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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센도군 여름방학에 할머니네 놀러갔다가 작은 돌탑을 발견한게 보고싶다. 할머니, 이 탑은 뭐예요? 어라, 이런 곳에 돌탑이 있었나? 할머니도 처음 보는 탑인데 크기도 딱히 안 크고 돌도 주운 것들을 어설프게 쌓은 모양이라 그냥 작은 신을 위해 누군가가 지은 거라고 생각할듯.

그런건 왜 하냐고 묻는 센도에게 무언가에라도 간절하게 빌고 싶은 때가 있는 거니까, 라고 대답해준 할머니... 그리고 센도는 그 날 이후로 지나다닐 때마다 귤이나 들꽃 같은거 하나씩 놓고 기도함. 엄마가 빨리 건강해지게 해주세요, 하고.

아무튼 그렇게 놓고 간 것들이 다음날이면 깨끗하게 사라져 있어서, 뭔지는 몰라도 그 탑에 붙은 신이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초딩센도

그러다 어느날 과자 한봉지 놓고 기도하다가 뭔가 기척이 느껴져서 눈 떴는데 까만 여우랑 눈 마주쳐버림. 털 빵빵해서 막 뻗친 느낌의 여우가 과자봉지 물고 뒷걸음질 치다가 덤불 속으로 쏙 들어가버리는걸 보다가 머리 긁적이고 일어섬. 할머니한테 가서 얘기했더니 그 탑에 자리 잡은게 여우신인가보다 하는거임. 여우신은 뭘 좋아해요? 유부를 좋아한다고 해. 그 말에 다음날 도시락에서 유부초밥의 유부만 남긴 센도...유부 놓고 기다리니까 여우가 주춤주춤 와서는 유부만 물고 또 쌩하니 사라지고. 그런식으로 며칠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진 다음엔 여우가 조금 더 가까이 와서 꼬리를 흔든다거나 하는 일도 있을거임

그리고 어쩐지 집 앞에 자꾸 죽은 닭이 놓여 있다고 고민하는 할머니 ㅋㅋㅋㅋㅋ 그날도 탑 찾아간 센도가 슬그머니 나타난 여우한테 물어봄. 닭 네가 가져다 놓는거야? 하니까 고개 끄덕임. 할머니가 곤란해하셔서 안 하는게 좋을 것 같아. 끄덕.

여우랑 친해지면서 이런저런 말도 더 하고 농구 하는 것도 보여주고. 그렇게 여름 지나면서 어머니도 건강해지고 해서 도쿄집에 돌아가는 센도.... 유부 한가득 챙겨서 돌탑 앞에 두면서 인사하는데 여우가 안보임. 조금은 서운하네...싶어서 입술 삐죽하다가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차로 달려가는데 마을 경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웬 꼬마애가 서있는걸 보는 센도임. 아무리 시골이라도 주변 분위기에 맞지 않게 검은 유카타 입고 있는 애였는데 센도가 탄 차가 지나가는 거 보고 몇걸음 따라오다가 시무룩하며 멈추는 모습이 멀어지는 걸 봄

그러고 한 1-2년은 여름에 해외여행이니 뭐니 가족들이랑 다니느라 시골에는 못 왔었는데, 중2쯤 되어서 여름방학에 할머니 댁에 또 놀러왔을 때, 엄청 예쁘게 생긴 남자애가 센도 찾아와서는 왜 이제 왔냐고 씩씩대는거 보고싶음. 그러고 센도한테 들고 있던 공 던지면서 너 보여주려고 연습했는데, 하는 말 듣고는 설마 여우...? 하고 놀라는 거 보고싶다.

센도가 얼빠져서 묻는 거에 공 빡 던지는 소년 ㅋㅋㅋㅋ 왜 이제 왔냐고 그러는데 센도는 딱히 할말이 없음. 그냥..가족들이랑 여기저기 다니느라. 그렇게 대답하면 여우소년 입술 삐뚤어짐. 왜냐하면 자기는 여기저기 다닐 수가 없거든...신당이 마을에 있으니까, 마을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음. 그래서 괜히 센도한테 더 서운함. 나는 여기서 너만 기다렸는데 넌 혼자 여기저기 갔다오고. 그 와중에 센도는 앞에 있는 애가 신기한거임. 분명히 그때의 여우신인거는 알겠는데 (제멋대로 부숭부숭한 머리 스타일이라든가) 어떻게 사람 모습을 했는지 모를일임.

그때 집 안쪽에서 센도네 할머니가 나오다가 루카와- 하고 남자애를 부르는거임. 순간 센도는 남자애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여우귀가 쫑긋거린다고 생각함. 남자애가 할머니한테 도도도 달려가자 할머니가 그릇 한가득 유부초밥 담아서 온 거겠지. 그때는 진짜로 귀꼬리 펑하고 나와서 살랑거리면서 초밥 먹는 남자애임. 센도 잠깐 어버버 하다가 할머니한테 물어봄.

- 루카와...요?
- 이 아이가 알려줬어. 예쁜 이름이지 않니?

할머니가 웃으면서 말함. 루카와가 집안 일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센도가 가고 나서 못온 2년동안은 루카와가 마당 청소도 하고 (처음에는 흙을 다 뒤집어놔서 이게 뭔가 했음), 닭이 알 낳으면 계란도 가져오고 아무튼 그런 자잘한 일들을 도와줬다고 함. 센도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왔다가 그렇게 된거임. 가끔은 저녁 먹을 때 전골 같은거 하면 루카와랑 같이 먹기도 하나봄. 대신 전골에 유부 엄청 넣어줘야하는 ㅋㅋㅋ 센도는 헤에...하고 입 벌리고 그 얘기를 듣고 있음. 손에 든 공 만지작거리면서 루카와가 유부초밥 먹는걸 보다가 옆에 앉았음. 그러니까 뺏어먹으려는 줄 알았는지 슬쩍 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기는 거임.

- ...안 뺏어먹어.
- ......
- 근데 하나만 주면 안돼?

나 기차 타고 오면서 아무것도 못먹었는데. 센도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니까 루카와는 좀 고민하는가 싶더니 자기가 한입 먹은 걸 내밈. 그러고는 자기는 새거 집는다. 센도 어이없지만 아까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주는게 용함. 사실 할머니가 하나 줄래? 해도 잘 안주는 루카와임. 볼 빵빵해지게 넣고 먹는거 구경하면서 센도도 유부초밥 하나 먹고. 그러고는 옆에 뒀던 공을 보는데 엄청 꼬질꼬질한게 진짜 많이 가지고 논 모양임. 공을 만지작거리다가 검지 손가락 위에 놓고 핑 돌리는데, 낡은 공이라 그런지 오래 돌지는 않았음. 센도는 그걸 보다가 뭔가 생각난듯 자리에서 일어남. 나 농구공 가져왔는데 다 먹으면 그걸로 같이 놀까? 하고 물어보는데, 딱히 대답은 없었음. 볼이 꽉 차서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기도 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센도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더플백에 챙겨온 농구공을 꺼내옴. 밑으로 내려왔을 때는 루카와가 밥을 다 먹고 손을 핥고 있었음. 그는 센도가 마루로 나오는 걸 보고 그의 손에 들린 농구공으로 시선을 옮겼음. 매일매일 잘 닦아서 반질거리는 공이었음. 루카와는 괜히 자기 낡은 공을 끌어서 품에 안았음.

뭔가 자기 애착공이 초라한 느낌이잖아... 센도는 루카와 앞에서 농구공을 바닥에 몇번 튕긴 뒤에, 드리블 하는 걸 보여줌. 루카와 눈이 반짝거리는걸 보니 관심이 있는 모양임. 자기 공으로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농구공처럼 잘 튀는건 아니라 좀 버벅거림. 이거 가지고 해볼래? 하고 센도가 공 던져주는데 첨엔 고집스럽게 자기 공으로 하려고 하면 좋겠다. 이제까지는 그 공으로도 문제 없었을거임. 그냥 슛 넣는 것만 연습했으니까. 그런데 바닥에 튕기면서 하는 기술은 확실히 안되겠지.

센도는 혼자 열받아서 낑낑거리는 루카와를 보다가 다른 기술 몇개를 더 연습함. 나 이번에 중학교 올라가는데, 농구부에 들어갈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으로 공을 휙 던짐. 조금 떨어진 곳에 통통 굴러가는 공을 주우러 갔다오고 나니, 루카와가 물어봄.

- 농구부가 뭔데?
- 여러명이서 농구를 하는...

동아리라는 말을 얘가 알까? 싶어서 센도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음.

- 단체야.
- 농구가 뭔데?
- 너랑 나랑 이렇게 공 가지고 노는 거.

센도는 손 안의 공을 빙그르르 돌림. 그러고 보니까 자기가 혼자 연습하는 것만 보여줬지 1대1이라든가 여럿이 한다든가 하는 얘기는 안했던거 같음. 심지어 농구라는 단어를 꺼낸적도 없었던 거 같음. 센도는 루카와와 마주보고 서서 공을 바닥에 통통 튀김. 이 공 나한테서 뺏어볼래? 그렇게 묻자 루카와가 별 표정 변화 없이 손을 내밀어서 뺏으려고 함.

센도는 그 손을 피해서 공을 반대편 손으로 옮김. 루카와는 다시 한번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때를 노렸지만 또 다시 헛손질을 하게 됨. 그 사실에 약이 올라서 씩씩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고 센도가 웃었음. 그렇게 두어번을 더 헛손질 하고 나니 이제 루카와 눈에서 불이 뿜어지기 일보 직전임.

이제 아예 무릎이랑 허리를 굽혀서 자세를 낮게 잡는데, 제법 괜찮은 수비 포즈라 센도도 어라? 하는 생각임. 이번에는 루카와의 손 끝이 공에 살짝 스치기까지 함. 방향이 바뀌는걸 센도가 금방 잡아서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살짝 위험했다 싶음. 그 사실을 루카와도 알았는지 공이 스쳤던 손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음. 조금만 가르치면 잘 하겠다. 센도는 웃으면서 루카와의 머리를 쓰다듬음. 방학동안에 혼자 심심하지는 않겠다 싶었음.




슬램덩크 슬덩
태웅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