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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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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브아이스 맵아 매버릭아이스맨
아이스는 눈을 다 뜨고도 몇 초간 상황을 파악했어. 그리고 제 목을 잡은 소년의 손을 잡은 체 빠르게 몸을 뒤집어 버렸지. 위협적으로 굴던 태도와는 달리 소년은 예상하지 못한 반격에 순식간에 자세가 뒤집혀 버렸고 이번엔 아이스가 소년의 양 손을 제압한 체로 우위를 선점한 자세로 소년을 압박했음. 기사단에 들어가려고 했던 게 괜한 치기는 아니었던 아이스니까, 이 정도의 대처는 당연했지.
"그러면 안 돼!"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이스 역시 먼저 공격을 시도한 상대에게 좀 더 위협을 가할 생각이었음.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 아이가 소년을 찍어누르고 있는 아이스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지. 이 곳에 어린애가 있던가? 당황한 아이스가 손에 힘을 빼자 아이스의 아래에 깔려있던 소년 역시 아이스를 밀어버리고 일어섰어.
"너, 뭐하는 놈이야?"
그리고 그 말은 예상치도 못하게 소년의 입에서 먼저 나왔지. 아이스는 침착하게 소년을 보고, 방 안을 살펴봤어. 분명 몇 시간 전에 들어오기 전과 같은 방인데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거든.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는 물론이고 방 안 촛불에는 모두 불이 붙여져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았지. 아이스와 소년의 대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어린아이를 황급히 데려가는 키가 큰 남자 말고도, 그리고 그 남자와 같이 있는 금발 머리의 여자와 또 덩치가 큰 남자 한 명 까지. 게다가 누군가 방 문을 열려다가 험악한 분위기에 뒷걸음질까지 치고 말았고.
"이게 무슨…"
"왜, 이제서야 좀 상황 판단이 되나?"
"너희들은 다 누구야,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거였어?"
"여기가 무슨 지옥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보지? 바로잡아 주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뭐?"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고, 이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지."
"제대로 말해."
"멍청하긴, 넌 여기 갇혀서 못 나간다고."
우리랑 똑같인 꼴이 됐으니. 늑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이 말했음. 방금 전까지 아이스의 목을 조르고 있던 아이였지. 아이스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로 주변을 둘러봤음. 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따듯하고,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기괴해. 꼭 전혀 다른 세상같이, 마치 거울 뒤쪽에 숨겨져 있던 것 처럼.
"그리고, 내가 '매버릭' 이야."
"뭐?"
"악마, 마법사, 흑마술사, 네크로멘서, 괴물, 뭐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다시피,"
"……셰이프시프터."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나봐?"
"그럼 나는 어떻게 들어왔지?"
"뭐?"
"네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고 했잖아. 나는 어떻게 들어왔냐고."
"우리도 그게 의문인데-"
'매버릭' 은 아이스를 한 번 힐끗 봤음.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입을 다물고는 꼭 아이스를 훑어보는 것처럼 바라봤지. 어린 소년이 튀어나와서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꼭 영원히 그러고 있을 것 같았어.
"형이 황자님의 신부라서에요."
"루스터!"
"예언이 있었잖아요, 보름달이 뜨는 날 황자님의 신부가 찾아온다고. 그리고 황자의 신부가 얼어붙은 황자님의 꽃을 녹이면 우리도 모두 돌아갈 수 있다구 했어요!"
"아가, 우린 나가 있는게 좋겠다."
키가 큰 남자가 어린 아이를 다급하게 안아올려서 금발이 보기 좋게 곱슬거리는 여자와 함께 방을 나갔음. 그걸 바라보던 매버릭이 짜증스럽게 아이스에게 다가왔음.
"우린 사정상 여기 머물면서 숨어있어. 내가 우리 중 유일한 마법사인데, 내 실력이 부족해서 아마 결계에 틈이 있던가 문제가 있었겠지."
아이스를 향해 다가오는 매버릭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이스를 당겨 일으켰음. 소년의 체구가 아이스보다 작았고, 어쩌면 동생들보다도 작아 보였는데 아까 밀려났던 건 단순히 놀라서였는지- 당기는 손아귀 힘이 꽤 쎘어. 아이스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잠자코 마법사 소년이 이끄는 데로 걸었지. 침대에 놓여져 있는 열매 몇 개도 지나고, 문을 열고 나가니 낮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음.
성의 복도와 홀에는 불이 가득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어. 홀 한 쪽에서 아까 루스터라고 불렸던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었고, 갑옷을 입은 기사상이 서 있던 자리엔 꽤 덩치가 큰 남자가 서서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었고 말야. 성 자체가 꼭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
"이렇게 밝고 시끄러운데, 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고?"
"결계가 있으니까. 그건 내가 친 결계는 아니고 여기에 원래 있던 결계도 있어."
"이 성은 도대체 누구의 성인거지?"
"글쎄, 나도 도망다니면서 찾은거라."
"……넌 무엇때문에 쫓기는 거였고?"
아이스를 끌고 식당까지 온 매버릭은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 식탁에 아이스를 앉혔음. 그리고 아이스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움직이던 사람들 몇 명이 몸을 움찔거리곤 의식적으로 거리를 만드는 게 느껴졌어. 아이스는 어차피 제 눈앞에 있는 음식들을 먹지 않을 생각이었고, 매버릭의 말대로라면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 언제 제게 칼을 들이댈지 모르니 여전히 긴장을 하고 있었지. 아이스의 입장에선, 아직 그 어떤 의문점도 풀리지 않았거든. 아니, 오히려 더 의문스러운 것들만 남았지.
"그걸 네가 알 필요는 없지."
"…여기서 나가겠어."
"넌 못 나가, 내가 말했잖아? 너도 우리랑 똑같은 꼴이 됐다고."
"……."
"여기 들어온 순간 원하든, 원치 않았든 전부 저주받는거라고. 그러니까 괴물들 사이에서 굶어죽기 싫으면 그거나 먹어. 마법사의 음식을 먹는 것 따위로 뭐가 어떻게 되진 않아. 굳이 말하자면, 이미 뭐가 어떻게 됐잖아?"
멍청아. 매버릭은 입모양으로 말했고, 그 쯤 되니 아이스도 짜증이 났지.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가 제게 말장난이라도 치는 것 마냥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빙글거리는게 아니꼬왔고. 어쨌든 여기에 괴물도, 끔찍한 흑마법사도 없다는 게 확인됐으니 아이스는 더이상 매버릭에게 말을 걸지 않고 몸을 일으켰음. 매버릭은 말리지 않았어. 긴 다리로 식당을 지나쳐 밝은 홀을 지나 성 밖으로 나가는 아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했지.
아이스가 무거운 성의 문을 열고 나갈 때, 키가 크고 근육질인 남자가 뒤에서 문을 여는걸 도와줬어. 아이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사함을 표했지만 남자는 어쩐지 안쓰러운 얼굴로 저를 쳐다볼 뿐 말을 하진 않았지. 성 안의 정원 모습도 낮과는 천지차이였음. 간혹 아이스가 밤길에 이 근처를 지나갈 때 밖에서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지. 정원 곳곳에 정원사들이 풀을 다듬고 있었고 달빛을 받아 정원이 온통 밝았음. 어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스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했어. 이내 누군가가 달려와 또 귓속말로 소근거리면 긴장한 표정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지.
꼭 하나의 거대한 연극처럼. 아이스는 낮과는 전혀 다르게 잘 정리되고 깔끔한 정원 바닥을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음. 이상한 세상에 뚝 떨어졌는데, 그 이상한 나라 사람들이 전부 연기를 하고 있다면?
정원은 우습게도 장미로 가득 차 있었어. 아버지가 한 송이 꺾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난리를 피던 장미가 지천이었지. 아이스는 걸으며 스치듯 장미를 만졌음. 그리고 장미가 지나치게 차가워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밖이라 그런가 했음. 그리고 마침내 덩쿨에 가려져있던 성의 문 앞에 섰을때, 아이스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지.
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성 입구 앞에 높에 늘여진 계단 끝에 매버릭이 서 있었어. 저를 쳐다보면서. 멀어서 얼굴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제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이내 아이스가 문에 손을 댔을 때, 꼭 무언가 제 몸속을 휘젓는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 들었음. 그건 순식간이었지. 눈을 잠깐 깜박인 순간, 아이스의 몸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으니까.
"웩,"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미식거리는 속에 땅을 붙잡고 몇 번 헛구역질을 했음. 먹은 게 없는 속에선 빈 위액만 올라왔어. 그런 아이스를 억지로 끌어 올린건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매버릭이었음.
"황-, 아니, 매버릭, 그러지 마."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는 아이스를 억세게 끌어 올리는 손에 아이스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가자, 매버릭을 따라온 키가 큰 남자는 어쩔 줄 모르며 그렇게 말했음. 그리고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아이스는 아까 했던 것 처럼 매버릭을 밀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려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어. 이번에는 매버릭이 미리 대처하고 힘을 줘 버티니 쉽게 넘어뜨리진 못해서,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버텼음.
"당장 결계를 풀어."
"말했잖아, 저건 내가 건 결계가 아니야. 그리고 내 실력으론 저걸 못 풀어."
"그럼 어쩌자고?"
"저주를 풀어야지, 제길, 그럼 나라고 좋아서 여기 갇혀있었겠어?"
"그러니까, 그 저주를 어떻게 푸는 거냐고. 모든 저주와 결계는 그걸 푸는 방법까지 함께 걸어야 하잖아!"
"그 방법은 이제 불가능해. 그러니 남은 건 아예 결계를 지워버리는 것 밖에 없어. 그러니까 너도 나가고 싶으면 날 도와."
내가 이 결계를 없앨 수 있도록 날 도우라고. 매버릭이 아이스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음. 아이스는 아까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 황자의 꽃을 녹여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이미 매버릭을 비롯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해보지 않았을 리 없지. 아이스는 매버릭에게 밀쳐진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어. 바람이 차. 한 번 뒤집혔던 속이 여전히 미식거리고, 어쩐지 정원을 다듬던 사람들이 이젠 대놓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지.
"넌 도대체 여기 왜 온거야?"
매버릭은 창백해진 아이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어. 그건 꼭 질문이 아니라 힐난같았지.
"나도 몰라. 이렇게 일이 꼬일 줄 알았다면-"
"너를 여기서 보고 싶진 않았어."
"……."
아이스는 무어라 묻고 싶었지만 이내 몸을 돌려 돌아가버리는 매버릭을 쫓아가진 않았어. 그리고 여전히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겨우 한 걸음씩 지탱하며 다시 성 쪽으로 향했지. 다시 모든 연극이 시작된 것 같았어. 정원의 정원사들은 마치 이 모든게 정말 즐겁다는 듯 노래를 부르며 정원수를 다듬고 있고, 정원 어디선가는 악사의 음악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렸음.
매버릭은 성문 앞에서 아이스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 날 아이스는 그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진 않았지만, 매버릭이 가져온 열매 몇 개는 먹었음. 매버릭은 붉은 열매를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스를 바라보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강의 설명을 시작했지.
해가 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들이 모두 매버릭과 함께 온 이들은 아니었어. 매버릭은 열 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 성을 찾아냈고, 정원을 다듬고 성 안을 가꾸는 이들 대부분은 이미 이 성에 있던 이들이었다는거지. 진짜 인간들은 아니었고, 아마 이 성을 짓고 처음의 결계를 만들었던 마법사가 만든 수하들일거랬는데, 그제서야 아이스는 저들의 연극같던 몸짓이 이해가 됐지.
그리고 매버릭은 이 성의 결계를 부수기 위해 그것보다 더 높은 마법을 연구중이었고. 매버릭은 끝끝내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언제부터 이 곳에 있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말로 봐서는 단지 하루 이틀의 시간은 아닌게 분명했음. 매버릭이 연구했던 수많은 흔적들을 아이스는 매버릭과 함께 봤어. 한숨이 나왔지. 아이스는 마법에 대해서 공부는 했지만, 제 전문 분야는 아니니 방대한 지식은 없었음. 굳이 제 분야를 밝히자면, 어쨌거나 기사단을 희망했으니까 몸으로 치고박는게 아이스에겐 더 편할지도 몰랐음. 하지만 본인이 편한 것과는 다르게, 아이스는 마법학에도 성적이 꽤 좋았지.
"고대 마법이라 이거군."
"……."
"좋아, 매버릭."
널 도울게. 이 결계를 부술 방법을 찾는 거 말야. 아이스는 줄이 잔뜩 그어진 낡은 책을 들쳐보며 말했음.
그 날 밤은 무척 짧았어. 아이스는 버티려고 애썼지만 철창에 걸린 고대 마법에 속수무책으로 한 번 된통 데인 덕에 몇 번 책장을 뒤적거리지도 못하고 잠에 들었으니. 저도 모르게 잠들었던걸 깨달은 건, 창문 사이로 살짝 들어오는 햇빛 탓이었음.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다락방이 아닌 처음의 그 침실이라는 것도 의외였지. 아이스는 당황스러운 손길을 휘적이며 지난 새벽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곱씹었음.
"……."
그리고 방 안. 침실은 지난 밤과 달리 삭막하기 그지 없었음. 불도, 빛도, 온기도 없었지. 있는 거라곤 아이스의 몸 옆에 뒹굴게 몸을 만 체로 잠든 늑대 뿐이었음. 아니, 잠들어 있지는 않았어. 늑대는 그 초록 눈을 뜨고 아이스를 빤히 보고 있었으니까.
아이스는 꼭 뭐에 홀린 것 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음. 늑대의, 매버릭의 털은 정말 '마법' 처럼 부드러웠고- 따듯했음. 우습지. 지난 저녁 아이스가 매버릭을 만졌을 때 손이 닿는 그 어느 곳이나 손이 시리도록 몸이 차가웠으니까. 매버릭은 아이스의 손길을 피하진 않았지만, 반응하지도 않았음.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품 속으로 숨겨버렸지.
그 날 이후로 아이스의 루틴이 달라졌음. 낮 동안은 매버릭, 그리고 루스터와 함께 성의 이곳 저곳을 정리했어. 해가 진 뒤에 보이는 성의 모습은 사실 진짜가 아니니까. 그리고 매버릭과 어느 정도 체력을 맞추기 위해 낮에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졌지. 처음엔 아무래도 꺼림직해서 윗층 침실에선 자지 않고 여전히 아랫층 팬트리에 몸을 뉘일까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저를 이상하도록 한심하게 보는 매버릭의 눈초리에 이상하게 약이 올랐음. 결국 침실에서 잠에 들면 몇 시간 뒤에 차가운 손길이 아이스의 몸을 가볍게 흔드는거지.
"일어나."
일주일이 좀 넘었을 때, 아이스는 우습게도 이 갑작스러운 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버렸음. 매버릭의 차가운 손길과 짜증스러운 목소리, 그럼에도 이상하게 다정한 행동은 물론이고 성 곳곳을 돌아다니는 루스터와 루스터의 아버지인 구스, 그리고 누가 보아도 고용된 기사인 슬라이더를 비롯한 몇명의 기사들까지. 그들은 유난히 매버릭을 챙겼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누구에게 쫓겼다는건지, 언제 이 곳에 왔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매버릭을 향한 언급만큼은 모두 일관됐음. 매버릭이 그들을 살렸다는거야. 특히 어린 루스터가 환히 밝혀진 성 복도를 깡총깡총 뛰며 그렇게 말했지.
"삼촌이 우리를 여기에 데려와서 숨겨줬거든요."
"매버릭, 그 마법사가 네 삼촌이야?"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데. 비밀이에요. 삼촌이 둘이 있을때만 그렇게 부르라고 했는데."
우리 아빠한테 말하지 말아요! 어린 아이의 순수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이스는 당연하게 두 동생들 생각이 났어. 닉과 크리스는 이젠 이렇게 어리지 않는데도.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모님 생각까지 이어졌지. 아마 어떻게든 저를 구출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모습이 상상하면 속이 쓰렸음. 정말 부모님은 황실 군대까지 동원하려고 할거야. 물론, 황실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테지.
이 성에 갇힌지 이 주가 되었을 때, 아이스는 여전히 매버릭과 함께 성 꼭대기에서 여러 장의 고대 마법 자료를 늘여놓다가 성 지하의 도서관에서 책을 가져오기 위해 정원을 거닐고 있었음. 고작 며칠을 헤매고 있었다고 머리가 지끈지끈했어. 문제는, 도통 답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지. 그러다 문득 아이스는 입을 열었음.
"그럼, 황자는 어디있어?"
"뭐?"
"그 때, 루스터가 그랬잖아. 얼어붙은 황자의 꽃을 녹이면 너희 모두 돌아갈 수 있다고. 너도 그게 처음에 결계를 푸는 열쇠라고 했고. 그럼 여기에 황자가 있었다는 거 아냐?"
아이스는 내심, 저주가 말하는 '황자' 가 진짜 황자일 리 없다고는 생각했음. 당연하지, 진짜 황자는 지금 황실에 있으니까. 물론, 쿠데타로 올라간 황족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저주 속의 황자는 누구인가 싶었지.
"황자는 이제 여기 없어."
"그럼?"
"걔는 아무데도 없어. 죽어버렸거든. 내가 죽였어."
"……."
"걔 때문에 우리 모두가 쫓기게 되었고, 멍청하게 패잔병으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여기 갇혀버렸으니."
아이스는 그렇게 말하는 매버릭의 표정을 봤음. 매버릭은 정원에 핀 장미를 잡고는 하나 하나 꺾어버렸어. 매버릭의 손에서 피처럼 붉은 장미가 우수수 떨어져나갔지. 그리고 그건 우습게도 원망과 비난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꼭… 자책같았음. 그리고 혼란스러움도.
"맵, 손!"
그러다 기어코 장미의 가시에 손이 찔리자 매버릭의 손 끝에서 붉은 피가 흘렀어. 꽤 깊게 찔린건지 고작 한 두방울의 피가 아니었지. 어린 동생들을 돌봐온 아이스는 반사적으로 매버릭의 손을 잡아 여전히 박혀있는 가시를 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매버릭의 손가락을 제 입으로 넣었지. 그리고 아이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매버릭의 손이 차가운 거야 늘 그랬지만, 피까지 이 정도로… 차가울 수 있나?
매버릭은 제 손을 물고있는 아이스를 빤히 쳐다봤지. 그 초록 눈동자가 한없이 까맣고, 깊게만 느껴졌음.
"아이스, 죽은 황자를 사랑할 수 있어?"
"……."
"저주받고, 뒤틀리고, 끔찍한 꼴로 얼어붙어 썩어가는 황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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