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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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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골 갖고 태어난 경국 음인 황자 담태신 오해해서 미래의 마신으로 알고 걍 존나 굴리는 소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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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아까는 왜 그랬을까?

그가 자신을 직접 찾아왔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자신을 묵묵히 보고만 있던 소늠은 어딘지 낯선 사람 같아 보였다.

순간 스쳐 지나간 당혹스럽다는 표정, 무언가 머뭇거리던 행동. 그리고 아결이 그를 밀치던 순간에도 감정 변화는 거의 없어 보였다.

살며시 눈을 뜨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도 허공에는 희미하게나마 그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에겐 언제나 청아한 솔잎 같은 향기가 났다. 언제까지고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소늠과 꼭 닮은 향이었다.

어젯밤 꿈에서라도 솔잎 향을 맡았던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늘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던 그였으니, 제정신이 아니던 와중에도 제게 다정하게 구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가 자신을 돌봐주는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언제였더라, 성국에 막 도달했을 때 작은 소망을 품었었다.

경국 황실에서 몇 번 마주쳐 보았던 그의 성품이라면 친밀해질 기회는 있을 거라고. 비록 사랑의 감정은 아니더라도 그저 서로를 존중하며 부부답게 조용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조그만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헛된 꿈인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뒤였다. 감히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될 이를 남몰래 품게 된 벌로 한평생 처음으로 생긴 지키고 싶던 것을 잃었으니.

오래 전에 끔찍한 통증을 느꼈던 아랫배 깊숙한 곳이 다시금 욱신거렸다. 그곳의 격통은 이제 지독하도록 익숙했다.

담태신은 가만히 몸을 웅크려 텅 빈 배를 감싸안고 도로 눈을 감았다.

아침이 오기까진 너무 멀었고, 추웠고, 아팠다.



ㅡㅡ



책을 들춰보던 손이 멈추었다.

온통 평범한 서적들만 자리 주변에 있었다. 수상해 보이는 점은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그저 정갈하게 정돈된 것이 눈에 들어올 뿐.

제일 위에 덮여있던 것을 집어들고 대강 펄쳐 훑어보아도 그저 저잣거리에 흔하게 파는 서적이었다.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가볍게 공부할 법 한 것이나 서예나 다도, 자수에 관한 것만 있었다.

붓과 벼루, 연적은 종이 위에 가지런하게 올려져 있었고 차를 끓이는 도구들 또한 창가에 단정히 놓여져 있다.

확실히 안정되는 공간이었다. 이 자리에 올라 앉아있으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출입구는 보이지 않고 그저 빽빽한 책장만 시야에 들어왔다.

창문을 열지 않고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면 아원의 말대로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법했다.

촛불을 훅 불어 끄던 찰나, 저쪽 책장의 한 귀퉁이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책들에 비해 색이 바래고 표지가 낡아 있었다.

본능적으로 수상함을 느끼고 그 앞에 다가가 손을 뻗어 책장 사이에 꽉 끼어 있던 것을 힘을 주어 뽑아낸 후 펄치자마자 똑같이 누렇게 약간 바랜 종이 하나가 팔랑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을 집어 뒤집어보자 거칠게 휘갈겨 쓴 듯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편지인 듯 싶었다.

종이를 당장 펄쳐보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제게 무척이나 적대적이던 남자가 뇌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가 어린 마존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이곳을 함께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높은 확률로 담태신이 무슨 이유에건 숨겨두었던 것 같았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당분간은 그들의 의심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다시 서적 사이에 잘 끼우고 그 옆에 있던 책 두어 권을 함께 챙겨 걸음을 재촉했다.



ㅡㅡ



얼음물은 이미 상처투성이인 손을 악화시켰다.

찌르는 듯한 통증을 잊어보려 애써 다른 생각을 해 보려 했지만 열이 오른 머리로는 그것조차 쉽진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까진 쉬라고 말리던 이의 말을 듣지 않은 건 후회하지 않았다.

마지막 식기를 집은 손을 빼자 손가락 끝에서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미 매서운 겨울 바람으로 잔뜩 얼어붙은 피부에 계속해서 끼얹어지는 찬 것이 소름끼쳤다.

그들의 식사는 이미 끝이 난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안쪽은 고요한 침묵만 흐를 뿐이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그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은 익숙했으나 오늘은 그것을 마주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천근만근인 다리를 움직여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건 이미 텅 빈 접시들 뿐이었다. 늘 그랬듯이 남겨진 음식은 없었다.

잠시 우두커니 멈춰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무얼 기대한 거지? 이미 익숙한 것이 아니었나, 그들이 제 몫의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남겨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몸은 이미 익숙하게 저 한구석에 놓인 나무통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뒤섞인 음식물들은 짐승의 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으나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얻는 것이라면 족했다.

적어도 그곳에서처럼 배를 곯진 않으니 그것이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것을 약간 덜어 그릇에 담았을 때 누군가 제 손목을 거칠게 붙들었다.

손에 쥐여진 식기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나 사방으로 파편이 흩어지며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에 들어왔다. 손목을 붙잡은 사람이 거칠게 끌어당기자 모든 힘이 빠진 몸은 그 품에 부딪혔다.

열에 달뜬 머리로는 더 이상 생각이란 걸 이어갈 수는 없었다. 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니 유모가 보고 싶었고, 초상화로 겨우 얼굴을 알게 된 모후를 뵙고 싶다는 멍청한 생각만이 들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뚱아리는 지금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젠 그냥, 다 그만하고 싶었다.



ㅡㅡㅡ



붙든 그의 손목 피부는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다.

손목을 붙잡히자 그저 멍하니 잡힌 부분을 바라보는 이의 반응 속도는 어젯밤보다 훨씬 굼떴다. 그 꼴을 보자 왜인지 모르게 속이 끓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고 하루 만에 다시 악화된 건 어젯밤의 일로밖에 설명이 되질 않았다. 경악하던 얼굴, 숨 막히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떨던 몸, 제대로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것.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그.

제가 바로 뒤에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설거지를 하던 이는 손을 녹이려 몇 번이고 얼음물에서 손을 빼 입가로 가져가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던 제 인내심의 한계는 그가 제 몫의 음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고 익숙한 듯이 한켠에 놓인 것에 다가가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먹으려 들 때였다.

식기를 집은 왼손을 붙들자 그대로 떨어져 깨지는 그릇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는 천천히 붙잡힌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지금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려는 듯이.

붙잡은 손목을 그대로 잡아당기자 제 품에 푹 쓰러진 그를 붙들고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반쯤 정신을 놓은 듯한 담태신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ㅡㅡ



어린 마존은 이틀 전 밤처럼 미동도 없었다.

''전하.....''

흘끗 쳐다보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다시 입을 다물고 들고 온 것을 곁에 내려놓았다.

침상에 걸터앉은 자세에서 손만 뻗어 그의 소매를 들춰보았다. 화상 자국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진 것처럼 보이는 깊은 흉터였다.

고르게 숨을 내쉬는 얼굴은 겁먹은 듯한 커다란 눈이 감겨 있자 너무나도 평온하고 유순해 보였다. 그의 소매를 마저 걷어내자 자신을 따라 걸터앉은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이라도 끓여올게요.''

그를 눕히고 나서 나이가 지긋해 보이던 태의를 불러오자, 그는 담태신을 진맥하곤 머뭇거리며 제게 그가 너무 오랫동안 무리해서 몸이 더는 견디지 못한 것 같다 했었다.

그에게는 그저 충분한 음식과 물, 수면이 필요하다 할 뿐.

제가 오늘 소주방에 들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외출 준비를 돕던 아원이 담태신이 아직 별채에 있냐는 질문에 늘 하인들과 식사를 한다며 소주방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 걸려 찾아가 본 것 뿐.

아이가 가져온 화상고의 뚜껑을 열고 깨끗한 천을 집어들어 보기만 해도 욱신거리는 자국 위로 가볍게 누르자 피가 섞인 진물이 흰 천에 베어나왔다.

혼절하듯이 잠든 와중에도 통증을 느꼈는지 순간 그의 숨이 거칠어지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을 떼어낸 후 연고를 손가락으로 덜어내곤 반대쪽 손으로 마른 손목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어젯밤 제가 읽은 것에 대해 더 알아내려면 우선 이 남자에게 얽힌 것들을 알아내야 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가 자신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친절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불현듯 어젯밤에 자신을 보자마자 지레 겁부터 집어먹던
그 눈이 떠올랐다.

악의나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쓸쓸함과 끝없는 설움만이 어려있던 맑은 눈망울이 스쳐지나갔지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어린 마존을 동정해서 뭐하겠는가? 그가 안쓰럽다거나 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분명히 하건데, 그를 이렇게 이용하려 드는 건 500년 후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 대업만 끝난다면
마음 편히 그의 마지막 숨결을 앗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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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위 라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