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5310296
view 299
2024.09.19 19:46
대만이랑 사귀지만 이 관계에는 반드시 끝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며 연애하는 탓에 행복할 때도 온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한구석에 두는 태섭이가 대만이한테 제대로 표현을 할 리가.. 대만이가 주는 걸 받기만 해도 벅찬 것도 한몫 했을거임.

대만이라고 그런 태섭이를 모르는 게 아니었음. 연애라는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보니 상호작용이 필요한 법인데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적다면 아무래도 부족함이 생길 수 밖에 없겠지. 그래도 내가 송태섭을 사랑하고 송태섭도 나를 사랑하니까. 대만이는 본인의 사랑에 흔들림이 없었고 태섭이의 애정 또한 의심하지 않았음.

태섭이도 대만이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았음. 다만 태섭이의 불안이 대만이의 사랑을 양분 삼아 쑥쑥 크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만이 태섭이가 가진 확신이었음. 대만이가 졸업하고는 더욱 확고해질테고.

고작 1살 차이지만 대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의 거리감은 상당했음. 게다가 태섭이의 미국행까지 겹쳐진다면 더하겠지. 이렇게 서서히 멀어지겠구나. 그렇게 태섭이는 이별도 고하지 않은 채 멋대로 마음의 정리를 시작해버릴 것 같다.

그래도 그동안 행복했었지. 당시에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행복들을 곱씹으며 대만이와의 연락도 조금씩 멀리하는데 어느 날 대만이가 아무 연락없이 태섭이를 찾아왔음. 태섭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대만이가 어딘지 매서운 얼굴로 당장 시간 좀 내라고 하겠지. 태섭이는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해져서 알겠다고 대답한 후에 달재에게 잠시 맡기고 부실로 갔음.

부실에는 대만이와 태섭이 뿐이었고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음. 잠시간 서로를 보기만 하다가 태섭이가 작게 한숨을 쉬고 물었지.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헤어지자는 말만큼은 알아서 해주길 바랬는데. 마지막까지 손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차분히 처분을 기다리는 태섭이었음. 하지만 대만이는 태섭이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친 말은 태섭이의 예상과 다른 말이었지.

너 대체 왜 나를 피하는 거야!
네?
나랑 헤어지기라도 할 거야? 왜 나를 밀어내는데!
그....건,
설마 정말 헤어지려고 그랬던 거냐?
.......
송태섭.


제 이름이 불렸지만 더이상 대만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떨어뜨리는 태섭이었지. 오늘 대만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이별을 고하러 온 게 아니란 건 알아차렸음. 하지만 이미 마음 정리를 시작해버린 태섭이에게 이별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지. 그런데 태섭이 어깨를 잡은 대만이의 손에 차츰 힘이 들어가자 태섭이는 이것 좀 놔달라고 하기 위해 고개를 들다가 두 눈이 크게 뜨였음. 그 정대만이 울고 있었으니까.

서, 선배,
너 진짜.... 넌.....
울지마요. 네? 왜 울어요....
몰라서 물어? 난 너랑 헤어지기 싫다고....

대만이의 눈물을 정신없이 닦아주던 태섭이의 손길이 뚝 멈추자 대만이는 태섭이 손에 제 손을 겹치며 태섭이의 손이 좀 더 자신의 얼굴을 감싸게 했음.

네가 그 쪼끄만 머리로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은 알아. 그치만.... 나는 내가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근데 네가 그 노력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으면 나는 어떡해...... 태섭아, 난 정말 너 없으면 안 돼.... 네가 그렇게 자꾸 멀어지면 내 인생이 다 멈춰버리는 것 같다고.....

아, 언젠가 태섭이가 느꼈던 두려움과 비슷했어. 이 사람이 다시 한 번 내게서 멀어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대만이도 느꼈던 거야. 나의 불안이 당신에게도 물들었구나. 태섭이는 울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대만이의 얼굴을 엄지로 조심스럽게 문질렀음. 그 손길에 대만이의 눈이 감겼고 걸려있던 눈물이 태섭이의 손가락을 툭툭 건드리며 떨어졌지. 떨어지지 않고 태섭이의 엄지에 남겨진 눈물은 마치 제 곁에 있겠다고 하는 대만이의 마음 같았어. 하지만 내가 이 마음을 받고 품어도 되는걸까? 태섭이의 불안이 또 태섭이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음. 그저 불안해하는 이 사람을 안아주고 싶었고 이 사람에게 불안해하는 자신을 안겨주고 싶을 뿐이었지.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