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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2:45
4번을 짊어지고 나서 처음 도전한 전국대회 진출의 꿈은 카나가와의 또 다른 쌍벽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코트 위에 나란히 정렬한 면면은 여름부터, 아니 작년 겨울부터 죽 이어져 온 익숙한 얼굴들 뿐이라 답지 않게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심에 있는 저 사람. 이번에는 잘도 선수겸 감독의 역할을 해냈다. 주장이자 에이스인 그. 저 사람도 자신이 둘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까?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얼굴. 그 역시 주장이자 에이스였다. 그들을 한번도 꺾지 못한채 나의 2학년 겨울은 끝났다.

대협이 코트 위에서 능남 농구부의 정신적 지주이자 분위기 메이커이자 자랑스러운 에이스인데 그런 대협이가 묘하게 가라앉아있으면 주위에서 굉장히 곤혹스러워할거 같음. 원래도 느긋하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이긴 했는데, 그것과는 아예 결이 다른 모습에 다들 대협이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함.
대협이도 다들 자기 눈치를 보는걸 아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음. 사람들한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평소와 같은 척 하는데 쉽게 자기 페이스를 찾기 어려운 지금은 그 관심과 걱정이 고맙기보다는 성가시기도 함.

주장 달고 처음으로 맞이한 전국대회인 윈터컵에서 3학년 주전 멤버들이 전부 남은 상양에 패배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대협이는 문득 덕규랑 태환이를 비롯한 다른 3학년 선배들이 그리워졌을 것 같다.
'그' 윤대협이 주장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달리 능남 농구부원들은 전부 대협이를 주장으로 인정하고 있었고(연습 경기 등 일상 생활적인 부분은 영수나 태산이 같은 다른 2학년이 이끄는 경우가 많았지만) 코트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대협이를 믿고 따랐겠지.
에이스일 때는 동료들이, 무엇보다 선배들이 패배 후 울면서 미안하다고 할 때마다 부담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주장을 달고 난 후 첫 공식전 패배에서 윤대협은 그제서야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음. 더 높이 데려가주지 못해 미안해.
팀의 에이스기만 했던 시절에는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책임만 느꼈었는데 주장의 입장에 서고보니 팀 전체의 플레이에 대한 책임이 느껴짐. 다른 사람 잘못도 내 책임이오 할 정도로 무르지도, 멍청하지도 않고, 애초에 그렇게 책임감이 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함. 그렇다고 능남 농구부는 나 하나에 달렸다는 자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가슴팍 위에 커다랗게 박힌 숫자 4가 무겁게 짖누르는 추가 되어 올라오지 못한 채 점점 가라앉는 기분임.

그리고 가라앉은 대협이는 참지 않는 능남 치와와 영수가 가서 건져냈으면 좋겠다. 오늘도 한량하게 연습 땡땡이치고 낚시대를 드리운 채 바다만 바라보는 대협이를 잡으러 와서 "이제 충분히 참았어!!! 적당히 해!! 너만 전국대회 나가는데 실패한게 아니야! 우리 모두가 실패했다고!" 하고 멱살 잡고 소리지름.
그 말을 들은 대협이가 평소의 느긋한 웃음도 잃고 영수가 흔들면 흔드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가 가만히 멱살을 잡은 영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림. "이대로 너를... 너희를... 전국에 데려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대협이의 그 말에 영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 하고 콧웃음 한번 치고 말하겠지. "바-보 네가 데려간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네가 데려가는게 아니라 우리가 가는거야!"
멍하니 영수를 바라보면 영수는 그딴 개소리 하지 말고 연습이나 하러 가자고, 너는 몰라도 나한테 남은 전국대회는 이제 하나뿐인데 너가 연습 안하고 땡땡이쳐서 발목 잡힐 수는 없다고 대협이 어깨를 세게 팡 치겠지. 손이 꽤 매워서 "영수야 나 아파..." 하는데 영수는 엄살 부리지 마!! 하고 저 멀리 먼저 달려감. 진짜 아픈데... 중얼거리면서도 영수의 뒤를 따라가는 대협이의 입가에는 어느새 평소와 같은 미소가 걸려있겠지.

슬램덩크 약대협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