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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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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과거 이야기 4




황제의 총비인 전귀비의 열여섯번째 탄일 연회 준비에 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 승건궁의 궁인들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건 마찬가지였어. 강징 역시 상궁의 등쌀에 못이겨서 며칠전부터 서역에서 들여온 향유를 푼 물로 탕욕을 하고 황제가 하사한 비단으로 지은 옷들을 입어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거임. 강징의 탄일 아침에 승건궁에 황제가 내린 하사품을 든 태감들이 줄지어 들어오는데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앞뜰을 꽉 채울 정도였음. 강징은 황제가 하사한 선물들을 웃는 낯으로 받고는 비단과 장신구들을 제외한 물품들은 창고에 넣어두라고 명함. 물론 고생한 태감들에게 은자가 든 전낭을 챙겨주는것도 잊지 않았음. 강징은 경대 앞에 앉아서 정성껏 치장을 하다가 망기가 유모와 함께 안으로 들어온걸 보고 방긋 웃었어. 망기가 낯을 가리느라 유모의 뒤에 숨어있다가 강징이 아잠하고 손을 뻗으니 그제야 곁으로 와서 손을 붙잡음. 망기는 강징이 치장한 모습을 보더니 귀끝이 붉어져서는 신기한듯 쳐다보기만 했어. 강징이 웃으며 금보요를 운환에 꽂고는 망기에게 어미의 모습이 어떠냐고 물어봄. 망기가 부끄러워하며 대답을 피하자 강징이 잡은 손을 흔들며 끈질기게 물어보았어. 망기가 한참후에야 예뻐요하고 겨우 대답을 하는데 강징이 짖궂게 비녀가? 아님 어미가 이쁘냐고 계속 물어봄. 망기가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예뻐요하고 고개를 푹숙임. 강징이 그런 망기의 뺨을 다정하게 쓰다듬고는 상궁을 불러서 황자가 입을 의복을 가져오라고 명했어. 강징은 지난 몇달간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만든 옷을 망기의 몸에 이리저리 갖다대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쓸쓸함에 한숨을 쉼.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제가 낳은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날 저녁 강징이 망기의 손을 잡고 연회가 열리는 건청궁으로 향하는데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인 정빈과 무답응을 마주치고야 말았음. 얼마전에 해귀인이 공주를 낳은 공로로 귀인에서 빈으로 진봉되고 곧을 정이라는 봉호를 받았거든. 무답응이 굳은 얼굴로 예를 올리는둥 마는둥하고 정빈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는 강징과 망기를 번갈아보았어. 그리곤 피식 웃으며 귀비마마께오서 양자를 그리 살뜰이 챙기시니 하늘도 탄복하여 언젠가 꼭 황통을 이을 황자를 주실거라고 말하는게 아니겠음. 강징은 정빈이 제 처지를 비꼴 의도로 말한게 분명해서 화가 치밀었음. 그래서 망기의 손을 꽉 쥐고는 본궁에게는 이미 황자가 있으니 하늘이 탄복할만큼 치성을 드리는건 자네나 할 일이지. 폐하께 하루라도 빨리 황자를 안겨드려야 하지 않겠나? 자네의 연치가 적지 않으니 하는 말일세. 강징의 말에 정빈의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연지가 발린 입술을 꾹 깨물었어. 강징의 말마따나 이미 이립이 넘은 나이라 더 이상 회임을 기대하긴 어려운게 사실이었음. 공주만 연달아 낳은 이후로 저를 찾는 황제의 발길도 뜸해졌고 무엇보다 저는 총애를 받은적이 없으니 그 말에 더 속 쓰렸지. 정빈이 분을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다가 언제까지 총애를 받을줄 아냐고 개국 공신 가문의 배경만 없었다면 자신과 별반 다를것없는 주제에 감히라고 소리를 지름. 그 말에 무답응이 당황해서 소매를 붙잡고 말리려고 했지만 정빈이 매우 분노한 상태라 도무지 말릴수가 없었음. 강징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망기가 앞으로 나서더니 모비께서 정빈마마보다 품계가 더 높으신데 그리 방약무도하게 구셔선 안된다고 지적함. 강징은 낯을 가리는데다가 말수가 적은편이라 남 앞에 나서는것을 싫어하는 망기가 저를 위해 나선게 기뻤지만 한편으론 아이에게 못볼 꼴을 보여준것 같아서 손을 잡아당겼어. 아잠 이러다 연회에 늦겠다 어서 가자꾸나. 그 말만 하고 돌아서 걸어가는데 정빈이 거의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음. 천것이니 죄인의 자식이니 남총이나 다를바가 없다느니 떠들어댔지만 강징은 불경죄에 해당하는 말들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어. 강징이 망기와 눈을 마주치고 남말하기 좋아하는 천박힌 것들이 떠들어대는 말들은 귀에 담을 필요도 없다고 하곤 아잠 넌 고소 제일 명문인 운몽 강씨를 외가로 두었다는 것을 잊지마라! 이 어미와 운몽 강씨가 너를 지켜줄것이다 알았느냐? 라고 단단히 명심시킴.






강징은 연회를 즐기다가 망기의 입가에 가루가 묻은것을 보곤 영견으로 입을 닦아주곤 망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앞접시에 덜어줌. 그때 강징과 그나마 가깝게 지내는 다른 비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제에게 귀비께서 성년이 되셨는데 어떤 선물을 주실것이냐고 물었어. 그 말에 황제가 웃는 낯으로 귀비 탄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묻는데 강징이 폐하께서 주신 하사품이 차고 넘칠 정도라 더 바라는것이 없다고 대답함. 태후가 강징을 보며 저렇게 욕심이 없어서 쓰냐며 황제가 귀비를 위해 아주 귀한 탄일 선물을 준비했으니 기대하라고 웃는게 아니겠음. 그에 황제가 탄일이니 우선 짐의 축하주 한잔을 받아야지 하고 잔을 들어 술을 권했고 강징이 잔을 들어서 감사 인사를 하고 술을 마셨음. 그러고는 자리에 앉으려는데 황제가 전귀비를 황귀비로 책봉하고 책봉례는 내년 봄에 길일을 택해 거행하게 하며 앞으로 육궁을 다스리게 하라는 명을 내림. 그 말에 연회에 참석한 비빈들이 일제히 술렁였고 강징 역시 생각치도 못한 황귀비 책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당황해서 굳어있었음. 그러자 태후가 귀비가 너무 놀란 나머지 황제에게 사은절을 올리는것도 잊은 모양이라고 웃었어. 강징이 뒤늦게 황제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음. 망기가 강징의 안색을 살피고 걱정이 됐는지 소매를 붙잡는데 강징이 망기의 머리를 쓰다듬곤 웃어보임. 정빈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놀라서 잠시 넋이 나갔다가 이내 표정을 구기곤 앞에 놓인 술병에 든 술을 연거푸 따라서 마심. 황귀비라니 황귀비는 아무나 오를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어. 보통 중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귀비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황귀비로 특진시키거나 황후가 공석일때 황후 내정자를 황귀비로 봉하는게 대부분이었음. 설마 귀비를 황후로 책봉할 생각인가? 만약 황후가 된다면 그동안 제가 방자하게 굴었던것을 어떻게든 응징하려고 들텐데. 정빈은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공주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공주가 잘 시간이라는 핑계를 대곤 급히 자리를 뜸.






강징은 연회가 파하자마자 승건궁으로 돌아와서 세욕하고 침의 차림으로 머리를 빗고 있었음. 저를 황귀비로 책봉하겠단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아서 머리를 빗다가 말고 빗을 내려놓음. 그러곤 도대체 폐하께선 무슨 생각이신거지? 하고 중얼거림. 그때 등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만지길래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음. 황제가 언제온건지 뒤에 서 있어서 얼른 인사를 올리려는데 팔을 붙잡고 만류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어. 강징이 왜 기별도 안하시고 오셨냐고 차림이 단정치 못해서 뵙기 부끄럽다고 하는데 황제가 말없이 웃기만 함. 강징은 그런 모습이 의아하기만 한데 갑자기 와락 끌어안고는 이대로 잠시만 있자고 말함. 강징이 가만히 품에 안겨있다가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뾰루퉁해짐. 신첩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니 아이 대하듯 하지 마시라고 하니까 황제가 겹쳤던 몸을 떼냄. 그러고는 강징의 코를 슬쩍 꼬집고는 애정 표현도 못하느냐고 잔소리를 함. 강징이 그 말에 애정 표현은 이런게 아니냐고 뺨에 슬쩍 입을 맞추곤 배시시 웃었음. 황제가 그런 강징이 사랑스러운듯 뺨을 어루만지다가 후궁의 으뜸인 황귀비가 된 기분은 어떠냐고 물었어. 강징이 그 말에 잔뜩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육궁을 다스리는 막중한 책임을 지기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궁중의 법도를 다 익히지 못했다고 말함. 황제가 조금전까진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하더니 이젠 나이가 어리다고 하냐고 웃고 넘김. 아무래도 높아진 품계로 인한 부담감 때문에 별 생각없이 하는 투정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음. 예로부터 황귀비는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이만이 오를수 있는 자리라고 하더니 짐이 줄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어. 강징이 황제의 손을 붙잡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듯 입을 달싹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임. 그러곤 갑자기 황제가 뜬금없이 경대 앞에 앉아보라고 해서 영문도 모른채 경대의 앞에 앉았음. 도대체 무엇을 하려나 했더니 옥빗을 들어 머리를 빗기곤 어설프게나마 머리를 틀어올러서 봉황 비녀를 꽂아줌. 강징이 순금으로 만든 봉황 비녀를 만지작거리다가 봉황의 상징에 대해 깨닫고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림. 황제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마음에 드느냐 하고 묻기에 폐하께서 주신것은 그게 무엇이든 다 마음에 듭니다 하고 대답을 함. 사실 강징은 황후의 상징인 봉황 비녀도 황귀비의 지위도 다 필요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리 말하면 불경인것을 알기에 꾹 참음. 대답과는 달리 마음에 들지 않았어. 제가 바라는것은 금은보화도 화려한 장신구도 아니고 허울뿐인 황귀비 자리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것들이 아닌데. 당신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당신과 나를 닮은 어여쁜 아이를 가지면 더 바랄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바라는것이 헛된 욕심이라고 할까 입술을 지그시 깨물음.







그로부터 며칠후에 강징은 황제가 다른 비빈의 패를 뒤집었단 말을 듣고 일찍 잠자리에 든 상태였음. 선잠에 들었는데 가까이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에서 깨어남. 침상 기둥에 기대어 앉아 불침번을 서고 있던 상궁이 휘장을 걷어내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뜸. 상궁이 잠시후에 돌아와 황자님께서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있단 말을 하는게 아니겠음. 강징이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란 나머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망기가 지내는 승건궁의 부속 전각으로 뛰어갔어. 강징은 망기가 침상에 누운채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을 계속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충격에 빠져서 얼굴이 하얗게 질림. 유모가 그런 망기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가 강징의 얼굴을 보고 낯빛이 몹시 어두워졌어. 강징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유모에게 황자가 어찌 이러느냐고 다그치듯 물음. 유모가 황자님이 잠저에 계실때부터 꽤 오랫동안 야경증을 앓으셨는데 요즘은 괜찮으시길래 나으신 줄로만 알았다고 대답할거야. 강징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모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명하고는 여전히 새된 비명을 지르는 망기를 끌어안았어. 쉬이이 아잠 괜찮다 어미가 왔잖니. 망기가 귀가 찢어질것처럼 새된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다가 강징이 끌어안고 진정을 시키니 금세 잠잠해졌어. 강징은 망기의 얼굴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있길래 영견으로 땀을 닦아주고 상궁에게 미지근한 물을 가지고 오라고 이름. 망기가 눈을 질끈 감고 바들바들 떨면서 여전히 겁에 질린것처럼 구는 모습을 보고 강징이 눈가를 살살 쓸어주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어. 많이 무서웠지?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니 참지 말거라. 그렇게 달래니 그제야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고 딱해서 눈물이 날것만 같아 입술을 억지로 깨물었어. 아직 열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인데 어리광 한번 부리는 법없이 의젓한척을 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가 가진 모든것을 다주겠노라고 다짐을 해놓고 매일밤마다 이리 공포에 떠는것을 몰랐다니 어미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함. 제가 낳은 아이가 아니어서 더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걸까 싶어 죄책감마저 들었어.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기가 강징의 침의 자락을 꾹 쥐고 올려다보는데 눈동자에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음. 강징이 등을 토닥여주며 어미가 곁에 있을테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다독임. 잠시후에 상궁이 가져온 미지근한 물을 마시게 한 후에 유모에게 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탕욕을 시키라고 명함.







강징은 망기가 유모와 함께 자리를 뜨자마자 승건궁의 궁인들을 모두 불러모아 오늘 있었던 일을 함구할것을 명함. 만약 오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갈시엔 외부에 발설한 자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더니 다들 평소와 다른 강징의 모습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음. 잠시후에 강징은 궁인들을 모두 물리고 망기가 갈아입을 침의를 준비하고 침상에 새 침구를 깔았음. 그리고는 탕욕을 마치고 침전안으로 들어온 망기의 머리를 손수 말려주고는 깨끗한 침의로 갈아입힘. 망기는 자시가 넘은 늦은 시각인데도 강징이 계속 제 곁을 지키고 있자 그것이 매우 의아한 모양이었어. 강징이 오늘부터 당분간 어미랑 같이 자자꾸나 그리 말했더니 망기가 굳은 얼굴로 자긴 어린 아이가 아니니 혼자 잘수가 있다고 말함. 강징이 웃으면서 어미가 혼자 자기 무서워 그런거라고 아잠과 함께 자면 안무서울것 같다고 둘러대며 뺨을 살짝 꼬집음. 그 이후 약간의 실랑이 끝에 강징이 망기를 침상 안쪽에 눕히고 바깥쪽에 모로 누워서 계수를 꼼꼼하게 덮어줌.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넘겨주고 가슴팍을 토닥여주었어. 요람이 좌우로 움직이네. 어여쁜 아가야 눈 감고서 꿈속에서 잠들거라. 아가야 빨리 자라라.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렴. 강징이 자장가를 불러주니 금세 잠이 들었는데 소맷자락을 꾹 쥔채였음. 잠든 사이에 제 곁을 떠날까 무서워서 그런걸까. 곤히 잠든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괜시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짐. 양자라곤 하나 일곱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것을 알고 있었어. 황족들 사이에서 나이 어린 제가 황자의 양모 노릇을 잘할수 있을지 우려의 소리가 있었단것 또한 알고 있었음.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일부러 더 노력한것도 있지만 아이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없었다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겠지. 강징이 망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뺨에 입에 맞추고 어설프고 많이 부족한 어미지만 네가 모진 풍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속삭였음.









강징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망기를 괴롭혔던 야경증은 몇달만에 사라졌어. 망기가 야경증 앓는다는 이야기가 황제나 태후의 귀에 들어갈까 태의원 소속의 태의가 아니라 궁밖의 의원을 불러와서 진맥케하여 약을 짓게 하는등 여간 신경을 쓴게 아니었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회임이 잘되는 비방이나 약재를 밖에서 몰래 들여오니 어쩌니 했지만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 일일히 대응하지 않았겠지. 강징은 아직 어린 망기를 양육하고 궁중의 일을 돌보느라 눈코 뜰새가 없이 바빴거든. 그 이듬해 봄 황귀비로 정식 책봉되고 황후를 대리해서 육궁을 다스리게 되고 나선 더욱 바빠졌어. 강징을 몹시 아끼는 태후는 품계만 황귀비지 사실상 황후나 다름이 없다며 전례가 없는 대우를 받고 있으니 곧 황후가 될거라고 기뻐했음. 태후의 말대로 강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음. 황제가 강징을 황귀비로 책봉하며 비빈들과 공주 그리고 내외명부의 여인들에게 경하례를 받게 했는데 이전에 책봉된 황귀비들중 그런 경하례를 받은 이는 없었거든. 그뿐만 아니라 황귀비 책봉을 천지와 사직과 태묘에 고하고 황태후에게 존호를 올렸고 이는 정궁 황후 책립때나 하는 것이었어. 태후의 말처럼 품계만 황귀비일뿐 사실상 정실 부인이나 다름없었어. 황제는 강징을 몹시 아끼고 강징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줬지만 여전히 동침을 하지 않았고 그게 큰 걱정거리였음. 이제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자신과 가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만 했지. 황제에겐 황후가 없고 적자가 없는 상황에서 품계가 높은 비빈들이 낳은 황자가 황위를 이을 가능성이 높았음. 모친의 신분을 중요시하는 고소에서 강징처럼 당대 최고 명문가 출신을 어미를 둔 황자라면 황위는 따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어. 이러한 이유들로 강징이 궁중에 들어온지 서너해가 지나도 수태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운몽에서는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 강징은 제가 성년이 되어도 여인처럼 가슴이 부풀지도 않고 체모가 나지 않기 때문에 황제가 저와 동침을 하길 꺼려하는 것이라고 어림짐작했음. 그래서 부친에게는 제게 문제가 있어서 수태가 어려울듯 하니 가문의 다른 여식을 후궁으로 들이라고 권함. 그 이듬해 강징의 이종 사촌 누이인 왕씨가 강징과 강풍면의 천거로 후궁에 들어왔음. 얼마후에 회임을 하여 공주를 낳았지만 그 후에 수년이 지나도 황자를 얻진 못했음. 그 사이에 정빈이 낳은 공주가 병을 얻어 요절하고 정빈이 크게 상심해 점점 허약해지더니 공주의 뒤를 따랐음.







올해로 열여섯이 된 망기는 얼마전에 군왕으로 봉해져서 황제로부터 왕부를 하사받고 출궁을 한 상태였음. 부친인 황제를 배알하자마자 승건궁에 문안 인사를 하러 들었다가 강징이 나한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지었음. 승건궁의 상궁이 황귀비께서 오수에 들어계시니 다음에 다시 들르시라 조심스럽게 권했지만 망기가 모비께서 깨실때까지 안에서 기다릴테니 나가라고 축객령을 내림. 상궁이 뭔가 마음에 걸리는듯 강징이 잠든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 아주 느리게 걸음을 옮김. 망기는 강징의 옆자리에 앉아서 잠든 모습을 보다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뺨을 만졌어. 강징이 망기의 손길이 간지러운지 눈쌀을 찌푸리다가 다시 새근새근 숨소리를 냄. 망기는 강징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한숨을 쉬었어. 다른 비빈들은 궁중에 들어온 이후부터 갖은 고초를 겪어 미색이 점점 쇠한다던데 강징은 날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게 신기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복잡했음. 다른 이들이 떠들어대는것처럼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해서 미모가 쇠할 일이 없는걸까? 궁에 들어온지 십여년이 되었지만 강징을 향한 황제의 총애는 여전했거든. 두 사람은 황제와 비빈처럼 보이지 않고 마치 한쌍의 원앙처럼 다정하고 정이 두터워서 다른 비빈들의 질시를 살 정도였음. 비빈들의 질시만 산게 아니었지. 망기는 언젠가부터 부친과 함께 있는 강징을 보면 아무런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괜히 울화가 치밀었음. 한동안 그 이유를 알수가 없어서 당황스럽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어느날 자신이 강징에게 욕정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서 크나큰 충격에 빠졌어. 저를 친자식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양모에게 그런 더러운 마음을 품다니 정신을 차릴때까지 호되게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 망기가 잠든 강징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 붉은 입술을 보고 충동이 일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떴음. 승건궁의 상궁에게는 모비께 자신이 다녀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어. 곧장 승건궁을 나서서 걷는데 다섯보 정도 앞서 걸어가던 승건궁의 궁녀들이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됨. 어린 궁녀 하나가 황귀비께서 요즘 부쩍 잠이 느셨다고 혹 회임을 하신게 아니냐고 설레발을 침. 그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어보이는 궁녀가 회임이 아니라고 단언함. 어린 궁녀가 요즘 폐하께서 자주 다녀가셨으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데 다른 궁녀가 쉿하고 목소리를 낮춤. 그러고는 황귀비께선 회임을 하실 일이 없으셔! 여지껏 청백지신이라고! 그러니 입 조심하라고 하는게 아니겠음. 어린 궁녀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자 나이 많은 궁녀가 한숨을 쉬더니 황귀비마마가 우리처럼 사내를 모르는 순결한 몸이라고 말함. 망기가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새하얘져서 걸음을 멈추었음. 황제의 총비가 청백지신이라고? 어째서? 도대체 왜? 망기는 제 양모가 지금까지 태기가 없는것이 몸이 허해서 그런것줄로만 알았다가 황제의 시침을 든적이 없어서라는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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