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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19:55

당신한텐 순간이었고,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본 꼬마 한 명이었단 걸 알아요. 그리고 당신은 내가 아니었더라도, 그 코트 위에 있던 애가 나보다 어린애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든, 당신이라면 혼자 농구를 하고 있던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거란걸 알아요.



왜냐면 당신은 농구를 두 번 다시 없을 사랑처럼 사랑하는 사람이고,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니까. 

처음 보는 낯선 애한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주는 것도 모자라 다정하고 상냥하게 굴어줄 만큼,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경우는 드물죠. 

처음 보는, 불쌍해 보이는 어린 녀석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경우가 좀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처음 보는, 혼자 있는 애한테 동정이 아닌 다정하고 상냥한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같은 코트 위에 서서, 마주 보고 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예요. 상대가 농구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물론, 농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죠. 잠깐 어울렸을 뿐이지만, 당신이 뛰어난 선수란 건 농구공 좀 몇 년 만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사실이었죠. 사실 당신이 슛 넣는 걸 보면 농구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더라도'와 저 사람 잘한다'라고 바로 깨달을 거 같긴 해요.

당신 슛 넣을 때 정말 아름답고 멋지니까.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멋진 슛이니까. 





당신은 잘하는 사람이었고, 본인도 자기가 농구를 잘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낯선 사람인데도, 그 잠깐인데도 농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지더라고요.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야 많죠. 자기가 뛰어난 선수란 걸 알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들도 많아요. 근데 그냥 재능만 있는 게 아니라 농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좀 드물지도 몰라요.

그럼, 자기가 잘한다는 걸 아는 뛰어난 농구 선수가 길거리 위의 모르는 꼬마와의 농구조차도 진심으로 즐거워할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그날 당신과 만났던 기억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겠지만, 그날 기억 중 특히 못 잊을 순간은, 역시 당신이 슛을 넣을 때였죠. 교과서라고 불려도 될 깨끗한 자세에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공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웃는 당신 얼굴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잊기 싫더라고요.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오랜만이었거든요.





오랜만이었고, 처음이었어요.

누군가 농구하는 걸 보며'와 잘한다, 멋있다'라고 생각한 건 아주 오랜만이었고, 형만큼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죠.

그리고 누군가와 1 on 1은 오랜만이었고, 누군가와의 1 on 1이 즐거웠던 것도 오랜만이었으며, 누군가와 1 on 1를 한 게 즐거웠던 건 형과의 마지막 1on1 후 처음이었어요.















나에게 당신은 특별해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내게 특별한 사람이죠. 하지만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단 걸 알아요. 당신이 그날을 기억 못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때 당신에게 난 그냥 길 가다 우연히 본 꼬마였죠. 당신은 그날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아니었더라도, 어떤 장소에서든 누구든간에 혼자 농구하고 있던 사람을 그냥 못 지나쳤을 거예요.

당신은 농구를 좋아하는 만큼 농구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천성이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인지라.





나도 참 제멋대로인 인간이에요. 멋대로 호감을 품었다 멋대로 실망하고, 나 혼자 멋대로 고마워하고. 나 혼자 멋대로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차피 전부터 떠나기로 마음먹은 거면서 감히 고백 따윈 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주제에 비행기에 오르며 이번 기회에 맘 정리나 하자고 뻔한 핑계를 대는 거죠.







우리는 뭣도 아닌 사이인데 질투가 나고 짜증이 나죠. 나한테 특별한 건 오직 당신뿐인데, 당신에게 난 당신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니까. 

당신은 솔직히 웬 꼬마가 혼자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어도 함께 어울려줬을 거예요.

근데 웃기는 게,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상냥한 게 짜증 나 미치겠는데, 나는 당신의 그런 점을 사랑하거든.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고.

















처음 만났을 땐 내가 평생 그리워할 사람과 겹쳐 보였고, 그 후 다시 만났을 땐 살면서 다신 없을 최악의 인연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다 당신이 농구부에 다시 돌아왔을 땐... 고마웠어요. 당신과 친한 사이는커녕 당신이 농구부에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 사이엔 최악의 기억들뿐인데, 당신에게 고마웠어요.

아 처음 만났을 땐 당연히 그 축에 안 들지. 그건 나 혼자 기억하는 거잖아. 당신의 기억엔 없는, 나 혼자만의 추억이니까.







당신은 몰랐겠지만, 떠났던 사람이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건... 내게 의미가 컸거든요.










당신은 참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몇 번이고 인상이 달라졌죠.

당신은 나보다 고작 1살 많으면서 가끔은 나보다 한참 몇 살 위의 듬직한 형 같았고, 또 어떨 때는 1학년보다 철이 없어 보였죠.

덜렁거리고 성격이 급한가 싶다가도 침착하고 섬세하고.

분명, 어휴 저거 손 참 많이 가는 인간이다 싶었는데, 어쩔 땐 당신이 날 챙기고 있고.

당신이란 사람은,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죠. 당신은 호탕해 보이다가도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단순해 보이는데 복잡한 사람이었죠. 생각 없이 막 아무 말이나 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생각이 많고 혼자 속으로 삭이는 타입이었고.

나는 당신의 그런 모든 면이 좋았어요. 어떤 모습이든, 그건 당신이니까. 응, 그게 당신이니까 좋았어요.

















'태섭아.'

이상한 일이지. 분명 내 기억 속의 우리 형하고 다르거든요. 생긴 건 당연히 다르고, 날 부르는 거 말이에요. 목소리도, 말투도 분명 다른데, 어째선지 형이랑 비슷하게 들리는 거야.

분명 처음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이 날 부르는 게 이상하게... 친한 후배를 부른다기엔... 지나치게 다정한 거야. 원래 다정한 사람인 거야 나도 잘 알지.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인 거 나도 알아요. 

그러니까 친근함이 아니라... 애정이 느껴지는 거 같더라고요.

내 바람 때문에 내 착각인 건지,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날... 마치 날 소중하고 특별하다는듯이 불렀다고요.

우리 형이야 날 그렇게 부르는 게 당연하지. 내 형인데, 우리 가족인데.

그런데... 당신은 날 왜 그렇게 불렀을까요?










우리의 첫 만남은 나 혼자만의 기억 추억이고, 그다음은 최악의 재회였다가, 또 그 후엔 좋은 선후배 관계이자 좋은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태섭아.'

'아니다, 몸 건강하게 잘 다녀와라.'






내가 공항에 가기 전날, 오래도록 사랑한 당신을 오래도록 떠나게 되기 전날, 그 늦은 시각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서 원래 뭐라고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이혼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밤에 갑자기 불러내서 아무 말도 없이, 안주도 없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퍼마시다 한다는 말이...










"나 사실 너 좋아했어. 그땐 그냥 친한 후배 중에서도 네가 유독 맘이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우정이나 단순한 호감이 아니더라. 나 너 미국 가서야 깨달았어. 내가 너 정말 많이 좋아했다. 너 미국 가 있는 내내 좋아했어. 정말이야. 정말, 정말 많이 좋아했어."










당신 정말 비겁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데... 어떤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

당신은 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할 때 내게 성큼 다가오지. 나는 당신과 관련된 일엔 늘 겁이 많아지는데, 당신은 모두가 두려워할 순간엔 누구보다 용감해지지.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꺼내어 보여주는 건 쉬운 게 아니잖아.

근데 당신에 관해선 겁쟁이인 사람한테 이러는건...







미친새끼지. 이른 나이에 결혼하더니 이른 나이에 이혼하고, 이혼한지 얼마 안 됐으면서 몇십 년을 알고 지낸 후배한테, 그것도 자기 결혼식에서 왔단 사람한테 좋아했다니.















선배, 어쩌자고 당신에 관해선 겁쟁이가 되는 나한테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요.





"날 많이 좋아했다고요? 아닐 텐데."

"뭐? 네가 뭘 알아?! 내가 너 가고 얼마나 많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냐?!"

"나 가고 울었어요? 그건 몰랐네. 쓸쓸해한단 건 들었는데, 뭐 워낙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고 정 많은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지."

"모르겠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그래서 왜 울었는데요?"

"네가 떠나고 나서야 내가 널 좋아한단 걸 깨달아서... 내가 너무 늦어서, 너무 멍청해서, 그리고 네가 너무 보고싶어서..."

"날 많이 좋아해서 많이 울었다 해도, 나만큼은 아닐걸요?"

"응? 어, 뭐라고?"

"내가 더 많이 좋아할걸요? 내가 당신보다 더 많이 울었을 테고."

"어? 야, 잠깐, 잠깐만..."

"그래요. 나 미국 가서야 자기 마음 깨달았고, 나 미국 가 있는 내내 나 많이 좋아했다고 쳐요. 그럼 그 후엔? 나 국내 들어오고, 당신 팀 들어간 뒤엔? 이젠 나 안 좋아해요? 난 미국 가기 전부터 당신 좋아했는데. 아직도 당신 좋아하고."







이혼하고 갑자기 한밤중에 연락해 오더니 울면서 많이 좋아했다고 하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한테 이 지랄 하는 놈이나 둘 다 미친새끼지.










당신은 일상에선 겁이 많으면서, 중요한 순간엔 겁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비겁하게 사람이 숨겨둔 작은 틈새를 거침없이 파고드는 사람이고, 나는 당신에 관해선 겁이 많아지지만, 남들 보기엔 비겁하다 할지라도 기회를 놓치는 놈은 아니지.



















그때, 그 시절 우리 사이엔 분명 뭔가가 있었죠. 그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나 봐요. 나는 사실 그때 어렴풋이 확신이 아닌, 의심이 있었어요.

'혹시 이 사람 나 좋아하나?'


근데 그 의심이 기쁘고 설레기보단 두려웠어요. 우리 사이 관계가 변할까 봐 무서웠어요.

당신은 기억 못 하겠지만, 우리의 첫 만남은, 나한테 당신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다음 만남 땐 최악이었죠. 그리고 당신이 농구부로 다시 돌아왔을 땐 당신이 다시 좋아졌어요. 그 후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당신한테 푹 빠졌고요.

나는 우리의 관계가 한 번 더 변하면, 이미 충분히 좋은 관계가 나빠질까 봐, 이번엔 다신 돌이킬 수 없을까 봐 무서웠던 거 같아요.





그리고 눈치로 보아 선배는 우리 사이의 뭔가가 뭔지 몰랐죠. 분명 우리 사이에 뭔가가 있는데, 이게 친한 선후배 사이나 우정이라기엔 뭔가 다른데, 선배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던 거죠. 





당신은 그게 뭔지 몰랐던 거고, 나는 그게 뭔지 알았지만 무서웠던 거지. 그토록 바라던 걸 눈앞에서 외면할 정도로 겁에 질렸던 거야.







우리 둘 다 되게 어렸네요. 미숙했고요.






















"근데, 태섭아."

"아 또 왜요. 취했으면 얌전히 잠이나 자지 이 인간은 왜 취하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는 거야?"

"너 왜 나중에 나 아는 척 안 했냐."

"뭔 소리예요?"

"중학생 때 우리 만난 적 있는거, 왜 아는 척 안 했어?"

"지금 눈 뜬 채로 꿈꿔요?"

"너 거짓말 되게 못 한다. 그거 너인 거 진작 알고 있었거든? 네가 먼저 말을 안 해서 나도 그냥 가만있었지."

"...나인줄 어떻게 알았는데요?"

"그렇게 농구 잘하는 꼬마를 어떻게 잊어? 뭐 알고 보니 꼬마가 아니라 1살 어린 녀석이라 엄청나게 놀랐지만."

"선배는 꼭 잘 나가다가 사람 빡치게 해요."



 
2023.03.19 19: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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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친 선개추!!!
[Code: 264b]
2023.03.19 20: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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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다 와…센세 너무 좋아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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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20: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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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ㅠㅠㅠㅠㅠ서로 알고있았잖아ㅠㅠㅠㅠ괜히 돌아왔네ㅠㅠㅠㅠ그래도 만났으니ㅠㅠㅠㅠㅠ된거지ㅠㅠㅠㅠ앞으로 평생 붙어살아라ㅠㅠㅠㅠㅠ
[Code: 51bd]
2023.03.19 20: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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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다.....
[Code: ae08]
2023.03.19 21: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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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아!!!다 알고있던거냐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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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21: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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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 영원이 되었따....ㅠ
[Code: 1eab]
2023.03.19 21: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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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리 !!!!!!
[Code: abc8]
2023.03.19 22: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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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둘 서사 진짜 쩐다ㅜㅜㅜㅜㅜㅜ
[Code: 487d]
2023.03.19 22: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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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존나 좋아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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