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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9:50
ㅅㅅ체 주의

잊고싶은 것은 쉽게 잊고 잘라낼 것은 잘라낸다. 몰두할 게 필요하면 작사를 하고 새 앨범 트랙을 만들고 그것도 안되면 술로 밤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노엘에겐 그럴 시간과 돈이 있었고 앞으로도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그가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무언가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이유는 그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때문일 것이다.

리암의 앨범이 나왔다. 밴드가 아니고선 무대에 서지 않을 것처럼 굴던 리암의 솔로 앨범이. 밴드를 떠난 이후 리암의 소식을 찾아보진 않지만(그 전에도 찾아본 적은 없었다) 그들은 같은 산업에 몸담고 있었고 그건 어디선가 그가 묻지 않아도 동생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비디아이를 결성했을 때도, 해체했을 때도. 더이상 리암을 견딜 수 없어 나오고 그 후에도 서로를 마주하지 않은 채 설전이 오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조개를 해감했을 때 나오는 모래처럼 꺼끌한 관심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는 오래 전 그것을 증오라 이름붙였으나 지금은 체념에 가까울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리암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동생과 한 무대에 선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앞에서 동생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았다. 어쨌거나 오아시스는 그의 노래와 동생의 목소리로 완성된 밴드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솔로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자신에게 온전히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를 즐겼고 트러블은 없었다. 리암을 떠올리는 건 어머니댁에 갈 때 마주치지 않아야한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이마가 전부 드러날 정도로 두피에 가까웠으나 정면은 옆보다 자란 상태다. 두꺼운 눈썹 아래 파란 눈(그와 같은 눈), 고집스럽게 솟은 콧대와 그 밑에 짧게 자란 수염. 입술은 종이에 가려져 일부만 보였다. 빌어먹을 파카는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눈을 잡아끈 것은 리암의 자세였다. 팔을 뒤로 한 자세. 무대에 서는 리암의 트레이드 마크와 비슷하지만 마이크 앞에 설 때는 좀 더 턱을 들곤 했다. 그는 지금 정면, 아마도 카메라를 보고있는 것이다. 

저 카메라 뒤에는 누가 있을까. 폴? 데비? 그가 이름도 모르는 카메라맨일까. 그러나 누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진 속 리암은 어디인지는 몰라도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그가 아는 리암이지만 무대 위에서 만인의 눈을 사로잡는 가수가 아니었고 그저 입에 종이를 문 남자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라면 멍청이라 생각하며 기억속에서 지워버릴 사진을 한참동안 본 것은 비단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뿐만은 아니었다.

그는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저렇게 얌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는 얼굴을. 아니, 얌전하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볼 위에 오른 홍조를 노엘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입술은 더 붉었고 아직 젖살이 덜 빠져 사진보다 둥근 볼이 그의 허벅지에 닿았다. 리암의 열은 바지를 뚫고 그의 허벅지를 적셨다. 리암에겐 언제나 그가 모자랐다. 그의 시간, 관심, 애정, 관계와 모든 것에 그가 포함되길 원했다. 노엘은 분명 일반적인 형제 이상으로 리암을 사랑했지만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는 없었다. 리암은 무의식적으로 절대적인 헌신을 조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방어기제, 최후의 자기방어본능일지도 몰랐다. 개망나니 같지만 우습게도 리암은 낯을 가렸다. 그러니 과장된 행동을 하거나 노엘보다 사람을 피하곤 했다. 어린 시절 그가 노엘과 폴을 쫓아다녔던 것은 그런 이유도 어느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은 달랐다. 하물며 그것이 애정이라면, 그리고 그 총량이 리암만큼이나 크다면 노엘은 감당할 수 없다. 리암이 노엘에게 가지는 애정은 그가 숨긴다고 해도 얼기설기 엮인 낡은 그물에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가 걸린 것이나 같았다. 그것은 그물 사이로 빠져나와 그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시되곤 했다.

리암은 쉽게 남의 애정을 얻곤 했지만 그걸 지키는 데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한 좁은 원 안에 있는 사람의 애정만을 갈구했고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노엘에겐 언제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헤어진 것은 독에 난 구멍이 그들의 생각보다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노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을 어지간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왔다. 밴드멤버가 남았고 가족들이 있었다. 리암은 황무지나 무인도에 남겨지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도시가 500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차없이 남겨진 아이처럼 굴었을 것이다. 바친 애정이 외면당했을 때 상처입는 건 당연한 일이다.어머니를 제외하고 가장 큰 존재였을 노엘이 떠난 세계에서 아마 리암의 벽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떨어진 지 몇 년이 되었지만 그만큼 리암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노엘은 리암의 최고에도 최악에도 함께했다. 

그의 생각은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다. 사진을 다운로드한 뒤 클럽의 사진으로 덮어버렸지만 어느새 그는 리암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눈 밑의 주름과 전보다 마른 얼굴에서 시간이 느껴졌다. 노엘보다 어리다곤 하지만 리암 역시 중년이다. 나이는 몸을 따라잡고 영원히 젊을 것 같은 리암도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노엘은 한쪽 눈에 반짝이는 빛을 본다. 그저 조명 혹은 편집의 농간일 수 있다. 나른해보이는 표정과 몽롱한 눈. 그것을 세간은 농염하다 여겼으나 아무 생각없이 찍어도 잘 나오는 얼굴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리암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전보다 머리가 짧아지고 나이가 들고 젊음의 찬란함이 사라지고 입이 막혀 무엇 하나 말할 수 없으면서, 고작 종이쪼가리 하나를 물고있으면서도 그는 생을 과시한다.

휴대폰 속의 동생은 말이 없지만 그것만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일까. 이제는 네가 필요없다고,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외침일까 아니면 혼자있는 나를 봐달라는 부르짖음일까. 전자도 후자도 그에겐 달갑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잊고 싶었다. 아무 고민 없이 가사를 쓰고 녹음하고 내키면 친구와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생활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그는 이미 동생을 봤고, 무언가에 집중하다가도 틈이 생기면 그의 생각은 다시 리암에게로 돌아간다. 지긋지긋하고, 그를 쉽게 지우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울화마저 느끼면서도 생각의 발은 익숙한 곳으로 향해버린다. 제법 오랜 시간동안, 노엘은 과거 자신이 알던 동생을 떠올리고 지금의, 어쩌면 자신이 알지 못할 동생을 상상한다. 어떤 목소리로 노래부르고 어떤 얼굴로 무대에 설지. 10년, 20년 전처럼 10만 명이 넘는 관중을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같은 태도로 사람들을 흔들어 놓을지. 

결국 어떻게든 보게 될 무대를, 그저 스스로 찾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여기며 그는 기타를 잡는다. 누구를 떠올리며, 누구를 위해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사와 곡이 늘어난다 해도 그만이 아는 일이다. 아마 일부는 그가 부를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서랍 아래에 묻혀 다른 것들로 덮힐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아마 가슴 저 아래 가라앉은 모래처럼 불규칙적으로 부유하며 자신의 존재를 잊지 못하게 할 것이다. 끝내 그가 지우지 못한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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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싯밴리암럄노엘뉄붱노엘리암뉄럄
2024.09.20 09:54
ㅇㅇ
모바일
센세 와 진심 대박...저 사진 하나로 이 쩌는 심리묘사가 가능하다니...인생이 뭘까 갑자기 존나 깊은 생각을 하게 됨...
[Code: 78fb]
2024.09.20 11:11
ㅇㅇ
모바일
와 센세 이건 문학이잖아요 너무 좋다ㅠㅠㅠㅠ평온해진듯 하지만 그 마음 속 밑바닥에 계속 까끌거리며 존재를 과시할 우리애에 대한 상념...표현이 너무 감각적이라 감탄하면서 읽음...!
[Code: bd22]
2024.09.20 11:19
ㅇㅇ
모바일
와 센세 필력미쳤다.....
[Code: 2a93]
2024.09.20 12:48
ㅇㅇ
모바일
센세 이게 무슨 일이에요 너무 아름다운 문학을 봤어...
[Code: 79f5]
2024.09.20 12: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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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센세 진짜 이건 문학이다......어떻게 저사진 하나로 이 미쳐ㅛ어 너무 좋아 진짜 내가 말을 못해서 너무 슬플만큼 좋아
[Code: cf39]
2024.09.20 13: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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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쳤다....ㅠㅠ 너무 좋아요 센세ㅠㅠ
[Code: a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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