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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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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알못주의 노잼주의 



2학년 4반의 타로부스 내부는 제법 그럴듯했다. 두꺼운 보라색 공단 천으로 창문을 다 덮고, 바닥에는 아마도 누군가의 집에서 뒹굴었을 싸구려 카펫을 깔았다. 두 사람의 앞에 마주앉은 빡빡이는 망토같은 천을 뒤집어쓰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커플? 넹. 궁합보려고? 넹. 미신을 믿지도 않거니와, 타로에는 신뢰가 전혀 없는 태섭은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무덤덤히 대답하는 이명헌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저러나 명헌은 동요하지 않았다만.

"커플 궁합은 열 장을 뽑아야해. 각각 다섯장 씩"
"열 장? 존나많네."

벌써부터 귀찮아 질색하는 태섭의 허벅지를 명헌이 살짝 꼬집었다. 협조해용. 협조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가발을 벗고 산왕공고 농구부의 빡센 주장으로 돌아올 것 같다. 그냥 많다구요... 끽소리도 못할거 왜 개겼나 싶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한 장 씩 순서대로 고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아무렇게나 다섯장을 골랐다. 순서대로 이 카드 맞지? 아까부터 앞선 타로 빡빡이는 컨셉질인지 반말이다. 퉁명스러운 태섭의 고갯짓 다음으로 명헌이 신중하게 다섯장을 골랐다. 중간에는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하면서 유심히도 카드를 보더니 결심을 다잡고 한 장을 골라내더라. 

타로빡빡이가 두 사람이 모은 열장의 카드를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배열했다. 턱을 긁적이더니 한숨을 푹 쉬고, 고심끝에 결국 타로카드 풀이책을 꺼냈다. 아는거 아니었어? 야, 나도 축제라서 당번 걸린거야... 더더욱 신뢰도가 떨어지는 빡빡이의 궁합운이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엣헴! 빡빡이가 헛기침을 하더니 풀이를 시작했다. 먼저 명헌이 고른 카드, 14번이었다. 이건 본인의 모습을 뜻하는건데... 조화롭고 견실하군. 역시 최강산왕의 주장이야. 다음으로는 태섭이 고른 카드. 뭔가 사제같은 사람이 나왔는데 이건 총명하다는 뜻이랜다. 내가 똑똑하긴 하지. 이번엔 운이 좋게도 맞는 말인거 같다. 세번째는 명헌이 고른 카드, 이번에는 가풍을 본댄다. 

"가풍을 왜 보는데?"
"궁합이니까...?"

생각보다 본격적인 용어가 나온 태섭이 눈썹을 짝짝이로 만들자 명헌이 미간에 손가락을 갖다대어 문질거렸다. 주름져용. 이사람은 스킨십이 거침이없네 진짜. 태섭은 뒤로 몸을 빼면서 명헌이 만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세게 문댔다. 

다시 타로로 돌아와서 이명헌의 가풍은 좋은 것 같았다. 사려깊은 집안이라는데 명헌은 그런가용, 평범한뎅, 하면서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데 제 카드는 보기만해도 좀 무시무시한 해골이 그러져있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 이별이 많나봐? 아무것도 모를 빡빡이가 책을 뒤져가면서 하는 헛소리일 뿐인데 소름이 돋는다. 한편으로는 불쾌하고. 내가 왜 집안 얘기를 오늘에서야 말을 섞어본 사람하고 해야하지. 
 

"이 카드가 의미하는건 죽음인데 정방향으로 나와서 격변을.."
"넘어가죵."

스겜스겜. 명헌의 손짓에 빡빡이가 서둘러 다음 카드들을 읽어냈다. 배려해줘서 고마운데 눈치채서 싫은 이 느낌. 태섭은 집중을 못하다가 다음에 귀에 박혀온 용어에 귀가 번뜩 뜨였다. 다음 카드는 성적 취향인데... 뭔 고등학생이 타로를 보면서 성적취향까지 말해? 산왕공고 축제의 수위가 감이 오지 않는 태섭은 귀를 막고싶어졌다. 

타로빡빡이는 명헌과 카드와 책을 번갈아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인가. 얼른 말이나 하라는 듯한 무언의 압박에 실토했다. 

"주장선배는... 변태야...입니다!"
"...뭔 소리죵?"

이번엔 드물게 이명헌이 당황했다. 빡빡이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면서 카드를 풀이했다. 이건 15번 악마인데 악마는 성경에도 나오듯이 강렬한 충동을 뜻하고, 타로 궁합운을 볼 때 이 위치에서 악마가 나온다는 거는 보통 사람들 이상의 강렬한 성욕과 충동성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 변태가 아니라며.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태섭의 얼굴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담담한 얼굴을 하고서는 성욕이 왕성하단 말이야? 생각해보니 여장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다니는게 변태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긴 하다. 타로를 안 믿겠다던 사람 치고는 타로에서 해주는 헛소리를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잠시 당황하던 명헌은 곧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래도용. 제일 혈기왕성할때죵."

지가 변태라는걸 시인하는 것까지 완벽한 변태다.  그러나 다음엔 태섭의 차례였다. 제 카드는 뭔가 행복해보이는 벌거벗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빡빡이는 이번에도 신이나서 외쳤다. 이 사람은 쾌락에 약하다! 

"내가?"
"이건 연인카드인데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란 뜻이고, 또 육체적인 관계에 낭만을 가지는..."
"자, 자, 잠깐! 뭐라고요, 내가요?? 헛소리하네, 내가 언제!"
"나는 그냥 카드만 읽을 뿐이고."
 
즈그 선배가 아니다 이건지 빡빡이는 굴하지 않고 태섭의 카드를 마저 읽어냈다. 성욕이 왕성한 변태 이명헌에 비하면 별 거 아닌 거 같긴 하다만 단어는 더 자극적인 것 같기도. 쾌락에 약하다. 육체적인 관계. 낭만. 

우리 둘 다 변태네용. 명헌이 소근거렸다. 반박하고 싶은데 강한 부정은 긍정처럼 보일까봐 하지도 못하겠다. 

"지금부터는 상대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아볼건데, 주장선배는 달 카드가 역방향으로 나왔네...요. 달은 원래 혼란인데 역방향이면 그 반대거든...요. 상대방을 향한 마음에 불안감이 해소됐다, 정도로 볼 수 있음...요. 최근에 심경의 변화라도...?"

잠자코 있던 명헌은 조용히 맞네용, 하면서 살짝 웃었다. 알 수 없는 엷은 미소에 태섭은 제 카드를 읽는동안 집중하지 못했다. 나를 동경했었나용? 이명헌이 물어보고 나서야 귀에 흘려지나갔던 말을 다시 주워담고는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마지막 카드는 타로빡빡이가 뽑았는데 빡빡이는 뽑고도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이, 이건...! 

"그게 뭔데용."
"두 사람 천생연분이네."

경건한 타로 빡빡이의 선언. 시발? 

"태섭씨?"
"아 죄송... 뭐요?"
"이 카드는 완성이란 카드라서 두 분은 뭐..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커플! 하늘이 내려준 인연! 이건 처음봤네."

타로 빡빡이는 흥분하더니 원치 않은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카드가 나오는 커플은 헤어짐이 잘 없고 상대방과 궁합이 너무 잘 맞아서 사실 이런 타로카드를 보러오지 않아도 서로가 잘 맞다는 걸 안다는 둥, 어제부터 이틀 동안 했는데 처음봤다는 둥....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것은 송태섭의 심장 고동소리...

분명 들어올 때만 해도 타로는 믿지 않는다, 미신이다 하던 태섭이었으나 '천생연분' 이란 단어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왜일까. 여장 컨셉충 이명헌과 내가 천생연분? 누구와 천생연분이란 소리를 들어도 충격적일텐데 그게 하필 이명헌이라서 충격적인건지, 아니면 이명헌과 천생연분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까 타로에서 나보고 똑똑하다 했는데 지금 다시 카드를 뽑으면 세계 최고의 멍청이라고 나올지도 모른다.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듣기만 했는데 혼란스럽다. 넋이 나간 채로 걷던 태섭의 손목을 명헌이 낚아챘다.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이명헌을 보자마자 이마에 '천생연분' 단어가 보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스로 놀라고도 상대방이 무안할까봐 걱정이 된다. 뚱한 얼굴을 한 상대에게 해명을 하려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낄낄대며 웃는다. 어이 송태섭이! 경박하게 이름 석자를 다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인데, 고개를 돌린 곳엔 역시나 예상하던 그사람 정대만이 서 있었다. 치파오에서 교복으로 갈아입은 최동오를 옆에 끼고.

"뭐냐 니네 타로봤냐?"
"선배는 뭔데요. 둘이 데이트해요?"
"그렇게 됐다 야! 너 저기 타코야키 먹어봤냐 개맛있다. 역시 동족들이 만들어서 그런, 아야!"
"정대만 말이 심하다?"

얼마나 맛있게 먹은건지 대만의 입가에는 파슬리가루도 묻어있었다. 타로집 앞에 선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을 보고 정대만은 놀릴 거리를 찾으려 했다. 너네 타로봤지~ 뭐냐~ 설마 니네 잘어울린대? 그럼 개웃기겠... 대만의 놀림에 태섭이 울컥하기 전, 명헌이 잡은 손목에 힘을 꽉 쥐었다. 태섭씨. 예?

"튀어용!"

예에-? 농구부 주장 아니랠까봐 이명헌은 전속력으로 태섭의 손목을 끌고 달렸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끌려가던 몸은 처음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으나 이내 그를 따라서 시원하게 달리게 되었다. 어디가 이놈아! 뒤에서 들리는 대만의 목소리는 귓가를 가르는 바람소리에 묻혀갔다. 복도에 사람이 많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그들을 보고 절로 자리를 피해줬다. 명헌은 날래게 방향을 돌려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 1층 로비에 내려와서야 달리기는 멈췄다. 갑자기 뛰어서 달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계단 위를 바라보았지만 따라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말이나, 헉... 헉.... 해주고, 뛰지.... 헉..."
"튀어용 이라고 말했어용."
"갑자기 왜 튀는거예요."

숨이 찬 태섭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명헌은 아랫입술을 한번 내밀더니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타코야키 먹으러 가용."
"말 돌리는 거죠?"
"쉿. 비밀이 여자를 만든답니다용."

꽉 쥔 손목에 자국이 남은 걸 보고 이번엔 손을 잡지 않고 뒷짐을 지고 걷는 명헌이다. 타코야키는 어딨는데요? 운동장 옆 부스예용. 뛰고 나니 배가 고픈 건 맞아서 타코야키 16알을 사고는 호호 불어가면서 먹고, 입천장이 데여서 눈을 질끈 감고 바람을 후후 불고 있자니 어디선가 이명헌이 포카리를 구해와서 건네준다. 땡큐. 포카리로 입천장을 식히고 나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타코야키를 먹었다. 시답잖은 대화까지 곁들여가며. 

송태섭은 이명헌의 많은 걸 알게됐다. 음료수 취향, 연습 루틴, 어릴 때 자주 먹던 과자.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 되면 꽁꽁 싸매는데 이 지역 출신인 신현철은 그를 보고 김밥이라고 놀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명헌은 어릴 때 만화보는 걸 농구보다 더 좋아했는데 만화에 너무 심취해서 어릴 때 꿈은 건담이었다고. 인간이 어떻게 로봇이 돼요? 불가능은 없어용.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글쎄요, 어때보여용? 

타코야키를 다 먹은 뒤엔 설렁설렁 교정을 돌아다녔다. 1학년 3반에서는 비비탄 사격. 그림 그리기 빼고 다 잘한다더니 귀신같은 솜씨로 1등을 해내더라. 그에 반해 집중력이 흐트러져 3등상도 못 탄 태섭이 불만인듯 궁시렁거리자 명헌은 상품으로 탄 인형을 태섭에게 넘겼다. 닮았네용. 30cm 가량 되는 갈색 푸들인형이었다. 어디가요? 복실복실해용. 천연 곱슬의 슬픔을 알기나 합니까? 빡빡이라 몰라용. 하 참내! 

2학년 1반에 가서는 인원이 다 채워졌다며 난데없는 퀴즈대회에 들어갔다. 1번 문제부터 교장의 이름을 묻는 통에 태섭은 탈락을 직감했는데 이명헌도 떨어지더라. ...그쪽 학교잖아요? 알바예용? 허탈하게 끝나서 옆반으로 들어가니 발 마사지를 해준다길래 하루종일 뛰어다닌 신발을 벗고 발을 내놨다. 간지럼도 잘 안 타는건지 태섭은 만질 때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하면서 손길을 피하려고 난리인데 명헌은 돌부처처럼 발을 맡기더라. 

그 윗층으로 가니 신현철네 반이 준비했다는 팔씨름 대회가 있다. 이기는 사람은 오늘 교내에서 모든 음료수 공짜! 내기는 질 수 없지, 태섭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자 이게 웬 걸. 신현철 팔뚝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남자가 나서며 덤벼라! 하는게 아닌가. 치수선배가 와도 못 이기겠는데. 의욕이 사라진 눈 앞에 명헌이 나타나 설명을 해준다. 우리학교 유도부 주장이에용. 그럼 절대 못 이기는거 아녜요? 웅. 그래도 한 번 해보죠!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무참하게 패배한다. 그래도 나름 7초 정도 버텼나. 기를 쓰고 손등이 닿지 않게 하려는데 뒤에 선 이명헌은 영혼 1그램도 담지 않고 태섭씨 파이팅이라며 무기력하게 응원했다. 그 응원만 아녔어도 이겼거든요!! 되도않는 소리를 하며 호승심을 부려본다. 

어느덧 바깥을 보니 해가 질 것 같은 하늘이다. 학교를 째는건 하루만이면 족하니 당일로 갔다오자고 주장이 말했었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네. 슬슬 다른 부원들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는 태섭 앞을 명헌이 가렸다. 

"밴드부 공연보러가용."
"아 근데... 제안은 고마운데 기차 시간이 다가와서..."
"늦으면 앞자리 놓쳐용!"

적극적인 손이 이번에도 태섭의 손목을 낚아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내내 잡고있던 오른 손목이 아니라 아대를 차던 그 자리를 잡았다.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계속 오른손만 잡았었는데. 이상한 기분에 태섭이 멈춰있자 명헌의 얼굴이 달라진다. 경기 중에 내내 보았던, 방심하면 나오는 무표정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얼굴로. 

"잡아보고 싶었어, 경기 내내."

방금 용 떼고 말한...

"얼른 가용!"

높은 톤으로 외치는 이명헌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경쾌함이 절로 태섭을 이끈다. 무의식이 옮기는 발은 이명헌을 따라갈 뿐, 기차를 타야된다는 이성은 반영되지 않는다. 명헌은 뒤를 돌아서 뛰고 있는데 태섭은 방금 전에 본, 순식간에 지나간 이명헌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그에게 시달리며 겪었던 뒤죽박죽한 감정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좆됐다 씨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기가막혀 믿을 수가 없다. 나 이명헌한테 반한거야? 씨발. 씨발 좆됐다. 


멍하니 끌려가 밴드부 공연을 보는데 사실 공연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앞에서 열창하는 보컬을 보다가도 태섭의 시선은 계속 명헌을 향했다. 이명헌은 퍽이나 신이 났는지 리듬을 타고 있다. 손을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니지만 고개를 앞뒤로 조금씩 흔드는 모습에서, 이 절제된 감정의 표현 속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겠다.

밴드부는 땀을 흘려가며 노래를 하는데 머릿속에는 좆됐단 생각과 이명헌을 더 보고싶단 생각이 파도를 친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머릿속에 치는 파도가 위장까지 뒤틀어버리는 것 같다. 좋은데 싫은 기분. 아니다, 싫지는 않다. 기가막힌거지.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어진다. 옆사람을 자꾸 눈으로 찾으면서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같이 따라 웃고 싶어지니까. 


공연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마지막에 이명헌이 신이나서 앵콜을 같이 외친게 의외였던 게 뇌리에 박혀서 그런가. 해산하는 인파 속에서 이번엔 태섭이 먼저 명헌의 손을 잡았다. 이명헌의 표정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앞장서서 강당을 나가는데 갑자기 억울하다. 하루종일 꼬셔놓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이미 깜깜해진 바깥에는 정상적인 옷으로 갈아입은 산왕공고 농구부와 -성구의 얼굴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회색 물감이 남아있었다만 - 묘하게 열받아보이는 강백호를 비롯해 북산 농구부가 있었다. 

"야아 좆태섭! 너 혼자 어디갔었냐!!!"

선배의 권위따위는 바닥으로 내던지는 강백호가 태섭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너 혼자 놀면 재밌냐!! 기차 시간 이미 놓쳤다고! 집에 어떻게 돌아갈건데!! 

"시간이 그렇게됐나."

태연한 척하며 부원들을 보는데 별 생각 없어보이는 태웅이를 빼고 다들 걱정을 좀 하는 것 같다. 그래봤자 학교에 가서 공부도 안 할거면서. 주장은 예외려나. 준호는 정말 곤란하다며 손목시계와 가로등도 거의 없어 어두컴컴한 운동장 밖을 보았다. 

해결책을 제시한건 신현철이었다. 바보들아, 아키타를 당일치기 할 생각이었냐? 최소 1박이지. 돈 없어서 숙소 못 잡는다며 징징대려던 강백호의 입도 선수쳐서 막았다. 우리집이랑 기숙사에서 나눠자면 되겠네. 

"학교는 걱정마라뿅."

익숙한 말투로 돌아온 이명헌은 어느새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감독님 연락처 줘라뿅. 전화해서 설명드리고 원정 경기하러 왔다고 하면 된다뿅."
"거짓말 하면 들킬텐데?"

준호의 걱정에 명헌은 태연자약했다. 

"도감독님께 말해두겠다뿅."

자연스럽게 명헌은 치수를 데리고 기숙사 사감실 쪽으로 갔다. 전화를 쓰고 오는 거겠지. 태섭은 명헌을 눈으로 쫓느라 신현철의 말을 듣지 못했다. 내 말 들었냐 파마머리? 

"어엉?"
"네명은 우리집, 두 놈은 기숙사에서 자라."
"그쪽 집 가는 네명이 누군데?"

그건 이제 정해야지, 라며 신현철이 말하자 태섭의 눈이 번뜩였다. 이명헌은 기숙사 살아? 어, 걔 룸메 없어서 걔 방에서 한 명 잘 수 있는..

"나 이명헌 방."

번쩍 손을 들었다. 누구도 선착순으로 그 방을 원한 것 같지 않지만 어딘지 조급한 마음에 일단 손을 들고봤다. 신현철네 집에는 침대가 없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한다는 말에 강백호가 지도 그 방에서 자겠다고 나섰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가 잘거야, 이명헌이랑 말도 안 해 본게! 좆태섭 나 부상입었다고! 재활 다 끝났잖아!! 유치하게 백호와 왕왕거리고 있자니 한 시름 돌린 권준호가 이명헌과 돌아온다. 내일 학교 빠져도 될 거 같아. 반가운 소식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예스!를 크게 외쳤다. 

평소보다 요란한 송태섭의 반응에 북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는데 어떤 순간에서도 눈치보지 않을 유일한 인간 이명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냐 물었다. 잠 어떻게 할지 나누고 있었지. 우리집엔 네명까지만 수용 가능. 그렇군뿅. 동오 방이랑 내 방에 나눠서뿅? 그래야지.

"송태섭이 너네 방에서 자겠다는데."
"...그래뿅?"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듯 쳐다보는 명헌과 눈이 마주쳤다. 열이 살짝 오르는 얼굴을 팔꿈치를 들어 가렸다. 

"왜요. 싫어요?"
"좋아뿅."

명헌은 숨도 쉬지 않고 즉답했다. 일일 데이트 아직 안끝났어뿅. 지독하게도 우려먹는 컨셉에 비웃는 사람이 태반이었지만 딱 두 사람은 표정이 달라졌다. 데이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설렘에 두근거리는 송태섭. 그리고 2년 반 넘게 이명헌을 봐왔지만 제 공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대를 들이는 모습은 처음인 신현철. 오호라? 현철의 입매가 씰룩 올라갔다. 




이거 왤케 길어지냐... 명헌태섭 슬램덩크  
2023.02.05 22: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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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재밌어요..........
[Code: d897]
2023.02.05 22: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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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데이트는 1박2박3박 그렇게 같이 사는 것까지 억나더해줄거지 나 여기 눕는다 알겠디 정말 청춘가득이고 타로 당번 한숨쉬면서 해석책 꺼낸 거 개웃겼는데 용하다진짜
[Code: 9c32]
2023.02.05 23: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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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다... 너무너무 재밌어요 센세.....
[Code: 0ddc]
2023.02.05 23: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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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섭이 감정 자각한거봐ㅠㅠㅠㅠ둘 사이 기류가 심상치 않다 어나더 나올때까지 여기서 꼼짝도 안하고 기다릴게요 센세
[Code: 81bb]
2023.02.05 23:14
ㅇㅇ
개재밋어 ㅠㅠㅠㅠㅠㅠㅠ 데이트 아직 안끝났는데 한 방에서 뭘하려고 헉헉
[Code: 6ed0]
2023.02.05 2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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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말 존나 ㅋㅋㅋㅋㅋ 동족이 만들었다뇨 ㅋㅋㅋㅋㅋ
[Code: 6795]
2023.02.05 23: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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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캬... 청춘.........태섭이 명헌이한테 하루만에 급 반한거 존나 억울한데 그래도 하룻밤 유예가 생겼어...!!!!!!
[Code: 10bb]
2023.02.05 23: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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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으으 센세 다음편 줄때까지 기다릴게요
[Code: 10bb]
2023.02.05 23: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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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내가 데이트 한 것도 아닌데 둘 보고 있으니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ㅠㅠㅠㅠ
[Code: 79b1]
2023.02.05 23: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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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오늘 내가 누울 곳은 여기야...
[Code: 79b1]
2023.02.05 23: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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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재밌다..이제 명헌이 방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나요.. 센세 나죽어
[Code: 45cc]
2023.02.05 23: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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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가자이명헌가자가자이명헌
[Code: 2a6d]
2023.02.05 23: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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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존나 최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둘이 너무 풋풋하고 존나 청춘이고 ㅜ 명헌이 한테 반한거 깨닫는 태섭이…. 심장이 진짜 졸라게 간질거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재밌다 둘이 긱사에서 뭐 할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해요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d95]
2023.02.06 00: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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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ㅠ 태섭아 으아아아아아아악 송태섭 자기가 명헌이한테 반한 거 깨닫는 부분 왜 이리 좋지 아 ㅠ 타로 볼 때 이명헌이 센스있게 넘겨주는 부분도 개좋고 아니 타로 왜 이리 용한 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ㅠ 근데 단둘이... 단둘이 있는다고 이제????? 아 콧김 존나 나옴 하악
[Code: c9f9]
2023.02.06 00: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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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달려옴... 행복하다
[Code: 5dfc]
2023.02.06 00: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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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헌 송태섭이 너무 매력적으로 묘사돼서 내 폭력성이 올라갔어
[Code: c71a]
2023.02.06 00: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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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좋다
[Code: f365]
2023.02.06 01: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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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풋풋해 귀여워
[Code: 7813]
2023.02.06 0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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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난 쟤네들의 하루가 안 끝났으면 좋겠어...사랑해
[Code: 9ff9]
2023.02.06 05: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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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타로에서 나온 결과 볼 수 있는거지????ㅠㅠㅠㅠㅠㅠ 데이트 아직 안끗낫다고 ㅠㅠㅠㅠㅠㅠㅠ 진자 최고다
[Code: 5a5b]
2023.02.06 08: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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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넘 간질간질하고 내가 다 즐겁고 셀렌다 ㅠㅠㅠ
[Code: 4282]
2023.02.06 14: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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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발존나좋아ㅠㅠㅠㅠㅠ센세 나살려줘ㅠㅠㅠㅠㅠ
[Code: c4fe]
2023.02.06 15: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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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짜 센세사랑해
[Code: 35db]
2023.02.06 15: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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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 이제 사귀는건가 센세 넘맛있어 냠냠
[Code: efae]
2023.02.06 21: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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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종이만화책으로 보는 것 같아...
[Code: f5d2]
2023.02.08 1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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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Code: decd]
2023.02.08 23: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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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때문에 명헌태섭 없이 못사는 몸이 되었어ㅠㅠㅠ
[Code: ed68]
2023.02.13 09: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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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너무 재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673]
2023.02.15 23: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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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보고 싶었어, 경기 내내.""잡아보고 싶었어, 경기 내내.""잡아보고 싶었어, 경기 내내.""잡아보고 싶었어, 경기 내내."ㅠㅠㅠㅠㅠ크아아아아ㅠㅠㅠㅠ
[Code: 4d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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