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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0:46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허니가 반지를 잘 끼고 다녔던 거 같아. 그렇다고 막 반짝거리는 큐빅이 박힌 건 아니고, 볼드한 디자인의 실버 계열 반지. 주로 위치는 거슬리지 않는 오른손 중지. 전에는 왼손 중지에 끼고 다녔는데, 건초염으로 왼손이 불편해지면서 모든 것들이 오른손으로 옮겨졌거든. 그럼에도 길쭉길쭉한 손으로 여전히 뭐든지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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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밥도 안 먹어?"



"아... 일하느라. 배고프면 먼저 먹어."



허니는 일하면 예민한데, 집중하느라 식사를 거르면 더 예민해지거든. 마이크가 아양이라도 떨면서 입에 뭐라도 넣어주면 능률도 오르는데, 그러기 전까지는 손에 쥔 걸 잘 못 놓는 게 단점이었지. 지금도 열도 살짝 나면서 못 놓는 거 보니까 엄청 집중했나봐. 



"... 한입만 먹고 해. 쓰러져도 응급실 못 업고 간다."



"거짓말."



허니는 숟가락을 확인하지도 않고 음식을 받아먹었어. 그러더니 화면에서 겨우 눈을 떼며 숟가락을 넘겨받아 스스로 먹기 시작했지. 한식이라면 군소리 없이 다 먹는다는 것을 안 탓에 부러 다섯 블록이나 떨어진 한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포장해왔더니 우물거리며 잘도 먹더라고. 구애인이 직장동료면 이게 좋은거지, 알아서 잘 챙겨준다는 거.



"... 이거 끝나면 여행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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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생각해둔 데 있어?"



"몰라. 따뜻하고... 사람 없는 데. 햇살 좀 쬐고 싶어."



"그래... 이거 끝나면 가자. 그리고 배고프게 일하던 옛날보다야 나은데, 입에 묻히고 먹진 말자 자기야."



입에 묻은 걸 손으로 닦아주던 예전에 비해, 티슈를 내밀며 묻은 데를 톡톡 가리키는 건 훨씬 담백하기야 했지만 조심해야 했지. 둘은 역사가 복잡하니까. 둘을 잘 아는 사람들은 꼭 작은 사모예드와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가 떠오른다고 했고, 둘은 누가 봐도 잘 어울렸지만, 허니는 덤덤한 데 비해 훨씬 더 예민한 마이크를 감당하기 힘들어했어.


둘은 깨졌다 붙은 것만 몇번인지 셀 수가 없고,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극단이 얼어붙었고, 무대 뒤에서 몰래 울다 들켜서 상대방을 마음 쓰이게 해서 입맞추고야 말았어.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긴 했고. 


그도 그럴 게 마이크에게 잠깐 만나는 여자가 생긴 동안, 허니에게도 애인이 생겼거든. 늘 서로의 아류같은 사람들만 만나던 둘이었는데, 짙은 갈색의 머리칼에 희여멀건 인상의 여자를 만난 마이크와 달리 허니는 마이크와 전혀 다르게 생긴 남자를 만났거든. 눈꼬리가 올라가서는 새초롬하게 생겼는데, 허니만 보면 헤벌쭉 웃는 그 남자. 



"... 아이스크림 사먹고 올래. 너 레몬 샤베트?"



"차라리 잠을 좀 자는 게 낫지 않아?"



"...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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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너 눈 지금 실핏줄 터지기 일보직전이야. 제발 자. 내가 깨워줄게. 감기약도 먹고."



"그럼 나 네 가디건 좀 덮고 잘게."



허니는 낑, 소리를 내며 마이크가 작업실에 두고 다니는 가디건을 덮었어.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네 것인 둘이니까. 가난한 아티스트에서 브로드웨이를 주름잡는 두 사람이 되는 데에는 십수년이 걸렸고, 둘의 경제적인 상황이 순탄해짐과 달리 연애 전선은 변함없이 오르락내리락했어. 


항상 허니가 져주는 게임이었어. 허니가 마이크를 좋아한 게 먼저였고, 친한 친구를 잃을까봐 짝사랑을 숨긴 게 2년이 넘었고... 기억도 안나는 20대 초반의 전여자친구가 바이섹슈얼이라 허니에게 한눈을 팔면서 둘이 피터지게 싸우다가 허니가 울면서 나는 너 좋아한다고 이 멍청아, 하고 도망가버렸던 게 둘의 시작이었어. 그런데 이젠 허니가 져 줄 생각이 없나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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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싸울 때마다 너 입 다물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도 이젠 질린다, 진짜."



"... 질리면 그만하던가."



"뭐?"



"왜? 이거 너만 할 수 있는 말이야? 우리 일 때문에 못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헤어져."



"... 너 내가 이 말하길 기다린 거 같다?"




"그럼 너는 내가 질린다는 말 듣고도 괜찮아서 얌전히 있는 줄 알았니? 진짜 얼굴 보고 참는 것도 한두번이지, 네 말대로 나도 질린다. 헤어져, 그럼."



... 심하게 싸우긴 했지. 그래놓고도 당장 작품을 올려야하니까 둘은 작업실로 왔고, 허니는 더이상 넌지시 마이크가 화해의 의미로 제 집으로 초대해도 오지 않았어. 열받은 마이크가 누굴 만나도 그러려니 했고 작품에만 집중하더라. 그러더니 지금의 남자친구를 언젠가부터 만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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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너무한다, 진짜..."



저가 다소 감정적이고 못된 말을 종종 하지만, 누구보다 저가 허니를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걸 아는 허니이기에 했던 말인데. 솔직히 이번엔 헤어지자는 뉘앙스가 아니었는데. 허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헤어지자할 줄 몰랐던 마이크는, 둘이 같이 사는 집에 도착해서야 허니의 PMS 기간임을 깨달았어. 허니는 이 때 몰아서 인간관계를 정리했는데 바보같이 저가 허니를 긁는 말을 했지. 제 무덤을 팠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었고. 



-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세요.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으음... 몇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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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이나 잤어. 너 요즘 가습기 안 틀고 자? 코 골던데."



"... 아, 가습기 청소 안해서... 해야겠다. 몰랐네."



가장 최근의 이별을 맞이하고 나서, 마이크는 부쩍 혼자인 티가 났는데 허니는 안난다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근래 둘이 같이 안 사는 티가 가끔 났어. 가습기같은 디테일은 마이크 담당이라서 허니가 신경 써본 적이 없었고, 빨래는 허니 담당이라서 마이크가 신경을 안 썼는데. 요근래 허니는 건조해서 잠을 잘 못 잤고, 마이크는 아끼던 흰 셔츠를 청바지랑 돌린 바람에 하늘색 셔츠가 되어서 왔어.



"남자친구가 이런 건 안 챙겨줘?"



"하암,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챙겨주냐.. 그리고 조만간 헤어질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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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잘 맞는다며. 너 엄청 좋아하는 거 같던데."



"캘리포니아 지사로 발령날 거 같대."



"... 그래?"



눈도 못 뜬 채로 마이크의 어깨에 기대있다가 겨우 일어난 허니를 보고, 마이크는 너무 웃는 걸 티내지 않으려고 애썼어. 솔직히 이번엔 너무 오래 가서 조바심 났지만, 마이크도 알고 허니도 아는 사실이야. 마이크에겐 허니밖에 없고, 허니에겐 마이크밖에 없어. 허니가 그저 이번엔 마이크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을 생각인 게 아닐까. 정신차리려고 애쓰는 허니에게 물을 건네며 마이크는 미소지었어. 쿨한 구남친인 척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으니까.














파이스트너붕붕

2024.04.30 00: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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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존나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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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0: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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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내가 깨붙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고 어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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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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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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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1: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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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보려고 아직 안 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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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7: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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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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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08: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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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기다릴게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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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1: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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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대존맛ㅠㅠ 센세 젭알 억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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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3:33
ㅇㅇ
모바일
어나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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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5: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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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나더ㅠ시급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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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5: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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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쳤다 미쳤다 너무 좋아서 읽는 내내 욕했어요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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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9: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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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이건... 이렇게 찰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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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20: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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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놓고 아닌척 사귈때랑 똑같이 구는거 개좋닿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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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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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ㅡㅁㅊ 존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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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07: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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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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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05: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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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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