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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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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의자에서 이렇게 잘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났을 때 실내는 벽난로 불빛과 등불로 너무 어둡지 않게 밝혀져 있었고, 온기가 은은하게 돌고 있었음. 태웅이 몸을 일으키자 상체를 덮고 있던 천이 아래로 툭 떨어졌음. 그가 잠든 동안에 남자가 덮어둔 모양이었음. 떨어진 천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던 태웅은, 안락의자 옆에 음식이 담긴 쟁반이 있는 것을 발견했음. 쟁반 위에는 스프랑 빵이 놓여 있었고 체하지 않게 천천히 적셔 먹으라는 쪽지가 같이 놓여 있었고, 언제 두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미미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음. 태웅은 벽난로 옆 바닥에 앉아 빵을 잘게 뜯어 먹기 시작했음.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난 뒤에 태웅은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음. 몇시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바깥은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음. 그 사람은 아직 밖에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창 밖을 기웃거리는데, 어느 순간인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음.

 

"뭐 봐?"

"!!?!??"

"아, 벌써 밖이 어두워졌네."

 

남자는 창문을 한번 확인하고는 태웅을 내려다 봄. 그는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는 태웅을 보고는 하하 웃었음. 그렇게 놀랐어? 그는 그렇게 묻고는 태웅의 머리를 세게 헝클어뜨렸음.

 

"…어디 있었던 거야?"

"잠깐 지하실에. 필요한 크기의 약병이 없어서."

 

태웅은 남자의 어깨에 거미줄이 묻은 것을 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몸에서 긴장을 좀 풀 수 있었음.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짧게 미소 지었음.

 

"너는…약사야?"

"음, 그렇다고 할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눈을 가늘게 떴음.

 

"그나저나 '너'는 좀 그렇다."

"……"

"난 윤대협이야. 넌?"

"……"

 

태웅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음. 아직 상대에게 자신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공유하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음. 대협은 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그냥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음.

 

"뭐,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꼬마라고 부를게."

"태웅이야. 서태웅."

 

꼬마라고 불리기는 싫었는지 바로 이름을 말해주는 것에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대협은 어른스럽게 참아냈음. 이제 경계를 조금 풀어가는 애한테 다시 날을 세울 이유를 줄 필요는 없었음. 

 

"그래, 서태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가 굉장히 부드럽고 편하게 들렸음. 고향에서 도망친 후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사람은 윤대협이 처음이었음. 순간, 조용하던 심장이 크게 뛰었지만 간신히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음.

 

 

 

 

 

서태웅은 일주일 정도 꼬박 윤대협의 챙김을 받았음. 일주일 동안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정말 아무런 요구도 없이 그냥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음.

 

오두막에는 침실도 침대도 하나뿐이었는데, 윤대협은 기꺼이 그것을 태웅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벽난로 근처에서 대충 이불을 깔고 잠을 잤음.

 

고작 일주일을 잘 먹고 잘 잔것 뿐임에도 서태웅은 그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음. 거칠거칠하던 피부도 많이 좋아졌고 뺨에도 혈색이 돌았음. 팔다리에 들어가는 힘이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음.

 

집에서 지내는 동안 서태웅은 윤대협이 어떻게 사는지를 관찰했음. 윤대협은 아침 일찍 나가서 정오가 가까워질 쯤에 수집한 식물과 약초를 가지고 돌아왔음. 그 후로는 몇시간이고 약을 끓이면서 졸기도 하고, 집안 정리를 하기도 함. 그걸 정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대협은 뭔가 꺼내놓기는 잘 하는데 제자리에 집어넣는 건 잘 못하는 편이었음. 그리고 그걸 완전 지저분해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쌓아놓는 것에 재주가 있었음. 그러다보니 집에는 용케 무너지지 않는 책의 탑이 곳곳에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음.

 

윤대협은 만든 약을 가져다가 마을의 약국에 팔아서 생활비를 벌었음. 양이 많지 않을 때는 그가 들고 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오두막까지 식료품 배달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 쪽을 통해 보낸다고 했음. 약을 팔아서 번 보수는 보통 식료품 가게에 달아놓거나, 물건을 받을 때 같이 받는 편이라고 했음. 벌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유리 공병이 비싼 편이었고, 가끔 책을 사면 남는 것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했음. 혼자 살기에는 이 정도면 괜찮지. 윤대협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는데 서태웅은 어쩐지 그 말에서 벽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음. 그러고보니 윤대협은 서태웅에게 이름과 나이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음. 그 이상의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그게 이상하게 속을 울렁거리게 했음.






슬램덩크 태웅대협 루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