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4843471
view 173
2024.05.23 23:47
https://hygall.com/594579135












불쑥 찾아오는 손님이 그새 익숙해진 루키가 반기며 짖는 소리로 아이가 왔음을 알 수 있었어.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야 밥을 먹어요?"

한가롭게 샌드위치를 뜯던 알렉스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건 사실이라 딱히 변명할 말도 없고. 그냥 아이한테 "너도 먹을래?" 하고 하나 권했음. 아이는 손목의 시계를 흘끔 보고 시간을 확인하더니만 샌드위치를 건네받더라고. 알렉스한테 핀잔을 줘놓고 정작 받으니, 입맛이 도나봐. 마주 앉아서 한입 먹더니, "오, 맛있긴 하네요."라며 열심히 먹는 모습이 웃음이 나왔음.





"그거, 시계. 여자 꺼 아냐?"
"맞을걸요. 물려받아서요."
"물려받아?"

어릴 때, 가족처럼 돌봐주던 누나가 있었는데요. 본인도 빚 때문에 쫓겨서 여기 온 거면서, 저 어리다고 밥 챙겨주고 아프면 간호도 해주고. 그러면서 학교는 안 가도 공부는 해야 한다고 맨날 잔소리하고 그랬어요. 싫다고 떼써도 붙잡아 놓고 글자 가르쳐주고, 산수 가르쳐주고, 뭐 아무리 여기 산다 해도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나. 진짜 친누나 같았어요. 그 누나한테 받은 거예요. 나름 의미 있기도 하고, 고장도 안 났고... 그래서 그냥 하고 다녀요.
담담하게 말하지만 역시나 맘이 편치 않은 사연이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신이 들어도 되는지 슬슬 걱정되기도 해. 대체 본인을 몇 번 봤다고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지. 아이가 경계심이 없는 것 같아서 염려도 되고. 멀뚱히 알렉스를 쳐다보는 아이한테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질문을 던졌음.

"...그 누나는 지금 뭐하고 지내는데?"
"도망치려다 총 맞아서 죽었어요."


아, 젠장. 그따위 질문을 던진 스스로를 자책하는 알렉스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루키가 공을 가져오니 곧바로 뛰어가 버렸지.





분명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돌아갔단 말이지. 그런데 해 질 무렵에 나와 마당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테이블 위에 낮에 본 손목시계가 놓여있는 게 보였음. 어라, 이게 왜 여기에 있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낮에 루키랑 뛰어다니던 아이가 땀이 찬다고 잠깐 벗어 놓았던 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고. 아이고, 소중한 거라면서 이렇게 깜빡하면 어떡하냐. 얕은 한숨이 나오지. 역시 아직 애다, 싶어. 잘 챙겨놨다가 다음에 오면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하필이면 그 뒤로 아이는 일주일이 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음. 사실 언제 만나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보던 사이도 아니니 아이가 변덕을 부려서 안 온다면 어쩔 수는 없지. 그렇지만 친했던 누나의 유품과도 같은 시계를 보관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맘속 한구석이 찝찝하고 불편했어. 녀석, 맨날 맘대로 찾아올 때는 언제고 막상 기다리니 오지를 않네. 언제 올지 모르는 아이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직접 찾아가는 게 더 빠르겠다 싶었어. 마침 시내에 볼일도 있어서 겸사겸사 밖으로 나섰음.







볼일을 마치고 방문한, 오래된 기차역 인근은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임에도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음. 기억했던 것보다 더 황폐해진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차게 되었지. 그런데 막상 오니, 얘가 이 난장판 속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잖아.


마침 알렉스가 골목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흘끗흘끗 쳐다보던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음. 옷차림을 보아하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 같기는 한데...



"여기 혹시, 조엘, 이라는 아이가 있습니까."

여자는 자신을 위아래로 훑기만 하고 답이 없었음. 괜히 말을 걸었나 싶을 무렵, 여자가 슬쩍 손짓했지. 여자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다닥다닥 방문들이 붙어있는 더 좁은 골목이 나타났음. 여자는 한 방문 앞에 서서 문을 쾅쾅 두들겼어.

"얘, 네 손님 오셨어!"


거친 소음에 놀란 것도 잠시, 문이 홱 열리면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와서 더 놀랐겠지.

"아니, 방금 손님 왔다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손님을 받으라고...!"





그러더니 알렉스를 보고서는 주춤해. 당황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길래, 괜한 오해를 살까봐 시계를 내밀었지.

"...이거, 전해주려고."

그 손을 한참 노려보던 아이는, 시계를 홱 낚아채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어.

"저저, 저게 손님한테 버릇없이! 얘, 너 손님 안 받을 거야?!"
"아닙니다, 용건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시 아이를 보게 된 건 며칠이나 지나서였음. 정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 나무 뒤에서 우물쭈물하는 인영이 보였지.

"왜 거기 숨어 있어."


알렉스가 말을 걸자 슬쩍 나와서는 눈치를 살피지.

"아저씨.. 화났어요?"
"내가 왜."
"제가.. 아저씨 속여서요...? 어, 그리고... 음... 못되게 굴어서요....?"



자신이 화가 날 이유가 없었지. 자신이 아이에 대해 멋대로 추측했던 거지, 아이가 자신을 속인 건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동안 아이한테는 늘 희미하게 다른 사람들의 냄새가 묻어나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고.
아이가 화낸 것도, 자신이 말도 없이 찾아갔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정작 아이는 주눅이 들어서는, 알렉스가 화났는지 아닌지 살피려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그 모습이 딱하더라고.



"화 안 났어. 온 김에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이것 좀 잡아줘."

알렉스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아직 의심하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합판을 붙잡았지. 계속 눈치를 보면서도 호기심을 못 숨기고 질문을 던지더라고.

"이건 뭐하는 거예요?"
"루키 집이 낡아서 새로 만들려고."

나무판자를 덧대서 능숙하게 드릴을 박는 알렉스를 신기하게 쳐다보지. 루키도 제 집이 새로 생기는 걸 아는지 옆에 와서 붙어 있어. "루키, 다칠라. 저리 가 있어." 하는 말은 알아듣는지 좀 멀찍이 떨어져서 알렉스랑 조엘을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렇게 계속 작업하고 있었더니, 아이도 어느새 기가 살아서 다시 쫑알대기 시작해. "아저씨 왔다 간 뒤로 누나들한테 엄청 시달렸어요. 대체 누구냐고."라잖아. 그러더니 "아저씨 조심해야 할 걸요. 아저씨를 노리는 누나들이 많거든요."라는 말에는 알렉스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았어.


"근데, 아저씨.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생각해 보니 제가 아저씨 이름도 모르더라고요."
"...내가 말 안 했었나?"
"네. 루키 이름만 말해줬지, 아저씨 이름은 말 안 해줬어요."
"...알렉산더."

뒤늦은 통성명이 조금은 머쓱했음. 이름을 듣더니 아이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어. 예상 밖의 반응에 알렉스도 괜히 신경이 쓰이지. 그런데 기다림 뒤에 들린 말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어.



"흠, 이건 누나들한텐 말 안 해줄래요. 저만 알고 있을 거예요."

제 이름이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 긴장이 탁 풀렸음. 아이가 킬킬대는 걸 보며 알렉스도 결국 마주보고 웃어버렸지.










알슼조엘
2024.05.24 01:03
ㅇㅇ
모바일
아이고 조엘 과거도 환경도 너무 딱하다ㅠㅠㅠㅠㅠㅠ
[Code: b28b]
2024.06.07 19:31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ㅠ언제와?ㅠㅠㅠ 연휴 잘 쉬고, 잊지말고 꼭 다시와ㅠㅠㅠㅠㅠㅠ
[Code: b1d6]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
글쓰기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