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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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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에서만 볼 수 있는 찐놀즈를 상상한
놀즈너붕붕


















라이언 레이놀즈 몰라? 연기, 사업, 유머, 마케팅 뭐 하나 빠지는 곳 없는 그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뭐 몇이나 되겠어. 있기야 있겠지 하지만 헐리우드에 몸 담고 있는 이상은 불가하다 이거야. 그 잘 빠진 가면을 정말 가까운 이들 앞에서만 벗는다는 소문이 드물게 있었지만 가십거리 가득한 곳에서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신경 끈 채로 살았다. 왜냐면 내가 라이언 레이놀즈랑 같이 일을 하게 된다 해도 그의 진짜 내면을 볼 일은 없으니까.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러니 내가 그의 우는 모습을 보게 된 건 철저히... 실수였다.


헐리우드에서 구르게 되다 보면 시간이 금보다 위대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촬영장 내 권력자들은 대게 딜레이를 죽도록 싫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건 말단이나 나같은 중간 관리자다. 간이의자에 앉아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빨리 빨리 움직여!!!!!”하고 날카로운 호통을 내는 관리자가 되려면 한참 멀었단 뜻이다.

밑 스탭들은 모두 착하긴 하지만 아직 적응이 완료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불호령이 무서워 급히 몸을 움직이지만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지 뇌를 움직이진 못한다. 고로 밑사람들의 눈물과 윗사람들의 압박을 느끼고 싶지 않은 내가 짬이 찼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움직인다.


세트장이나 트레일러에서 한참 떨어진 이 한산하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소리죽여 울고 있는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그는 심지어 쓰고있는 안경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몇 번 만지작거리고 넓은 어깨를 굽혔다 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신에 감정이 들어가는 게 있었나 생각해야 했다. 근데 없는데.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는 죄 액션신인데. 어딜 다쳤나. 존나 아픈가. 근데 저거는 몸이 아파서 우는 것 보다-


“하씨, 제길. 저기. 이럴 때는 좀 숨어서 보거나 그럼 안 돼? 그렇게 아! 나 구경거리 생겼다 하고 우뚝 서서 봐야겠어?”


우울했던 얼굴이 지워지고 평소 내가 아는 그로 돌아온 라이언 레이놀즈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한테...... 하는 말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사람이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면 뇌가 잘 안 돌아간다. 머릿속에서 일 해야 하는 부속품들이 모두 멈춘 기분이다. 뭔 로봇처럼 주춤거리자 그가 기다란 다리를 십분 이용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미술팀 허니 비 씨?”
“안녕하세요.”
“꼴 봐서 알겠지만 별로 안녕하진 못해.”


그가 한쪽 입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아직 눈가에 눈물자국이 남아있다. 나 손수건 없는데. 아니 그것보다 왜 운 건데? 감독이랑 싸웠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효과처럼 why?라는 글자가 앞 뒤로 나를 쳐댔다.


“어... 음... 제 이름을 아시네요.“
”알지. 너무 잘 알지. 한 번씩 나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잖아. 그것도 내가 표정관리 좆같이 못하고 있을 때만 쏙 골라서.“
”......“


이름 아냐고 물어보지 말 걸... 왜 울었냐고 묻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아서 한 건데. 라이언 레이놀즈는 뭐랄까... 매너로 정평이 나 있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대부분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딱히 스탭한테 모나게 구는 편도 아니고. 적당히 거리 유지하면서 센스로 웃겨주는 사람 정도로 여겼는데 지금 나한테 대하는 태도는 영 뾰족하다.


”모, 못 본 걸로 할게요.“
”뭘? 내가 저기 구석에 숨어 앉아 7살 꼬마애처럼 형편없이 울고 있던 거?“


그렇게 되물으며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나보다 한참 큰 덩치를 가진 사내가 몸에 손을 대니 공포심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하자 그가 금세 손을 떼곤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자세는 뭔데?“
”태권도라고 아세요. 코리아의 소울이 담겨있죠.“
”당연히 알지. 배웠어?“
”삼개월 정도. 어릴 때.”
“어쩐지. 내가 아는 태권도는 그렇게 구리지 않아서 물어봤어. 뭔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게 잘못 되었잖아. 갓 태어난 피노키오도 그보단 자연스럽겠어.”


이 사람이 울고 있던 걸 들킨 게 쪽팔려서 모가 난 건지, 아니면 그걸 풀려고 이러는 건지,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통 친분 있는 사이 아니고서야 불필요하게 상대를 까내리는 유머를 사용하진 않는데.


“여긴 소품 찾으러?”
“네, 네...”
“가 봐.”
“네!”


go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다가온 적이 또 있던가. 감사합니다가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그건 너무 비굴한 것 같아서 참았다.


몸을 돌리다 멈칫. 그래도 울던 사람인데. 뭐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겠지. 이유만 안 물으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레이놀즈씨.”
“?”
“손바닥 좀 내어주시겠어요.”


그가 심드렁한-거의 무표정에 가까운-얼굴로 군말없이 손바닥을 폈다. 나는 거기 위로 초콜렛 하나를 올렸다.


“이미 유명해서 아시죠. 안에 위스키 든 초콜렛이에요.“
”오......“


그는 그걸 손가락으로 잡아 위로 올리더니 장난감 선물 받은 애 마냥 눈을 빛냈다.


”저는 기분이 엿같을... 아니, 먹구름 같은 날 그걸 하나씩 씹어먹는답니다.“
”촬영장에서 음주하는구나.“
”네에?! 그건! 그거랑 다르죠!“


실제로 술 퍼마시고 연기하는 놈팽이들이 수두룩인데 그걸 음주라고 하면 어떡해! 라는 말 역시 참았다. 생계를 위해 일 하고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 참기 레벨 120정도가 될 수 있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빠른 손길로 껍질을 벗기더니 초콜렛을 그 자리에서 먹었다. 우물거리며 그가 말했다.


”내가, 지금. 기분이 먹구름 넘어서 완전 태풍이라.“
”아아.“
”근데 이거 효과 괜찮네.“
”오, 그렇죠. 물론 그게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잠시의 도피가-“
”미술팀 허니 비씨.“
”네?“
”여섯 시까지 내 트레일러로 와요.“
”네에?“
”지금 빨리 안 움직이면 넌 해고야 소리 다섯 번 정도는 듣겠다. 안 가요? 시간은 금. 틱톡틱톡.“


그가 제 손목시계를 토톡 두들기며 재촉하자 정말로 머리에 넌 해 고 야 네 글자가 차례대로 와서 박혔다. 허겁지겁 뛰어가는 내 뒤로 라이언 레이놀즈가 소리쳤다.


”이따 여섯 시!!!!!!“


그러니까 왜!!









세상이 그렇다. 타인이 나서서 나의 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답은 나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트레일러 앞에서 서성이기를 수 분. 내가 근데 여길 왜 들어가야 할까. 꼭 왜라는 답을 찾아야 할까? 어느새 철학적인 질문까지 가닿아 다시 몸을 돌리려 하면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리고 레이놀즈가 내 뒷덜미를 가볍게 잡아 챈다.


”도망자 발각.“


그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개구지게 웃었다.


”커피, 위스키, 레몬티, 아니면 나?“
”레몬티. 절대 레몬티로.“
”흐음. 섭섭하게.“


하나도 안 섭섭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요... 거의 캠핑카에 가까운 트레일러에 앉아 나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고 있다. 저 남자의 저의가 뭘까. 말 안 한다고 했잖아. 어차피 여기는 비밀 유지 계약으로 돌아가는 판이야. 나는 고소같은 거 당하고 싶지 않다고.


“내가 왜 불렀는지 안 궁금해?”


그는 내가 말한 레몬티가 아니라 시원한 블루베리 에이드를 타서 건넸다. 어차피 내 말을 들어줄 게 아니었던 것 같으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가 늘, 그 한 겹을 못 벗고 살거든. 자기방어도 해야 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고. 이게 진짜 내가 아닌 걸 아는데 이 모습도 나긴 해. 그 괴리감이 어느 날에는 되게 거슬려. 오늘은 슬픔으로 발화됐지.“
“피곤하시겠어요... 그런데 저는 상담사가 아니라 그냥 미술팀 허니 비 입니다만.”


나랑 할 대화는 아니라 생각 해서 진지한 낯으로 그에게 말했다. 진심임을 어필하기 위해 허리를 살짝 굽혀 거리도 좁혔다. 내가 반뼘 정도 좁힌 거리를 그는 한 다섯 뼘쯤 좁혔다.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내 옆에 두고선 가까이 얼굴을 내려 관찰하듯 내 이곳 저곳을 뜯어봤다. 덕분에 숨을 참는 건 내 몫이 되었다. 고민 상담 하다가 얼굴 공격 하기. 이거 뭐 신종 불링 방법이야...? 내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였냐고. 도대체 뭐야.


”근데, 이상하게. 허니 비씨만 보면 자꾸 그 한 겹이 제멋대로 사라져.“
”제가 좀 흔하게 생겨서... 저같은 엑스트라 많이 보셔서 긴장감이 풀리는 것 아닐까요?“
“나 미스터리 좋아해.”
“해 보고 싶은 장르신가요.”
“왜인지 풀어봐야지.”


지금 대화가 전혀 안 되고 있는 느낌인데......


”좋아. 친구부터 시작, 파트너부터 시작, 애인부터 시작. 뭘로 할래?”
“뭐를...?”
”미스터리를 풀려면 내가 허니 비씨와 친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관계를 맺어야 하니까.“
“그걸 꼭 풀어야 하나요...?”
“응!”


이 작품 끝날 때까지 안 볼 수 없는 사이다. 권력 구조로 보면 저기서 생떼를 부려도 나는 힘이 없다. 이 괴랄한 대화 정말 뭔가 싶지만 그냥 유명인 친구 만드는 거라고 치면 아주 나쁠 건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친구요.”
“좋아! 우리의 진한 우정을 위해 앞으로 촬영날마다 내 트레일러로 오는 거야. 알겠지? 아, 시간은 내가 언제라고 연락할게. 번호는 안 알려줘도 돼. 이 바닥이 그렇듯이 한 명 잡고 찌르면 줄줄 뱉어줄 거야. 허니는 내 친구니까 키패드 치는 번거로움은 줄여줘야지.”


잘못 걸린 것 같다.
뭔가 잘못 돼도 대단히, 매우, 압도적으로, 단단히 잘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