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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23:53

IMF에는 도움요청기가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모두들 '그 버튼(The Button)'이라고 부를 뿐이다.

작은 회색 상자 위의 빨간 버튼. 유선으로도 무선으로도 어디에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어떤 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그 버튼'은 어느 날 장난처럼 IMF 본부에 홀연히 나타났다.

 

 
 

도움을 요청하세요.


 

 

불친절한 설명서처럼 한 줄만이 적힌 포스트잇은 필체를 분석하기 위해 누군가가 떼어갔고, 버튼 또한 정밀 조사를 위해 오랫동안 본부에 머물렀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해당 물건이 위험물이 아니라는 것밖에는. 마지막으로 버튼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단순한 장난감인가? 하지만 그게 어떻게 cctv를 교란시켰는지는 귀신만이 알 노릇이다.

 

이후, 그로부터 상자에 먼지가 얕게 쌓일만큼의 시간이 흘러ㅡ

 

 

 

 



  

'빌어먹을, 이단! 당장 왼쪽으로 꺾어!'

'월리, 내 앞에 철문.'

'잠금 풀렸- 윗층 난간 조심!'



 

적군 기지를 폭파하는 스텔스 미션은 성공했지만 꼬리가 (조금 많이) 붙은 이단 헌트 요원의 탈출길은 험난했다. 원래 준비되어있던 헬기는 타이밍이 꼬여 다른 팀원들만을 태우고 철수한 지 오래. 건물에 갇힌 채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간신히 피하는 상황에서 그가 살아서 복귀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무엇이 달랐을까. 글쎄, 아마도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구석에 박혀있던 '그 버튼'을 여러 번 내리치던 IMF 직원의 간절함이었을 수도 있고, 요원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현장의 급박함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빨간 버튼은 지난번과 달리 작게 진동했다.

상자에 조그맣게 나 있던 액정에 글자가 떠올랐다.

 


 

???이 당신의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적군이 보이지 않는 총알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단은 복귀 후 올린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현장을 주시하던 모두가 인식하는 '그 순간', 정확히 말하면 '그 버튼'이 진동했을 때부터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고.


백업요원이 존재하지 않되 존재하는 것처럼. 숨어있는 표적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머리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죽음의 수호천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단다. 그는 그 무정하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마치 전장의 축복을 받은 듯했다고 표현하며 답지 않게 문학적 문장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써냈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360도로 엄호받으며 이단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수월하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건물을 나온 시점부터는 그 축복의 느낌이 연기처럼 사라졌으나, 그때는 이미 대부분의 정예군이 원인불명의 헤드샷으로 사망한 이후인지라. 이단의 말을 빌리자면, '수호천사' 없이도 탈출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


 

 

"이해가 안 돼... 이 각도에서 총알이 날아왔다면 저격수는 반드시 이쯤에 있었어야 했다고."

 

쿼터마스터 부서의 월리 맥파렌이 소리쳤다. 그는 이젠 거의 화가 난 듯한 검지손가락으로 프린트물을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뒷처리반과 교차검증까지 했어. 이 각도가 맞아. 그런데 어라라? 저격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었네? 그ㅡ자리가ㅡ내ㅡ화면에ㅡ대문짝만하게ㅡ보이는 위치인데?!"

"발자국이나 무슨 장치같은 건 없었고?"

 

이단이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러니까, 총알이 발사되는 시점에 그 자리에 반드시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아하, 자동발사장치다?"

"원격제어 장치라는 거지."


 

월리는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이 자는 천재와 변태의 환상적인 혼합물이군. 적군 스나이퍼의 머리를 50미터 거리에서 정확하게 꿰뚫을 정도로 정밀한 사격을, 직접도 아니고 원격으로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그걸 굳이 또 '사격'의 형식으로ㅡ"


하하, 그러고 보니 원격장치라면 그자는 스나이퍼가 이 자리에 있을 걸 어떻게 알고 각도까지 완벽하게 설치했대? 하하하, 원격 각도 조정까지 가능할 정도로 고능한 장치면 눈에 안 띌 리가 없는데. 하하하...


 

"정신 차려." 이단이 월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게 처음도 아니잖아."



 

그의 말마따나, 수년 전, 이단 헌트가 그토록 문학적으로 표현했었던 '죽음의 수호천사'는 이후로도 끈질기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는 미션을 보조하는 쿼터마스터가 도움요청기('그 버튼')를 누를 때마다 해당 쿼터마스터의 현장요원을 수호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사격의 형태로 간단하게 위험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단순 화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 또한 미꾸라지처럼 해결했다.


눈에 띄지 않게 미행을 따돌려야하는 상황에서, 당해 미션의 쿼터마스터는 일반인 가득한 길거리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을 감수하고 도움요청기를 눌렀더랬다. 하지만 '수호천사'는 그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빠르고 깔끔하게 상대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교통체증을 일으켜 소란 없이 조용하게 미행을 떼어내주었다. 단순히 내 편 네 편을 나누어 목숨만 앗아가는 기계가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할 수 있는 고등한 존재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 사건 후 IMF(전에도 집요하게 뒤졌다마는) 이 미스테리한 조력자에 대해 전력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정말 머리카락, 발자국 하나도 없이 전무한 흔적에 IMF의 모든 요원들은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끙끙거렸고 나중에는 감탄했으며, 더 나중에는 화를 냈다.



 

정말 그 교통체증이 '수호천사'가 일으킨 게 맞을까?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가 사격이 아닌 종류의 대응법을 쓰는 모습을 그때뿐만이 아니라 이후로도 종종 보여와서.

 




 

"이놈의 수호천사,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죽빵 한 대 날려줄 테다."

 

월리의 말에 이단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7년간 연 사망 요원 수를 한 자리수로 줄여준 우리의 수호자를? 난 네가 이것보단 사리분별을 잘하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물론, 죽빵을 날리고 나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영원한 충성을 바칠 거야. 하지만 정말이지! 지금으로서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고."


 

이단은 짧게 웃었다. 줄리아의 죽음으로 5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마치고 IMF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제법 오래전 도움을 받았던 '그 버튼'이 여전히 건재한 데다가 지금까지도 적극적으로 요원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의외였다고 해야 하나.

'수호천사'는 든든하지만 언제라도 사라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이단은 그가 금방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자신은 아내를 잃었는데, 이 수호자는ㅡ 그는 IMF에 재직 중인 사람들만 신경 쓴단 말인가?

아니, 그냥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눌렀다면, 그러니까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들은 보호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로 전지전능하다면, 어쩌면 자신과 줄리아는...

 

"만약에 크렘린 궁전에서, 물론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긴 하지만, 만약에 '그 버튼'을 누를 일이 생긴다면 이번에야말로 이 존나게 감사한 분의 꼬리를 잡겠어."

"하하,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다고 네 미션이 잘못되길 바라는 건 아니야. 알지?"

"당연하지."



 

'수호천사'는 미션의 성공을 수호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현장요원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요원의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미션의 성공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경우라면 쿼터마스터는 함부로 '그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크렘린 궁전 잠입 미션은 '코발트'라는 자에 대한 정보 파일만을 목적으로 하므로, 미션이 엉망이 될지언정 쿼터마스터가 '그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션 목표가 핵무기 발사 장치라면 또 다른 얘기겠지만 말이다.

























메모장에서 발굴해서 올림. 월리 맥파렌은 그냥 아무렇게나 지은 엑스트라 이름.
미임파 이단너붕붕으로 썼던 것 같은데 과거의 나샛기 왜 여기까지만 썼냐 너붕붕 등장하지도 않은 거 실화?



이단너붕붕?
탐찌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