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닉갈이 헛갈려한게 나 너무 꼴려 진짜. 미친 존나 귀엽잖아. 친구한테 쫑알쫑알 상담하는 거 보고싶어.
요즘 닉갈의 머릿 속은 온통 '보통의 미국사람'으로 가득했음. 무슨 소리냐면 자신의 평안한 일상에 허리케인처럼 나타난 저 미국인의 행동을 해석하는 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어.
아무렇지 않게 좁혀오는 거리라던가, 쳐다보는 눈빛, 베입~하며 부르는 이상한 호칭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스킨십까지. 매번 당황하게 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보통의 미국사람은 저러잖아. 암 그렇지’ 하며 울렁이는 마음을 달래야 했거든.
혼자 고민하다보면 너무 답답해 질 때가 있잖아. 그래서 일정이 일찍 끝난김에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 녀석한테 전화를 걸어 이 답답한 속을 좀 풀어내려 마음먹었지. 샤워를 마친 닉갈이 가운을 걸치고 야무지게 에어팟을 끼웠어.
-헤이 슈퍼스타. 무슨일이야. 이 누추한 나한테까지
“꺼져. 지금 내가 속이 속이 아니라고”
-응? 왜 연기가 잘 안돼? 아니면 감독이 뭐라고 해? 아니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 그렇군 그 미국인이네. 그치? 네가 처음에 그랬잖아. 사람은 좋은데 뭔가...
“뭔가...”
-부담스럽다고
“그랬지”
-근데
휴...한숨을 한 번 폭 쉰 닉갈이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봤겠다. 침대에 누워 통화하고 있노라니 알렉스와 헨리의 한 때가 생각났어. 그 어떤 관계도 정의되지 못했던 그때. 헨리는 알았고 알렉스는 몰랐던 감정의 실체. 지금의 자신이 알고 있는 건 진짜가 맞는 걸까? 이렇게 대책없이 휩쓸려도 되는걸까? 상념이 꼬리를 물었어.
“사실은 그 사람 때문이야”
-그랬구나! 그랬어. 그 놈이 원흉이었어!
“톰”
-왜 말해봐. 내가 누구야. 니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사실은 헛갈려”
-응?
“그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좋은 사람이야. 마치 캘리포니아 햇살같아. 한 번 웃는 것만으로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응 그래”
-그런데?
“알렉스가 그고, 그가 알렉스인 것처럼 연기해. 정말 좋은 연기자지”
-흠..
“그런데 내가. 사실은 내가 문제야. 자꾸 경계가 모호해져. 이런적 없었는데 그 사람이 정말 알렉스처럼 굴어대니까. 자꾸만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사소한 것도 챙겨주니까. 정말 사랑한다는 듯이 나를 보니까. 속눈썹을 늘어뜨리고 웃을 때면, 톰, 너 그 속눈썹을 니가 봐야해 정말이지”
-잠깐 스탑스탑. 지금 너 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아는거야?
“사실 너한테 말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어”
-그럴줄 알았어. 약아빠진 놈. 계속해. 속눈썹 얘기는 빼고
“저번에 말한 그 키스신 말이야. 수십번을 찍었다던. 경사가 살짝 있어서 자꾸만 내 무게가 너무 실려버렸어. 수없이 입술을 부딪혀대니까 나중에는 정말 감각이 없어질 것만 같은 거야. 너무 급하게 가다 발이 꼬여서 내가 그 사람을 덮쳐 버렸거든”
-오 갓
“기우뚱하면서 앞으로 기우는데 그 와중에도 ‘미리 많이 찍어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래서 넘어졌어?
“어 그사람이 날 안은 채로 뒤로 넘어졌지. 잽싸게 얼굴을 살폈는데 다행히 상처는 없더라고. 내 밑에 깔려서 감은 눈을 뜨는 그 찰나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너는 모를거야. 근데”
-근데
“내 얼굴을 잡더니 다친덴 없냐고 묻는거야. 너도 봤어야해. 그 큰 눈에 걱정을 가득 담아서는. 아니라고 하니까. 웃으면서 다행이다. 하는데 너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 알아? 정말 수많은 스태프도 이 자리가 촬영장인 것도 잊을만큼 충격적이었어”
-어...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아니 말 끊지 말아봐. 이게 끝이 아니라니까. 얼굴을 살짝 들어서 나한테”
-너한테
“입을 맞추더라니까!”
-수십번도 더 맞췄다며.
“톰. 그건 연기였고! 이건 아니잖아!”
-그냥 뭐랄까 기특하다는 인사정도였겠지. 몰라 무슨 비쥬같은?
“너 지금까지 뭘 들은거냐. 입술에다 했다고!”
-아니 그래서 좋았는데 싫었는데. 당연히 좋았으니까 지금 이 밤에 날 붙들고 이러고 있겠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니 말대로 별 의미없는 거였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 뒤로 시도때도 없이 스킨십을 해대. 연기하다 내 목에 혀를 갖다 대기도 하고 장난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손이나 귀를 만져대기도 해. 알렉스와 헨리 역에 집중하자면서 사랑한다거나 키스하고 싶다거나 이딴 말들을 막 해댄다고. 근데 이게 정말...하...장난같단 말이야”
-오 장난치고는 심한 수준인데?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 나쁜!"
-그래서 너는 장난이 아니었으면 하는거야? 진심이었으면 하는거냐고.
“진심이었으면 하냐고? 톰! 아이야. 너 내가 겁이 많은 건 알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성격의 사람이 바로 나라고. 이런 남자는 뭔지 알아? 위험해. 아주 위험한 남자야. 오 마이 갓! 근데 내가 남자인 건 신경도 안쓰고 있었던 거 지금 실화임? 니콜라스 갈리친 정신 차려라. 톰 나 정신차리라고 좀 해줘봐 젠장 정리되던 머릿 속이 더 복잡해졌어!”
“그래서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닉갈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자신의 귀에서 살그머니 에어팟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음. 순간 등 뒤에서 소름이 오도도 돋았음.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어.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니 테잨이 침대 옆 벽에 기대어 서 있었겠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닉갈의 얼굴을 본 테작이 한 번 웃었어. 그리고는 닉갈의 갈비뼈 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수분기를 잃어버리고 팔랑이는 머리칼을 슬슬 넘겨댔겠다.
“그...언제부터..어디서부터”
“니가 날 덮쳐버렸다고 했을 때부터인가, 아니 그 속눈썹 얘기부터였던가”
“...”
“그래서, 겁많은 니콜라스 갈리친, 내가 진심이었으면 좋겠어?”
닉갈은 결국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겠다. 그저 그 감긴 속눈썹에 한 번 더 감탄하며 다가오는 입술을 받아들였겠지.
레화블 테잨닉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