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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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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9.

내 말에 허니는 잠시 망설였다. 그래, 어떻게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까. 허니의 눈에는 내가 아직도 그리 책임감이 있는 놈은 아닌데.


"너... 일은? 부대라든지, 가야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내 허니가 질문했다. 이 와중에도 너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혹시나 내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내가 대답에 망설이면 절대로 내게 아이를 맡길 것 같지 않아 나는 빠르게 답했다.


"나 휴가야 허니."
"..."
"당분간 어디 가야할 곳도 없으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내 대답에도 여전히 허니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별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인지, 허니는 품에 안겨있던 아이를 내게 조심스럽게 넘겼다. 


"아침은 이미 먹였으니까 줄 필요 없고... 점심은 12시 쯤에 먹이면 돼. 1시에서 2시 사이에 낮잠 재우면 되고 일어나서 간식 먹여줘. 그리고 5시 쯤엔 내가 퇴근하니까 6시 전에,"
"허니."


길게 이어지는 허니의 설명을 내가 끊어냈다. 아무래도 영 불안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횡설수설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양새만 봐도 그렇다. 아이를 한 번 더 단단히 고쳐 안은 내가 허니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허니의 말이 뚝 멈췄다.


"걱정 말고 다녀와."


벌써 몇 번째 반복하는 말인지 나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다르게 해석하면 이런 말로는 허니에게 전혀 안정감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그럼에도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허니의 마음에 안심을 심어주고 싶어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여전히 아이를 내게 맡기고 떠날 때까지도 허니는 마음을 놓지 못 한 것만 같았다.

땅에 붙어버린 발걸음을 억지로 끌고 멀어져가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이미 늦었다는 말을 해놓고서는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 나와 아이를 확인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이내 코너를 돌아 사라진 허니의 모습을 본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빠랑 재밌게 놀아볼까 그럼?"


허니의 편지를 받고 본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미친듯이 읽어내려갔던 육아 관련 서적에서 습득한 지식들을 드디어 써먹을 순간이었다.



10.

육아가 어렵다라는 말을 전해듣기만 했지, 직접 겪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하, 입에서 막을 수 없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래,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쉽게 생각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허니의 집에서 아이, 그러니까 칼럼과 놀아주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게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에서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칼럼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그저 몇 시간만 놀아주면 됐고 그 사이에 허니가 어려운 일은 이미 다 끝낸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세상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심까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애들을 어떻게 키우는거지... 지금은 그나마 칼럼이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애가 뭘 원하는지는 대충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럼 말도 못 하던 애기 시절 때는 도대체 어떻게 키운거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허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굳혀졌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저만큼의 에너지는 또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래보여도 나름 군인인데, 어째 오늘이 지나면 플라잉스쿨을 다닐 때도 생기지 않았던 근육통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도 너같은 아들 낳아봐라'. 그 말이 이렇게 되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하루종일 거의 아이를 봐주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 끌려다니다가 낮잠 시간이 되어서야 이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또 낮잠 시간이 되니 누군가가 전원 버튼이라도 누른 것마냥 기절 잠을 자는 칼럼을 보고 나도 모르게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제 좀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나도 아이 옆에 몸을 뉘였다.

조금만, 조금만 누워있다가 일어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11.

일을 하러 출근을 하고 나서도 나는 조금 고민했다. 과연 존에게 칼럼을 맡기고 오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나? 물론 고민을 해도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존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마 아이를 돌보던 경험이 없던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아는 존은 뭐든지 뚝딱 해내는 만능인이었다. 특히나 몸을 쓰는 일에서라면 말이다. 자전거를 타는 법도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혼자 깨우쳤고 또한 그에게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동생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1살이 된 아이를 돌보는 것과 나이 차이가 큰 동생을 돌보는 일은 아주 다른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괜히 존에게 자꾸만 의지할까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존은 내가 의지하기 딱 좋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아이의 아빠라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들이밀기 좋은 핑계도 있었고 말이다.

마음을 한 번 다잡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가 나에게 말했듯이, 그래봤자 존은 지금 휴가를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 휴가가 얼마나 길지 아직은 몰랐으나 언젠가는 부대에 복귀해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 괜히 그런 존에게 의지해서 좋을 것 없었다. 어차피 그가 떠나고 나면 다시 혼자 남게 될 것은 뻔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괜히 커피빈을 거칠게 갈았다.



12.

"으우..."


잠깐만 눈을 붙여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잠에 들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다시 잠에서 깨어날 때였다. 

다시 눈을 뜰 때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기 전까지만해도 밝았던 방 안이 이제는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귀에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웩, 하는 속을 게워내는 소리. 그리고 눈을 뜨기도 전에 코를 찌르는 시큼한 위액의 냄새. 그 순간 눈이 팍 떠졌다.


"칼럼?"


반사적으로 그 이름을 뱉었다. 아이의 이름. 지금 집 안에 나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 


"으우... 마마..."


대답 대신 허니를 찾는 칼럼의 말에 눈으로 빠르게 칼럼을 쫓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찾은 칼럼은 울상을 지으며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신생아도 아니었으니, 문제는 잔뜩 웅얼거리며 아이가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지? 아까 점심 먹은 게 잘못됐나? 아니면 간식? 아무리 고민해봐도 뭐가 문제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나는 일단 아이를 품에 안았다.

괜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바깥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도, 혹시나 병원이 닫았을까 두려웠다. 만약에 큰 병이라도 걸린 거면 어떡하지? 진짜 그러면 내가 허니의 얼굴을 이제 정말 어떻게 보지?


"마마..."


품에 안긴 칼럼이 한 번 더 허니를 찾았다. 그 부름이 너무도 애처로워 나도 모르게 아이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일단은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혹시 추울까 싶어 아이에게는 두꺼운 겉옷으로 싸매고 집 밖으로 급하게 나섰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어디더라. 아니, 혹시 허니가 항상 데리고 가는 병원이 있는 건 아닌가? 문제는 내가 거기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막상 집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확실하지 않아 발걸음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존?"


그리고 순간,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싶으면서도 가장 마주하기 어려운 얼굴이 나를 불렀다.


"왜그래, 괜찮아?"


허니가 돌아왔다.



13.

"허니... 칼, 칼럼이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토를... 점심 때나 간식으로 뭘 이상한 걸 먹이진 않았는데..."


말이 자꾸만 횡설수설하며 나왔다. 누가 보면 내 직업이 군인이라는 것을 믿어주지 못 할 정도로 정신 없는 말투였다. 말을 뱉으면서 나 조차도 답답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 확실하지 않았던 나는 이게 최선의 설명이었다.

허니는 오히려 나와 다르게 침착해보였다. 처음에는 칼럼이 어딘가 아프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 듯 눈이 조금 커지긴 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내 말을 듣던 허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 안에 안겨있던 칼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마..."
"응, 엄마 여기 있어."


품 안에서 울상을 지으며 안겨 있던 칼럼이 허니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허니는 나긋하게 대답을 하며 칼럼을 나에게서 넘겨 받았다.


"우리 칼럼, 배가 아야 했어?"
"으응..."
"응, 그랬어."


허니의 질문에 칼럼은 웅얼거리며 대답을 하며 허니의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지금은 아야 안 해?"
"응... 아야 안 해..."


허니의 행동은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손으로는 아이의 목 뒤나 몸을 더듬으며 체온을 확인했고, 이내 칼럼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등을 몇 번 쓰다듬으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그런 허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았고 동시에 허니는 이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안해."


결국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사과였다. 


"뭐가?"
"나 때문에... 아팠으니까... 심지어 애가 아픈데 당황하기나 하고..."


말을 하면 할 수록 나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죄가 너무 컸다. 지금 당장 허니가 눈 앞에서 꺼져버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차마 허니를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시선을 조금 낮추고 최후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허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


그리고 허니의 입에서는 꽤나 담담한 말이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 나도 그랬어."


시선을 끌어올려 마주한 허니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많이 겪었어. 아마 지금도 모르는 것 투성이일걸."


허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 사실이 어쩐지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너는 내가 없는 동안 이런 날들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의지할 곳도 제대로 없이 혼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감당했을까. 얼마나 많은 새벽을 아이가 아픈 것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결국 나는 다시 입을 열어 너에게 말했다.


"...미안해."
"괜찮다니까 그러네."


내 말에 대답한 허니는 여전히 내 사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았다.



14.

"미안해... 정말."


괜찮다는 내 말에도 존은 다시 한 번 더 사과를 건넸다. 한껏 풀이 죽은 얼굴과 내려앉은 어깨가 조금 안쓰러우면서도 귀엽다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칼럼을 맡겼는데 그 결과가 별로 좋지 못 한 것에 대해 상심이 큰 것 같았다.

진짜 괜찮은데. 물론 갑자기 멀쩡하던 아이가 토를 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까,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는데.

그럼에도 아이를 제일 먼저 걱정해주는 존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에게는 따뜻한 옷을 입혀놓고 정작 자신은 얇은 옷만 반팔차림이었다.


"진짜 괜찮아, 존. 이 나이 대 아이들은 원래 잘 토 해. 별 일 아니야. 칼럼도 이제 멀쩡하잖아."


그래, 칼럼은 멀쩡하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비록 아까는 토를 했을지라도 지금의 칼럼은 이제 평온한 얼굴로 내 품에 기대어 밀려오는 잠을 애써 이겨내고 있었다. 이제는 속이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고 열이나 탈수 증세를 보이지도 않았다. 칼럼은 괜찮다.

그럼에도 존은 여전히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던 내가 낮게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렇게 걱정 되면 오늘 저녁은 우리 집 갈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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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존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나도 이 말을 뱉으면서 이게 과연 맞는 일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그냥 조금이라도 존의 마음이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제안이었다.


"우리 집 와서 잠드는 거 보고 가. 그러면 너도 마음이 좀 놓일 거 아니야."


그래, 이건 그냥 존이 너무 걱정을 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배려일 뿐이다.








마옵에너붕붕 존너붕붕 칼럼너붕붕
2024.05.27 2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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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성실수인이라니 ㅜㅜㅜㅜㅜㅜㅜ 빨리 둘이 마음터놓고 잘됬으면 ㅜㅜㅜㅜ
[Code: 58e0]
2024.05.27 22: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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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 존 진짜 놀랐겠다 셋이 행복해라ㅠㅠㅠㅠㅠ
[Code: bb00]
2024.05.27 22: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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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같이 육아해...연해해...겨론해 ㅠㅠㅠㅗ
[Code: fdb1]
2024.05.27 22: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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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존좋
[Code: 8540]
2024.05.27 23: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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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ㅜㅜㅜㅜㅜㅜㅜㅜ 센세 오늘도 와줘서 고마워 ㅠㅠㅠㅠㅠㅠ 칼럼 너무 마음 아프고 허니도 혼자 아이키우면서 우여곡절 많이 겪은게 느껴져서 안쓰럽다 ㅜㅜ 제발 이 부모 부부되고 행복하게 사는거까지 억나더로 보ㅕㅡ여줘요
[Code: fa3a]
2024.05.28 0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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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는 칼럼 같이 키우자
[Code: d013]
2024.05.29 01: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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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김에 자고가..허니랑 칼럼이랑 같이살아....
[Code: 4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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