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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23:14
쿠로사와 집안으로 끌려오듯 시집 온 아다치랑
그런 아다치한테 집착하는 쿠로사와.
그리고 집안 사생아 타니 보고싶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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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환한 조명 아래.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 채워진 넓은 테이블엔 아다치가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이야기도 흥미 없었고. 어떤 향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쿠로사와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다치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큰 손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아다치가 화들짝 놀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래. 결혼식이 언제라고 했지?”

나이 지긋한 집안 어르신이 쿠로사와에게 물었다. 쿠로사와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그 날짜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아다치의 허벅지를 힘 있게 쥐었다. 아다치의 고개가 더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벌써 집으로 들어온 것이냐?”
“그게…….”
“아다치가 이 도시에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해서요.”

‘여긴 아다치의 고향보다 더 춥잖아요.’ 쿠로사와가 아다치의 대답을 가로챘다. 어른들은 쿠로사와에게 팔불출 끼가 보인다며 농담했다. 이 공간에서 아다치는 이미 쿠로사와의 아내이자 오메가였다.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간다 해도 그 사실은 갈고리가 되어 발목을 잡을 것 같았다. 아다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어디 가, 키요?”

아다치가 의자에서 일어나니 쿠로사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둘만 있을 때 부르는 애칭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아다치는 ‘화장실에.’ 하고 작게 대답하더니 답답한 호텔을 빠져나가 뒤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쿠로사와 가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다치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도망가는 것처럼.

아다치의 고향보다 더 춥다는 말. 그건 진짜였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급하게 짐을 싸느라 아끼는 옷은 전부 두고 왔다. 아다치는 납치당하듯 이곳으로 끌려왔다. 영국유학을 겨우 한 달 남긴 시점이었다.

쿠로사와는 약속 없이 아다치의 집을 찾았다. 그때 쿠로사와는 이미 약혼한 오메가가 있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쿠로사와 가와 왕래가 잦았던 사람이라고 들었다. 사실 아다치에게 쿠로사와는 어색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방문이 어색했었다. 그래도 손님이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을 뿐이었다.

‘미안해. 아다치. 결혼하기로 했던 그 사람은 이제 없어.’

쿠로사와는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약혼자에게 배신당했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순진했던 아다치는 쿠로사와의 갑작스런 방문이 어떤 방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쿠로사와를 위로했다. 쿠로사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방에서 새 술을 꺼내주었다. 아다치는 한사코 술을 거절했으나, 쿠로사와는 무척 집요했다. 아다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쿠로사와가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다치는 그걸 마시고 난 뒤의 기억이 없었다.

이미 밤이 내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아다치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숨이 차 죽을 때까지 달리고 싶었다. 차라리 죽으면 자유로워질 것 같아서. 아다치는 계단 옆에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여기엔 아다치가 좋아하는 게 없었다.

“형수님.”

그때. 아다치의 머리 위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다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타니였다. 쿠로사와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낳았다던 그 아이. 가문의 점처럼 남은 사람. 타니는 아다치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추워요.”

들어가세요. 피우던 담배를 아무렇게나 던진 타니는 아다치를 끌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다치는 쿠로사와와 똑 닮은 얼굴. 그러나 쿠로사와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타니가 아직도 어색했다. 마침 아다치를 찾으러 나온 쿠로사와가 타니에게서 아다치를 빼앗듯이 채갔다.

“키요. 어디 갔었어?”
“잠깐…….”

본딩한 오메가를 향한 집착은 알파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다치는 머뭇대며 대답하지 못했다. 도망쳤다는 걸 쿠로사와가 알면 집착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술 좀 그만 먹여. 어지럽대.”

대신 대답한 건 타니었다. 타니는 쿠로사와 옆을 지나면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할 수도 없었다. 아다치가 술에 약한 것도 사실. 오늘 필요 이상으로 잔을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쿠로사와는 바로 아다치를 부축했다. 쿠로사와의 몸이 닿자 아다치는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미안해. 저 녀석 버릇 없지? 원래 말투가 저런 애야.”
“으응…….”

아다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숨막히는 자리로 돌아온 아다치는 어떤 빛도 닿지 않는 곳에 조용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타니를 찾아냈다. 바쁜 쿠로사와 대신 자신을 마중나온 사람이 바로 타니었다. 쿠로사와 집안이 어떤 분위기인지 아는 아다치는 그 안에서 타니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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