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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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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주의, 주화입마 주의
*방다병,적비성과 센티넬/가이드스러운 연형제인 과거 이상이 현 이연화가 요마 우두머리인 천마왕 현야와 얽히는 이야기.
24편.
마차의 주인인 모한을 윗층에 두고 나란히 누운 세 사람은 가운데 자리에 누구를 눕힐 것인지로 의견이 분분했다. 이연화는 아무데나 좋으니 구석에서 벽을 보고 일행에게서 등을 돌려 자길 원했고 그의 연형제 두 사람은 상대는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 제 옆에 이연화가 있길 바랬다.
“그래서 결국 나더러 가운데에 누우라는거야?”
“내가 가운데에 눕겠다는거다.”
“절대 안되지. 이연화가 벽이 좋다 하고 내가 연형제니 당연히 내가 가운데지.”
따지고 보면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소리를 해대고 있는 세 사람은 옥신각신하다가 마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알아서 쉿 소리를 내며 멈췄다.
“둘 다 적당히 해. 모한은 아까부터 자는 모양인데 이러다 깨우겠어.”
“그러니 조용히 하고 내가 가운데에..”
방다병이 잽싸게 가운데 자리에 몸을 끼워넣자 적비성이 검집을 들어 저지했다. 방다병이 진심을 담아 눈을 부라렸다.
“이게 칼까지 들 일이야?!”
“들 일이지.”
잇- 소리를 내며 턱을 치켜 들며 다가드는 방다병과 올테면 와보란 듯 꼿꼿하게 상체를 세워 앉은 적비성 사이로 이연화가 담요를 밀어 넣어 시야를 가렸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가운데에 누울테니 작작들 하고 구석에 붙어서 잠이나 자!”
이연화는 못마땅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오만상을 쓰고 주섬주섬 가운데 자리로 들었다. 방다병과 적비성은 서로를 흘끔 쳐다보았지만 딱히 더 말은 얹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연화가 제 옆이라 만족한 모양이었다.
“애들도 아니고 뭐하는 짓들이야.”
“그런 너는 노인도 아닌데 군말이 많군.”
“그러게, 잔소리가 우리 어머니 못지 않아. 이 나이에 노인네같은 습관은 안 좋아."
이연화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죽이 잘 맞은거야? 그나저나 방소보, 내가 몇 년을 산 줄 알고 그런 소리를. 이연화는 내가 대꾸를 말아야지,라 중얼대며 천정을 보고 누워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한쪽을 보고 자자니 민망하고 뒷꼭지가 시리고, 정자세로만 누워 있자니 등이 배겨 불편했다. 아, 정말 다 버리고 혼자 갈까보다.
적비성은 야렵시에 편히 자지 않는 편이었지만, 비록 경맥을 통하지 않았다 해도 안정감을 주는 이가 지척에 있으니 한결 편한지 정자세로 누워 곧 숨을 고르게 쉬었다. 단정한 자세의 탄탄한 몸이 위아래로 곧게 뻗어 있는 것이 그다웠다. 반면 방다병은 한팔을 꺾어 베개 삼고서는 모로 누워 이연화 바로 옆에서 옆얼굴을 열심히도 보고 있었다. 모르는 척 눈을 감고 있던 이연화가 더는 참지 못하고 한숨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가까이서 마주 보게 되자 뭐가 그리 좋은지 방다병의 얼굴 가득 웃음이 어렸다.
"방소보, 뺨 뚫어지겠어. 팔 저릴 것 같은데 반대편 보고 눕는게 어때?"
"팔 안 저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댔나,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방다병이 영 밉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잠들기 전까지 내내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연화는 제 연형제를 흘끗 보고는 꾀를 내었다.
"방소보, 그 팔 좀 풀어봐. 바로, 그렇게."
방다병이 팔을 풀고 편한 자세로 돌아가자 이연화는 그를 뎅굴 굴려 벽쪽을 보게 했다. 그리고 너른 등에 손을 얹어 가볍게 내력을 불어 넣었다. 청량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들어와 방다병의 몸 근육이 노곤하게 풀렸다.
"무슨 바람이 분거야, 이연화? 설마 이대로 혈을 찍을 작정이라면 참아줘."
이연화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아주 태연한 목소리를 냈다.
"걱정시켜서 미안한걸로 해두자고."
"평생 청구서 보내는거 잊지마."
그걸 또 기억하냐. 이연화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서늘한 요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반요인 이연화는 더 예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산만하게 느껴지던 요기는 근처로 다가오고 있는지 점점 짙어졌다. 속도도 빨랐다. 방다병과 적비성도 느꼈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요마다."
적비성이 재빠른 동작으로 마차의 휘장을 살짝 걷어 밖을 살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자세가 아주 낮아.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해."
"짐승형인가?"
방다병이 옆에 가붙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어둠에 질세라 눈을 가늘게 뜨며 형체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도무지 무슨 모양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연화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슬쩍 내다 보았다. 반요인 그의 눈에는 칠흑같은 밤에도 형체가 아주 잘 보였다. 밖에는 너댓마리의 요마가 있었는데 생김새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몸통은 거대한 지네인데 수많은 다리 앞에는 사람의 팔이 여럿 달려 있었다. 지네의 머리 부분은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람 얼굴이 달려 있고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이 끈적한 액체와 함께 정수리와 뺨에 이르기까지 엉겨 붙어있었다. 눈은 퀭하게 뚫려 동굴처럼 보였고, 코와 입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새끼 지네들이 뿜어져 나오는데다 이빨로 짓이겨서인지 검푸른 액체가 입 주변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연화는 그 몰골을 확인하고 속이 거북했지만 조금 참았다가 이 둘이 괴물을 제대로 보고 나서 우거지상을 할 때 같이 티를 내기로 다짐했다.
"갑자기 멈췄어."
방다병이 검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켜보는 것 같은데. 저 범위 안으로 더 못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요마가 둥글게 원을 그린 듯 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상태로 위협하듯 쉿쉿하는 쇳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원 안으로는 더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연화의 눈에는 분한 듯 입을 벌려대는 흉측한 모양새가 더욱 잘 보였다.
"모한이 결계를 쳐둔 모양이야. 그 안으로는 못 들어오고 있어. 그래도 저걸 주변에 두고 맘 편히 자긴 글렀는데."
이연화의 말에 방다병이 진심으로 감탄을 하며 윗층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래서 저렇게 틀어박혀 나오질 않나보네. 그만큼 자신있단거겠지? 모한이 안 나오면 우리도 안전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이연화는 모한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 확신했다. 보통의 천사들도 방어막 역할을 하는 비술 결계를 칠 수는 있었지만 일시적이었고 그마저도 요마의 비술 공격에 몇 번으로 뚫리기에 급할 때 발을 묶을 요량으로 사용했다. 비술사들은 사정이 더 나아 범위가 크고 더 오래 가는 방어 결계를 칠 수 있었는데 내력 소모가 커서 한 번 쓰고 나면 바로 다른 비술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모한 실력이 대단하네. 설마 자는 내내 방어결계를 유지한다고?"
방다병이 순수하게 놀라워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자라 해도 실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내기가 아닌 모양이다."
적비성도 드물게 칭찬을 했다. 코빼기라도 내비칠 법도 한데 윗 층은 조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잘 수는 없어. 어차피 결계 안이 안전하면 나가서 다 없애버릴까?"
방다병이 이아검에 손을 얹으며 묻자 적비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 앞에 있으면 베는거다, 이연화에게 나오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 적맹주는 손에 자색 불꽃을 피워 올렸다. 천기당과 금원맹의 실력자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연화는 본능적으로 어딘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 두 사람의 옷자락을 잡았다. 튀어 나가려던 둘은 아이마냥 옷을 잡고 선 이연화에 잡혀 멈칫하고 놀란 눈으로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방다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냐는 듯 걱정 어린 말투였다. 적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답을 구하고 있었다. 이연화는 순간 뭐라 답해야할지 난감해졌다. 딱히 답이 없기도 했다. 오랜 경험상 보통의 요마가 뿜는 요기와 독하고 악한 기운을 품은 요기는 달랐다. 한을 품은 귀신처럼 후자의 요기는 그저 차가운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게 선득하고 소름이 끼쳤다. 귀신의 한이 인간사의 연장이듯, 요마에 당한 인간이 얽힌 사기가 섞여 있으면 그 요기는 유달리 더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네 괴물은 후자였다. 이를 어떻게 말한담. 구구절절 말할 수도 없고. 이연화는 할 수 없이 최대한 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느낌이 안 좋아. 나가지마. 혼자 있기 무섭기도 하고, 무엇보다 둘 다 다칠까봐 싫어. 결계도 있잖아."
투정 부리는 듯한 말을 하며 이연화는 머리 속에 애교 부리는 여인네를 그리려 애썼다. 언젠가 요마를 잡으러 갔던 작은 기루에서 자그마한 기녀가 제 손님에게 눈썹을 한껏 팔 자로 휘어뜨리고 콧소리를 냈더랬다. 물론 자기는 그런 흉내는 못 내지만 적어도 옷자락을 쥐고 떼쓰는 아이처럼 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연화다운 짓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두 사내가 품은 마음을 아는지라 미안하지만 써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다병의 눈빛이 끼잉대는 새끼 강아지를 보는 것마냥 초롱초롱해졌다.
"이연화..."
감격인지 탄식인지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소리가 비시식 새어나왔다. 너를 두고 어떻게 가겠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이연화는 속으로 끙 신음을 삼켰다. 적비성은 이게 뭔가 싶어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싫은 내색은 하지 않고 제 도만 말아쥐었다.
"혼자 처리하고 오지."
무서우면 네 연형제랑 있어, 안전하게 해줄테니. 두 사내가 이연화를 싸고 돌자 이연화의 등에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았다. 안되겠네 이거.
"그게 아니라. 적맹주. 내가 눈이 좀 잘 보이는데."
그 말을 하며 이연화는 적비성만 알도록 팔을 꼭 쥐었다. 반인반요라서 더 잘 안다는 것으로 들리길 바라며. 다행히 적맹주는 눈치가 빨랐다.
"그냥 막 상대할 놈들은 아닌 것 같아서. 모한을 깨우는게 어떨까."
적비성은 내심 동의하지 않았으나 이연화가 이렇게까지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잠시 침묵을 지키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적비성이 휘장을 제꼈고 셋은 곧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에 모한이 마차를 등지고 서있었다. 몸에서 엷게 검붉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네 하나가 여러 조각으로 잘려 나가 나뒹굴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요마들이 캬악 소리를 내며 쳐들어오려고 몸을 뒤틀어대는 통에 소란스러웠다.
"잡스럽다. 꺼져라."
어둠 속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모한이 맞나 싶을만큼 다른 목소리인데다 음산하게까지 들렸다. 일행을 등진 모한이 앞에서 무슨 손짓을 하고 어떤 비술을 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네들은 갑작스럽게 괴성을 뚝 멈추더니 혼비백산하여 몸을 돌리고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한은 사실 별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네 요마들이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주었을 뿐이었다. 수십년 전 어느 밤에 보여주었던 그대로, 모한은 그들에게 잠시 제 본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너희를 내가 이리 만들었다, 또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싶은게냐. 말은 필요치 않았다. 현야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놈은 본보기로 썰어버렸다.
현야는 다시 모한으로 돌아왔다. 눈을 감았다 뜨니 붉게 빛났던 눈동자도 차분한 흑색이 되었다. 모한은 입꼬리를 올려 엷은 미소를 만들고는 몸을 돌렸다.
"놀라셨겠습니다. 선기탑으로 갈수록 저것들이 방해를 할거라 결계를 쳤는데 역시나였군요."
방다병과 적비성은 별다른 요란한 술법없이 수가 제법 되는 요마들을 손쉽게 쫓아낸 비술사를 놀랍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굉장한 전력이라고 기뻐하자니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요기는 아닌데. 맹수를 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뭐지?'
방다병은 저도 모르게 이연화의 앞을 막아섰다. 이연화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나 몰라도 자신을 견제하듯 대하는 것도 그렇고, 맹수를 연상케 하는 잔인한 느낌도 그렇고 도통 안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적비성도 아군을 앞에 두고도 도를 잡은 손이 편해지지 않았다. 실력자의 여유 이상의 잔혹함을 풍기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그저 단순한 고수는 아닐 터였다.
'반인반요의 비술이라기엔 과해.'
이연화는 모한이 요력을 한껏 활용해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모한의 안광에 희미하게 어려 눈꼬리까지 스쳐 올라간 붉은 빛은 이연화의 눈에만 보였고 그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모한은 분명히 반요 이상의 존재였다. 모한과 이연화의 눈이 마주쳤다. 이연화의 굳은 얼굴에서 모한은 눈을 떼지 않았다.
이연화의 몸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현야가 존재를 드러냈던 여파를, 시간이 지났다해도 반요인 이연화는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연화는 당황해 떨리는 제 팔을 다른 손으로 부여 잡았다.
이게 무슨?
이연화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몸 속 경맥이 순식간에 끓어 올랐다. 방다병이나 적비성에 감응하여 경맥이 날뛰는 것과 달랐다. 몸 안의 무언가가 뒤집히며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듯 오장육부를 들쑤시는 것 같았다. 참으려 했지만 몸이 절로 굽었다. 몸이 기억하는 듯한 격통이 척추에서부터 퍼져나가 결국 이연화는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연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다병과 적비성이 무기를 내던지고 이연화 옆에 주저 앉았다. 괴로워하는 이연화에 두 남자가 내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인지 아무 차도가 없었다.
"이연화, 괜찮아!?"
이연화는 애써 눈을 뜨려 했지만 땀이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겨우 뜬 눈에 두터운 구름을 밀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달이 들어찼다. 구름이 걷히면서 이연화의 얼굴에 달빛이 내려 앉았다. 땀으로 젖은 창백한 낯이 흰 달빛을 받아 더욱 희어 보였다.
보름달인가.
네 고통이 나를 기억하는구나.
모한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어렸다. 백여우가 봤다면 사내의 애정이라 했을 터였다. 만월의 밤을 기억한 몸이 잠시간 존재를 드러낸 현야를 기억해냈다. 이연화는 제 안의 요력이 지척에서 감지된 주인에 반응하여 날뛰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통을 버텨내며 차라리 혼절하길 바랄 뿐이었다. 방다병과 적비성은 산고를 치르는 여인 곁에서 안절부절하는 지아비처럼 내력을 넣다가 팔다리를 주무르다가 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지병 탓인가? 내력이 소용이 없어."
방다병의 안색이 파리해지고 손마저 떨었다. 적비성도 보기 드물게 해쓱한 얼굴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내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연화가 신음할 때마다 둘의 어깨가 굳었다.
"내가 하지."
지네 요마를 제압할 때처럼 낮은 목소리를 낸 모한이 이연화의 앞에 섰다. 건장한 체구의 모한이 달을 등지고 서자 이연화의 세계에 다시 어둠이 들어찼다. 눈을 찌르던 달빛을 가려서인지, 모한이 가까이 와서인지, 이연화는 밭은 숨을 내쉬며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한이 튼튼한 팔로 이연화를 받쳐 제 몸에 기대게 한 후 달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안았다. 마차 안의 어스름한 푸른빛 안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가 함께 누운 모양새가 되었다.
"제 안주인도 못 알아보다니 아둔하기 짝이 없군."
제 요력을 탓하며 혼잣말을 읊조린 모한은 이연화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다른 손을 그의 몸 위에 살며시 포갰다. 본체는 아니었지만 부족하지 않을 현야의 요력이 상대의 몸을 배려하며 잔잔하게 흘러 들어갔다. 이연화의 잔뜩 굳었던 몸이 조금씩 이완되며 얼굴이 펴졌다. 이연화는 기시감을 느끼며 눈을 떠 저를 안은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정욕과 애욕이 뒤섞인,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눈이라는 감상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이연화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연화루 이연화 이상이 방다병 적비성 현야 현야상이 다병연화 비성연화 일단 성의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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