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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04:03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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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 집은 내 집이었다.

정말로, 거짓말도 과장도 아니라 진짜로.

그 애의 냉장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옷장에는 내 잠옷으로, 화장대 위에는 내가 쓰는 화장품으로.
칼럼은 쓰지도 않는 드라이기와 고데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긴 머리카락. 같이 찍은 사진, 생일마다 내가 써 준 편지, 내 수학 연습장, 학습지, 문제집.

주말이면 오전에 학원에 갔다가, 칼럼 집으로 귀가해서 군것질하며 공부 좀 하다가 둘이 노는 게 우리 루틴이었다.

"근데, 이건 내 팬티 아닌데."
"어."

검은색 레이스 티팬티. 엄마가 사다 준 리본 달린 순면 팬티만 입는 내 취향이랑은 너무 다른데.

"아, 그거. 그. 어..."

"여친 왔었나 봐?"

"아니, 그게. 어. 그런가 봐."


저게 뭔 멍청한 대답이람. 풀던 삼각함수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데, 눈치 보느라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도로로록. 도로록. 도록. 힐끔대며 머릿속이 어수선대는 게 시끄러워서 결국 고개를 다시 들었다.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

"어, 응..."


분명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물건을 툭툭 던지지?

"야, 칼럼."
"뭐."
"또 뭐가."

"뭐."

"아니, 내가 물었잖아."

"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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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아리 진짜.

"전에 본 애, 걔야?"

"아니."
"또 바꿨어?"

"..."

"알바하는 데서 만난 거야?"
"응."

조금씩 표정이 풀린다. 단순하긴. 툭 튀어나왔던 오리입술이 들어가고, 다시 살금살금 내 표정을 읽는다. 별로 화 안 났는데. 그치만 그건 그거고, 내 공간에서 남의 속옷이 나온 건 다시 생각하니까 조금 짜증이 나긴 해서.


"키스는 어떻게 해?"


그래서 조금만 골려보기로 한 건데.





"혀부터 넣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랑한 입술이 아랫입술을 조심히 문다. 살짝 빨아들이는 걸 따라 칼럼의 입술을 물어보니, 흠칫, 몸을 떨며 조금 물러난다. 쫓아가 다시 무니 손이 허리에 감긴다. 뜨거운 커다란 손이 덜덜 떨며 엉거주춤 허리에 닿기만 하고, 잡지는 않는다. 침 젖은 소리가 드문드문 끊기고, 조금 머뭇거리다 먼저 혀를 밀어넣으니 다시 화들짝 놀란다. 얜 아다도 아니면서 왜 이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맞는데..."
"나랑 하기 싫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가? 가깝게 붙였던 몸을 슬쩍 물리니 허리에 닿았던 손으로 주욱 다시 당긴다. 솜털이 다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칼럼이 조용히 숨을 쉰다. 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 긴장한 그애의 숨에 스타카토가 붙는다. 심장소리가 쿵쾅대는 게 내 몸까지 느껴져서, 근데 그거 조금 웃겨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왜 웃어?"
"너, 심장 소리 여기까지 들려."

어. 얼굴 빨개진다.

손을 들어 그애의 눈을 덮고 먼저 입술을 부딪혔다. 다만 그 뒤는 아직 배운 바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니, 이제는 먼저 혀가 비집고 들어온다. 조금씩 움직이는 걸 따라가본다. 첫키스는, 사실, 그 느낌이 어땠는 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온몸에 닿았던 그애의 체온이 유독 높았던 것과, 온몸을 울리던 그애의 심장소리와, 아직도 어색하게 허리에 덧대어지기만 한 그애의 오른손과, 잠시 입을 뗄 때마다 떨리던 숨결만 남아있다.

"담배 냄새 안 나."
"주말에... 원래 안 피잖아."
"그러면? 평일에는, 펴?"

"응."
"여친은 언제 왔었어?"
"...목요일에."


그렇구나. 엉거주춤한 자세가 불편해서 칼럼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으며 그애의 젖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니, 손가락을 따라 칼럼이 시선을 내린다. 속눈썹도 참 길고 예쁘지. 너는 걔랑 키스할 때는 담배를 피는구나.

"주말에 펴도 상관없는데."
"싫잖아."
"응."


이번엔 대놓고 아리송하게 쳐다보며 미간을 좁힌다. 하하!

"응, 다시 생각하니까 피지 마. 주말에는."
"이참에 끊을까?"
"음... 아니."

그러면 주말이 특별한 게 아니게 되잖아. 그 말은 꾹 삼키며 칼럼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완전히 겹쳐진 상체에 칼럼이 빳빳하게 굳는다. 그애의 긴장 속에서 나는 완전히 풀어진다. 좋은 냄새. 내가 고른 섬유유연제. 내 처음은 너였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너에게 내 처음이 당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서, 나는 그 해 첫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시험 끝나면 더블 데이트 하는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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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내가 왜?"
"너 여친 한 번도 나한테 소개해준 적 없잖아. 나는 처음으로 사귀는 거고."

"시간 없어."
"왜, 주말에 너 시간 많잖아."


주말 알바를 시작한 그애의 빤한 속내에 내가 웃었나?

"다음주 토요일은 남친이랑 놀기로 해서 못 만나."

"그래, 뭐."

"엄마 주말에 시골 간다 했다?"

"응."
"그래서 오라고 하려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흐물이가 벌떡 일어난다. 황당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지만 원 그래프를 이어서 그린다. 아, 이건 거의 완벽한 원인데? 매번 조금씩 찌그러졌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그래도 그건 좀..."
"왜? 너도 맨날 하잖아."

숨을 삼킨 칼럼이 그대로 멈춘다.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문득 고개를 드니,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야, 너 왜..."
"부르지 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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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지 마."

어, 흘러내린다. 소리도 안 내고 찔찔대는 칼럼을 잠시 바라보다가 샤프를 내려놓았다. 그 작은 동작에도 눈치를 보며 칼럼이 바닥으로 시선을 내린다.

"안 부르면?"
"..."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왜 부르지 말라고 해?"

"... 나도 몰라."

"그래서, 너가 원하는 대로, 안 부르면. 어떻게 할래?"
"몰라, 뭐든. 다 할테니까 부르지 마."

그 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

"그럼 더블 데이트 해. 너 여친 데리고 나와."


당시 내 남자친구는 근처 남고 이과 1등에 축구부 주장으로, 단정하고 차분한 학생이었다. 스킨십에 박한 편이었던 나는 그 주 토요일, 종일 남자친구와 팔짱 낀 채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남자친구에게 닿는 손길 하나하나마다 끈질기게 시선이 달라붙었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니, 굳이 그렇게 회상하지 않아도,
그 순간순간마다 굉장히 즐겼던 것 같다.

2024.06.20 12: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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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데 너무 귀여워ㅠㅠㅠㅠㅠㅠ근데 슬퍼ㅠㅠㅠ
[Code: ee5a]
2024.06.21 11: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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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이런 금무순을 이제 발견하다니 ㅠㅠㅠ 허니 완전 기고만장했네... 근데 짝사랑하는 칼럼 너무 맛있고 ㅠㅠㅠㅠ 그래도 과거에는 짠하지만 귀여운 관계였는데 어쩌다 허니는 결혼하고 칼럼은... 죽은건지... 센세 어나더 ㅠㅠㅠ
[Code: 813a]
2024.06.22 10: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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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당연하지 않았으면 해서 남자친구 사귀는게 이렇게 짜릿할줄이야...짜릿하고 아슬아슬해
[Code: 3a11]
2024.06.24 23: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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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 돌이켜서 둘이 잘 됬으면 조켓다..
[Code: 7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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