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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00:24
8.
일언은 오래간만에 꿈을 꾸었다. 꿈속의 저는 순진했다. 여락이 자신에게 입을 맞추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것을 그대로 믿었다.

꿈속의 저는 너무 순진해서 여락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기꺼이 그의 원수에게 몸을 던졌다.

꿈속의 저는 너무 순진해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때 여락이 기뻐해줄거라고 생각했다.

꿈속의 저는 너무 멍청해서……

일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일언이 머리맡을 더듬어 따라놓은 찬물을 마셨다. 거칠게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일언이 중얼거렸다.

“괜찮아, 해낼 수 있어. 괜찮아.”

일언이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런던의 상징인 런던 아이를 바라보며 그는 읊조렸다.

“진정한 도박꾼은 자기 자신도 판돈으로 거는 법이지.”

9.
[오늘의 뉴스입니다. 비 가문의 수장이자 비 컴퍼니의 회장인 네이선 비가 자택 서재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노버트 종합병원으로 옮겨진지 일주일이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의식을 차리고 있지 못하는 소식입니다.]

[비 가문은 한때 영국령 홍콩의 정치는 총독이, 경제는 비 가문이 지배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홍콩의 경제를 지배하던 가문이었으나, 십여년전 비 집안의 후계자이자 홍콩 경찰이었던 스카일러 비가 갑작스럽게 사고사하면서 홍콩 경제에서 발을 빼버렸습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비 가문이 이 과정에서 미처 빼내지 못하고 남겨둔 돈이 막대하다고까지 말하고 있고 염정공서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비 가문의 자금을 추적하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채 수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과연 네이선 비의 후계자는 누가 될까요?]

10.
계원은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도통 기다려도 일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 뒤 계원은 기다리다 못해 일언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일언은 계원에게 제 손을 잡자고 제안한 뒤 몇시간도 안되어 영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던 것이었다. 계원은 그걸 받아들고 헛웃음이 났다. 이럴려고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단 말인가? 계원은 제 순진함을 원망했고 그 스트레스를 딤섬을 조지는 것으로 풀기로 결정했다. 메뉴판 절반을 주문해 재패하고 있을 때, 한 소년이 바구니를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포츈쿠키 사세요!”
“괜찮아, 꼬마야. 아직 난 식사를 마치지 않았단다. 다른 데 가보렴, 응?”
“안돼요! 다른데서는 다 안된다고 다들 이미 그랬단 말이에요.”

소년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이제 딱 하나만 더 팔면 되는데…….”

계원은 이런데에 약했다.

“알았어, 아저씨가 사줄게. 그럼 이제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한다? 얼마니?”
“와!!!! 감사합니다!!!!”

소년이 포츈쿠키를 계원에게 건냈다. 계원은 일부러 소년이 부른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다. 소년은 신이 나서 꾸벅 인사하고 뛰어갔다. 계원은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다가 아이가 저 멀리 사라지자 포츈쿠키를 쪼갰다. 그의 미소는 포츈쿠키 안 메시지를 본 뒤 사라졌다.

11.
‘카르멘 기업의 지배구조를 세세하게 체크하고, 국제 경제 뉴스에 집중해.’

12.
“자기가 이단 헌트인 줄 아나.”

계원이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쨋든 그 종이를 소중하게 접어넣었다.

13.
계원이 그 쪽지의 의미를 알게된건 몇 주 뒤에서였다. 멍하니 서서 동료들과 티비를 바라보던 계원이 주변 동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맙소사, 이런 뜻이었어?

14.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니, 지금 당장의 일에 집중해보자.

15.
허니 비와 그녀의 두 비서는 급하게 전용기에서 내렸다. 제 아버지인 네이선 비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와야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하필 가장 바쁘고 제가 있어야 할 때에 쓰러진지라 어느정도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에서야 그녀는 출발할 수 있었다. 전용기 옆에는 검은색 리무진이 서 있었고 꼿꼿한 자세의 백인 노집사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늦으셨군요, 아가씨.”
“내가 집안일만 하는게 아니라서요, 러더퍼드 집사.”

허니가 차분하게 말하자 러더퍼드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타시죠.”

허니가 타고 두 비서가 따라 타려고 하는 순간 러더퍼드는 문을 닫아버렸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두 비서를 무시한채 러더퍼드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뒷좌석 창문이 징 내려가고 허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냥 너네가 문 열고 타.”
“대체 이게 무슨…….”

두 비서 중 남자 비서가 흥분해서 말을 하려고 하자 여자 비서가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제 손으로 문을 열어 차에 탔다. 남자 비서가 한숨을 쉬더니 뒤따라 탔다. 그러자 리무진이 미끄러지듯 활주로를 빠져나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허니 회장님.”
“익숙해져, 등 비서.”
“하지만 양 비서님…….”
남자 비서, 등 비서의 물음에 여자 비서인 양 비서가 대신 대답했다.

“여긴 그런 동네니까.”

16.
리무진은 조용히 나아가 병원 앞에 멈춰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러더퍼드는 허니만 내릴 수 있게 문을 열어줬다가 닫아줘버려 등 비서와 양 비서는 또다시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러더퍼드와 허니, 그리고 두 비서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러더퍼드가 가장 높은 층을 눌렀다. 등 비서는 양 비서에게 속삭였다.

“엘리베이터는 같이 타게 해주네요, 저흰 또 엘리베이터 못 타고 계단으로 올라가라는 줄 알았죠.”
“계단으로 가는게 더 나았을 수도 있어.”

등 비서가 어리둥절해져서 눈을 깜빡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팅 하고 열리자 러더퍼드가 곧바로 내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보던 허니가 신음했다.

“아, 시발.”

17.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백인 여성과 30대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다. 여성이 허니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씩 웃고는 빨리 내리라는듯 손짓했다. 그녀와 비서들이 내리자 도도하게 그녀와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등 비서는 왜 허니가 욕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곧장 허니는 뺨을 세게 후려맞았으니까.

“!!!!”
“가만 있어, 등 비서.”

등 비서가 움찔하자 양 비서가 그의 손목을 잡고 속삭였다.

“가만히 있으면 빨리 끝나.”

허니의 뺨을 때린 사람은 노년의 백인 여성이었다. 이제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에 소싯적에는 꽤 고았겠지만 이제는 나이테만큼의 주름이 있는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저렇게 주름이 져버린게 얼굴을 일그러트려서 그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그러진 그녀가 다시 한번 허니의 뺨을 세게 때렸다.

“개만도 못한 년. 길거리에서 빌어먹다 죽을 년. 구더기 같은 년.”

허니가 비틀거리자 여성이 그녀의 머릿채를 잡았다.

“어디서 굴러먹다가 이제 기어들어와?”
“죄송합니다, 사모님.”

허니가 눈을 감고 말했다.

“빨리 왔었어야 했는데 제가 무능해서 사모님께 늦게 왔습니다.”
“너도 봤지? 방금 누가 갔는지 봤지? 알레이년이 왔다 갔어. 그 년이 당당하게 고개 쳐들고 지 아들놈이랑 왔다고!!! 와서 이 집안이 이제 제것인냥 굴다 갔단 말야!!!!”

그녀가 소리 지르자 침이 튀었다. 그녀가 허니의 머릿채를 잡아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네년이, 다 네년 때문이야. 네년이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서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한거야. 개만도 못한 동양년인 너 때문에!!!!! 네 주제에 과분하게 비라는 이름을 줬는데 그 이름값에 맞게 처신을 못하고 있어!!!!! 네년 때문에 내 아드님도 죽었다고!!!!! 네년이 대신 죽었어야지, 네년이 내 아드님 대신 비참하게 죽었어야지!!!!”
“잘못했습니다, 사모님.”

허니가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사과하자 그녀가 머릿채를 놓았다. 그녀의 손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자 마치 더러운게 묻은 냥 손을 탈탈 털었다. 러더퍼드가 품 안에서 손수건을 주자 그녀가 손을 닦으며 말했다.

“반성할거면 처신 똑바로 해. 지금 내 남편 병실 앞과 휴게실 어슬렁거리는 버러지들 알아서 치워. 알았어? 깨끗하게 치우기 전까지 이 층에 발들일 생각도 하지 마.”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녀가 말을 마치고 손수건을 바닥에 버리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러더퍼드가 무표정하게 허니를 보면서 말했다.

“더러운건 알아서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병원에 민폐입니다.”

그리고 그 역시 여성을 따라 가버렸다. 러더퍼드가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자 양 비서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회장님?”
“응, 운이 좋았네. 빨리 끝났으니까.”

허니가 머리를 만지다가 걱정스럽게 양 비서에게 물었다.

“양 비서, 나 머리카락 많이 빠졌어?”
“아뇨, 별로요. 늙어서 힘이 없어지나보네요.”
“다행이네. 뺨 맞을때도 옛날보단 덜 아프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입안도 보는게 낫습니다. 또 이빨이 빠졌을 수도 있어요.”

태연한 두 사람의 모습에 등 비서가 입을 떡 벌렸다.

“저만 이 상황을 못 쫓아가나요?”
“맞다, 등 비서는 우리 집안 행사에 오는게 처음이지?”

허니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검지로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음, 저 분은 내 호적상 어머니이신 셰카이나 비 여사님이야. 내 생물학적 아버지인 네이선 비의 본처시지. 하지만 절대로 나랑 가족 취급해주면 안돼. 저 분은 그러면 심장이 터져 돌아가시고 말거야. 왜냐하면 일단 난 사생아인데 유일하게 비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기도 했고, 인종우월주의자라 백인이 최상위에 있고 아시안 그것도 동북아쪽은 인종 카스트 최하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셔. 그리고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알레이 버틀러씨랑 조셉인데, 내가 알기론 네이선씨와 교류가 있는 사생아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유언장에 상속 1순위로 올라갈 사람이라서 셰카이나 여사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시지. 원래대로면 스카일러 오라버니가 다 받았어야 하는 일이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뺨 맞으셨잖아요. 머릿채도 잡히셨구요. 여 선생님께 말씀은 드렸어요? 절대 가만 있지 않으실거에요.”
“당연히 아시지.”

허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 선생님 앞에선 더 심하게 때린 적도 있는데 뭐.”

등 비서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양 비서가 허니의 입안을 살폈다. 괜찮다는 의미로 양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니는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일단 시킨 일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나중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18.
모퉁이로 사라진 셰카이나 비와 러더퍼드는 남편인 네이선 비의 병실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그 옆의 병실로 들어갔다. 자기를 모시는 사용인들이면 모를까 동등한 사람들과 같이 있기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상 그녀는 남편이 입원하자마자 해당 층을 통째로 빌렸고, 그래서 병실은 남아돌았다. 러더퍼드가 병실 문을 열어주자 셰카이나가 들어가고 러더퍼드는 밖에서 보초를 섰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셰카이나가 말했다.

“돌려보냈네.”
“잘하셨습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해보게, 미스터……정.”

그녀가 경멸과 혐오가 주지만 약간의 간절함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내 아드님은 사고로 죽은게 아닌건가? 하찮은 동양놈이 감히 내 아드님을 죽였다고?”
“물론입니다.”

미스터 정, 정일언이 선글라스를 매만지며 씩 웃었다.

“아드님은 사고로 돌아가신게 아니라 살해당하신겁니다. 저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만 범인은 홍콩에 있고요. 하지만 당국이 나서기엔 증거가 부족하기도 하고 또……법적 처벌로는 만족하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아드님이 돌아가신 이후 겪으신 슬픔과 수모, 모욕을 어떻게 고작 법정에서 받는 처벌로 만회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사님께서는 복수할 권리가 있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힘드네. 내 남편은 내 아들의 죽음을 묻어버리기에 바빴고 오메가 품에 안겨서 씨나 뿌리는걸 즐겼지. 밥버러지인 저 년은 내 아드님의 발톱의 때만도 못해서 홍콩에 묻어놓은 돈들을 다 찾아오지도 못하고 그저 재산 지키는데에 허덕이는 신세고. 게다가 홍콩에 어떤 형태로든 가지 말라고 엄포를 내린 상태라네. 다음 가주 역시 홍콩은 무시할 것이고.”
“여사님.”

일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다음 가주가 홍콩을 무시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왜냐니, 다음 가주는 당연히 남편의 사생아들 중 한명이…….”
“여사님이 다음 가주가 되시면 되잖습니까. 여사님도 이 집안을 위해 노력해오신 세월이 있으시고 또 후계자를 낳으신 몸이지 않습니까. 충분히 자격 있으십니다.”

일언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만들어드리죠, 차기 가주로. 그러니까 돌아오세요, 홍콩으로. 다 되찾으셔야죠, 여사님의 것들을. 돈, 명예, 아들의 한까지.”

일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순결한 오메가를 유혹하는 악마처럼.

“제가 성심껏 돕겠습니다.”

19.
정일언은 셰카이나의 아들 스카일러 비가 죽던 날 함께 있었다. 스카일러 비의 머리에 벽돌을 휘두른게 그였다.

20.
그는 제 자신을 판돈으로 비 가문을 끌어들여 염정공서가 전력을 다해 카르멘 기업의 돈을 감시하고 추적하는데 합법적인 명분을 안겨줄 작정이다.









덕화조위
계원일언
여락일언
2024.05.13 00:29
ㅇㅇ
모바일
일언이ㄷㄷㄷㄷㄷㄷㄷㄷ무서운놈 목표를 위해서는 물불안가리는데 계원이는 계속 동조? 여락도 가만히 당하지만 않을텐데
[Code: d888]
2024.05.13 01:41
ㅇㅇ
모바일
일언이 악몽 꾸면서도 이악물고 자신까지 던지는거 ㅁㅊㅌㅌㅌㅌㅌㅌㅌ 계원이는 착해가지고 포춘쿠키 팔아야 된다니까 사주네ㅠㅠ 그런 부분까지 일언이가 알고 메세지 전달 맡긴 거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언이 저 아드님 머리 깨놓고 도와준다고 살살 입터는거 와 쫄리고 멋있다 ㅌㅌㅌㅌㅌㅌㅌㅌㅌ
[Code: d92a]
2024.05.13 11:43
ㅇㅇ
모바일
호오 여락이 시켜서 일언이가 죽인것 같은데 아드님 머리 깬 당사자 일언이가 사모님한테 복수 도와주겠다고하는거 뻔뻔하고 진짜 일언이 답다ㅋㅋㅋㅋㅋ 근데 그 일언이도 예전에는 여락의 손에서 놀아나던 순진한 오메가 시절이 있었다는게 개꼴림 ㅌㅌㅌㅌㅌㅌㅌ
[Code: cd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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