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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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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은 수상한 장소에 수상하게 뒤집혀져 있는 쓰레기통을 보며 혀를 쯧 찼음. 그리고 제 허리를 꽉 붙잡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허니를 돌아봤겠지. 



"죽일 수 있죠?"

"...죽일 수야 있지."

"놓치시면 안돼요. 진짜 혀 깨물고 죽을거야."

"뭘 자꾸 죽는다는 거야 너는."



조엘이 쓰레기통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허니는 마치 바람에 날라가지 않게 가로등을 꼭 붙잡고 버티는 사람마냥 다리에 힘을 주니 조엘은 세상에 뭐 이런 애가 있나 싶겠지. 제 허리를 붙잡은 허니의 손을 잡고 떼어내려고 했지만 거의 옆구리를 꼬집고 있어서 제대로 떼어지지도 않겠지. 



"이걸 놔야 내가 저걸 잡을 거 아니야."

"그치만...그치만 너무 무서운데요!!!"

"별 걸 다 무서워 한다."

"벌레공포증이라고 아세요? 세상에 그런 병도 있다는데 아무래도 제가 그 병에 단단히 걸린,"




조엘은 허니의 손을 툭 떼어버리고는 협탁 위에 놓인 곽티슈에서 휴지 몇 장을 뽑고 쓰레기통을 치워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까만 바퀴벌레는 붙잡고는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겠지. 딱 10초 정도 걸린 행위를 해치우고 난 뒤 등을 돌리자 허니는 입을 틀어막은 채 반짝거리는 눈으로 조엘을 올려다보고 있었음. 

누군가가 순수한 존경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우러러 봐준 적은 허니가 처음이었기에 조엘은 고작 바퀴벌레 하나 따위로 잠시 우쭐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살짝 현타가 와 헛기침을 내뱉으며 시선을 떨구겠지.  



"너희 아빠는 어디가고."

"...에? 아, 우리 아빠. 아빠 출장 갔어요."



조엘은 허니의 집을 둘러봤음. 곧 무너질 것 같이 허름한 제 집과는 달리 조명이며 가구며 모두 삐까번쩍하겠지. 아무래도 허니의 아빠라는 사람은 돈을 꽤 잘 버는 사람인 것 같았음. 그런 사람이 인적이 드문 이런 촌동네에 살고있다는게 말이 조금 안되긴 했지만 조엘은 깊게 생각하지 말자고 했지. 남의 사정 알아봤자 도움 된 적은 딱히 없었으니깐. 조엘은 부탁한 일을 해치웠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허니가 다급히 조엘의 팔을 붙잡겠지. 또 뭐냐는 듯 허니를 쳐다보자 허니가 말했음. 



"저녁 드셨어요?"

"응."

"또 드실 의향은요?"

"배부른데."

"그러엄...저 먹는거 구경 할 의향은요?!"

"없다. 잘 자라."



붙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걸 느낀 조엘은 정말로 나가려고 했지만 시무룩한 목소리로 아, 혼자 밥 먹는거 싫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허니의 목소리를 들어버린 탓에 발걸음이 묶여버리겠지. 

결국 조엘은 이번에도 허니에게 져버리고 말겠다. 오래는 안 있을거라는 그의 말에 허니는 활짝 웃으며 금방 먹겠다고 말하며 냉장고를 뒤적거리겠지. 



"아저씨 진짜 밥 먹은거 맞죠? 아직 안 늦었으니깐 사실대로 말하면 아저씨 몫도 만들게요. 저 요리 엄청 잘해요."



꼬맹이가 요리를 잘 해봤자 뭘 얼마나 잘하겠냐는 듯이 식탁에 앉아 턱을 괸 채 바라보는데 허니가 이어 말하겠지. 



"아빠가 왔다가서 때마침 신선한 채소도 있으니깐 오랜만에 건강식으로 음... 라따뚜이가 좋겠다!"



허니의 말을 들은 조엘이 잠깐, 하며 미간을 좁히겠지. 때마침 신선한 채소가 있다는 말은 뭐고 오랜만에 건강식은 또 무슨 말인가 싶겠지. 



"평소에 뭘 어떻게 먹길래 건강식이니 뭐니 그런 말을 해?"

"평소에 학교에서 밥 먹죠!"

"그리고?"

"그리고 집에 와서는 시리얼을 먹죠!"

"...그리고?"

"뭘 또 그리고예요! 그게 끝이지."




킥킥 웃으며 많이 먹으면 살찐다는 말을 하는 듣자 조엘은 순간 자신이 헛소리를 듣는 건가 싶겠지. 부실한 학교 급식으로 한 끼를 떼우고 집에 와서 고작 시리얼을 먹는 다고? 조엘은 사뭇 심각해진 얼굴로 다시 허니에게 물었음. 




"너희 아빠가 출장 가기 전에... 마트에 가서 그렇게 냉장고를 채워두고...또 가는거야?"

"넹."

"그런 채소들은 금방 상할텐데."

"상하면 버리죠."

"...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뭘 먹는데?"

"냉동 식품이나 시리얼 먹는데요?"




조엘은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금세 코치코치 캐묻는 자신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고는 주방에 서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허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나 허니 옆에 서겠지. 싱크대에서 손을 닦은 뒤 넌 저기 앉아있으며 턱 끝으로 가리키자 허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엘을 올려다봤음. 왜요? 그 커다란 눈망울이 이렇게 묻고 있었지. 




"어린게 뭔 요리야."

"저 내년이면 성인인데요."

"앉아있어. 금방 해줄게."

"제가 해도 되는데요."

"내 말 들어라."



허니는 툴툴거리며 식탁 의자에 앉았고 조엘은 칼을 들어 능숙하게 채소를 손질하기 시작했음.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아요? 허니가 묻자 조엘은 고개를 끄덕거렸지. 조엘은 뚝딱 요리를 만들었음. 스파게티 소스안에 채소와 밥이 들어간, 라따뚜이가 아닌 약간의 잡탕밥스러운 리조또였지. 허니는 한 쪽 눈썹을 비스듬히 들어올리며 이건 라따뚜이가 아니잖아요? 하고 따지듯 묻자 조엘은 대충 먹으라며 허니 식기를 가지런히 차려주겠지. 

허니가 한 입  떠먹자 조엘은 내심 기대하는 듯한 눈동자로 허니를 바라봤음. 오... 허니의 입술이 동그랗게 모이다가 옆으로 쭉 길어지며 기분좋은 호선을 그렸지. 맛있어요. 허니가 말하자 조엘은 약간 안심이 된 듯 식탁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댄 채 천천히 먹으라고 손짓하겠지. 



"근데 진짜로 제가 해도 됐었는데."



눈 깜짝 사이에 조엘이 만든 음식의 반을 비운 허니가 입을 열자 조엘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기대어 올린 채 허리를 앞쪽으로 기울었음. 그리고 허니의 왼쪽 입가를 손 끝으로 툭툭 쳐주겠지. 허니가 손이 아닌 팔로 입가를 무식하게 쓱 닦아버리는 모습에 조엘은 약간 놀란 듯 눈썹이 들썩거리다가 옆에 놓인 티슈 몇 장을 뽑아 허니 팔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며 말하겠지. 



"원래 네 나이대에는 얻어먹는게 정상이야."



조엘의 말에 허니는 뭔가 깨달은 듯 눈이 반짝여지다가 피식 웃고 말겠지. 



"그러고 보니까 누가 해준 밥 얻어 먹는 건 오랜만인데요?"

"..."

"아저씨 설거지도 해주실거예요?"

"양심이 있으면 그 정도는 네가 해라."

"에이...그냥 해본 소리죠! 제 양심은 바다처럼 깊어서 끝도 없어요!"

"...그런건 안 궁금하고."



조엘이 만든 음식을 마치 설거지 하듯 깨끗하게 먹은 허니였고 끝내 조엘은 본인이 뒷처리며 설거지까지 하고 정신차리고 보니 허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씩 떠서 허니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야무지게 보고 나서야 집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겠지. 아저씨 잘 가요! 허니의 경쾌한 인사를 끝으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조엘은 뭔가 이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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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꾸...쟤한테 넘어가는거지? 조엘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니의 집을 돌아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제 집으로 돌아갔겠지. 




/


평소처럼 조엘은 허니를 학교에서 픽업하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대뜸 제 집이 아닌 조엘 집에 차를 세우자 허니가 응? 하며 조엘을 쳐다보겠지. 온종일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조엘은 허니가 시리얼 따위만 먹게 할 순 없을 것 같았음. 몰랐으면 그냥 내버려뒀겠지만 허니의 극악 식단을 알게됐으니 손 놓고 바라만 볼 수 없었겠지. 



"밥 먹고 가."

"엥?"



그렇게 허니는 조엘의 집에서 든든한 저녁을 먹게 됐고 주말은 아침 일찍 부터 초인종을 띵띵띵띵 누르면서 찾아와 히히 웃으면서 밥 차려달라고 식탁 의자에 앉겠지. 조엘은 하...내가 대체 뭔 짓을 저지른거지...하며 마른 세수를 하는데 어느덧 텅텅 비어있던 조엘의 냉장고와 찬장에는 건강한 식재료들로 채워져 있었겠지. 

항상 맛있게 먹고 그릇을 깔끔하게 비우는 허니를 보니 나름 요리 욕심도 생겨서 조엘은 몰래 요리 서적도 사서 연구하고 그러겠지. 한가지 흠이라면 허니가 집에서 밥을 먹고 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겠지. 



"다 먹었으면 좀 가라..."

"넘 배불러서 못 가겠어요."

"...너 공부해야 될 거 아니야."

"아, 그래서 책도 좀 챙겨 왔어요. 저 준비성 대박이죠?"




조엘이 어이가 털리든 말든 허니는 제 할 일을 했음. 조엘이 뚫어져라 허니를 쳐다봤지만 허니는 마치 조엘을 투명인간 대하듯 없는 셈 쳤고 결국 조엘은 차 키를 들고 외투를 집어 들며 허니에게 말하겠다. 



"작업실 좀 갔다와야 되니깐 시간 되면 너희 집으로 가라."

"내가 알아서 해요~"



노래를 부르듯 운율 넣어 말하는 허니의 목소리를 끝으로 조엘은 차에 올라타 밀린 작업을 해치웠음. 그러다 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고 조엘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운전하는데 제 집만 불이 떡하니 켜 있어서 혀를 쯧 차겠지. 아직도 안 갔어? 진짜 못말리네. 마당 앞에 차를 대고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허니가 책을 얼굴 위에 올려둔 채로 소파 위에 쭉 뻗어 있었겠지. 조엘은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이만 일어나라고 말하기도 했고, 책등을 손으로 툭툭 팅기며 깨워도 봤지만 단단히 잠에 빠진건지 허니는 꿈쩍도 하지 않아 조엘은 환장 할 노릇이겠다. 


일단 씻고 해결해보자 생각한 조엘은 씻고 나와 허니 얼굴에 얹어져 있는 책을 슬그머니 치웠고 웃음이 훅 터져나올 뻔 했겠지.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아니면 오늘 하루가 고됐는지는 몰라도 침을 흘리며 정말로 푹 잠들어있는 모습에 조엘은 결국 손으로 입을 가린 뒤 숨 죽이며 쿡쿡 웃고 말겠다. 



"우응..."



거실 천장등이 눈이 부셨는지 허니는 몸을 옆으로 돌려 꾸물거렸음. 조엘은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거실 불을 키고 대신 주방의 간접등을 키겠지. 거실은 외풍이 불어서 난로를 틀어도 춥기 때문에 조엘은 널브러지게 잠들어있는 허니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두 팔로 허니의 다리와 어깨를 받쳐 안아 올리겠지. 

그리고는 조용히 제 침실로 허니를 옮겨주겠지. 신고 있는 슬리퍼를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허니가 몸을 뒤치락 움직이는 탓에 입고 있던 티셔츠가 허리를 타고 말아 올라가겠다. 조엘은 흠칫 놀라 조심스레 옷자락 끝을 붙잡고 내려주려는데 뭔가 이상한거임. 그래서 침대 옆 협탁에 놓인 간접등을 살짝 켜서 보는데 존나 큰 피멍이 새겨져 있어서 놀라겠지. 

어딜 부딪혔다기에는 위치가 애매했음. 멍 크기도 커다랬고. 순간적으로 조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많아지는데 허니가 추웠는지 몸을 웅크리자 조엘은 황급히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명을 꺼버리겠지. 조엘은 마지막으로 혹여나 허니가 추워할까봐 이불 위에 거실 소파 위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덮어준 뒤 방 밖으로 나와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겠다. 




/



조엘은 우당탕쿵탕! 하는 소리에 거의 발작을 일으키듯 소파에서 일어났음. 제 몸 위로 툭 떨어지는 천을 쥐어보니 어제 허니한테 덮어줬던 담요였겠지. 잠이 덜 깬 몽롱한 시선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니 허겁지겁 쏟아진 컵을 세우고 있던 허니와 눈이 마주치겠지. 



"아침부터 뭐하는..."



처참하게 깨진 유리잔을 겁도 없이 손으로 집어 들려는 허니의 행동에 조엘이 놀라 건들지 말라며 허니를 뒤로 보내고 본인이 치우려고 하는데 조리대 위가 뭐로 가득 차 엉망인거지. 버터, 계란, 밀가루, 우유... 이게 뭐냐며 허니를 쳐다보는데 허니 꼴도 제법 엉망인데다 유리컵을 깨트려서 그런지 어딘가 주눅이 든 표정이라 조엘은 꾸짖음 대신 걍 한숨만 후 내뱉었음. 



"뭐 꺼내려고 그랬는데."

"저기 위에 시나몬 가루..."

"말을 하지 그랬어."

"아저씨가 너무 잘 자고 있어서...침까지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깨워요!"



조엘이 흠칫거리며 손등으로 제 입가를 닦아내는데 묻어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서 허니를 잠깐 째려보면 그 애는 걍 광대가 봉긋 올라올 정도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겠지. 




"꺼내줄테니깐 일단 앉아있어. 다친다."

 

조엘이 유리파편을 다 치우자 이번에는 허니가 조엘 보고 앉아있으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웬만하면 눈도 감는게 좋겠다는 말에 조엘이 왜 그러냐고 묻자 일단 눈 감아요! 하고 앙칼지게 말하는 허니 탓에 조엘은 얼떨떨하게 눈을 감았음. 그리고 얼마 안가 테이블 위로 유리 접시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겠지. 두꺼운 팬케이크 다섯장에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초 다섯개 위로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지. 
 


"...뭐야?"

"뭐긴요! 오늘 조엘 생일이잖아요!"



벌써 날이 그렇게 됐다고? 하면서도 얘가 내 생일은 어떻게 아는거지 싶었는데 허니가 장난스레 웃으며 제 목덜미를 만지작 거리며 말하겠지. 



"아저씨 ID 카드 봤어요."

"...내 방을 뒤졌어?"

"어감이 좀...뒤졌다고 말하면 뭔 제가 도둑이라도 된 것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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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잖아."

"내가 뭐 훔쳤어요? 그냥 구경 좀 하고 뒤적뒤적...거린거죠!"

"그러니깐 남의 방을 왜 뒤적거리냐고."

"조엘. 솔직히 말해보세요."

"뭘?"

"제가 생일 케이크 만들어준게 쑥스러워서 이렇게 말 돌리는 거죠?"

"뭐? 그런거 아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조~엘!"



불리하니깐 냅다 생일 노래를 불러 제끼는 허니의 모습에 조엘은 픽 웃고 말겠지. 얼른 초 부세요! 하고 박수를 짝짝짝 쳐대는 허니를 힐끗 보고 조엘은 이 나이 먹고 애 앞에서 뭐하는 짓이지... 살짝 현타왔지만 그래도 촛불은 꼭꼭 불어주겠지. 꺼진 연기 넘어로 눈은 반달 모양으로 만든 채 활짝 웃고 있는 허니를 보니 꽤나 사랑스러워 보이겠지. 그리고 어제 허니 옆구리 부근에서 봤던 커다란 멍도 아른거리겠지.  조엘은 허니에게 팬케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넘겨줬음. 

배가고팠는지 열심히 맛있게 먹는 허니를 바라보다 코 끝에 묻은 밀가루를 조심스레 털어주니 허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조엘을 보다 커피만 홀짝 마시고 있는 그에게 물었지. 



"팬케이크 싫어해요?"

"알아서 먹을테니깐 너부터 먹어."

"맛있는데."

"그래, 맛있어 보인다."

"생크림 드려요? 우리 저번에 사놨잖아요."

"네가 먹고 싶지?"

"...딱히 그런건 아닌데."



조엘은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생크림을 꺼내 허니 팬케이크 위에 한 덩이 얹어주고 다시 자리에 앉겠지. 그리고는 골똘히 생각하겠지. 허니는 조엘의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쭉 뻗어 조엘의 정강이를 툭 치겠지. 아, 뭐냐구요오. 예? 뭔데요. 하며 묻자 조엘은 잠시 뜸들이다가 말하겠다. 



"...학교 생활은 어때."

"갑자기요?"

"너 친구는 있냐?"



조엘의 질문에 허니는 깔깔깔 배를 잡고 웃겠지. 얼마나 웃는지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음. 조엘이 두 손을 들어올리며 뭐가? 내가 못할 질문이라도 했냐?  말하자 허니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말하겠지. 



"조엘! 전 아저씨랑도 친해진 사람이에요! 그깟 제 또래 애들이랑 못 친해지겠어요?! 내가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누가 너 괴롭히지도 않고?"

"에이! 이 촌구석에서 누가 그런 싸구려같은 짓을 해요? 애들 다 순박하고 착해요."



허니의 말을 진짜 같았음. 그리고 종종 허니의 입에서 반 친구들 이야기도 나왔으니깐 거짓말은 아니겠구나 싶겠지. 그러면 대체 옆구리에 난 멍은 뭐냐 싶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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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같은 사람이랑 친해졌다는건 무슨 뜻이냐?"

"생일날 상처 받고 싶으세요?"

"말을 말자. 보니깐 넌 한마디도 안 지더라."

"내가요? 음...그런가?"



장난스레 어깨를 들썩거리며 킥킥 웃는 허니를 보며 조엘도 웃다가 이제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 한 사람 뿐이었겠지. 허니에게 멍을 만든 사람. 인정하긴 싫지만, 상상하기도 싫지만 유력한 용의자는 허니의 아빠라는 인간이었음. 저번에 허니의 아빠가 오고 나서 자신을 2주 동안 모른 척했던 허니의 행동도 마음에 걸리겠지.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요?"

"너희 아빠 출장 갔다가 왔을 때."

"넵."

"너 그때 나 봤는데 왜 모른척 했어?"

"아. 아아...그때요?"

"너네 아빠 다시 떠날 때까지 아는 척도 안 하던데."

"뭐야. 서운했어요?"

"...그냥 궁금한거야."



조엘의 말이 끝나자 허니는 가만히 앉아 팬케이크를 내려다봤음. 더 줘? 조엘이 물었지만 허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테이블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조엘이 시선을 내리 깔자 허니가 까치발을 든 채 발을 덜덜덜 떨고 있었음. 그 애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지.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음. 



"아빠가 아파요."

"...응?"

"망상증...뭐 그런게 있는데...아빠 얘기가 나왔으니깐 하는 말인데...지켜줄 수 있어요?"

"뭘 지켜야 되는데?"

"다음주면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요. 그러면 난 또 조엘을 모른 척 해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는데?"

"그래야 되니깐요. 아빠가 괜히 오해하면 큰일나요."

"........."

"저 모른척 해줄 수 있어요? 저번처럼 서로 모른 척 하자구요."




조엘은 새삼 허니와 자신이 격없이 지내고 있다는 걸 깨닫겠지. 조엘은 허니를 너무 자신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었음. 제3자의 시선으로 조엘과 허니를 보면 의심이 가고 수상할만한 관계로 보일 수도 있겠지. 조엘은 자식이 없었지만, 만약 허니가 자신의 딸이었고 내가 없을 때 웬 놈 집에서 먹고 잔다? 그래, 확실히 문제가 생길만한 일이긴 했음. 아무리 그 둘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다 해도 말이야. 현실자각이 빡 온 조엘임.



"아저씨 왜 말이 없어요? 제 말 들어 줄거죠?"

"그래. 그런데,"

"네."

"우리가 계속 이런 식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런 식이...무슨 뜻인데요?"

"남들 눈에 우리가 이상해 보이지 않겠냐, 이 말이야."

"뭐가 이상해요! 아저씨랑 나는 친구인데!"

"네 친구들 한테 날 소개시켜줄 수 있어?"

"그럼요! 지금 당장이라도,"

"걔네들은 네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드릴까?"

"제가 말했잖아요, 내 친구들은 완전 순박하고,"

"그런 애들은 우리가 친구라는 것 자체를 이해 못 할 걸."

".........."

"나도 널 내 작업실 사람들에게 소개시킬 수 없어."


 

허니는 두 손으로 눈가를 가린 뒤 말했음. 




"아저씨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난 남들 시선대로 얘기해보는 것 뿐이야."

"남들 시선이 대수예요? 나 진짜..."

"난 그냥,"

"그럼 어쩌자고요. 아빠 있을 때만 모른척 하는게 아니라 계속 모른 척 하자구요? 아빠가 있든 없든? 그걸 원하는거예요 조엘은?"




눈을 가린 허니의 손바닥 아래로 물줄기가 흘러내렸고, 입술을 잔뜩 구겨졌고 턱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졌겠지. 허니는 짧은 신음을 내뱉고는 그대로 허리를 숙여 엎어졌음.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지. 조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허니의 등을 토닥여줬음. 허니가 울면서 뭐라뭐라 말했지만 울음소리와 함께 뭉개지는 탓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 허니는 고개를 들었고 짧은 순간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조엘은 측은하게 허니를 바라봤음. 



"아저씨 저 싫어요?"



그럴리가 없지. 어떻게 허니를 싫어할 수가 있겠음. 도시에 살 때보다 허니와 함께 지냈을 때 웃음이 더 많아진 조엘인데. 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허니의 얼굴을 더욱 일그러졌음.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해요! 하고 소리치자 조엘은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었겠지. 그리고는 슬그머니 허니 얼굴에 묻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조심스레 떼주는데 허니가 조엘의 목을 와락 끌어안겠지. 



"아저씨 저 버리지 마요...네? 제발..."



갑작스레 안겨오는 탓에 조엘의 몸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조엘은 어찌할바를 모르겠지. 허니가 이렇게 서럽게 울어버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으니깐. 



"다른 사람은 신경 안 쓰면 안 돼요? 우리 그냥 비밀친구로 지내요. 네?"



제 어깨가 허니의 눈물로 뜨겁게 젖어가자 조엘은 허니의 허리를 끌어안고 투박한 손으로 느리고 다정하게 달래듯 허니의 등을 토닥여줬음.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생각하며 허니를 달래주겠지. 



"그래...네 말대로 하자."



허니는 좀 전보다 더 세게 조엘을 껴안았고, 조엘은 허니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겠지. 




/


정말로 허니의 말대로 허니의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왔음. 그리고 이번에는 일주일 간 조엘은 허니를 보지 못했겠지. 그리고 아침에 커튼을 거뒀을 때 허니네 차고에 차가 비워진 모습을 보고 조엘이 아침 인사나 하러 갈까 싶어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인종이 띵띵띵 울리겠지. 



"한 번만 누르라니깐 말 진짜 안 듣네."



투덜거리면서 말을 해도 조엘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현관문을 열어주겠지. 그리고 허니의 얼굴을 보고 놀라겠다. 



"너..."

"좋은 아침! 잘 지냈어요?"



허니는 위풍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왔고 가방을 뒤적거리며 조엘에게 보드게임 하나를 자랑하듯 보여주겠지. 오늘은 이거해요! 허니가 게임을 들고있더나 말거나 조엘은 허니 어깨를 붙잡고 소파에 앉혔음. 조엘은 허니의 시선을 맞춰 앉으며 너 눈이 왜 그러냐고 묻자 허니는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 위를 긁적거리며 말하겠지. 



"아, 이거요? 눈병 걸린건데."

"거짓말 하지마. 눈병 걸린건데 왜 주위가 퍼래. 너 맞았어?"

"아뇨. 이거 그냥 제가 벽에 부딪힌 거예요."

"허니. 너희 아빠가 너 때려? 그 새끼가,"



자세히 보니깐 눈가 주변으로 긁힌 자국도 있는거지. 조엘이 안대를 좀 치워보라며 손을 뻗자 허니가 고개를 팍 숙였음. 아, 왜요. 건들지 마요 아프단 말이에요. 이 말에 조엘은 손을 거두고는 말없이 허니를 쳐다보겠지. 잔뜩 속상한 그의 표정에 허니는 우물쭈물거리며 조엘의 손 끝을 슬그머니 붙잡았음. 



"저 근데 진짜...부딪힌건데..."



조엘은 전혀 믿을 수가 없었음. 이건 벽에 부딪힌다고 해서 생기는 멍이 아니었고, 벽에 부딪혔다고 이렇게 살갗이 긁혀지지도 않는걸 아니깐. 조엘은 허니가 제 아빠라는 놈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조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 일단 당사자인 허니가 말하기 싫어하고 있었고 가해자는 자리에 없으니깐. 

그래서 조엘은 구급상자를 가져와 천천히 허니의 안대를 벗겨내고는 눈가에 긁힌 자국에 조심히 연고를 발라줬음. 



"아! 아으...따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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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미안. 살살 해볼게."

"그냥 안 하면 안 돼요?"

"안 돼. 흉져."



소파에 앉아있는 허니는 제 얼굴을 치료해주는 조엘을 보다가 시선을 피하고 또 힐끗 보다가 시선을 피하는 걸 몇 번 반복했고 대뜸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음. 조엘이 이젠 간지럽냐고 묻자 허니는 고개를 끄덕였음. 

허니를 치료해주면서 조엘은 진짜 존나 속상하겠지. 허니가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게 조엘이 제일 심각하게 생각하는 점이었음. 이런 조엘의 마음도 모르는 허니는 철없이 근질거리는 가슴을 박박 긁어대는 탓에 결국 조엘이 한 마디 하겠지. 



"안 씻었어? 뭘 그리 긁어."

"그거 너무 실례되는 말 아니에요?! 엄연히 난 여자인데!"

"...그만 긁어. 살 까진다."

"맨날 잔소리야."

"나도 잔소리 하기 싫다."



허니는 히히 웃었고, 조엘은 얼굴에 파란 멍을 달고 있는 허니를 보며 쓰게 웃었음.









페드로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