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 스모크스크린]
외전 1-1 : https://hygall.com/593753580
외전 1-2 : https://hygall.com/593971005

[외전 2 - 라쳇]
외전 2-1 : https://hygall.com/594770441

의인화ㅈㅇ + 개연성 없음ㅈㅇ + 썰체ㅈㅇ + 노잼ㅈㅇ + 두서없음ㅈㅇ

너붕이 라쳇의 집에 눌러앉은지 어느덧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 그와 동시에 계절도 그 흐름을 따랐기에 어느새 창밖에 눈이 소복히 쌓이는 계절이 돌아왔어. 그리고 너붕의 앞으로 편지 한통이 도착했을거야. 옵티머스가 너붕에게 보낸 편지였지. 편지를 받아든 너붕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게 아닌지 머릿속으로 바쁘게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하는 중이었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라쳇이 건넨 편지를 받아든 너붕은 차마 그것을 열지 못하고 라쳇에게 이렇게 물었어.

"...제가 뭘 잘못한걸까요?..."

그 질문에 라쳇은 헛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열어보기나 하라며 편지를 개봉할 때 쓰는 작은 칼을 너붕에게 건네주었지. 너붕은 천천히 편지봉투의 모서리 부분을 잘라내고는 안에 들어있던 편지를 마치 위험물질이라도 되는 것마냥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꺼내들었어. 그리고 몇 번의 심호흡 끝에 편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지. 그런데 편지를 읽기 전에 온갖 요란법석을 떨던 것과는 달리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너붕의 표정은 점차 조용하게 가라앉았어. 너붕의 표정만으로는 도무지 편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던 라쳇은 너붕이 편지를 전부 읽는 것을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물었지. 

"무슨 내용이길래 그래?"
"아뇨, 별건 아니고... 옵티머스가 빠른 시일 내로 저택에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네,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이런건 그냥 편지로 전해드려도 되는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편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는 너붕이었지. 그리고 그 이야기에 라쳇은 동의한다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어.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나 근황같은 것은 편지로 주고받아도 될 정도로 사소한 일이니까. 굳이 너붕을 저택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확인할 수 있을테지. 그런데 굳이 너붕을 저택으로 부른다는 것은 옵티머스가 단순히 수다나 떨기 위해 너붕에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라쳇은 어렴풋이 눈치챘어.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라쳇도 알 턱이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저 편지 안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신의 어린 제자는 꿈에도 모르는 듯 싶었지. 그런 너붕의 모습에 라쳇은 잠시 고민에 빠졌어. 바로 너붕을 혼자 보내야할지, 아니면 자신이 따라가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지. 지금 자신은 너붕의 스승이자 보호자라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다 큰 성인이나 다름없는 너붕이 걱정된다며 뒤를 따라가는게 과연 옳은걸까? 

물론 상대가 옵티머스인만큼 너붕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테지. 게다가 정말로 편지에 적힌 것처럼 편지가 아니라 오랜만에 너붕의 얼굴을 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일수도 있으니까. 사실 혼자 저택까지 가는 너붕이 걱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도대체 옵티머스가 무슨 일로 너붕을 저택으로 부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라쳇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어. 

하지만 편지에 적힌것처럼 옵티머스가 부른 것은 너붕 뿐인데, 보호자라는 명목 하나만으로 너붕에게 자신도 동행하겠다는 이야기를 쉽사리 내뱉을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싸매도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도, 그렇다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라쳇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너붕이 말을 걸어왔어. 

"라쳇은 어떡해요?"
"...어?"
"아니, 라쳇도 같이 갈거 아니에요? 옵티머스 얼굴 오랜만에 볼 기회인데, 같이 안갈거에요?"

너무나도 태연하게 동행할 것을 묻는 너붕의 모습에 라쳇은 할말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이내 정신을 부여잡고 너붕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는 투로 대답을 돌려주었지. 그 말에 너붕은 다행이라고, 혼자가면 아마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을거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어. 그리고는 오랜만에 다른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데 답례품으로는 뭘 들고 가면 좋겠냐며 잔뜩 들뜬 표정으로 라쳇에게 물었을거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부터 라쳇은 알게모르게 너붕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너붕이 자신을 보호자로서 의지하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이유 모를 만족감도 함께 차올랐을거야. 라쳇은 자신의 어린 제자가 걱정되어 따라가는 것이라고, 자신은 너붕의 스승이자 보호자라며 다시 한 번 이 관계에서 너붕과의 거리감에 대해 스스로에게 정의를 내렸지.

 

---***---


너붕은 라쳇의 휴일에 맞춰서 함께 옵티머스의 저택을 방문했지. 옵티머스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온 라쳇이 당황스러울법도 한데 그는 너붕과 라쳇 두 사람을 모두 반갑게 맞이해주었어. 그리고는 라쳇의 예상과는 달리 정말로 그동안의 근황을 묻고 싶기라도 했던 것인지 옵티머스는 응접실에서 두 사람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물론 단순히 수다를 떨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고 내년에 있을 메가트론의 즉위식에 참석 여부를 묻기 위함이기도 했어.

그제서야 너붕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작게 탄식소리를 내다가도 머리가 아픈 듯 앓는 소리를 내었지.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작은 변명과 함꼐 말이야. 라쳇은 태평하기도 하다며, 잔소리를 하면서도 너붕이 어떤 대답을 돌려줄지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웠겠지. 그런데 라쳇의 예상과는 달리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 

"라쳇은요?"
"아마 나도 참석해야겠지. 그 속 시커먼 녀석의 얼굴을 다시 봐야한다는건 내키지 않지만..."
"그래요? 그럼 저도 갈게요."

태연하기 짝이없는 너붕의 대답에 라쳇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어. 하지만 이내 라쳇은 애써 생각을 정리하며 너붕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을거야. 너붕의 성격상 라쳇을 마음에 두고 있는게 아니라 그저 믿음직한 보호자, 혹은 가까운 사이의 아는 사람이 함께 간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내뱉은 이야기일거라고 말이지. 

그리고 라쳇의 예측이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라쳇을 바라보는 너붕의 눈빛은 평소와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 마치 오늘의 저녁 메뉴를 논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너붕의 태도에 라쳇은 잠시나마 헛된 생각을 품었던 자신을 질책했지. 그런 라쳇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너붕은 라쳇이 함께 가면 안심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저 버리고 안갈거죠?" 라는 말까지 덧붙이는데 라쳇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을거야. 

옵티머스는 너붕과 라쳇에게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라며 언제나의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 그 외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 다만 간만에 오랜 친구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잠시 너붕에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지. 너붕도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인사를 전하고 싶은 이들이 많지 않냐는 옵티머스의 이야기에 너붕은 잠시 머뭇거리면서도 들고 온 겉옷과 짐을 챙겨들기 시작했어.

너붕이 들고 온 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던 라쳇은 저택의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너붕은 별 걱정을 다하신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하고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응접실의 밖을 빠져나갔지. 또각거리는 신발의 굽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그제서야 라쳇이 조용히 입을 열었어. 

"오랜만이야, 옵티머스."
"그 사건 이후로 반 년만이로군. 허니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 안심했네."
"우수한 학생이니까. 조수로 끝낼게 아니라 한 사람 몫의 의사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볼 생각이야."

라쳇의 대답을 들은 옵티머스는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을거야.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 그만큼 라쳇이 너붕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옵티머스는 너붕을 바라보는 오랜 친구의 시선으로부터 익숙한 감정을 읽어냈을거야. 자신도 한때 너붕에게 품고 있었던 그 감정을 자신의 오랜 친구는 스스로가 알아차렸을 것임이 분명하지.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애써 외면할 것임이 분명해보였어. 

사실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 누군가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라쳇이 너붕과의 동거를 허락했다는 부분에서부터 옵티머스는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는 있었어. 다만 너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까지 라쳇이 그 선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 했지. 그리고 그 이유를 옵티머스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을거야. 

옵티머스는 그 숲에서 너붕을 가장 먼저 끌어안고 흐느끼던 스모크스크린의 모습과 너붕이 깨어나기 전에도, 그리고 깨어난 후에도 한결같이 너붕의 곁을 지키던 스모크스크린의 모습을 떠올렸어. 너붕이 스모크스크린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여전히 너붕은 그를 친한 친구 정도로 여기는 듯 했지만 스모크스크린은 아닌 것 같았거든. 그리고 한때는 옵티머스도 너붕을 향해 그런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고, 지금도 완벽하게 마음을 접었느냐고 물어본다면 옵티머스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는 상태였어. 

사실 지금 상황에서 너붕과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스모크스크린이라는 사실을 옵티머스도 모르지는 않았어. 신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너붕의 또래인 데다가 어떻게보면 너붕이 깨어난 이후 회복하는 동안 너붕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니까. 물론 얼굴, 직업, 성격,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훌륭한 청년이기도 하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라쳇이 너붕의 스승을 자처했는지, 그리고 너붕을 자신의 곁에 두었는지 옵티머스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어.

다만 언제나 기회가 찾아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양보하는 그의 성격이 지금의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었겠지. 너붕의 선택을 존중해주고는 싶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너붕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싶어하는 라쳇의 마음을 알아차린 옵티머스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어.

"라쳇, 자네의 오랜 친구로서 충고를 하자면...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몫일세."
"허니는 내 학생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지만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옵티머스의 시선을 버텨내지 못하고 라쳇은 결국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을거야. 하지만 결국 라쳇의 이야기는 자신과 너붕은 이어질 수가 없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지. 라쳇은 옵티머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겠다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대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어. 그런 대답을 듣기 위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옵티머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오랜만에 대화를 나눠 즐거웠다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네는 수밖에 없었을거야.

 

---***---


옵티머스와의 대화를 마친 라쳇은 더더욱 복잡해진 머리와 함께 응접실을 빠져나왔어. 그리고는 너붕과 함께 돌아가기 위해 저택의 정문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지. 그런데 복도를 청소하던 다른 사용인들의 목소리가 우연히 라쳇의 귀에 닿았어. 평소같았으면 저택의 사용인들의 잡담에 신경을 쓸 리가 없지. 하지만 라쳇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 두 사람의 이름 때문이었어. 

"아까 봤어? 스모크스크린 기사님이 허니 손목 잡고 가시는거?"
"표정 장난 아니시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이 바보야! 당연히 사랑싸움이지!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라쳇은 자신의 귀에 들려온 그 두사람의 이름에 예의를 차려야한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두 하녀에게 대뜸 말을 걸었어. 그 두사람이 어디로 갔냐는 라쳇의 이야기에 하녀 한 명은 아마 저택 뒤뜰로 간 것 같은데 자신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지.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와 함께 라쳇은 다급하게 뒤뜰로 발걸음을 옮겼어. 

 

---***---


앙상하게 마른 나무 위에 덮인 눈으로 사방이 새하얗게 변한 정원으로 달려가던 라쳇은 자신의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퍼뜩 정신을 차렸을거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방금 전에 자신만만하게 옵티머스의 앞에서 너붕은 자신의 학생일 뿐이라고 선언한걸 그새 잊은거야? 너붕이 누구를 만나는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잖아. 너에게 그 아이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해? 지금 이 순간의 욕심으로 모든걸 잃어버릴 작정이야? 제발 정신차려.

결국 몇 번씩이고 지금 자신의 행동이 굉장히 비논리적이고, 감정에 기반한, 비효율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되새겨준 뒤에야 라쳇은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 그런데 등 뒤에서 그런 라쳇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어, 라쳇!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그냥 안에서 기다리시지!... 밖이 지금 얼마나 추운데요!"

너붕의 안부인사를 받아주기 보다 라쳇은 자신도 모르게 너붕의 뒤를 살폈어. 너붕을 데리고 갔다던 스모크스크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스모크스크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같이 갔다더니, 그새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진건가? 하지만 차마 라쳇은 너붕에게 스모크스크린과 함께 사라졌다던 네가 걱정이 되어 쫓아왔다, 는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어.

스스로가 저질러놓고도 웃기지만 지금 이 행위야말로 라쳇이 너붕과 학생 그 이상의 다른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기에 라쳇이 선택한 것은 너붕의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넘기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었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너붕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인지, 조잘거리며 다른 사용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것저것 늘어놓기 시작했을거야.

"아, 그렇지. 범블비랑 벌크헤드랑 스모크스크린도...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더라고요. 다들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지 뭐에요."
"별 일은 없었고?"
"...별일이요?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아주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생긴 잠깐의 침묵을 라쳇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지. 그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잖아. 너붕과 스모크스크린이라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테지. 더 이상 있을지도 모르는 만약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며 라쳇은 한숨을 작게 내쉬었어. 그리고는 너붕의 질문에는 별 것 아니라며 이야기를 끝맺으려 했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던 너붕도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아 있는 라쳇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어.
 

---***---
 
그날 이후로 라쳇과 너붕의 관계는 어딘지 모르게 벽이 생긴 것처럼 서먹해졌을거야. 물론 라쳇도 너붕에게 최선을 다해 공부를 가르쳐주었고, 너붕도 라쳇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식사를 챙겨주는 것을 거르지 않았어. 그 이유가 어째서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붕은 마치 라쳇을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겠지. 하지만 너붕은 차마 라쳇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어.

라쳇의 성격상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뻔한 데다가 무엇보다 너붕은 믿었던 스승인 라쳇의 입에서 그 원인을 듣게 되었을 때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묘하게 삐그덕거리는 두 사람의 일상이 흐르고 흘러 결국 메가트론의 즉위식 날이 다가왔지.

너붕은 라쳇의 조수라는 명목으로 함께 동행하긴 했지만 놀랍도록 연회장 내에서 라쳇은 너붕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 가끔씩 라쳇에게 다가온 귀족들이 너붕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면 새로 들어온 조수라고 짤막하게 소개를 해주는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지. 그런 라쳇의 소개에 맞춰 너붕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 것이 전부였어.

한참을 다른 귀족들의 앞에서 웃고 있었더니 입꼬리가 저릴 정도라며 한탄을 내뱉은 너붕은 슬그머니 뒤로 빠져서는 술과 음식이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어.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술잔 하나를 집어들었어.

'도대체 뭐 때문에 저러는지 말이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나...'

이유도 모른 채 라쳇으로부터 묘한 배척감을 느끼던 너붕은 결국 심사가 뒤틀릴대로 뒤틀린 상태였어. 그래,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흥이네요, 나도 끝까지 안물어볼거다! 너붕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잔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그대로 입 속에 털어넣었어. 하지만 이내 그 선택을 후회했을거야. 너붕은 식도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실례되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근처에 있던 물잔을 집어들어 급하게 들이켜야만 했어.

'와, 미친!... 이런걸 누가 마셔!...'

진짜 독한 술을 마시면 자기 위가 어디있는지 알게 된다던데 지금 딱 그 상황이구만... 아니 이런 독한걸 왜 파티에 내놓는거야? 미친인간들 아니야? 색이 예뻐서 마신거였는데... 넌 이제 쳐다도 안볼거다.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던 너붕은 놀란 속을 달래기 위해 바깥 공기라도 쐴 겸 자리를 비우려 했어. 그런데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너붕은 자리에 멈춰서야만 했지.

아무리 단숨에 마셨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었을텐데, 너붕은 순식간에 술기운이 오르는 것을 느꼈지. 홀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것 같고, 눈 앞의 사람이나 물건들에 초점이 제대로 맞질 않고 상이 여러개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 너붕은 어떻게든 이 일을 수습해야한다고 생각했어. 여기에서 그대로 뻗었다가는 그냥 망신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테지.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곳에서 얌전히 나자빠져야 했어.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연회장에서 자신 하나 정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너붕은 비틀거리며 벽을 손으로 짚어가며 어떻게든 연회장을 빠져나가려 했어. 하지만 빙빙 도는 시야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속 때문에 너붕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 다행스럽게도 연회장의 조형물에 가려져서인지 그 누구도 너붕을 신경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이곳에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너붕은 결국 그대로 정신을 놓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태였어. 술기운 탓인지 땅이 흔들리고,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했지. 그리고 어지럽게 연회장 안을 채운 향수 냄새 사이에서 맡을 수 있는 약초와 허브 냄새가 너붕의 속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주는 것 같았어.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이 익숙한 향의 근원지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너붕은 움직이는 벽에 그대로 몸을 기댄 채 정신을 잃었어.

트포, 트포너붕붕, 라쳇너붕붕
2024.05.24 18: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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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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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4 2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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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낮한 라감탱 얼른 와서 너붕붕 데려가라~('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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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5 15: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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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Code: 3eea]
2024.05.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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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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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8 00: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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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향 나는 남자....애써 마음을 억누르려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와서 자괴감 느끼는 모습이 정말 개저웃음나와요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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