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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2 23:02
ㄱㅈㅅ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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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도 리처드 라이트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늘 듣던 알람을 듣고, 늘 하던 대로 눈을 떴을 뿐인데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라이트는 이 이상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고서 중얼거렸다.
"길모어는 스튜디오에서 노숙 중일거고, 메이슨은 아직 자고 있겠지.
워터스... 그 재수없는 자식... 잠시, 뭐라고?"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꽤나 오래 전부터 로저 워터스를 재수없다고 여겼지만 그 생각을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적은 없었던 것이다.

릭은 항상 조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것에 불만을 갖고서 그것을 혼자서만 몇 번이고 돌려가며 썩히는,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리처드 라이트의 아침은 우울해야 했다.
평소였다면 그는 침대에서 상반신만 일으킨 채로 우울한 표정을 하고서 곧 마주하게 될, 자신에게 온갖 독설을 쏟아낼 성질 더러운 베이시스트를 떠올리며 아까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그 악마같은 베이시스트에 대한 걱정도 없이, 그날따라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그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 . .


언제나 그랬듯이, 그날도 로저 워터스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늘 듣던 알람을 듣고, 늘 하던 대로 눈을 떴을 뿐인데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우울했던 것이다.

워터스는 이 이상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고서 중얼거렸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야. 내 계획을 발표하는 날이지...그래, 새 앨범의 컨셉.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매번 자신의 것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걱정을 한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적은 없었던 것이다.

로저는 항상 확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이라는 것을 쓸모없다고 여기는데다 만약 생긴다고 해도 혼자서만 간직하는,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로저 워터스의 아침은 평범해야 했다.
평소였다면 그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나 커튼을 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그날의 계획을 정리하고, 약속시간을 확인한 후 여유있게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계획이고 뭐고 그날따라 알 수 없는 우울함으로 가득해진 그는 커튼도 걷지 않고 침대에서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 시간에 20분이나 늦어버렸다.


. . .


종종 그랬듯이, 데이비드 길모어는 스튜디오의 제법 푹신하고 넉넉한 소파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데이비드 길모어의 아침은 욕설로 시작해야 했다.
평소였다면 그는 약속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먼저 도착하는 정신나간 베이시스트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서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그는 어째서인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릭이 팔짱을 끼고서 데이비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깨운 것은 릭이었다.
로저가 아니라.

"머리 좀 감지그래, 데이브?"

로저와 데이비드는 서로를 '로그' 와 '데이브' 라고 불렀다.
심지어 머리 좀 감으라는 말도 로저의 단골 대사이지 않은가.

데이비드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내가 꿈을 꾸는 중이거나, 릭과 로저의 영혼이 바뀐 것이거나.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이건 꿈일거야. 그래.'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애써 고른 대답을 꺼냈다.

"어제 감았어."


. . .


로저가 20분이나 늦게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제 데이비드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일어난 것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릭이 로저에게 첫 마디를 던지자마자 닉은 잽싸게 릭의 옆에 붙어 한 마디씩 덧붙이기 시작했다.

"40분이나 버렸다니-"
"그러게, 웬일이래?"

"...잖아."

"뭐라고?"
"무슨일이냐, 로저 워터스 목소리가 안들리는 날이 있고?"

"...평소에 네가 더 늦었잖아."

"그런데? 오늘은 아니잖아?"

주눅들어있는 로저 워터스와 비꼬는 리처드 라이트.
데이비드에게는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할 광경이었지만, 닉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즐거웠다.

어색함을 깨고 닉이 외쳤다.

"그래서 로그, 컨셉은 가져왔지?"

"당연하지, 그러니까..."

흥미로운 초록 눈동자 한 쌍, 나른하고 새파란 눈동자 한 쌍, 부담스러운 청회색 눈동자 한 쌍.
세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로저에게로 몰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릭이 로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저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눈썹을 살짝 들고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반쯤 감고선...

릭은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동시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로저도, 릭도 서로의 기분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

로저는 릭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튜디오를 나가 버렸다.

"하, 우리가 평소에 밖에서 피운적이 있던가?"

데이비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릭은 화를 좀 내 봐야 해. 로그... 한소리 들을 필요가 있긴 하지, 저러고 나면 삼일쯤은 얌전히 지내려나.
아무래도 오늘 릭은 좀 심했나? 아니, 그런데 내가 왜 이딴 걸 걱정하고 있지?'

릭은 소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닉은 여유롭게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릭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데이비드가 물었다.

"릭,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라는게 무슨 의미인데?"

"... 한 대만."

참다못한 닉이 서성거리기를 멈추고 외쳤다.
데이비드는 릭이 말보로 레드 두 개비를 더 꺼내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 . .


스튜디오 밖 좁은 골목에 기다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멍하니 서 있다가, 앉았다가, 다시 일어섰다가...
타다 만 담배 꽁초가 바닥에 잔뜩 떨어져있는데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향초마냥 태우고만 있었다.

괜히 시선이 갔다.
알던것과 전혀 다른 모습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우울한 눈빛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비드는 로저의 우울한 녹회색 눈동자가 그의 짜증날만큼 굳센 태도와는 달리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지만 불안한 듯이 떨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릭의 청회색 눈동자에 비치던 무기력함 속에 가려진 제법 이기적인 의견들도 떠올릴 수 있었다.

‘속마음의 날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데이비드는 담배를 낭비중인 그림자를 먼발치에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지겹다는 듯이 눈을 한번 굴리고서는 천천히 다가갔다.

'...'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림자, 이제 보니 살짝 코끝이 빨개진 로저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담배를 든 손으로 고개를 떨궜다.
'원래의'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기를 쓰며 얼굴을 숨기려 했을텐데, 하고 데이비드는 생각했다.

"내가 아닌 것 같아."

놀랍게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로저였다.

"말이 안 나와.
분명히 어젯밤에 모든 걸 계획해두고 잠들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에 남은 게 없어.
다들 내가 웬만하면 울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란 말이야, 난 생각보다... 아무튼.
정말 이상한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예전엔 왜 그렇게도 멤버들- 특히 너한테, 이런 꼴 보이기가 죽도록 싫었을까.
이상하지 않아?"

말을 마친 그의 눈은 살짝 젖어있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이런 걸 제 입으로 내지는 않았는데."

약간의 안쓰러움에 혼란과 피곤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지긋이 바라보던 데이비드가 입을 뗐다.
네가 소리 죽여서 울던 모습을 종종 보았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들어가자, 30분 넘었어."

"하지만 내 컨셉으로 앨범을 내야 해. 그래야 뭐라도 칠 테니까."

"...너희는 역시 닮았구나."

"뭐라고?"

"별것 아니었어, 들어가자."

그들은 꽤나 닮았다.
한명은 넘칠 정도로 드러내고 다른 한명은 지나치게 숨길 뿐이다.
많은 공통점들이 저 한가지만으로 덮여 겉보기에는 뭐랄까, 늑대와 양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로저 속의 릭을, 릭 속의 로저를 꺼내주기 위해 스튜디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핑플밴
2024.05.22 2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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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센세는 천재인걸까 성격은 체인지 됐지만 닮은 둘ㅠㅠㅠㅠㅠㅠㅠ 나 외 우냐
[Code: 0b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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