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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18:29
피트 미첼은 현실을 직시할 줄을 아는 사람이었어.


하늘을 가르며 비행을 하는 순간에도 공상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공연히 그것을 해내곤 했지. 어떠한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어. 붕 떠오른 기분이 진창으로 처박히는 경험을 너무 많이 했으므로, 일종의 자기방어와 같았던 거야. 듀크 미첼의 죽음으로 시작된 자기방어는 닉 브래드쇼의 죽음을 통해 더 굳건해졌고.


운이 좋게도 현실적인 면은 인생에 있어 필요한 요소 중 하나였어.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살짝 낡았다는게 아쉽긴 하다만- 괜찮은 집을 구하고, 캐피를 낳고, 직장을 얻어 하루를 버텨내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부족했지. 독촉장과 온갖 고지서가 날아들 때도 술병을 빨거나 닥친 현실에 절망하기 보다는 신문을 펼쳐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기 바빴어.


그 날도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맞이한 참이었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바빴던 아침. 피트는 식탁에 앉아 먹는둥 마는둥 눈 앞의 과제를 해치우는데 여념이 없는 아들, 캐피와 스몰토크를 이어가며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어. 최근 캐피는 대학 진학 문제로 정신이 없어보였어. 그 변화가 걱정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던 까닭은, 캐피가 한창 사춘기였을 무렵 작은 다툼으로 집을 나가 며칠간 들어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돌아오긴 했다만, 그 후로 피트는 캐피를 더욱 세심하게 살폈지. 다른 이상한 것에 빠지기 보다는 대학 진학에 미쳐있는게 더 낫지 않나,싶은게 현재의 생각이었고. 우유 한잔을 끝으로 아침식사를 마무리한 캐피는 한쪽 어깨에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섰다가, 금방 도로 들어왔어.


두고 간 게 있냐고 묻는 피트에게 어깨를 으쓱인 캐피는 식탁에 편지 하나를 내려놓았어. "우체통에 있어서 가져왔어요. 진짜 갈게요! 저녁에 봬요." 하면서.

날다람쥐마냥 떠나간 아들의 뒷모습을 옅은 미소로 배웅한 피트는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가, 욕을 내뱉으며 나갈 채비를 했어. 정신없는 와중에도 편지를 챙겼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 일터에 챙겨갈 정도로 편지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므로 피트가 그 편지를 퇴근길에서야 펼쳐든 건 당연했어. /피트 "매버릭" 미첼./ 실로 오랜만에 보는 호칭에 걸음이 절로 멈췄지. 전역을 한 이후로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던 호칭이었거든. 그 아래엔 반듯한 글씨체로 현재 그가 살고있는 주소가 쓰여있었어. 발신인은 적혀있지 않았고. 봉투를 열고, 그 안에 곱게 접힌 편지를 꺼내들었어. 아주 오랜시간이 걸렸어. 직시해야함을 알고 있음에도, 피트에게 있어 그 편지는 어떠한 형벌에 가까웠으니까. 땅거미가 지고, 물 먹은 솜마냥 무겁던 걸음이 동네어귀에 겨우 발을 걸쳤을 때서야 편지를 펼쳐들 수 있었어. 막혔던 숨이 터져나오는 순간이었지.




미첼, 잘 지내고 있어?

너를 그리워하며, 톰 카잔스키.





피트는 마지막으로 '붕 떠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어. 평소와 달리 몹시 긴장한 티를 내던 ice cold, no mistake. 그 유망한 파일럿, 톰 "아이스맨" 카잔스키의 모습은 여즉 머릿속에 또렷히 남아있었어. 떠는 와중에도 다정한 손길로 제 손을 쥐고, 왼쪽 약지 앞으로 반지를 내밀며 허락을 구하듯 눈을 맞춰왔지. 영원을 맹세할게, 미첼. 사랑한다는 상투적인 고백을 뒤로하고, 아이스맨은 꿈결같은 소리를 했어. 영원이란 건 없다는게 매버릭의 지론이었고, 믿음이었으나, 아이스맨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


그 의지는 정말 대단했는데, 현실주의자인 매버릭이 홀라당 넘어가 그 반지를 기어코 약지에 끼게끔 만들 정도였지. 아이스맨이 그토록 환하게 웃는 건 정말이지 처음보는 광경이었어.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슬라이더가 튀어나와 눈치없이 환호성을 질러대던, 구스가 거위마냥 꽥 소리를 치던, 울프맨이 전화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던, 아이스맨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버릭을 꼭 껴안으며 뒤늦게 사랑한다는 말 또한 덧붙일 뿐이었어. 그 망할 영원하다는 말도 함께인 고집스럽고 낯간지러운 고백을 들은 매버릭은 아이스맨의 가슴에 머리를 기댈 수 밖에 없었어.

당시에는 창피해서 그랬다고 변명을 뱉어댔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가 믿지 않았듯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매버릭은 분명 행복했지. 현실 따위는 잊고 싶을만큼, 아주 많이.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피트는 혼란스러웠어. 고작 편지 하나만으로 피트는 잊고 살았던 과거의 한 조각을 기억해낸거야. 그 정도로 아이스맨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콕 박혀있었지. 집을 옮겨야 하나, 싶은 마음도 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피트는 이내 포기했어. 그만한 돈이 없기도 했고, 주소를 알면서도 직접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건 이제 그에게 피트는 큰 의미를 주지 않는 사람이란 뜻일거야. 어쩌면 이미 가정이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다 주소를 알게 되어 안부확인차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아이스맨은 콜사인과는 다르게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결론은, 피트는 아이스맨의 편지를 그저 보관해두기로 했어. 답장도 하지 않았지. 아이스맨은 아이스맨대로, 피트 미첼은 피트 미첼의 삶 그대로 사는게 맞는거라고 생각했거든.


피트는 이후의 삶도 언제나처럼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일주일 후 아침, 캐피가 데자뷰마냥 같은 방식으로 편지를 들고 돌아왔을 때 그 예상은 보기좋게 깨졌어. 피트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편지를 받아들 수 밖에 없었지.


아이스매브
2024.04.25 18:39
ㅇㅇ
모바일
다음 편지내용이 뭐였을까?? 센세 나 여기서 어나더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Code: 3bde]
2024.04.25 18:57
ㅇㅇ
모바일
아니 뭐야 무슨 일이야?? 왜 편지만 보내는 건데? 뭔데!! 센세 어나더!!! 어나더가 필요해 어나더가 없으면 센세의 여름은 무진장 더울 테지만 어나더를 준다면 지하실에서 보내는 시원한 여름이 될 거야.
[Code: cf66]
2024.04.25 19:10
ㅇㅇ
모바일
왜 매버릭이 아이스를 떠났던걸까? 비행마저 포기할 정도라면 아마도 캐피와 관련된거겠지? 센세 어나더 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
[Code: 6f80]
2024.04.25 19:14
ㅇㅇ
모바일
캐피는 아빠의 존재를 아나봐...
[Code: 8944]
2024.04.25 20:11
ㅇㅇ
모바일
집나갔던 며칠 동안 아빠한테 가있었니 캐피야...?
[Code: fc2f]
2024.04.25 20:44
ㅇㅇ
캐피가 가출 이후 달라진 것이나 편지를 매번 들고 오는 것도

이미 캐피는 오래전부터 아이스랑 교감이 이루어진 상태였다는걸 의미하는걸까
[Code: 7654]
2024.04.25 20:44
ㅇㅇ
넘나 궁금하다 제발 어나더를
[Code: 7654]
2024.04.26 08:20
ㅇㅇ
모바일
임신튀 했던거였을까? 하 군싹
[Code: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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