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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6 10:08
짜릿하지않냐
그게 진심이든 욱해서 지른거든 본즈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엔 충분하겠지. 목에 닿은 차가운 하이포 끝이 진즉 분사됐어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 그 말을 뱉었던 장본인인 커크가 순간 철렁 했으면 좋겠다. 본즈는 아무 말도 못 들은거처럼 대답없이 마저 하이포를 놓아주고 일어남.
다음날 오전 커크는 맞은편 침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걸 봤겠지. 수업은 이미 시작됐을 시간이었고 본즈는 자신을 깨우지 않았음. 술 좀 작작 마실걸. 아니 애초에 이 입이 문제였어. 언젠간 이 망할 주둥이가 사고를 칠줄 알았음. 뒤늦게라도 패드와 서적을 챙겨 강의실로 뛰어간 커크임.
첫수업은 귀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찌저찌 끝이 보였음. 생도 전용 라운지에 가서 무언가 먹으려 했지만 자신의 알레르기 목록을 외우고 있는건 이 세상에서 본즈가 유일했기에 손을 댈 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뭘 잘못 먹고 본즈를 보기엔 민망하잖아. 널려있는 의자 아무곳에나 가서 털썩 앉았는데 옆자리가 휑하겠지. 습관적으로 오른쪽에 붙어 앉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음. 강의실에서 다른 강의실까지 가는 길은 길었고 도착하니 해당 강의 전용 레코드와 패드를 잊고 온 걸 생각해냄. 기숙사까지 뛰어갔지. 문을 벌컥 열자 본즈가 너 또 이걸 까먹고 안챙긴거냐고 한소리 했고 커크는 그 잔소리에서 짜증이 아닌 안정과 다정함을 느낌. 아니 사실 기숙사엔 남겨진 패드 말고 아무것도 없었음. 커크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대에 실망하면서 서늘함만 감도는 방을 천천히 빠져나오겠지. 본즈가 있었다면 그를 잡아주고도 남을정도의 속도였음. 본즈가 있었다면 말이지.
그러다가 예상보다 일찍 본즈와 마주치면 좋겠다. 오후에 있는 언어 강의를 같이 듣는다는걸 잊고 있었어. 커크는 그에게 혼날 준비가 되어있었음. 그건 각오보다 기대에 가까워서 심장이 콩닥거렸겠지. 미안하다고 해야지. 술에 너무 취했다고. 팔을 붙잡고 흔들면서 어깨에 턱을 기대면 모르는 척 넘어가 줄거야.
걘 나를 불쌍하게 여기니까.
그런데 본즈가 커크를 피해 먼 곳에 앉아버리면 좋겠다. 강의는 이미 시작했고 커크는 본즈가 앉은 곳을 다급히 두어번 돌아보다가 교관의 눈초리에 그제야 시선을 앞으로 고정함. 그 전까지는 좀 외롭고 서글펐다면 이젠 심장이 쿵쾅거리면 좋겠다. 무서워졌음. 그가 없다고 과제를 까먹고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거 따위랑은 비교할 바가 못됨. 본즈가 내 옆을 피하고 있어. 본즈가 이제 나를 싫어해.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건 아이오와에서 삼촌 차를 훔치기도 전 꼬맹이 시절이 마지막이었음. 커크는 사람에게 더 이상 그런 기대와 희망을 걸지 않았고 실망을 하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그런 감각을 오래 잊고 살아서 그런가.
아니면 본즈라서 그런걸까... 그가 조심스럽게 재생패치를 붙여줄때, 빗 속을 뚫고 우산을 가지고 와줬을 때, 울지 않으려고 하면서 가슴속에 억지로 조각 처럼 새겼었음. 우산을 가져 온 주제에 그걸 쓰지 않고 온 본즈를 가증스럽게 본 적이 있었음. 날카롭게 새긴 그 말이 어제 결국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걸 막지 못한 자신을 때려 눕혀주고 싶었졌지. 이제 속이 시원해? 본즈가 떠나는게 니가 바란거였어?
커크는 마지막 강의도 앉아있기만 하다가 나왔음. 본즈는 문과 가까운 맨 끝 줄에 앉아있어서 커크는 그가 자신에게 잠시나마 시선이라도 던졌을지 아니면 곧바로 나갔을지 알 길이 없었음. 아마 방으로 돌아가면 기숙사 이동 신청서 같은게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 이미 짐을 다 싸서 나가버렸을 수도. 어차피 자신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고 또 같은 일이 반복 된거뿐임. 한동안 기숙사 혼자 쓰겠네. 잘됐어. 머릿속으로는 그래 잘됐어 괜찮아 라고 되뇌이지만 막상 커크의 발은 괜히 도서관까지 갔다가 기술부 본과 건물을 한바퀴 돌았음. 달이 머리 위에 뜨고서야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깨물며 기숙사로 향했지. 시발 가기 싫어.
내내 밤 공기를 맞고 겨우 기숙사로 돌아가보니 본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서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 앉음. 할 말이 있으니 앞에 앉아봐라는 본즈의 말에 기숙사 이동 신청서에 욕이라도 적을까 하는 상상하던건 어디가고 눈치를 힐끔 봄. 이제라도 매달리면 듣는척이라도 해주려나... 평소라면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럴때는 그럴듯한 생각 하나를 내주지 않아 초조해지는데 본즈가 커크에게 슥 다가오더니 너 열 있어? 하면 좋겠다. 내내 굶고 찬공기를 그렇게 마셨으니 감기 기운이 살짝 도는 정도겠지. 잘하는 짓이라며 의료기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준비하는걸 보고 커크는 눈물이 왈칵 나올거 같은 걸 꾹 참음. 밥 안 먹길 잘했다. 안 들어오고 돌아다니길 잘했다. 봐 또 안쓰럽게 보이니까 본즈가 넘어가 주잖아. 동정이면 어때. 이젠 그거라도 좋았음. 이거보다 더 한것도 하라면 할 수 있어.
동정 아니야.
응?
커크는 제 생각이 읽혔나 하고 티나게 흠칫 놀랐음. 본즈는 한숨을 내쉬고 뜸을 들이더니 아침에 깨우지도 않고 강의실에서도 못 본척 해 미안하다고 하겠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 했다고 함.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너한테 연민으로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먼저 하는 것도 본즈임. 커크는 입술을 뗐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음. 본즈의 어른스러움과 아량에 놀란 것도 있지만 여기서 소리 내면 초라하게 울음이 터질거 같아서 제 분수에 넘치게도 사과의 말을 듣고나 있었음. 싫으면 앞으로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커크가 황급히 고개를 붕붕 가로젓겠지. 본즈의 눈이 부드러워지며 무뚝뚝한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짐.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보던 얼굴인데 그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새삼스러워 커크가 시선을 아래로 살짝 피함.
다행이다. 안 할 자신은 없었는데.
뭐...너한텐 습관 같은 건가보지.
짐, 난 어젯밤부터 고민했어. 동정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야.
그럼 뭔데?
그건.. 니가 생각해봐.
중간에 쯧 혀를 차며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커크가 더 생각할 여유는 안주고 목뒤에 하이포를 세게 부딪혀 놓으면 좋겠다. 아프다고 파닥거리는 커크를 보면서 피식 웃는 본즈겠지. 언제 우울해서 다죽어 갔냐는듯 침대에 눕기전까지 밀린 하루치 말을 다하고 나서야 휴우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는 커크임. 기숙사방 등이 완전히 꺼지고 본즈가 옆 침대에 여전히 있다는걸 상기하며 이제 자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새파란 눈이 반짝 떠짐. 내가 생각해 봐라는게 무슨 뜻이지... 한동안 커크의 잠못이루는 밤이 이어지면 좋겠다.
그게 진심이든 욱해서 지른거든 본즈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엔 충분하겠지. 목에 닿은 차가운 하이포 끝이 진즉 분사됐어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 그 말을 뱉었던 장본인인 커크가 순간 철렁 했으면 좋겠다. 본즈는 아무 말도 못 들은거처럼 대답없이 마저 하이포를 놓아주고 일어남.
다음날 오전 커크는 맞은편 침대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걸 봤겠지. 수업은 이미 시작됐을 시간이었고 본즈는 자신을 깨우지 않았음. 술 좀 작작 마실걸. 아니 애초에 이 입이 문제였어. 언젠간 이 망할 주둥이가 사고를 칠줄 알았음. 뒤늦게라도 패드와 서적을 챙겨 강의실로 뛰어간 커크임.
첫수업은 귀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찌저찌 끝이 보였음. 생도 전용 라운지에 가서 무언가 먹으려 했지만 자신의 알레르기 목록을 외우고 있는건 이 세상에서 본즈가 유일했기에 손을 댈 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뭘 잘못 먹고 본즈를 보기엔 민망하잖아. 널려있는 의자 아무곳에나 가서 털썩 앉았는데 옆자리가 휑하겠지. 습관적으로 오른쪽에 붙어 앉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음. 강의실에서 다른 강의실까지 가는 길은 길었고 도착하니 해당 강의 전용 레코드와 패드를 잊고 온 걸 생각해냄. 기숙사까지 뛰어갔지. 문을 벌컥 열자 본즈가 너 또 이걸 까먹고 안챙긴거냐고 한소리 했고 커크는 그 잔소리에서 짜증이 아닌 안정과 다정함을 느낌. 아니 사실 기숙사엔 남겨진 패드 말고 아무것도 없었음. 커크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대에 실망하면서 서늘함만 감도는 방을 천천히 빠져나오겠지. 본즈가 있었다면 그를 잡아주고도 남을정도의 속도였음. 본즈가 있었다면 말이지.
그러다가 예상보다 일찍 본즈와 마주치면 좋겠다. 오후에 있는 언어 강의를 같이 듣는다는걸 잊고 있었어. 커크는 그에게 혼날 준비가 되어있었음. 그건 각오보다 기대에 가까워서 심장이 콩닥거렸겠지. 미안하다고 해야지. 술에 너무 취했다고. 팔을 붙잡고 흔들면서 어깨에 턱을 기대면 모르는 척 넘어가 줄거야.
걘 나를 불쌍하게 여기니까.
그런데 본즈가 커크를 피해 먼 곳에 앉아버리면 좋겠다. 강의는 이미 시작했고 커크는 본즈가 앉은 곳을 다급히 두어번 돌아보다가 교관의 눈초리에 그제야 시선을 앞으로 고정함. 그 전까지는 좀 외롭고 서글펐다면 이젠 심장이 쿵쾅거리면 좋겠다. 무서워졌음. 그가 없다고 과제를 까먹고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거 따위랑은 비교할 바가 못됨. 본즈가 내 옆을 피하고 있어. 본즈가 이제 나를 싫어해.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건 아이오와에서 삼촌 차를 훔치기도 전 꼬맹이 시절이 마지막이었음. 커크는 사람에게 더 이상 그런 기대와 희망을 걸지 않았고 실망을 하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그런 감각을 오래 잊고 살아서 그런가.
아니면 본즈라서 그런걸까... 그가 조심스럽게 재생패치를 붙여줄때, 빗 속을 뚫고 우산을 가지고 와줬을 때, 울지 않으려고 하면서 가슴속에 억지로 조각 처럼 새겼었음. 우산을 가져 온 주제에 그걸 쓰지 않고 온 본즈를 가증스럽게 본 적이 있었음. 날카롭게 새긴 그 말이 어제 결국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걸 막지 못한 자신을 때려 눕혀주고 싶었졌지. 이제 속이 시원해? 본즈가 떠나는게 니가 바란거였어?
커크는 마지막 강의도 앉아있기만 하다가 나왔음. 본즈는 문과 가까운 맨 끝 줄에 앉아있어서 커크는 그가 자신에게 잠시나마 시선이라도 던졌을지 아니면 곧바로 나갔을지 알 길이 없었음. 아마 방으로 돌아가면 기숙사 이동 신청서 같은게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 이미 짐을 다 싸서 나가버렸을 수도. 어차피 자신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고 또 같은 일이 반복 된거뿐임. 한동안 기숙사 혼자 쓰겠네. 잘됐어. 머릿속으로는 그래 잘됐어 괜찮아 라고 되뇌이지만 막상 커크의 발은 괜히 도서관까지 갔다가 기술부 본과 건물을 한바퀴 돌았음. 달이 머리 위에 뜨고서야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깨물며 기숙사로 향했지. 시발 가기 싫어.
내내 밤 공기를 맞고 겨우 기숙사로 돌아가보니 본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서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 앉음. 할 말이 있으니 앞에 앉아봐라는 본즈의 말에 기숙사 이동 신청서에 욕이라도 적을까 하는 상상하던건 어디가고 눈치를 힐끔 봄. 이제라도 매달리면 듣는척이라도 해주려나... 평소라면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럴때는 그럴듯한 생각 하나를 내주지 않아 초조해지는데 본즈가 커크에게 슥 다가오더니 너 열 있어? 하면 좋겠다. 내내 굶고 찬공기를 그렇게 마셨으니 감기 기운이 살짝 도는 정도겠지. 잘하는 짓이라며 의료기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준비하는걸 보고 커크는 눈물이 왈칵 나올거 같은 걸 꾹 참음. 밥 안 먹길 잘했다. 안 들어오고 돌아다니길 잘했다. 봐 또 안쓰럽게 보이니까 본즈가 넘어가 주잖아. 동정이면 어때. 이젠 그거라도 좋았음. 이거보다 더 한것도 하라면 할 수 있어.
동정 아니야.
응?
커크는 제 생각이 읽혔나 하고 티나게 흠칫 놀랐음. 본즈는 한숨을 내쉬고 뜸을 들이더니 아침에 깨우지도 않고 강의실에서도 못 본척 해 미안하다고 하겠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 했다고 함.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너한테 연민으로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먼저 하는 것도 본즈임. 커크는 입술을 뗐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음. 본즈의 어른스러움과 아량에 놀란 것도 있지만 여기서 소리 내면 초라하게 울음이 터질거 같아서 제 분수에 넘치게도 사과의 말을 듣고나 있었음. 싫으면 앞으로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커크가 황급히 고개를 붕붕 가로젓겠지. 본즈의 눈이 부드러워지며 무뚝뚝한 의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짐.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보던 얼굴인데 그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새삼스러워 커크가 시선을 아래로 살짝 피함.
다행이다. 안 할 자신은 없었는데.
뭐...너한텐 습관 같은 건가보지.
짐, 난 어젯밤부터 고민했어. 동정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야.
그럼 뭔데?
그건.. 니가 생각해봐.
중간에 쯧 혀를 차며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커크가 더 생각할 여유는 안주고 목뒤에 하이포를 세게 부딪혀 놓으면 좋겠다. 아프다고 파닥거리는 커크를 보면서 피식 웃는 본즈겠지. 언제 우울해서 다죽어 갔냐는듯 침대에 눕기전까지 밀린 하루치 말을 다하고 나서야 휴우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는 커크임. 기숙사방 등이 완전히 꺼지고 본즈가 옆 침대에 여전히 있다는걸 상기하며 이제 자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새파란 눈이 반짝 떠짐. 내가 생각해 봐라는게 무슨 뜻이지... 한동안 커크의 잠못이루는 밤이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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