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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10:45

https://hygall.com/609455140
일부 수정+추가해서 다시 올림..ㅠ



정말 의자에서 이렇게 잘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났을 때 실내는 벽난로 불빛과 등불로 너무 어둡지 않게 밝혀져 있었고, 온기가 은은하게 돌고 있었음. 태웅이 몸을 일으키자 상체를 덮고 있던 천이 아래로 툭 떨어졌음. 그가 잠든 동안에 남자가 덮어둔 모양이었음. 떨어진 천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던 태웅은, 안락의자 옆에 음식이 담긴 쟁반이 있는 것을 발견했음. 쟁반 위에는 스프랑 빵이 놓여 있었고 체하지 않게 천천히 적셔 먹으라는 쪽지가 같이 놓여 있었고, 언제 두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미미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음. 태웅은 벽난로 옆 바닥에 앉아 빵을 잘게 뜯어 먹기 시작했음.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난 뒤에 태웅은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음. 몇시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바깥은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음. 그 사람은 아직 밖에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창 밖을 기웃거리는데, 어느 순간인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음.

 

"뭐 봐?"

"!!?!??"

"아, 벌써 밖이 어두워졌네."

 

남자는 창문을 한번 확인하고는 태웅을 내려다 봄. 그는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는 태웅을 보고는 하하 웃었음. 그렇게 놀랐어? 그는 그렇게 묻고는 태웅의 머리를 세게 헝클어뜨렸음.

 

"…어디 있었던 거야?"

"잠깐 지하실에. 필요한 크기의 약병이 없어서."

 

태웅은 남자의 어깨에 거미줄이 묻은 것을 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몸에서 긴장을 좀 풀 수 있었음.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짧게 미소 지었음.

 

"너는…약사야?"

"음, 그렇다고 할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눈을 가늘게 떴음.

 

"그나저나 '너'는 좀 그렇다."

"……"

"난 윤대협이야. 넌?"

"……"

 

태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음. 아직 상대에게 자신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공유하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음. 대협은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그냥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음.

 

"뭐,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꼬마라고 부를게."

"태웅이야. 서태웅."

 

꼬마라고 불리기는 싫었는지 바로 이름을 말해주는 것에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대협은 어른스럽게 참아냈음. 이제 경계를 조금 풀어가는 애한테 다시 날을 세울 이유를 줄 필요는 없었음. 

 

"그래, 서태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굉장히 부드럽고 편하게 들렸음. 고향에서 도망친 후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사람은 윤대협이 처음이었음. 순간, 조용하던 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간신히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음.

 

 

 

 

 

서태웅은 일주일 정도 꼬박 윤대협의 챙김을 받았음. 일주일 동안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정말 아무런 요구도 없이 그냥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음.

 

오두막에는 침실도 침대도 하나뿐이었는데, 윤대협은 기꺼이 그것을 태웅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벽난로 근처에서 대충 이불을 깔고 잠을 잤음.

 

고작 일주일을 잘 먹고 잘 잔것 뿐임에도 서태웅은 그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음. 거칠거칠하던 피부도 많이 좋아졌고 뺨에도 혈색이 돌았음. 팔다리에 들어가는 힘이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음.

 

집에서 지내는 동안 서태웅은 윤대협이 어떻게 사는지를 관찰했음. 윤대협은 아침 일찍 나가서 정오가 가까워질 쯤에 수집한 식물과 약초를 가지고 돌아왔음. 그 후로는 몇시간이고 약을 끓이면서 졸기도 하고, 집안 정리를 하기도 함. 그걸 정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대협은 뭔가 꺼내놓기는 잘 하는데 제자리에 집어넣는 건 잘 못하는 편이었음. 그리고 그걸 완전 지저분해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쌓아놓는 것에 재주가 있었음. 그러다보니 집에는 용케 무너지지 않는 책의 탑이 곳곳에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음.

 

윤대협은 만든 약을 가져다가 마을의 약국에 팔아서 생활비를 벌었음. 양이 많지 않을 때는 그가 들고 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오두막까지 식료품 배달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 쪽을 통해 보낸다고 했음. 약을 팔아서 번 보수는 보통 식료품 가게에 달아놓거나, 물건을 받을 때 같이 받는 편이라고 했음. 약의 효능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벌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유리 공병이 비싼 편이었고, 가끔 책을 사면 남는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했음. 혼자 살기에는 이 정도면 괜찮지. 윤대협은 그렇게 정리했음.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중반, 키는 많-이 큰 편. 허여멀건한 첫인상에서 예상하듯 비실비실한 체격은 아니었지만 키에 비해 몸집이 큰 편도 아니었음. 머리는 맨날 위로 뻗쳐서, 손질할 생각도 없어 보였음. (이게 손질한 건데, 라고 나중에 윤대협은 서운해 했음.) 그는 확실히 어디 출신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 사람은 아니었음. 그가 나이 든 사냥꾼에게서 산 이 오두막에 정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는 말에, 어쩌면 윤대협이 보기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음.

 

"……"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근처를 산책하던 태웅은 짙은 푸른색의 깃털을 발견했음. 윤기가 반짝반짝하고 빛에 따라 검정색으로도, 파란색으로도 보이는 예쁜 깃털을 구경하다가 조심스럽게 챙겼음. 이유는 모르지만 윤대협에게 가져다주면 좋아할 거 같았음. 세상에 예쁜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앞에 짐마차가 하나 서 있는 것이 보였음. 식료품가게 주인인 변덕규가 온 것 같았음. 이미 필요한 짐들은 다 내렸는지, 변덕규는 마차의 짐을 정리하다 서태웅을 보고 아는체를 했음.

 

"오, 꼬마. 산책 갔다 오냐? 많이 건강해졌네."

 

서태웅은 경계하듯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고개만 살짝 끄덕거렸음. 변덕규는 옆을 지나가는 태웅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 듯 손을 뻗었다가 이전의 기억이 난 듯 금방 다시 거뒀음. 꼬맹이 주제에 손은 매워가지고… 쩝, 하고 서먹하게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마침 약병을 챙긴다고 안에 들어갔던 대협이 문을 열고 나왔음.

 

"지난 번 물약이랑 똑같이 만들었어요. 용법도 그대로예요."

"고맙다. 잘 쓸게."

 

변덕규는 약이 든 주머니가 깨지지 않게 잘 올려놓고는 수레에 올라탔음. 이번 겨울은 많이 춥댄다. 그는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한번 더 들리겠다면서 길을 떠났음. 대협은 큰 일을 하나 끝낸 것처럼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태웅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음.

 

"잘 걷고 왔어?"

"…응."

"손 씻고 와. 밥 먹자."

"저기, 이거."

 

태웅은 손에 쥐고 있던 깃털을 대협에게 내밀었음. 윤대협은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는 웃음을 터뜨렸음.

 

"나 주는 거야?"

"예쁘게 생겨서…"

"아, 청해조의 깃털이네. 진짜 예쁘다."

"청해조?"

"북쪽에 청해 근처에 사는 새인데,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어."

 

이쪽으로 지나갔나보네. 대협은 부엌/제조실 쪽으로 가서는 작은 공병을 가져왔음. 그가 태웅에게서 받은 깃털을 넣자 크기가 딱 맞았는지 안에 쏙 들어갔음. 대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그걸 몇번 이리저리 비춰보았음. 매끈한 깃털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태웅은 조금 멍한 기분으로 쳐다보고 있었음.





태웅대협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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