이 불어난 뒤로 옷을 입고 벗는 게 어려워져서인지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거나 상담을 받을 때를 빼면 용기를 내 밖으로 나가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나킨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 오비완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나킨을 발견했다. 아마도 빗물로 엉망이 된 남자가 빠지지 않는 재킷과 함께 벌이는 화려한 쇼를 즐겁게 감상한 것 같았다.

아나킨은 입술에 걸린 삐뚜름한 즐거운 미소를 숨길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오비완은 자신의 뺨이 마치 우연히 사창가에 발을 디딘 선교사처럼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 주문하신 차가 나왔습니다. 우유를 아주 약간만 넣은 얼그레이 티요." 아나킨은 조심스럽게 앙증맞은 도자기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차와 함께 나온 컵받침 위에는 셀로판지로 싸인 초콜릿 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비완은 재킷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빗물에 젖은 소매로 안경알을 닦아냈다. 그리고 안경을 쓰고 나서 거치적거리게 눈앞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놀랍지 않게도 머리카락은 재킷처럼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침내 오비완은 잔을 들어 얼그레이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나킨은 그런 오비완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개인적인 공간을 존중하는 건 이름 모를 외국에나 있는 관습이라는 듯이 테이블 앞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건 드릴까요? 아니면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아나킨이 물었다. 그리고 오비완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디선가 꺼낸 냅킨 상자를 통째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오비완은 냅킨을 하나 꺼내 입가를 닦고선 아나킨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감사를 전한 오비완은 아나킨의 반응을 기다리며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아나킨은 그저 뭔가에 빠진 듯한 변함없는 눈빛으로 오비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눈빛이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오비완이 생각하는 순간 즐거워보이던 아나킨의 미소가 단조로운 미소로 변했다. 그리고 아나킨은 테이블에서 한걸음 물러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빙글 돌아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제야 긴장이 사라진 오비완은 몸에 힘을 빼고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부슬비는 멈추지 않았다. 30분 동안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오비완은 빌어먹을 날씨를 마음속으로 욕하며 그만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여는 순간 부드러운 손길이 오비완의 팔뚝을 붙잡더니 다시 카페 안으로 끌어당겼다. 뒤를 돌아보니 아나킨이 오비완을 붙잡고 있지 않은 반대쪽 손에 밝은 붉은색 우산을 들고 서있었다.

"가져가세요." 아나킨이 말했다. 아나킨의 너무 진지해 보이는 표정과, 자신의 어두운 성향을 비밀로 부치겠다고 결심했던 대학원 시절 이후로 아나킨 나이대의 잘생긴 남자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온 적이 없어서 오비완은 아무 대답 없이 우산을 받아들였다.

아나킨은 문을 열어주더니 오비완을 밖으로 안내하고 팔짱을 낀 채로 문가에 기댔다. 그리고 생각에 빠진 멍한 표정으로 오비완이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비가 쉬지 않고 퐁-퐁-퐁 소리를 내면서 우산 위로 떨어졌다. 빗방울이 비닐 표면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릴 때마다 어두운 그림자가 마치 눈물처럼 붉은 우산 아래의 오비완의 얼굴 위를 타고 내려갔다.

오비완은 작별인사를 하려고 손을 반쯤 든 채로 몸을 돌렸다. 아나킨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언젠가 복수심에 불타는 하늘이 폭우를 토해내지 않고 날씨가 허락하는 날에 우산을 돌려주러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에 걸려있던 'OPEN' 표지판은 어느새 'CLOSED'로 돌아가 있었고 아나킨은 이미 문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

오비완은 글쓰기로 먹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글쓰기 이외의 취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글을 평생을 업으로 삼겠다는 결정은 실수로 판명나 버렸다. 한때 글쓰기는 행복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글을 써도 즐겁지가 않았고 그저 정기적으로 해야만 하는 관성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혼한지 얼마 안 된 오비완에게 글쓰기 외의 다른 취미나 삶에서 있었던 좋았던 일들은 어떤 식으로든 본질적으로 새틴과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비건이 되겠다는 결정은 새틴이 위장의 건강과 전반적인 정신 건강이 연관되어있다는 책을 여러 권 읽고 나서 낸 아이디어였다. 처음부터 아파트 벽에 달려있었던 장식용 몰딩에서 고전적인 우아함이 느껴진다며 그대로 두겠다고 결정을 내린 사람도 새틴이었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결정 덕분에 이제 와서 몰딩에 쌓이는 먼지와 화장실의 곰팡이 문제를 처리해야하는 사람은 오비완이 되었다.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을 때 새틴은 오비완이 그동안의 좋았던 추억과 취미를 다시 떠올리거나 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들고 떠났다. 하지만 새틴이 유일하게 가져가지 못한 것은 오비완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아침 산책이었다. 어디를 가든 차를 몰고 가는 것을 좋아했던 새틴은 원래 오비완의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부부 공용 자산으로 변해버린 자동차도 몰고가버렸다. 하지만 이건 오비완의 상담사에게, 아니면 언젠가는 변호사에게 털어놓아야 할 또 다른 주제였을 뿐 글이 안 써진다는 문제와 비교하면 지금 당장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깜박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운 뒤에 마침내 오비완은 외출을 결심했다. 폭우 덕분에 실패로 끝났던 지난번 모험 이후로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자신을 계속 조롱하는 노트북 화면을 몇 시간 동안 웅크리고 들여다보다가 목을 펴는 순간 뚝 소리를 들은 오비완은 책상에서 몸을 억지로라도 떼어내서 움직여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새벽 4시의 도시는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첫 버스는 오전 6시나 돼야 올 예정이여서 운동화와 닳아 해진 조깅 바지를 입고 아파트 밖으로 나온 오비완에게는 공원까지 걸어간다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를 가르는 이 시간대에 공기는 상쾌했다. 짙은 검푸른 색으로 뒤덮인 하늘의 저 끝에서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오비완은 셔터가 내려간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와, 의자가 뒤집힌 채 식탁 위에 올라가있는 레스토랑과, 주머니가 가벼워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검은 후드와 야구 모자를 쓰고 복권이나 값싼 술을 사려고 들락날락거리느라 이 시간에 유일하게 손님이 존재하는 24시간 편의점을 지나쳤다.

공원에 도착하자 시계는 5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태양은 이미 붉어진 지평선에다가 분홍색 광선을 덧칠하며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흘러내린 땀 때문에 면 운동복이 몸의 어디에 붙어있는지가 느껴졌다. 입술을 핥자 인중에 모여 있던 땀방울에서 짠맛이 났다. 약간 숨이 차긴 했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비완은 약간 속도를 내서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나있는 산책로를 계속해서 걸어갔다. 산책로 양 옆에 서있는 나무 사이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볍게 뛰자 근육과 다리가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에 공원은 조깅하는 사람, 원반을 던지는 사람,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끄는 엄마, 사탕을 입힌 사과를 파는 행상인, 풀밭에 누워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 단위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번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도 괜찮은 것 같았다. 조용한 공원에서는 평소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무를 흔드는 산들바람 소리와, 자신의 호흡과 함께 나오는 거친 숨소리와, 신발이 땅 디딜 때마다 같은 박자로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오비완은 조깅을 하는 동안 음악을 듣곤 했었지만 오늘은 헤드폰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나온 덕분에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아마도 헤드폰은 새틴과 재산을 나눌 때 집중 포화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보였다.

어쨌거나 공원은 평화로웠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자신의 육체와 하나가 되는 동시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새틴은 여러 번 오비완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을 품고 산다고 불평했었다. 새 작품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의뢰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어버린 나머지 진짜 인생을 잊어버린 시시한 남자로 변해버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하! 오비완은 지금의 자신을 새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서 밖으로 나와 이 지독할 정도로 오싹한 시간에 오한이 들 정도로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는 자신을 새틴이 봐줬으면 했다. 심지어 오비완은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속도를 늦추었다가 다시 높이기를 반복할 줄도 알았다.

여전히 공원은 평화롭게도 비어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지난 7년 동안 이 동네에서 살아온 오비완은 치안을 걱정하지 않았다. 신경을 건드리는 무거운 침묵 때문인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저 이혼이라는 큰 시련을 겪을 뒤에 완전히 은둔자로 살아오다가 생겨버린 편집증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워버리고 따끔거리는 목덜미를 무시해버렸다. 또 다른 산책로로 접어들어도 오비완은 조깅을 이어갔다. 산책로의 반쯤 왔을까? 갑자기 오른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뭔가가 튀어나왔다. 나무 뒤쪽에서 순식간에 달려 나온 사람과 충돌하기 바로 직전에 오비완은 겨우 몸을 트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던 순간 누군가의 손에 팔뚝을 붙잡혔다. 만약에 그 사람이 똑바로 서도록 힘을 주어주지 않았더라면 오비완은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오비완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바라봤다.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진 가죽 장갑이었다. 오비완이 아는 지인 중에서는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기도 전인 이런 계절에 저런 가죽 장갑을 끼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억이 머릿속에 스쳤다. 장갑을 낀 손의 주인은 카페에서 만난 젊은 남자였다.

아나킨.

"당신......" 긴 침묵 끝에 아나킨이 입을 열었다. 오비완이 팔을 꽉 붙잡고 있는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아나킨은 멋쩍은 듯이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팔을 놓아줬다. 가해지던 압박이 사라지자 오비완이 근육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팔을 주무르자 아나킨은 뒤로 물러났다. 아나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 입고 있었다. 전신을 가리는 점프슈트부터 장갑, 부츠, 머리카락을 납작하게 누르고 있는 야구 모자까지 전부 검은색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황금색으로 빛나는 아나킨의 눈동자가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약이나 렌즈 없이 그렇게 밝은 눈동자를 가지는 건 불가능했다. 어쩌면 오비완이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금빛으로 보일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어두침침한 공원의 불빛이 만들어낸 농간임이 분명했다. 오비완이 몇 번 눈을 깜박이자 다시 원래 푸른색으로 돌아와 빛나는 아나킨의 눈동자를 보면 아마도 마지막 추측이 가장 진실에 근접했던 것 같았다.

"당신에게 뛰어드는 식으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요. 미안해요." 아나킨은 조금도 미안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보였다.

"아, 괜찮아요. 제가 마침 길을 가로막은거 같은 걸요." 오비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지금 오비완은 인생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타인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이어가는 도중에 질리도록 봐왔으니 고맙지만 더 이상의 마찰은 이제 충분했다.

그러자 기억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아, 우산을 아직 안 돌려 줬네요."

"맞아요." 아나킨이 말했다.

"어.... 그럼....." 오비완은 말꼬리를 흐리면서 아나킨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아나킨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그저 의미 모를 미소만 활짝 지은 채로 오비완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돌려줄 예정이었다고 알려드리고 싶네요. 그냥 한동안 밖으로 나올 일이 없어서요. 하지만 꼭 돌려드릴 생각입니다. 우산 말이에요." 평소에 오비완은 지금보다 말을 더 잘했다. 이건 말솜씨가 뛰어나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오비완 답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아나킨의 생각에 빠진 시선은 오비완의 세치 혀를 묶어버렸고 마치 육식동물에게 붙잡힌 새처럼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집에 있었다고요?" 아나킨이 말했다. "당신은 남편 중에서도 집에 갇혀 사는 부류인가요?"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셨나요?"

오비완의 말투에 섞여있는 분노를 듣지 못했는지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면 아나킨은 너무 둔감한 성격 같았다. 아니면 어딘가에 정신이 팔렸는지 통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나킨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힐끗 쳐다봤다. 오비완도 자연스럽게 그곳을 바라봤지만 거기에는 나무 밖에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침묵과 어둠만이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뒤섞여있을 뿐이었다. 아나킨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손가락을 하나 들면서 말했다.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하지만 원하실 때면 언제든지 카페에 들려주세요. 제가 직접 차를 만들어 줄게요."

"아, 감사합니다. 정말 친절하시네요."

"아, 설마 공짜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아나킨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오비완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손님에게 계속 공짜로 음료를 만들어 준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걸요. 그 손님이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그럴 수는 없어요. 저도 세금은 내야해서요."

"그렇군요." 오비완은 이야기의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일단 대답했다. 이 대화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질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아나킨은 오비완을 바로 앞에 두고 오비완이 매력적이라고 말한 걸까? 오랫동안 그 누구도 아나킨처럼 대담하게 오비완을 칭찬하지 않았다. 길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남자들을 만났을 때나, 오비완의 손이 어설프게 그들의 다리 사이에 닿았을 때를 제외하면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아주 옛날에나 존재했다.

아나킨은 뭔가 할 말이 남았다는 듯이 오비완의 눈을 바라보며 산책로를 따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오비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뒤로 돌아 속도를 높여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봐요......." 아나킨이 어깨 너머로 인사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오비완은 자신이 뭔가 말해주기를 저 청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아나킨이 기다리는 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나킨은 오비완이 이름을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비완이에요." 오비완은 서둘러 말했다. 벤이라는 이름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벤은 출판을 할 때 쓰는 필명이자 새틴이 애정과 정반대되는 감정을 느낄 때 오비완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벤, 빨래를 걷어줄래? 벤, 오늘 밤에 회의가 있다고 말했었잖아. 벤, 나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벤, 우리 이혼하자. 벤에게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이 연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비완은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기 위해 상담사를 만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새 출발을 하려면 태어났을 때 받은 이름을 사용하는게 좋지 않을까?

"오비완." 반복해서 이름을 불러보는 아나킨의 목소리는 올라간 입꼬리와 어울리게도 느릿느릿하고 나른했다. "흥미로운 이름이네요."

그런 말을 한건 아나킨이 처음이 아니었다.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비완은 마침 자신이 태어났을 때 뭄바이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 이름을 떠올린 히피 삼촌을 원망했다.

"그럼 오비완, 또 봐요. 꼭 곧 볼 수 있기를 바랄게요."

오비완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아나킨은 벌써 길이 꺾이는 곳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아나킨과 헤어진 뒤, 산책로 끝에 도착한 오비완의 귓가에 새벽 공기를 가르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오비완은 목을 빼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지만 사이렌 소리는 이미 희미해진 뒤였다.

*






참고로 Awkward Flirting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다. 아나킨이 어디서 불꽃 플러팅을 날리는지 생각하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음.

아나오비 헤이든유안
 
2024.03.28 20:44
ㅇㅇ
모바일
존잼이다ㅠㅠㅠ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됨ㅠㅠㅠㅠ번역붕 진짜 코맙!
[Code: d40f]
2024.03.28 21:50
ㅇㅇ
모바일
아나킨 카페 엄청나게 수상해서 긴장되는데 플러팅 ㅋㅋㅋㅋㅋ벌써 기대된더 ㅋㅋㅋㅋㅋ
[Code: 8840]
2024.03.29 00:01
ㅇㅇ
모바일
진짜 당신 사랑해
[Code: 353a]
2024.03.29 07:03
ㅇㅇ
모바일
으어 현대au는 사랑이죠!!! 개같이 기대중!!!! 사랑해 번역붕 복받아라 ㅠㅠㅠㅠㅠ
[Code: 4544]
2024.03.29 14:07
ㅇㅇ
와 이거 존나 재밌게 봤는데 한글로 읽으니까 더 재밌다ㅠㅠㅠㅠㅠㅠㅠ 미친 너무 두근두근해 정말 잘 읽을게 번역붕 코맙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수상한 남자와의 외줄타기 같은 사랑ㅠㅠㅠㅠㅠ
[Code: 3306]
2024.04.02 14:41
ㅇㅇ
존잼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나킨 벌써부터 수상하고 위험하다ㅋㅋㅋㅋㅋㅋㅋ
[Code: ca0b]
2024.04.07 02:04
ㅇㅇ
모바일
아나킨 베이더 수상해 ㅋㅋ 쥐새끼가 들어왔어서요(딸기잼 추릅) 이거 뭐야 피인지 잼인지 오싹하겠어~!! 혐생때문에 지금 읽는데 재밌다!!
[Code: f9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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