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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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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피터가 오후 수업을 빠졌고 교사들은 ‘그렇구나.’ 라는 짧은 대답으로 넘어갔다.  반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도 잠시, 강의가 길어지자 모두가 지루한 표정이 되었다. 톰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렀다. 톰은 창가와 칠판을 번갈아보며 누군가의 흔적을 찾았다. 배도 부르고 뜨거운 햇빛에 나른한 오후였다.

 
결국 피터는 마지막 오후 수업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체육시간에는 가끔 나타나곤 했는데 정말 이대로라면 정학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학장도, 실무를 보는 교사도 정학 처분은커녕 훈계를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공정하지 않은 교사들의 태도에 불만이 쌓이는 건 동급생들 뿐만은 아닌 거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가 잠시라도 식당에 들어올까 싶어 식당 직원들이 청소할 때까지 입구를 살폈지만 피터는 보이지 않았다. 점심때는 과제를 정리하다 보니 늦어 피터를 못 봤을 수도 있지만 저녁 시간까지 얼굴을 보지 못한 날은 드물었다. 톰은 괜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강렬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첫 만남처럼 징벌실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톰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잔뜩 껴안았다. 곧 기숙사 점호 시간이었다. 이번엔 어떤 교사의 핑계를 댈까 머리를 굴렸다. 누가 좋을까. 이미 퇴근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누가 없을까. 발걸음은 이미 기숙사를 벗어나 본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구슬펐다. 곧 3학기가 끝난다. 그걸 아는지 풀벌레들의 우는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내년이면 에이레벨 준비를 위해 통합 과정은 성적순으로 분리될 것이다. 그리고 진학 여부에 따라서 중퇴자가 생기기도 한다. 정해진 교육과정의 마지막이라고 봐도 좋았다. 피터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의 미래는 어떤 길일까. 동급생들의 관심사가 이해도 된다. 그도 피터의 결정이 궁금하니까. 톰은 제 앞보다 옆으로 난 길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풀벌레 소리가 점점 줄어드니 밤은 고요했다. 건물 주변에서 퍼진 불빛 외에는 어둠이 가득 내려앉았다.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둠 뒤로 무언가 숨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어둠 밖으로 사람이 뛰쳐나오면 심장이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본관의 문을 열었다. 계단을 한 층 오르고, 오른쪽으로 난 긴 복도의 제일 끝. 교원실과 체벌실이 마주 보고 있는 그곳.

왜 나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가. 낮은 울음소리가 소름 끼쳤다. 목덜미의 털들이 쭈뼛 서고, 손등에 닭살이 돋았다. 천천히 다가가서 복도에 책을 내려놓았다. 조용한 복도에서 구두굽이 내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

익숙한 얼굴이 교원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접니다.”

그는 톰의 목소리만으로 바로 알아보았다. 불편해진 표정과 목소리가 톰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통금시간인데 왜 밖에 있지?”

“그레이스 선생님의 심부름을 마쳐야 해서요.”

톰의 시선은 바닥에 둔 책을 향했다. 시선 끝에 두꺼운 양장책이 쌓인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에게 자주 부탁을 하는 교사였다. 당직교사도 아니었고, 이미 퇴근했을 테니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퇴근 전에 바쁘면 학생과 교원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자료실에 가져다 놓으려는데 소리가 들려서.”

“아, 그래. 온 김에 책을 자료실에 두고 나면 피터 좀 데려다줘라.”

“피터요?”

뻔뻔스럽게 되물었다.

“그래. 그사이 벌점이 또 5점이나 쌓였더구나.”

교원은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전부 다 깎아주는 대신 발바닥 30대 더 맞으라고 했더니 걷질 못하더라고.”

 

-

 

학교 안은 바깥과 다른 세계라고 보면 된다. 안 그러면 버틸 수 없었다.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소녀처럼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과 같았다. 체벌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당연했고 바깥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알 수 없는 위계질서에 적응해야 했고, 바깥으로 돌아가서는 체벌이란 부분만 잊어버린 채 살아야 했다. 전통이란 이름이 붙었으니 과거에는 더욱 심했을 터. 그럼에도 졸업생은 자식을 자신의 모교에 입학시키려고 한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톰은 생각을 멈췄다. 일부러 멈추려고 의식한 건 아니었다. 귓가에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니 생각이 흩어져서다. 그 풀벌레 소리 사이에 훌쩍이는 사람의 울음소리도 섞여있었다.

“많이 아파?”

힘들게 목을 가다듬은 피터가 소곤거렸다.

“……말 걸지 마.”

“겨우 한다는 말이…….”

톰은 피터를 업었다. 발바닥은 아직도 열감이 남아 화끈거렸다. 팔을 감을 힘도 없는지 어깨에 걸친 팔은 아래로 축 처져있었다. 이렇게 맞을 바에야 규칙에 맞춰서 살면 될 텐데. 공부만 해도 바쁜 5년이다. 피터에겐 4년이니 더욱 짧았다. 편입 이래로 피터는 항상 규칙을 어기고 혼이 났다. 왕족과 귀족도 같은 규칙 아래에 적응하는데 피터만은 적응을 하지 못했다. 거부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같은 나이의 친구를 업고 간다는 일은 꽤 힘들었다. 책을 안아들고 갔을 때도 무거웠고 이젠 팔이 아팠다. 점호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다. 그런데도 찾으러 오질 않는 걸 보니 사감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톰은 조심스럽게 화단 벽돌 위에 피터를 내려주었다.

“잠깐만 쉬고 가자.”

톰이 숙인 몸을 쭈욱 펴고 몸 여기저기를 주물렀다. 그 사이 피터는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세우고 웅크렸다. 발바닥이 닿지 않게 벽돌 위에 발꿈치를 아슬아슬하게 댔다. 얼굴에 닿은 천에 막 눈가를 비볐다. 그리고 눈썹을 삐죽 세우더니 중얼거렸다.

“약해 빠졌네.”

“어쭈, 구해줬더니 말투 좀 봐.”

“시끄러워. 누가 도와달랬어?”

“나쁜 아이라서 그런가. 나쁜 말만 하네.”

톰이 피터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매질에 부은 발바닥을 꾹꾹 눌렀다. 화들짝 놀라며 화단 안쪽으로 쓰러진 피터가 소리를 꽥 질렀다.

“너……!”

톰이 소리를 머금은 입을 빠르게 막았다.

“쉿, 시간이 몇 시인데. 큰 소리 내지 마.”

톰은 허공에 뜬 발을 잡고 엄지로 꾹꾹 누르며 딱딱해진 피부를 풀어주었다. 통증이 심한지 인상을 찌푸리는 피터를 보며 웃었다.

“잘 참네.”

그대로 종아리와 허벅지 순으로 손이 옮겨가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밤공기가 시원해서 피터를 업고 다니면서 난 땀이 차갑게 식었다. 피터의 피부도 차가운 바람에 닿아 천천히 식어간다. 톰은 제 더위가 가시자 다시 피터를 업었다. 기숙사까지는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밤 운동으로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피터는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2024.05.23 17:54
ㅇㅇ
모바일
내센세다! 내 센세가 오셨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 사랑해
[Code: 85dd]
2024.05.23 18:19
ㅇㅇ
모바일
헉헉 내센세ㅜㅜㅜㅜㅜㅜㅜ 업어주는거 존나 설레고 미친다........
[Code: f26d]
2024.05.23 18:43
ㅇㅇ
모바일
피터 진짜 매버릭 그 자체네ㅠㅠㅠ저렇게 맞으면 좀 누그러질만도 한데 어쩔수없는거겠지ㅠㅠ내센세가 오셨으니 다시 정주행하러 가야겠다 센세 애들 행복하게 해줘 제발
[Code: 04e9]
2024.05.23 21:55
ㅇㅇ
모바일
발바닥 30대라니 너무 가혹한거 아니냐 ㅠㅠㅠㅠㅠㅠ그런데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규율을 거부하는건 피터가 매버릭의 본능이 있어서일까? 피터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안타깝고 아슬아슬해서 신경쓰이는 존재 톰에게 피터는 이런 존재일까? 센세 얘들 행복하게 졸업하게 해주세요 ㅠㅠㅠㅠㅠ
[Code: 4f00]
2024.05.23 22:42
ㅇㅇ
모바일
ㅜㅜ때리지마 이것들아
[Code: ad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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