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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0 21:06
배경은 1990년대 즈음.
중간에 약간 깜놀할만한 짤 있음.

- 이 길이 맞는 거야?
- 지도대로 왔다고.
- 여기 어디에 호수가 있다는 건데?
친구들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허니는 차창에 기대었던 머리를 들고 밖을 보았다. 확실히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게 자라난 나무들과 한 치 앞도 보여주지 않는 안개는 친구들이 보여준 잡지 속 호숫가 옆 별장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역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조용히 책을 읽으며 보내려던 허니의 방학 계획은 같은 동아리 친구인 A로 인해 틀어졌다. A는 남자친구 B가 준비한 동아리 여행에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안달이었고 허니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는 편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타의로 오게 된 여행은 시작하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 허니. 멀미는 좀 괜찮아?
허니의 옆자리에 앉은 친구 C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 응. 괜찮은 거 같아.
- 조금 더 있으면 목적지 도착할거야. 그럼 숙소에서 쉬어.
- 도착은 무슨. 이러다가 숲 속에서 야영하겠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D가 괜시리 핀잔을 주었다. C는 D의 팔을 툭툭 치며 그를 말렸고 허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태양을 가리운 거목들의 그림자 때문인지, 두꺼운 안개 때문인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은 어두웠다. 이 숲은 태양이 비추지 않는 걸까. 숲의 음산한 분위기에 허니는 조금 겁이 나 그녀의 팔을 문질렀고 그러다가 무언가를 보았다.
- 어? 저기.

- 이상하네요. 그 별장으로 가는 길이 며칠 전 폭우로 무너졌거든요.
- 말도 안돼!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걸요.
이번 여행을 준비했던 B가 화를 내었고, P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별장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친구들 사이서는 작은 동요가 일어났고 허니는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보았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기에 허니는 그들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숲 길이 지나고 나타난 풍경은 잡지 속에서 보았던 사진과 비슷했다.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푸른 들판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멀리서 보았던 저택으로 향했을 때 집주인인 P가 나타나 그들이 가려던 별장이 이 호수 반대편에 있으며 가는 길이 봉쇄되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허니와 친구들은 평화롭고 아늑한 시골에서 휴식을 꿈꾸고 있었다. 이젠 불가능한 꿈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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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다면... 저희 집에서 머무르는 건 어때요?
- 네?
집주인 P의 제안에 친구들과 허니마저도 그를 보았다.
- 뭐 보시다피시 방은 충분히 있거든요. 호숫가도 근처에 있고. 저도 계속 혼자 지내는 게 조금은 지루해질 참이니까요.
- 정말요? 그렇게 친절한 제안을 해주실 수가...
- 저희야 좋죠. 원래 가려던 곳보다도 여기가 더 훌륭한 걸요.
- 얘들아, 잠시...
낯선 이의 집에 머문다는 게 불편했던 허니는 기뻐하는 친구들을 말리려 했지만 R씨는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한발 다가왔다.
- 부디 거절하지 말고 머물러줬으면 좋겠어요.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허니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떨떠름한 허니와 달리 친구들은 이미 놀러갈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고 허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저희가 원래 가려던 곳보다 더 훌륭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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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변이 저희 가문의 사유지라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아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도 아니죠.
P는 지치고 배고픈 손님들을 식사에 초대했고 일행들은 모두 테이블에 앉아 식사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이나 전문 레스토랑에서 나올 법한 음식들로 가득했고 친구들은 모두 음식에 대해 칭찬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허니 또한 눈 앞에 보이는 음식들에 관심이 갔지만 아침부터 그녀를 괴롭힌 멀미 때문에 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허기만 달래고 있었다.
- 아직도 속이 불편해?
- 그런 건 아닌데 많이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 몸이 안좋은가요, 허니?
허니와 C의 대화에 R이 끼어들었다. P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허니늘 보았고 허니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요. 괜찮아요.
- 여기까지 오는 길에 멀미가 난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 ...그래요? 혹시라도 불편하면 말해줘요. 약도 있으니까요.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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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는 웃지 않으면 무서운 얼굴이구나. 방금 C를 보는 P의 표정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허니는 주스를 마셨다.
- 허니 너 정말 술 안마실거야?
- 지금 상태면 술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 너희들끼리 재밌게 놀아.
A가 아쉬운 듯 허니를 붙잡았지만 허니의 마음은 확고했다.
- 근데 너도 느꼈지? C가 너 좋아하는 거라니까. 여기서 머무는 동안 잘 해봐.
- 걔는 원래 그런 애야. 엉뚱한 생각하지마.
- 아니라니까. 걔 이번에 안온다고 했는데 너 온다니까 따라왔...

- 허니는 벌써 쉬는 건가요?
둘의 대화는 P씨에 의해 중단되었다. A와 했던 대화를 모두 들었을까. 조금 부끄러워진 허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 네. 먼저 쉬어야 할 것 같네요.
- 조금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잘 자요.
- 네. P씨도 잘 주무세요.
허니의 대답에 P는 조금 슬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웃어주었다.
빨리 잠에 들었던 탓인지 몸을 회복한 허니는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몸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 그녀는 창가에 앉아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호수에서 부터 밀려든 안개가 저택과 주변을 삼키는 것 같았고 해가 다 뜨지 않았는지 주변은 회색빛으로 보였다. 스산한 분위기였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순 없었고 허니는 넋을 놓고 보았다.
- C? 어디로 가는 거지?
뒷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C였다. 저택에서 나온 C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저택 뒷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허니는 겉옷을 걸치고서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C가 갔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C! 어딨어! C!!! 하아, 하..
갑작스런 달리기에 C의 이름을 부르느라 숨이 부족해진 허니는 아픈 심장을 누르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 C. 어디간거야.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던 허니는 결국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저택에서 보던 것과 달리 숲은 깊었고 분명 새벽이었음에도 안개와 나무의 그림자에 잠긴 숲은 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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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정도로 뛰는 심장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숲이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니, 그녀를 부르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발을 들이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친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허니는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들이려 했다.
- 허니. 여기서 뭐해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허니의 몸이 움찔했고, 허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엔 조금 놀란 표정의 P가 서 있었다.
- 얼굴이 좋지 않아요. 무슨 일있어요?
- 아. C가 여기로 들어가는 거보고 따라왔는데 길을 잃은 것 같아요.
- C가요? ...이상하네요. 그는 어제 여길 떠나겠다고 했거든요.
- 네?
- 아. 어제 허니는 일찍 자러가서 모르겠군요. 어제 친구분들 사이에서 약간 다툼이 있었어요. B와 C가 싸웠고 C가 여길 떠나겠다고 했죠.
- 그럴리가. 어제 밤에요? 타고갈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간다고.
- 제가 말리긴 했지만 C의 마음이 단단히 상한 건지 그를 말릴 수 없었어요. 결국 제가 그를 위해서 택시를 불러줬죠.
- 말도 안하고...
- 어제 허니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허니에게 인사도 없이 간 모양이군요.
- 하지만...
그럼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이지? 혼란스러워진 허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눌렀고, P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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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너무 위험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여기서 있는 당신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피곤해진 허니는 더이상 생각하기를 멈추었고 P의 부축을 받아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숲 속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다들 자는 중인지 저택은 조용했다. P는 허니를 방 안으로 데려다주었고 허니가 침대에 눕자 그녀의 몸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 감사합니다.
허니의 말에 P는 웃었고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조용히, 하지만 꿰뚫을 것처럼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는 P가 부담스러워진 허니는 시선을 피했다.
- C와는 친했나요?
- 친구예요. 동아리 친구.
- 그는 허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 ...제가 답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분명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답에 P는 한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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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요. 제가 성급했군요. 미안해요. 더 필요한 거 있나요?
- 아니요. 없어요.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P씨.
- P 말고 레이프요.
- ......
- 난 당신이 레이프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익숙하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P, 레이프는 허니의 방을 나갔고 허니는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허니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점심 무렵이었다. 허니는 거실로 나왔고 그 곳엔 소파에 누운 채 책을 읽고 있는 D가 보였다.
- 허니. 너 진짜 몸이 안좋았나보다. 안그래도 새벽에 또 안좋았다고 P씨가 이야기하더라.
- 이젠 정말 괜찮아. 그런데 어제 C가 먼저 갔다면서?
- 아, 맞아. 진짜 난리였다니까. 다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B랑 C랑 잘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소리지르더니 싸우는 거야. 그 와중에 또 A는 자기 남자친구 편 들고있지. 엉망이었어.
- 그정도로 시끄러웠으면 내 방에서도 들렸을텐데. 어제 너무 깊게 잠들었나봐.
- 그래도 C가 너한테는 인사하고 가겠다고 했는데 P씨가 막아서더라고. 몸이 아픈 사람 깨우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P씨 정색하니까 무섭더라.
- ... C가 나에게 인사하고 가겠다고 했다고?
- 응. 술에 취해도 니 걱정은 된 모양이더라.
- 택시타고 가는 건 봤어?
- 난 못봤어. 대신 P씨가 같이 나가줬어. 택시기사들이 여기 저택 잘 못찾는다고 입구까지 가야한다고 같이 가줬거든.
- 그랬구나. 잘 도착했는지 나중에 전화해봐야겠다. 그런데 A랑 B는?
- 그 둘은 밥먹고 수영한다고 호수로 갔어. 으휴. 그 둘 보기 싫어서 여기 남는다고 했다니까.
정말 싫은 것인지 몸서리치는 D의 말에 허니는 작게 웃을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D가 말해 준 것은 레이프로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새벽. 헛 것을 본 이유는 불안함과 긴장감때문이었으리라. 그게 왜 하필 어제 이 곳을 떠난 C와 그리고 도망치는 그를 멀찍이서 보고있는 레이프의 모습이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허니는 그냥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오후가 되면 호숫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A와 B를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 그들이 돌아온 뒤에 호수로 가야겠다고 허니는 생각했다.

어느덧 햇빛이 약해지고 그림지가 길어졌지만 저택에는 여전히 허니와 D뿐이었다. D의 옆에서 책을 읽던 허니는 책에 싫증이 났고 기지개를 피고선 자리에 일어났다.
- 혹시 전화기 어딨는지 알아?
- 서재에 있다고 P씨가 말했어.
- C에게 전화하고 올게.
허니는 조심스레 서재문을 두드렸지만 답은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고 책상 위에 놓여진 전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C의 집전화번호 뒷자리가 헷갈렸지만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허니는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 D! D! 일어나, 어서. 짐챙겨! 여기 떠나야해.
- 뭐야. 허니. 갑자기 왜그래?
D는 얼굴이 창백해져 자신의 팔을 잡는 허니를 보며 말했고, 허니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가 거짓말을 했어. 어제 택시 따위 오지 않았다고.
- 무슨 소리야. 누가 거짓말을 했다고...
- 레이프말이야. 여기 전화가 되지 않아. 전화기 선이 잘려있다고. 어제 택시를 불렀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제서야 허니의 말을 이해한 D의 표정이 굳어졌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알았어. 여기 떠나자. A랑 B는 어쩌지?
- 차를 끌고 호수로 가서 애들 태우고 가자. 혹시 차 키 어딨는지 알아?
- 몰라! B가 들고있는 거아냐? 호수에 들고갔나?
- ...그러면 내가 침챙기고 B방에 가서 찾아볼게. 없으면 호수에 들고간 거겠지.
그렇게 의견을 모은 허니와 D는 각자의 방으로 갔다. 다행히 문제의 인물인 레이프는 보이지 않았고, 방으로 들어온 D는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또다른 존재가 D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짐을 쓸어담아 가방에 넣은 허니는 B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지럽게 물건이 사방에 놓여있었지만 그의 차 키는 탁상 위에 곱게 올려져 있었고 허니는 그걸 손에 넣은 채 방을 나섰다.
- D. 다 됐어? D.
거실에 내려왔지만 D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이 급해진 허니는 D의 방문을 두드렸다. 큰소리가 날까 두려웠기에 가볍게 두드렸지만, 그 작은 힘에도 문을 천천히 열렸다.
- D?
하지만 그곳에서 허니를 기다린 것은 D가 아닌 누군가가 사라지기 전 남긴 흔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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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마르지도 않은 혈흔을 보며 허니는 고민에 빠졌지만 그녀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호수에서 친구들을 데려온다면 수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저택을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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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다녀왔어요. 허니. 어디 가려는 건가요?
허니가 짐을 든 채로 현관문을 열었음에도 남자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허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관으로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허니는 다시 문을 닫고 뒷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쩌면 차를 그냥 버려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덜컥- 덜컥-
- 왜 안열려!
조금전까지 잘만 열리던 부엌문이 열리지 않았고 허니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럼 응접실의 창문으로 나가는 게...
- 문이 안열려요? 오래된 곳이라 가끔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어요.
발걸음도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다가온 것인지 허니의 등 뒤에선 레이프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허니의 손 위로 손을 겹쳤고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 잠겼네요.
머리 위에서 들리는 레이프의 목소리에 허니는 절로 몸이 움츠려드는 것 같았지만 이젠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허니는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 이 집도 당신이 떠나는 걸 원하지 않나봐요.
- 내친구들을 어떻게 한거야? 그들을... 죽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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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겨우 우리 둘만 남았는데.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돼요? 난 그러고 싶은데.
상처받은 것처럼 말하지만 레이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그가 허니에게 입을 맞추려하자 허니는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고 그를 노려보았다.
- 날 그렇게 보지 말아요. 당신은 날 사랑해줘야 하잖아요. 당신의 그런 눈빛에도 내가 상처받는 걸 안다면...
-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날 여기서 보내줘!
- 허니.
- 날 여기서 보내달라고!!!!
- 당신은 여기서 떠날 수 없어!
레이프가 소리치자 저택에서 동시에 소리가 났다. 그것은 저택의 모든 창문과 문이 닫히는 소리였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소리와 장면에 허니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 아.놀랠킬 생각은 없었어. 허니. 미안해.
- 당신 뭐야. 당신 누구야...
- 인간인 연약하고 불완전한 기억이 존재라는 걸 늘 이렇게 깨닫게 된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이번 주기의 당신은 빨리 만났으니까. 당신의, 우리의 기억을 되새길 시간은 충분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내일 해가 뜨면 숲 속의 당신 무덤들로 가서...
- 내... 무덤들?
- 그래. 당신의 무덤들. 매번 당신은 다른 얼굴로 태어나 이 곳으로 와 나와 사랑을 나누고 날 혼자 여기에 둔 채 떠났지. 새로운 당신이 올 때까지 난 이 저택에서 기다려야만 했고.
- ......
- 하지만 이젠 걱정할 필요없어. 죽음의 신의 눈을 속이는 법을 알아냈으니까. 더이상 그도 당신을 내게서 뺏어가지 못할 거야.
- 레이프.
- 이곳에서 우린 영원히 함께야.

그런데 정말 허니의 여러 번의 삶이, 그 모든 순간의 허니가 레이프를 사랑했을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는 레이프 밖에 없었지.
인간 허니를 사랑한 레잎이 허니의 영혼이 환생할때마다 그녀를 저택으로 불려오는 거 보고싶었음.
미남. 호러. 최고.
레잎너붕붕
중간에 약간 깜놀할만한 짤 있음.

- 이 길이 맞는 거야?
- 지도대로 왔다고.
- 여기 어디에 호수가 있다는 건데?
친구들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허니는 차창에 기대었던 머리를 들고 밖을 보았다. 확실히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게 자라난 나무들과 한 치 앞도 보여주지 않는 안개는 친구들이 보여준 잡지 속 호숫가 옆 별장과 거리가 멀어보였다.
역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조용히 책을 읽으며 보내려던 허니의 방학 계획은 같은 동아리 친구인 A로 인해 틀어졌다. A는 남자친구 B가 준비한 동아리 여행에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안달이었고 허니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는 편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타의로 오게 된 여행은 시작하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히고 있었다.
- 허니. 멀미는 좀 괜찮아?
허니의 옆자리에 앉은 친구 C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 응. 괜찮은 거 같아.
- 조금 더 있으면 목적지 도착할거야. 그럼 숙소에서 쉬어.
- 도착은 무슨. 이러다가 숲 속에서 야영하겠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D가 괜시리 핀잔을 주었다. C는 D의 팔을 툭툭 치며 그를 말렸고 허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태양을 가리운 거목들의 그림자 때문인지, 두꺼운 안개 때문인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은 어두웠다. 이 숲은 태양이 비추지 않는 걸까. 숲의 음산한 분위기에 허니는 조금 겁이 나 그녀의 팔을 문질렀고 그러다가 무언가를 보았다.
- 어? 저기.

- 이상하네요. 그 별장으로 가는 길이 며칠 전 폭우로 무너졌거든요.
- 말도 안돼!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걸요.
이번 여행을 준비했던 B가 화를 내었고, P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별장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친구들 사이서는 작은 동요가 일어났고 허니는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보았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기에 허니는 그들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숲 길이 지나고 나타난 풍경은 잡지 속에서 보았던 사진과 비슷했다.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푸른 들판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멀리서 보았던 저택으로 향했을 때 집주인인 P가 나타나 그들이 가려던 별장이 이 호수 반대편에 있으며 가는 길이 봉쇄되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허니와 친구들은 평화롭고 아늑한 시골에서 휴식을 꿈꾸고 있었다. 이젠 불가능한 꿈이 되었지만.


- 괜찮다면... 저희 집에서 머무르는 건 어때요?
- 네?
집주인 P의 제안에 친구들과 허니마저도 그를 보았다.
- 뭐 보시다피시 방은 충분히 있거든요. 호숫가도 근처에 있고. 저도 계속 혼자 지내는 게 조금은 지루해질 참이니까요.
- 정말요? 그렇게 친절한 제안을 해주실 수가...
- 저희야 좋죠. 원래 가려던 곳보다도 여기가 더 훌륭한 걸요.
- 얘들아, 잠시...
낯선 이의 집에 머문다는 게 불편했던 허니는 기뻐하는 친구들을 말리려 했지만 R씨는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한발 다가왔다.
- 부디 거절하지 말고 머물러줬으면 좋겠어요.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허니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떨떠름한 허니와 달리 친구들은 이미 놀러갈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고 허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저희가 원래 가려던 곳보다 더 훌륭한데요.


- 이 주변이 저희 가문의 사유지라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아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도 아니죠.
P는 지치고 배고픈 손님들을 식사에 초대했고 일행들은 모두 테이블에 앉아 식사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이나 전문 레스토랑에서 나올 법한 음식들로 가득했고 친구들은 모두 음식에 대해 칭찬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허니 또한 눈 앞에 보이는 음식들에 관심이 갔지만 아침부터 그녀를 괴롭힌 멀미 때문에 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허기만 달래고 있었다.
- 아직도 속이 불편해?
- 그런 건 아닌데 많이 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 몸이 안좋은가요, 허니?
허니와 C의 대화에 R이 끼어들었다. P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허니늘 보았고 허니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요. 괜찮아요.
- 여기까지 오는 길에 멀미가 난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 ...그래요? 혹시라도 불편하면 말해줘요. 약도 있으니까요.
- 네. 감사합니다.


P는 웃지 않으면 무서운 얼굴이구나. 방금 C를 보는 P의 표정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허니는 주스를 마셨다.
- 허니 너 정말 술 안마실거야?
- 지금 상태면 술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 너희들끼리 재밌게 놀아.
A가 아쉬운 듯 허니를 붙잡았지만 허니의 마음은 확고했다.
- 근데 너도 느꼈지? C가 너 좋아하는 거라니까. 여기서 머무는 동안 잘 해봐.
- 걔는 원래 그런 애야. 엉뚱한 생각하지마.
- 아니라니까. 걔 이번에 안온다고 했는데 너 온다니까 따라왔...

- 허니는 벌써 쉬는 건가요?
둘의 대화는 P씨에 의해 중단되었다. A와 했던 대화를 모두 들었을까. 조금 부끄러워진 허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 네. 먼저 쉬어야 할 것 같네요.
- 조금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잘 자요.
- 네. P씨도 잘 주무세요.
허니의 대답에 P는 조금 슬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웃어주었다.
빨리 잠에 들었던 탓인지 몸을 회복한 허니는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몸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 그녀는 창가에 앉아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호수에서 부터 밀려든 안개가 저택과 주변을 삼키는 것 같았고 해가 다 뜨지 않았는지 주변은 회색빛으로 보였다. 스산한 분위기였지만 어쩐지 눈을 뗄 순 없었고 허니는 넋을 놓고 보았다.
- C? 어디로 가는 거지?
뒷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C였다. 저택에서 나온 C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저택 뒷편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허니는 겉옷을 걸치고서 저택을 나왔다. 그리고 C가 갔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C! 어딨어! C!!! 하아, 하..
갑작스런 달리기에 C의 이름을 부르느라 숨이 부족해진 허니는 아픈 심장을 누르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 C. 어디간거야.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던 허니는 결국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저택에서 보던 것과 달리 숲은 깊었고 분명 새벽이었음에도 안개와 나무의 그림자에 잠긴 숲은 밤처럼 보였다.


아플정도로 뛰는 심장 때문일까, 두려움 때문일까. 숲이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니, 그녀를 부르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발을 들이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친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허니는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들이려 했다.
- 허니. 여기서 뭐해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허니의 몸이 움찔했고, 허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엔 조금 놀란 표정의 P가 서 있었다.
- 얼굴이 좋지 않아요. 무슨 일있어요?
- 아. C가 여기로 들어가는 거보고 따라왔는데 길을 잃은 것 같아요.
- C가요? ...이상하네요. 그는 어제 여길 떠나겠다고 했거든요.
- 네?
- 아. 어제 허니는 일찍 자러가서 모르겠군요. 어제 친구분들 사이에서 약간 다툼이 있었어요. B와 C가 싸웠고 C가 여길 떠나겠다고 했죠.
- 그럴리가. 어제 밤에요? 타고갈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간다고.
- 제가 말리긴 했지만 C의 마음이 단단히 상한 건지 그를 말릴 수 없었어요. 결국 제가 그를 위해서 택시를 불러줬죠.
- 말도 안하고...
- 어제 허니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허니에게 인사도 없이 간 모양이군요.
- 하지만...
그럼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이지? 혼란스러워진 허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눌렀고, P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 여긴 너무 위험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여기서 있는 당신을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피곤해진 허니는 더이상 생각하기를 멈추었고 P의 부축을 받아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숲 속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다들 자는 중인지 저택은 조용했다. P는 허니를 방 안으로 데려다주었고 허니가 침대에 눕자 그녀의 몸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 감사합니다.
허니의 말에 P는 웃었고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조용히, 하지만 꿰뚫을 것처럼 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는 P가 부담스러워진 허니는 시선을 피했다.
- C와는 친했나요?
- 친구예요. 동아리 친구.
- 그는 허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 ...제가 답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분명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답에 P는 한발 물러났다.


- 그렇군요. 제가 성급했군요. 미안해요. 더 필요한 거 있나요?
- 아니요. 없어요.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P씨.
- P 말고 레이프요.
- ......
- 난 당신이 레이프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익숙하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P, 레이프는 허니의 방을 나갔고 허니는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허니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점심 무렵이었다. 허니는 거실로 나왔고 그 곳엔 소파에 누운 채 책을 읽고 있는 D가 보였다.
- 허니. 너 진짜 몸이 안좋았나보다. 안그래도 새벽에 또 안좋았다고 P씨가 이야기하더라.
- 이젠 정말 괜찮아. 그런데 어제 C가 먼저 갔다면서?
- 아, 맞아. 진짜 난리였다니까. 다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B랑 C랑 잘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소리지르더니 싸우는 거야. 그 와중에 또 A는 자기 남자친구 편 들고있지. 엉망이었어.
- 그정도로 시끄러웠으면 내 방에서도 들렸을텐데. 어제 너무 깊게 잠들었나봐.
- 그래도 C가 너한테는 인사하고 가겠다고 했는데 P씨가 막아서더라고. 몸이 아픈 사람 깨우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P씨 정색하니까 무섭더라.
- ... C가 나에게 인사하고 가겠다고 했다고?
- 응. 술에 취해도 니 걱정은 된 모양이더라.
- 택시타고 가는 건 봤어?
- 난 못봤어. 대신 P씨가 같이 나가줬어. 택시기사들이 여기 저택 잘 못찾는다고 입구까지 가야한다고 같이 가줬거든.
- 그랬구나. 잘 도착했는지 나중에 전화해봐야겠다. 그런데 A랑 B는?
- 그 둘은 밥먹고 수영한다고 호수로 갔어. 으휴. 그 둘 보기 싫어서 여기 남는다고 했다니까.
정말 싫은 것인지 몸서리치는 D의 말에 허니는 작게 웃을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D가 말해 준 것은 레이프로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새벽. 헛 것을 본 이유는 불안함과 긴장감때문이었으리라. 그게 왜 하필 어제 이 곳을 떠난 C와 그리고 도망치는 그를 멀찍이서 보고있는 레이프의 모습이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허니는 그냥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오후가 되면 호숫가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A와 B를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 그들이 돌아온 뒤에 호수로 가야겠다고 허니는 생각했다.

어느덧 햇빛이 약해지고 그림지가 길어졌지만 저택에는 여전히 허니와 D뿐이었다. D의 옆에서 책을 읽던 허니는 책에 싫증이 났고 기지개를 피고선 자리에 일어났다.
- 혹시 전화기 어딨는지 알아?
- 서재에 있다고 P씨가 말했어.
- C에게 전화하고 올게.
허니는 조심스레 서재문을 두드렸지만 답은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고 책상 위에 놓여진 전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C의 집전화번호 뒷자리가 헷갈렸지만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허니는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 D! D! 일어나, 어서. 짐챙겨! 여기 떠나야해.
- 뭐야. 허니. 갑자기 왜그래?
D는 얼굴이 창백해져 자신의 팔을 잡는 허니를 보며 말했고, 허니는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가 거짓말을 했어. 어제 택시 따위 오지 않았다고.
- 무슨 소리야. 누가 거짓말을 했다고...
- 레이프말이야. 여기 전화가 되지 않아. 전화기 선이 잘려있다고. 어제 택시를 불렀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제서야 허니의 말을 이해한 D의 표정이 굳어졌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 알았어. 여기 떠나자. A랑 B는 어쩌지?
- 차를 끌고 호수로 가서 애들 태우고 가자. 혹시 차 키 어딨는지 알아?
- 몰라! B가 들고있는 거아냐? 호수에 들고갔나?
- ...그러면 내가 침챙기고 B방에 가서 찾아볼게. 없으면 호수에 들고간 거겠지.
그렇게 의견을 모은 허니와 D는 각자의 방으로 갔다. 다행히 문제의 인물인 레이프는 보이지 않았고, 방으로 들어온 D는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또다른 존재가 D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짐을 쓸어담아 가방에 넣은 허니는 B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지럽게 물건이 사방에 놓여있었지만 그의 차 키는 탁상 위에 곱게 올려져 있었고 허니는 그걸 손에 넣은 채 방을 나섰다.
- D. 다 됐어? D.
거실에 내려왔지만 D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이 급해진 허니는 D의 방문을 두드렸다. 큰소리가 날까 두려웠기에 가볍게 두드렸지만, 그 작은 힘에도 문을 천천히 열렸다.
- D?
하지만 그곳에서 허니를 기다린 것은 D가 아닌 누군가가 사라지기 전 남긴 흔적뿐이었다.


채 마르지도 않은 혈흔을 보며 허니는 고민에 빠졌지만 그녀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호수에서 친구들을 데려온다면 수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저택을 나가기로 했다.


- 나 다녀왔어요. 허니. 어디 가려는 건가요?
허니가 짐을 든 채로 현관문을 열었음에도 남자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허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관으로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허니는 다시 문을 닫고 뒷문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쩌면 차를 그냥 버려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덜컥- 덜컥-
- 왜 안열려!
조금전까지 잘만 열리던 부엌문이 열리지 않았고 허니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럼 응접실의 창문으로 나가는 게...
- 문이 안열려요? 오래된 곳이라 가끔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어요.
발걸음도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다가온 것인지 허니의 등 뒤에선 레이프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허니의 손 위로 손을 겹쳤고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 잠겼네요.
머리 위에서 들리는 레이프의 목소리에 허니는 절로 몸이 움츠려드는 것 같았지만 이젠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허니는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 이 집도 당신이 떠나는 걸 원하지 않나봐요.
- 내친구들을 어떻게 한거야? 그들을... 죽인 거야?


- 이제야 겨우 우리 둘만 남았는데.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돼요? 난 그러고 싶은데.
상처받은 것처럼 말하지만 레이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그가 허니에게 입을 맞추려하자 허니는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고 그를 노려보았다.
- 날 그렇게 보지 말아요. 당신은 날 사랑해줘야 하잖아요. 당신의 그런 눈빛에도 내가 상처받는 걸 안다면...
-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날 여기서 보내줘!
- 허니.
- 날 여기서 보내달라고!!!!
- 당신은 여기서 떠날 수 없어!
레이프가 소리치자 저택에서 동시에 소리가 났다. 그것은 저택의 모든 창문과 문이 닫히는 소리였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소리와 장면에 허니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 아.놀랠킬 생각은 없었어. 허니. 미안해.
- 당신 뭐야. 당신 누구야...
- 인간인 연약하고 불완전한 기억이 존재라는 걸 늘 이렇게 깨닫게 된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이번 주기의 당신은 빨리 만났으니까. 당신의, 우리의 기억을 되새길 시간은 충분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내일 해가 뜨면 숲 속의 당신 무덤들로 가서...
- 내... 무덤들?
- 그래. 당신의 무덤들. 매번 당신은 다른 얼굴로 태어나 이 곳으로 와 나와 사랑을 나누고 날 혼자 여기에 둔 채 떠났지. 새로운 당신이 올 때까지 난 이 저택에서 기다려야만 했고.
- ......
- 하지만 이젠 걱정할 필요없어. 죽음의 신의 눈을 속이는 법을 알아냈으니까. 더이상 그도 당신을 내게서 뺏어가지 못할 거야.
- 레이프.
- 이곳에서 우린 영원히 함께야.

그런데 정말 허니의 여러 번의 삶이, 그 모든 순간의 허니가 레이프를 사랑했을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는 레이프 밖에 없었지.
인간 허니를 사랑한 레잎이 허니의 영혼이 환생할때마다 그녀를 저택으로 불려오는 거 보고싶었음.
미남. 호러. 최고.
레잎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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