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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 18:37
https://hygall.com/618803483 칠나더
요즘들어 사운드웨이브는 부쩍 리차징 시간이 길어졌다. 한낮에 옵틱을 잠깐 감았다가 뜨면 앞에 퇴근한 재즈가 있을 정도였다. 사운드웨이브는 이 오류가 과하게 거친 인터페이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살 의지가 빈약한 주인의 뜻을 이뤄주려는 시스템의 보은이거나.
"나도 빨리 퇴근하고 싶은데 말야, 곧 지역 행사라 그런지 일이 계속 내려오네."
"하아······ 아······."
응석부리는 목소리, 헐떡이는 신음, 난잡한 물소리가 고요한 쿼터를 채웠다. 재즈는 사운드웨이브를 제 위에 앉힌 채 한 서보로는 그의 밸브를 괴롭히고, 반대쪽 서보로 데이터 패드를 들고 잔업을 처리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재즈의 품을 벗어나는 걸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바르작거렸다.
"그래서 사운더스, 나 없는 동안 뭐했어?"
뭘 했냐니. 어디 숨겨둔지 모를 초소형 카메라로 이미 전부 봤을 거면서 모른 척 묻는 꼴이 밉스러웠다. 사운드웨이브는 덴탈 플레이트를 빠드득 갈고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재, 흐으─ 재즈······ 기다렸어······."
"정말? 그거 기쁜걸······."
짧은 웃음이 들려왔다. 퍽 마음에 든 대답인 듯했다. 잘했다는 듯 내벽을 꾹 눌러오는 디짓에 사운드웨이브는 또다시 오버로드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느끼고 싶었다. 부끄럽고, 힘들었다. 게다가 이런 수치스러운 짓을 할 때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생겼다. 이젠 재즈의 목소리만 들려도 밸브의 안쪽이 간질간질하고 동체에 열이 올랐다. 저절로 윤활유로 밸브가 축축해졌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자신이 싫었다.
점점 재즈가 원하는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렇게 되어가는지 콕 찝기가 어려웠다. 행동? 하는 말? 요즘따라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건 비단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뭐든 생각을 정도 이상 깊게 하려들면 헬름에 뿌연 안개가 낀 것 마냥 기억이 잘 나지도, 회로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자신이 의식이 없던 사이 시스템에 잠금을 얼마나 많이 걸어놓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탈출은 포기하고 생각은 얕게 하며 재즈에게 매달리게 되는 게 습관이 되고 있었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사운드웨이브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가끔씩 울곤 했다. 모든 걸 잃어가고 있었다. 죽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어느것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서 더 그랬다.
사운드웨이브는 나름의 합리화를 해보려했다. 자신이 코그리스들 중에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중이라며 타 코그리스들의 불행을 상상해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운더스, 사랑해. 사랑해······."
버거운 쾌감에 헬름 속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별로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운드웨이브는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길 거부했다. 요즘 재즈는 '사랑해'라는 말에 꽂혀서 자꾸만 사랑한다고 속삭이길 유도하고 있었다. 괴롭힘의 강도가 높아진 것도 비슷한 시점이었다. 어떤 말을 원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랑해'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사운드웨이브가 가진 마지막 한 줌짜리 존엄이자 자존심이자 이성이었다.
"카세티콘들이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재즈는 언제나처럼 사운드웨이브의 오디오 리셉터에 달콤한 회유를 속삭였다. 사운드웨이브는 멋대로 카세티콘들을 언급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카세티콘들이 보고 싶었다. 고작 사랑한다는 말로 이곳에 데려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을 곁에 두고 적과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순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고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코그가 없는 한 카세티콘들은 카세트 모드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카세티콘들이 바로 서보 닿는 곳에 있으면 언제 어떻게 협박에 쓰일지 몰랐다.
하지만 질나쁜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면 사운드웨이브조차 어느 게 옳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격리실에 방치해두는 게 더 나쁜 게 아닐까. 오랫동안 카세트 모드를 유지하면 큰일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반항한다고 해서 좋아질 게 있을까. 역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고 하면, 모두 다 행복하지 않을까······.
"재즈······."
또 헬름이 복잡해지니 생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그냥······ 그저······.
"······재즈······."
사운드웨이브는 하염없이 그의 이름만 불러댔다.
······.
사운드웨이브가 옵틱을 떴을 때는 이미 쿼터가 어둠에 잠긴지 한참이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마지막 기억이 뭔지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니까, 재즈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코그를 되찾을 계획, 다른 디셉티콘들의 행방이나 처지, 재즈의 소름끼치는 언행들, 제 생각의 옳고 그름, 합의되지 않은 관계 후 뻐근한 동체, 정보참모였던 나날들 전부. 떠올릴수록 힘들기만 했다.
사운드웨이브는 몇 주에 걸쳐 이상행동을 천천히 줄여나가더니, 이젠 혼자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재즈가 뭔갈 말해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재즈가 돌아와서야 그가 먹여주는 에너존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규칙적인 에너존 섭취와 움직이지 않는 동체는 코그리스인 사운드웨이브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날도 사운드웨이브는 재즈에게 안긴 채 그가 말하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었다. 뭔가 계속 말하고 있는 건 보이는데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한 단어도 알 수가 없었다. 사운드웨이브는 가끔씩 호응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헬름 옆 허공을 응시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안타깝게도 재즈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도 길게 뭔가 혼자 주절거리던 재즈는 다음날 아침에 사운드웨이브를 강제로 깨웠다.
졸렸다. 엄청나게. 재즈와 걷는 내내 꾸벅꾸벅 조느라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졸음이 조금 가셨을 때 보인 건 전에 카세티콘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던 그 건물의 1층 홀이었다. 그때 한 말이 카세티콘들을 보러 오자는 거였나?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코그드들에게 자신을 던져두고 구경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쪽이든······ 뭐······.
재즈를 따라 바닥을 보며 미적미적 걸었다. 바닥이 참 깨끗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재즈에게 살짝 기대 옵틱을 감고 선잠을 청했다.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멈추는 느낌이 나더니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제 헬름이 쓰다듬어지는 데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며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바닥 타일이······ 다르네. 전에 봤던 바닥은 베이지색이었던 것 같은데······. 사운드웨이브는 처음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뭔가, 뭔가 달랐다. 복도 구조는 비슷했는데 사무실이 가득한 곳이라기엔 분위기도 그렇고 묘하게 기이했다. 문이 간간이 보이긴 했는데, 사무실은 아닌 것 같았다.
드물게 마주치는 코그드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선하고 체스트 플레이트에 똑같이 생긴 뱃지같은 걸 달고 있었다. 그들은 재즈와 살갑게 인사할뿐만 아니라, 동체를 살짝 숙여 사운드웨이브에게도 웃어보였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째 께름칙한 기분을 느꼈다.
코너를 한번 돌아 도착한 곳에서도 웬 코그드가 그들을 반겼다. 환하게 웃으며 둘이 대화를 나누더니, 재즈는 곧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뽀뽀를 하고 코그드 쪽으로 등을 밀었다. 그의 립 플레이트가 뭐라고 움직였는데 전혀 모르겠다.
코그드는 사운드웨이브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손짓으로 옆에 있는 문을 열심히 가리켜댔다. 사운드웨이브가 의아함에 재즈와 코그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재즈는 한 발짝 물러나 실 웃으며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문을 쳐다보자 코그드가 문을 열었다. 뭔지 몰라 가만 서 있는데, 또 등이 밀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정쩡하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안에 뭐가······.
끔찍한 자극에 죽어있던 회로들이 일제히 되살아났다. 동체의 전선 한 가닥 한 가닥이 쭈뼛쭈뼛 터져나가는 감각이었다. 멈춘 시계와 같던 상식과 생각이 이제야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쿨링팬이 가동되며 체내 에너존이 빠르게 순환한다.
소름이 다 돋았다. 졸음은 달아난지 오래였다. 사운드웨이브는 도저히 제 옵틱 앞에 보이는 것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뒷걸음질치다가 등에 문이 닿자 화들짝 놀라 비틀거렸다. 회로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문을 박박 긁었다.
색색깔의 파스텔톤의 벽과 부드러운 블럭패드가 깔린 바닥, 무해한 물건들이 나뒹구는 기이한 쿼터는 스파클링을 위한 킨더가르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건 스파클링이 아니라 명백한 성년의 나이인 코그리스들뿐이었다. 그들 태반이 이상행동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킨더가르텐보다는 메디컬 센터 격리동이 연상됐다.
죽은 듯 누워있는 코그리스, 벽에 헬름을 박고 있는 코그리스, 구속구가 채워진 코그리스, 울고 있는 코그리스,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코그리스,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는 코그리스······ 아주 다양하게도 미쳐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직전까지 자신도 저들과 다름없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재즈가 퇴근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나? 싫었다. 저 코그리스들 중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싫었고, 이런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정신병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차라리 쿼터에서 혼자 소리 지르고 울 때가 나았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긁고 조용히 난리를 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운드웨이브는 겨우겨우 패닉에 빠지기 전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헬름을 문에 기대고 천천히 심호흡하다가 조심히 돌아 쿼터 내부를 제대로 직시했다.
둘, 여섯, 열하나, 열셋, 열넷······. 코그리스들의 수를 세던 사운드웨이브는 '열다섯'을 생각하려다 그대로 멈췄다. 그는 잠시간 제 시야에 든 구석진 자리의 코그리스 하나를 응시했다. 그 코그리스는 독보적으로 구속구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주변을 흘기는 시선은 이런 상황에서도 몹시 불량하고 날카로웠다. 얼핏 보이는 동체는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이 섞인······ 플라이어였다.
스타스크림······.
사운드웨이브는 저도 모르게 소리내 중얼거렸다. 그때 두 코그리스의 시선이 닿았다.
트포 재즈사웨
요즘들어 사운드웨이브는 부쩍 리차징 시간이 길어졌다. 한낮에 옵틱을 잠깐 감았다가 뜨면 앞에 퇴근한 재즈가 있을 정도였다. 사운드웨이브는 이 오류가 과하게 거친 인터페이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살 의지가 빈약한 주인의 뜻을 이뤄주려는 시스템의 보은이거나.
"나도 빨리 퇴근하고 싶은데 말야, 곧 지역 행사라 그런지 일이 계속 내려오네."
"하아······ 아······."
응석부리는 목소리, 헐떡이는 신음, 난잡한 물소리가 고요한 쿼터를 채웠다. 재즈는 사운드웨이브를 제 위에 앉힌 채 한 서보로는 그의 밸브를 괴롭히고, 반대쪽 서보로 데이터 패드를 들고 잔업을 처리하고 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재즈의 품을 벗어나는 걸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바르작거렸다.
"그래서 사운더스, 나 없는 동안 뭐했어?"
뭘 했냐니. 어디 숨겨둔지 모를 초소형 카메라로 이미 전부 봤을 거면서 모른 척 묻는 꼴이 밉스러웠다. 사운드웨이브는 덴탈 플레이트를 빠드득 갈고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재, 흐으─ 재즈······ 기다렸어······."
"정말? 그거 기쁜걸······."
짧은 웃음이 들려왔다. 퍽 마음에 든 대답인 듯했다. 잘했다는 듯 내벽을 꾹 눌러오는 디짓에 사운드웨이브는 또다시 오버로드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느끼고 싶었다. 부끄럽고, 힘들었다. 게다가 이런 수치스러운 짓을 할 때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생겼다. 이젠 재즈의 목소리만 들려도 밸브의 안쪽이 간질간질하고 동체에 열이 올랐다. 저절로 윤활유로 밸브가 축축해졌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자신이 싫었다.
점점 재즈가 원하는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렇게 되어가는지 콕 찝기가 어려웠다. 행동? 하는 말? 요즘따라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건 비단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뭐든 생각을 정도 이상 깊게 하려들면 헬름에 뿌연 안개가 낀 것 마냥 기억이 잘 나지도, 회로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자신이 의식이 없던 사이 시스템에 잠금을 얼마나 많이 걸어놓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탈출은 포기하고 생각은 얕게 하며 재즈에게 매달리게 되는 게 습관이 되고 있었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사운드웨이브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가끔씩 울곤 했다. 모든 걸 잃어가고 있었다. 죽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어느것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서 더 그랬다.
사운드웨이브는 나름의 합리화를 해보려했다. 자신이 코그리스들 중에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중이라며 타 코그리스들의 불행을 상상해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운더스, 사랑해. 사랑해······."
버거운 쾌감에 헬름 속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별로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운드웨이브는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도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길 거부했다. 요즘 재즈는 '사랑해'라는 말에 꽂혀서 자꾸만 사랑한다고 속삭이길 유도하고 있었다. 괴롭힘의 강도가 높아진 것도 비슷한 시점이었다. 어떤 말을 원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랑해'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사운드웨이브가 가진 마지막 한 줌짜리 존엄이자 자존심이자 이성이었다.
"카세티콘들이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재즈는 언제나처럼 사운드웨이브의 오디오 리셉터에 달콤한 회유를 속삭였다. 사운드웨이브는 멋대로 카세티콘들을 언급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카세티콘들이 보고 싶었다. 고작 사랑한다는 말로 이곳에 데려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운드웨이브는 카세티콘을 곁에 두고 적과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순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고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코그가 없는 한 카세티콘들은 카세트 모드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카세티콘들이 바로 서보 닿는 곳에 있으면 언제 어떻게 협박에 쓰일지 몰랐다.
하지만 질나쁜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면 사운드웨이브조차 어느 게 옳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격리실에 방치해두는 게 더 나쁜 게 아닐까. 오랫동안 카세트 모드를 유지하면 큰일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반항한다고 해서 좋아질 게 있을까. 역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고 하면, 모두 다 행복하지 않을까······.
"재즈······."
또 헬름이 복잡해지니 생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그냥······ 그저······.
"······재즈······."
사운드웨이브는 하염없이 그의 이름만 불러댔다.
······.
사운드웨이브가 옵틱을 떴을 때는 이미 쿼터가 어둠에 잠긴지 한참이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마지막 기억이 뭔지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니까, 재즈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코그를 되찾을 계획, 다른 디셉티콘들의 행방이나 처지, 재즈의 소름끼치는 언행들, 제 생각의 옳고 그름, 합의되지 않은 관계 후 뻐근한 동체, 정보참모였던 나날들 전부. 떠올릴수록 힘들기만 했다.
사운드웨이브는 몇 주에 걸쳐 이상행동을 천천히 줄여나가더니, 이젠 혼자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재즈가 뭔갈 말해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재즈가 돌아와서야 그가 먹여주는 에너존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규칙적인 에너존 섭취와 움직이지 않는 동체는 코그리스인 사운드웨이브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날도 사운드웨이브는 재즈에게 안긴 채 그가 말하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었다. 뭔가 계속 말하고 있는 건 보이는데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한 단어도 알 수가 없었다. 사운드웨이브는 가끔씩 호응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헬름 옆 허공을 응시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안타깝게도 재즈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도 길게 뭔가 혼자 주절거리던 재즈는 다음날 아침에 사운드웨이브를 강제로 깨웠다.
졸렸다. 엄청나게. 재즈와 걷는 내내 꾸벅꾸벅 조느라 어떻게 도착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졸음이 조금 가셨을 때 보인 건 전에 카세티콘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던 그 건물의 1층 홀이었다. 그때 한 말이 카세티콘들을 보러 오자는 거였나?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코그드들에게 자신을 던져두고 구경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쪽이든······ 뭐······.
재즈를 따라 바닥을 보며 미적미적 걸었다. 바닥이 참 깨끗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재즈에게 살짝 기대 옵틱을 감고 선잠을 청했다.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멈추는 느낌이 나더니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제 헬름이 쓰다듬어지는 데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며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바닥 타일이······ 다르네. 전에 봤던 바닥은 베이지색이었던 것 같은데······. 사운드웨이브는 처음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뭔가, 뭔가 달랐다. 복도 구조는 비슷했는데 사무실이 가득한 곳이라기엔 분위기도 그렇고 묘하게 기이했다. 문이 간간이 보이긴 했는데, 사무실은 아닌 것 같았다.
드물게 마주치는 코그드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선하고 체스트 플레이트에 똑같이 생긴 뱃지같은 걸 달고 있었다. 그들은 재즈와 살갑게 인사할뿐만 아니라, 동체를 살짝 숙여 사운드웨이브에게도 웃어보였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째 께름칙한 기분을 느꼈다.
코너를 한번 돌아 도착한 곳에서도 웬 코그드가 그들을 반겼다. 환하게 웃으며 둘이 대화를 나누더니, 재즈는 곧 사운드웨이브의 페이스 플레이트에 뽀뽀를 하고 코그드 쪽으로 등을 밀었다. 그의 립 플레이트가 뭐라고 움직였는데 전혀 모르겠다.
코그드는 사운드웨이브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손짓으로 옆에 있는 문을 열심히 가리켜댔다. 사운드웨이브가 의아함에 재즈와 코그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재즈는 한 발짝 물러나 실 웃으며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문을 쳐다보자 코그드가 문을 열었다. 뭔지 몰라 가만 서 있는데, 또 등이 밀렸다. 사운드웨이브는 어정쩡하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안에 뭐가······.
끔찍한 자극에 죽어있던 회로들이 일제히 되살아났다. 동체의 전선 한 가닥 한 가닥이 쭈뼛쭈뼛 터져나가는 감각이었다. 멈춘 시계와 같던 상식과 생각이 이제야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쿨링팬이 가동되며 체내 에너존이 빠르게 순환한다.
소름이 다 돋았다. 졸음은 달아난지 오래였다. 사운드웨이브는 도저히 제 옵틱 앞에 보이는 것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뒷걸음질치다가 등에 문이 닿자 화들짝 놀라 비틀거렸다. 회로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문을 박박 긁었다.
색색깔의 파스텔톤의 벽과 부드러운 블럭패드가 깔린 바닥, 무해한 물건들이 나뒹구는 기이한 쿼터는 스파클링을 위한 킨더가르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건 스파클링이 아니라 명백한 성년의 나이인 코그리스들뿐이었다. 그들 태반이 이상행동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킨더가르텐보다는 메디컬 센터 격리동이 연상됐다.
죽은 듯 누워있는 코그리스, 벽에 헬름을 박고 있는 코그리스, 구속구가 채워진 코그리스, 울고 있는 코그리스,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코그리스,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는 코그리스······ 아주 다양하게도 미쳐있었다. 사운드웨이브는 직전까지 자신도 저들과 다름없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재즈가 퇴근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나? 싫었다. 저 코그리스들 중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싫었고, 이런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정신병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차라리 쿼터에서 혼자 소리 지르고 울 때가 나았다. 하지만 아무리 문을 긁고 조용히 난리를 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운드웨이브는 겨우겨우 패닉에 빠지기 전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헬름을 문에 기대고 천천히 심호흡하다가 조심히 돌아 쿼터 내부를 제대로 직시했다.
둘, 여섯, 열하나, 열셋, 열넷······. 코그리스들의 수를 세던 사운드웨이브는 '열다섯'을 생각하려다 그대로 멈췄다. 그는 잠시간 제 시야에 든 구석진 자리의 코그리스 하나를 응시했다. 그 코그리스는 독보적으로 구속구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주변을 흘기는 시선은 이런 상황에서도 몹시 불량하고 날카로웠다. 얼핏 보이는 동체는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이 섞인······ 플라이어였다.
스타스크림······.
사운드웨이브는 저도 모르게 소리내 중얼거렸다. 그때 두 코그리스의 시선이 닿았다.
트포 재즈사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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