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진 그러려니 함 이탈리아인들이 낭만적인 거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고 가끔 저런 면이 다 있네 싶긴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라 ㄱㅊ 근데 교황 집무실에서 나올 때마다 테데스코의 손에는 항상 꽃 한 송이가 들려있음 본인이 베니테스한테 주려고 챙겼던 꽃다발에서 한 송일 뽑은 거임 언제나 그러니까 로렌스도 궁금해졌겠지 왜 본인이 선물로 가져와놓고 챙기는지? 그리고 왜 한 송이만인지? 이탈리아에선 저게 무슨 풍습 같은 건가? 다음번에 오면 물어봐야지 했는데 이번엔 꽃이 아니라 베네치아 특산품이라는 뭔 먹거리를 가져왔음 돈도 없는 양반이 반한 상대한테 잘 보이겠다고 매번 뭔 선물을 가져오는 건 좋은데 꽃도 그렇고 군것질거리도 그렇고 유통기한이 길어야 일주일이니까 로렌스도 좀 신경이 쓰인 거지 초콜릿이나 와인 이런 거면 기간도 길고 생색내기도 좋은데 왜 굳이 꽃이나 빵 같이 하루이틀이면 사라지는 종류만 선물하는 거냐고. 하루는 직접 본인한테 물어봤더니 테데스코가 그것도 몰라? 라는 얼굴로 대답함 

"그래서 그런 것들을 사는 거지, 그래서."

기한이 짧으니까 산다...? 로렌스로서는 뭔 소릴 하는 건지 노이해임 베니테스는 테데스코가 뭘 선물하건 항상 기뻐하니까 뭐 됐나 싶긴 함 근데 하루는, 진짜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못 온 테데스코가 대신 꽃배달을 보냈단 말임 똑같이 좋아할 줄 알았던 성하 안색이 살짝 침울한 거임 게다가 직접 오시면 좋을 텐데. 라는 혼잣말을 들었을 땐 로렌스는 커퀴 사이엔 끼는 거 아니다 다짐해왔으면서도 결국 나서고 말았겠지 

"성하, 지금 생각을 총대주교님께 직접 말씀하시면 무척 좋아하실 텐데요."
"글쎄요. 싫어하실 걸요."

싫어할 리가, 매번 나한테 성하는 어떤 걸 좋아하시나? 이번 선물은 반응이 어떻던가? 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싶은 로렌스임 성하께서 꽃 말고 얼굴을 보고 싶어하시더라며 전해줄까도 생각했지만 테데스코가 기뻐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혼자 속으로만 삼킴 사실 테데스코가 기뻐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교황 성하도 아니고 자길 붙잡고 좋아하니까ㅋㅋㅋㅋ

게다가 테데스코는 사람이 좀 희한함 이탈리안 특유의 숨쉬듯 자연스러운 플러팅은 틈만 나면 날리면서, 베니테스가 멋쩍어하면서도 기뻐하는 얼굴을 즐기면서 정작 자기는 좋아하는 마음을 티내지 않으려고 함 전형적인 츤데레 할배임ㅋㅋㅋㅋ 심지어 베니테스가 오늘은 예하를 위해 일정을 비웠다고, 조금 더 있다 가시라고 하면 정색하고 받아침 저도 제 교구에서 할 일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무지하게 바쁜 몸인데 뭘 더 머무르라 하시는지? 기차 시간 다 됐습니다, 성하. 근데 그렇다고 진짜 일어나진 않음 나도 바쁘다고 한 주제에 자세 바꿔 앉아 전담만 빨고 있음 ㅋㅋㅋ 그리고 며칠 뒤,

"꽃이 거의 다 시들었습니다, 성하."

로렌스는 베니테스의 책상에 놓인 화병을 보고 있었음 치워드릴까요? 라는 의미였는데 베니테스는 그러게요, 조용히 대답하고는 치워달란 말 대신 다른 걸 부탁하겠지 

"그러니까 차를 준비해주시겠어요? 오늘은 오실 것 같거든요."

주어는 없지만 항상 차분하신 교황 성하가 오늘은 묘하게 들떠있는데 오는 사람이야 뻔하지 다만 미리 연락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테데스코가 오는 주기를 베니테스도 알고 있는지 신기함 커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텔레파시인가? 궁금해진 로렌스는 몇 시간 후 테데스코에게 물었음 어떻게 성하가 방문 주기를 알고 있는 거냐고. 아무리 봐도 추기경보단 마피아에 가까운 얼굴에 곧 희미한 미소가 번졌겠지 그러니까 이런 웃음을 나 말고 성하께 직접 보여드리면 정말 좋을 텐데... 싶지만 오늘도 혼자서만 생각하고 마는 로렌스였음

"토마스. 이제 알겠지?"
"뭘 말입니까?"
"내가 이걸 챙긴 이유."

아뇨 모르겠는데요. 대답하려는 순간, 로렌스의 머릿속에 오늘은 올 것 같으니 차를 준비해달라던 베니테스가 떠오름 그 말을 할 때 눈은 창밖이 아니라 책상 위의 화병을 보고 있었거든 화병엔 매일 베니테스가 손수 물을 갈았지만 길어도 이주를 못 넘기곤 했던 생화가 꽂혀있었고, 로렌스가 치워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시들어있었음 그리고 테데스코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 꽃다발을 사왔으며 자신이 한 송이를 챙겼지 

"케이크는 필시 다른 이들에게 나눠준 후 본인은 입도 대지 않으실 테니 안 되고, 초콜릿은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 안 되고. 같은 이유로 와인은 베네치아가 최고긴 하지만 절대 안 돼. 그러니 꽃이 제일 무난하긴 해. 안 그런가?"

테데스코는 전자담배와 함께 손가락에 끼우고 있던 꽃 한 송이를 흔들었음 로렌스도 드디어 깨달았겠지 테데스코가 자기도 꽃 한 송이를 챙기는 이유는, 군것질거리도 종류가 많은데 굳이 유통기한이 짧은 것들만 사오는 이유는, 그래야지 언제 다시 바티칸에 올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유통기한이 짧아 벌써 다 먹었을 거란 핑계로 더 자주 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후엔 로렌스도 베니테스의 책상에서 꽃들이 서서히 시들어갈 때쯤, 고프레도의 빨간 망토가 다시 나타날 때가 됐구나 하겠지 



콘클라베 테데스코베니테스 ㅇㅉ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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