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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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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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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어도 준저가 보고싶다 ㅠㅠ 그래서 재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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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있다가 방에 놀러 가도 돼요?”

“너 안 피곤해?

“전혀요.”

“그래 그럼.”

이 아이는 늘 그랬다.
한여름의 혹독한 촬영 환경 속에서 모두가 더위에 지쳐 인상을 쓰고 태도가 나빠져도 이 아이만큼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처음엔 소속사의 지시로 착한 척, 열심히 하는 척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결국 진짜 자신의 성격이 뭔지 모르게 될 정도로 가면을 쓰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름 중심을 지키고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긴 연예계 생활 속에서 몇 번인가 받은 상처의 뜨거운 교훈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살짝 둔 거리가 미안해질 만큼 이 아이는 맑고 거짓이 없었다.

“술 마실래요?”

“너 아까 술대신 오렌지 주스 마신건 내일 촬영 있어서라며?”

“에이~ 거기서 술 마셔봐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한 잔씩 따라주면 나 죽어요. 그냥 촬영 핑계 댄 거죠. 마실 거죠? 나 진짜 좋은 술 가지고 있는데.”

“그러던가. 그럼 오기 전에 문자 줘.”

“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 후에는 콘서트 뒤풀이에 참석해 준 기억도 못 할 정도의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웠다.

토할 것처럼 피곤했지만 몸은 콘서트 때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작년 가을 산하령 마지막 촬영 이후 거의 8개월 만에 다시 주자서로 돌아갔다.
그 때만큼은 덥지 않았지만 콘서트장 내부는 살짝 더워서 당시의 기억이 금방 떠올랐다.
겨울에 시작한다던 촬영은 예상과는 달리 한여름에 시작됐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힘든 날씨에 무거운 겨울 의상을 입고 움직여야 했다.
거추장스럽게 긴 머리는 자꾸 얼굴에 달라붙어 보는 사람마다 족족 떼어주느라 바빴고 땀에 젖은 옷은 촬영 중간 몇 번이고 갈아입어야 했다. 살려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느 날 더위에 지쳐 먹은 식사를 전부 게워낸 후부터는 식욕도 없어 거의 굶다시피했다. 그나마 과일은 조금 먹을 수 있게되어서 식사를 과일로 때우는 일이 많아졌다. 체중은 조금씩 줄어갔는데 어차피 주자서란 캐릭터는 점점 쇠약해지는 인물이라 차라리 잘됐다싶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다음 날부터 공준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과일을 가져다줬다. 처음엔 촬영장에 만나는 시간에 맞춰 들고 오더니 나중엔 대기차에 직접 들고 왔다. 본인도 촬영이 고되고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했을 텐데도 매일 내 촬영 시간에 맞춰 예쁘게 깎은 과일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촬영 크랭크업 때까지 이어진 그의 다정함에 마지막엔 자신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그를 기다릴 정도였다.

하루는 가져온 과일을 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느 정도 식욕도 돌아왔을 때였다.

“이젠 과일은 가져오지 마. 네 스태프들한테 미안하잖아.”

“뭐가요?”

“촬영 준비하기도 바쁜데 스태프들이 과일 사 오고 자를 시간이 어딨어. 더이상 원성 사지 않게 그만둬.”

“아.....”

공준은 높은 콧대를 만지며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과일은...제가 잘랐어요.”

나는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응?”

“과일은 내가 직접 사고 내가 직접 잘랐다고요.”

“뭐?”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네가?”

공준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음. 그거야... 형이 아픈 후부터 잘 못 먹고 자꾸만 말라가니까... 우리 촬영은 끝까지 무사히 마쳐야 하잖아요.”


씩 웃으며 말하는 그 아이를 보며 나는 기분이 복잡했다. 왜냐하면 바로 어제까지 공준이 건네준 과일들을 대충 먹거나 그마저 귀찮을 때에는 스태프들에게 먹으라고 줬기 때문이었다. 말로 못 할 미안함이 가슴 안에 가득 퍼졌다.
나는 그날부터 혼자 과일을 다 먹었고 통을 깨끗하게 비워 씻고는 과자를 넣어 돌려줬다. 과일이 맛있었다고 덧붙여 말하자 그 아이는 햇살같이 웃으며 크게 기뻐해 줬다.





[형, 자는 거 아니죠? 저 지금 가요!]

그의 문자메시지의 다급한 느낌표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곧 잠이 들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확 깼다. 무거운 눈을 몇 번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어뒀다.
냉장고 안에 안줏거리가 뭐가 있더라...
냉장고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뒤적거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뒤로 빼서 보니 연회장에서의 캐쥬얼한 옷차림 그대로의 공준이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형 뭐 찾아요?”

"안줏거리. 초콜릿은 있네.”

차가운 초콜릿을 꺼내 던지자 공준은 큰 손으로 잘 받았다.

“룸서비스로 뭔가 시킬까?”

“내가 다 가져왔는데.”

공준은 웃으면서 테이블 위에 쇼핑백을 올려놓더니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와인병, 두 개의 와인글라스, 일회용 용기에 포장된 안주들(아마), 입구가 좁은 투명한 작은 유리병...... 음? 디캔터인가? 생각하는 사이에 마지막, 여러 종류의 꽃이 엮어진 작은 꽃다발이 나왔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 개쯤 떠다니는 내 표정 따윈 신경도 안 쓰고 그 아이는 투명한 유리병에 가져온 꽃을 꽂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테이블 한가운데에 올려놨다.

“예쁘죠?”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꽃을 보며 그 아이가 말했다.

“응.....? 어; 무슨 꽃이야?”

“사과꽃이요.”

“사과꽃...?특이하네.”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요.”

얘가 의외로 낭만주의자였구나. 나는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술을 깨물어 억누르고 그 아이가 일회용 용기를 여는 것을 도왔다. 안에는 간단한 요깃거리가 담겨 있었는데 거기에도 잘 깎은 과일이 들어 있었다.
촬영 내내 얻어먹었기에 깎은 모양만 봐도 알았다. 8개월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라 또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람의 한결같은 태도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이 세계는 인기가 생기면 초심을 잃고 변질되어 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마음을 터놓은 사이였어도 위치가 바뀌면 등을 돌리게 된 경우가 빈번했다. 특히 갑자기 뜨는 경우일수록 그런 일이 많았기에 나는 바람 따라 제멋대로 흔들리고 파도에 마구 휩쓸려가더라도 내가 가진 신념이 변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인기란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아니까.
그래서 콘서트 마지막에 그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이 와인 맛있지 않아요?”

공준은 빈 글라스에 와인을 채우며 물었다.

“응, 맛있네.”

나는 사실 술맛을 잘 모른다. 술은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거고 술에 취해 다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이왕 마시는 거 쓴 맛보다는 적당한 단맛이 있는 쪽이 마시기 쉬웠다. 쓴 맛이야 뭐 인생에서 자주 맛봐서 술에서까지 맛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공준이 들고 온 와인이 그랬다. 홀짝홀짝 마시기 쉬운 느낌.
내 잔이 비워질 때마다 공준은 꼬박꼬박 잔을 채워줬다. 안주로 시선을 옮기면 대화를 하는 중에도 그걸 내 앞으로 자연스럽게 밀어주고, 입을 닦을 것을 찾으면 냅킨을 건네는 다정함이.... 다정함이....
응? 잠깐만. 얘는 내 행동을 다 지켜보고 있는 건가?

“왜 그렇게 쳐다봐요?”

들켰네.
공준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마시던 와인잔을 내려놓고 소리 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다정해서. 보고 있으면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같아. 난 그렇지 못해서 널 보고 있으면 신기해.”

공준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아이가 엄지손톱 끝을 검지로 긁으며 뜸을 들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해요.”

“아... 그래?”

술이 좀 올라오는 것 같아서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그 아이 말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난 형에게만 그래요.”


어디선가 전자레인지의 ‘띵’소리가 울렸다. 포크를 쥔 손에 힘이 빠졌다.
어... 방 안에 전자레인지가 있었던가. 잘못 들었나.
뭘 잘못 들었는데? 전자레인지 소리 아니면, 저 아이가
방금 한 말?
내가 방 안을 두리번거리자 공준도 날 따라 사방을 쳐다봤다.

“형 지금 뭐 찾아요?”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눈앞에 공준을 보고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띵’ 하고 울리는 소리.”

“무슨 소리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요.”

공준의 표정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내 착각이었나 보다.
전자레인지 소리는 해결됐고 그럼 나머지 소리도 해결해볼까.

“준아, 방금 나에게만 잘해준다는 그 말 무슨 뜻이야?”라고 가볍게 웃으면서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와... 이거 맛있다. 어디서 산거야?”였다.

해결은 무슨. 전혀 물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뭐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물어봤다가 이상한 분위기가 되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얼른 마시고 이 자리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치즈를 입에 욱여넣으며 곁눈질로 와인병 안에 남은 술을 체크했다. 앞으로 둘이 3잔씩 정도 마시면 끝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잔을 비우고 와인병을 들었다.
그러자 공준이 와인병을 내 손에서 부드럽게 뺏으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요. 이거 도수 꽤 세 단 말이야."

“너 형 술 잘 마시는 거 모르는구나. 쯧. 내놔.”

물론 술을 잘 마신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내가 술병을 빼앗으려고 하자 공준은 병을 기울여 글라스에 와인을 따랐다.

“고마워.“

어색하게 잔을 들고는 다시 입에 옮겼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악성 팬을 피해 커튼도 전부 치고 있던 상태라 어딜 봐야 할지 몰랐다. 나는 눈앞의 안주와 꽃을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있는 지식은 다 쥐어짜서 떠벌거렸다.

“형.”

여러 종류가 담겨있던 치즈 플레이트 중에 내가 한번 먹고 질색한, 군내가 나던 치즈를 막 칭찬하기 시작할 때 쯔음이었다.

‘안 돼!!’

공준의 웃음기없는 낮은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잠깐. 뭐가 안 되는데? 난 지금 무슨 상상을 한 거지. 너 너무 앞서 달리는거 아냐?

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날리며 무거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공준을 봤다.
그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형.”

공준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응, 왜....?”

“나....형 좋아해요.”

역시!
저 강아지 같은 얼굴로 진지하게 나를 불렀을 때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야.
촬영 중에도 몇 번이나 (나만 느꼈던) 이상한 분위기는 있었다. 하지만 원작이 BL이라 서로가 과몰입을 할 정도로 연기에 집중한 거라 생각했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와인잔이 깨질 것 같았다.

“나를 좋아한다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을 꺼냈다.
눈앞의 강아지가 끄덕 끄덕끄덕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 형으로서?”

맞지? 끄덕끄덕해!
내 바람과는 다르게 강아지가 고개를 옆으로 도리도리 천천히 흔들었다.

“.... 같은 업계의 선배로...?”

제발 끄덕끄덕... 예쁘지, 강아지야. 응?

도리도리가 빠르고 많아졌다.

“그럼 사람 대 사람...”

움직임이 멈추고 강아지가 빤히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내가 뭔가 죄를 진 느낌을 들게 했다.


“그런 뜻 아니란 거 알잖아요.”

알지. 너무 잘 알아서 꿈이면 좋겠는걸.

젠장, 이젠 눈앞의 녀석은 강아지처럼 귀엽지 않았다. 공준이 어디 목장에서 뛰어다닐 것 같은 큰, 아주 큰 대형견처럼 느껴졌다. 어쩌지? 나는 큰 개는 무서운데ㅠ

“형, 왜 이렇게 못됐어요...”

“미안.”

이게 내가 사과할 상황인가.
괜스레 와인잔만 빙글빙글 돌려 와인이 찰랑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여기서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지?
늘 귀엽고 착한 동생이 갑자기 우주 멀리 사라지고 똑같은 얼굴을 한 낯선 사람이 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대본도 없는 상황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슬쩍 시선을 들어 공준의 표정을 살폈다가 깜짝 놀랐다.

“준아 너 울어? 왜?”

공준은 시선을 내리깐 채 울고 있었다.
그 아이의 감탄스러울 정도로 긴 속눈썹에 미쳐 떨어지지 못한 눈물방울들이 매달려 있었다.

“형이... 힘든 일 있으면 말하라고..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내 말 틀려요? 난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아니 맞아...

그건 분명 오늘 내가 공준에게 콘서트 마지막에 건넨 말이었다.

[나중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무엇이든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난 영원히 곁에 있을게.]

절대로 콘서트 분위기에 휩쓸려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사람으로서 공준을 좋아하고 아꼈다. 그 순수함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뜬구름 같은 인기에 휩쓸려 잃지 않기를 바라며 진심을 담아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렇게 돌아온다고???!


공준은 아예 몸을 숙여 엎드린 채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애가 쓰러트리는 와인잔을 서둘러 잡고는 멀찌감치 두었다.

달래줘야 하는데...
허공에 내 손이 목적을 잃고 왔다 갔다 했다.


준아.... 형은 대형견도 무섭지만 우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더 무섭다고...


별안간 나도 펑펑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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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이지 맞으라면 맞고 구르라면 몇 번이나 구를 수 있지만 우는 사람을 달래는 재주는 없다.
그것도 우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더욱더.

갈 방향을 잃고 허공을 떠돌던 내 손은 몇 번이나 엎드려우는 그 아이의 머리 곁을 스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만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 손이 잡은 건 와인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TV 화면을 보며 술을 들이켰다.
꺼진 화면에 비추는 우리 둘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아이는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 낯을 가리고 어색해하던 공준에게 치댄 것은 자신이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촬영이었고, 모든 상황은 열악한 편이라 나는 얼른 상대 주인공 하고 친해져야 현장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촬영 내내 함께 붙어 있으면서 대사에 대한 느낌과 눈빛, 움직임을 둘이 연구했다. 덕분에 NG도 적게 낼 수 있어서 감독과 스태프도 딱딱 맞춰 떨어지는 촬영에 만족했다. 38도가 웃도는 날씨에 모두가 신경이 날서있었기에 스트레스가 덜 쌓이도록 서로가 노력했다.

떨어져 있을 때는 문자로 대화했다.
각자 스케줄이 있어 지방에 갈 때면 서로 선물을 챙겼다.
처음 낯을 가리던 공준은 사라졌고 잘 웃고 틈만 있으면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성격이 드러났다.

언젠가 촬영 중에 그가 낯설게 느껴진 적은 있었다.
시선을 느껴 쳐다보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거나, 컷 사인이 떨어졌는데도 나를 안고 있던 손을 풀지 않거나.
그걸 역할에 몰입을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아, 작게 부상을 입었을 때도 세상 큰일 난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한 걸음에 달려온 것도... 그 모든 것이 공준이 완전히 온객행에 몰입한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일부러 더 밝게 장난치고 시끄럽게 굴었다.





와인을 얼마나 들이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눈 앞이 조금 흐려졌고 겨우 그를 위로해 줄 용기가 생겼다는 것. 어떻게 달래주는 법은 없을까.
나는 그의 숱 많은 머리에 손을 얹어 토닥였다.

“준아, 그만 울어. 응?”

하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준아... 공준?”

이럴수가. 공준은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 옆에 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자는 얼굴을 쳐다봤다. 테이블에 떨어진 눈물자국에 나는 실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피곤했겠지. 콘서트 끝나고 자신은 쉬고 있었지만 공준은 와인이며 안주며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여기에 왔으니까.

나는 술에 취해 잠든 공준을 옆에 끼고 침대로 갔다. 문짝만큼 큰 아이가 몸에 힘을 빼고 있으니 두 배로 힘들었다.
겨우겨우 침대에 던져놓고는 재킷이라도 벗겨주려고 했을 때 눈가가 짓물러있는 게 안쓰러워 엄지손가락으로 훑었다.

그 후 옷을 벗긴 후 이불을 끌어다 덮어줬다.
술이 좀 깨면 그때 이야기를 하던가...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울 생각이었는데 생각은 생각일 뿐 결국 나도 공준 곁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인상을 쓰며 눈을 감은 채 침대 옆 탁상을 더듬었다. 몇 시지?
하지만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을 눈을 뜨고 찾아봐야 한다는 것에 살짝 짜증이 났다.
머리는... 머리는 왜 이렇게 아프지.

서서히 눈이 떠졌다. 낯선 존재감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자 색색거리며 잠이 든 공준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랬지만 곧 기억이 났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새벽이었다. 취기는 이미 사라졌다. 어제보다는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숨을 길게 내쉬고는 깊게 잠들어있는 공준을 쳐다봤다. 이렇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대놓고 얼굴을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긴 속눈썹이 숱이 많고 촘촘히 곧게 뻗어있어서 마치 가짜같이 느껴졌다. 남자를 보며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은 공준이 처음이었다.

이 아이는 자는 모습도 예쁘구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켜 욕실에 들어갔다. 얼굴을 씻고 난 후 잠시간 거울을 쳐다봤다. 어제 일이 꿈만 같았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마치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까. 나는 동생으로서 공준을 아꼈고 이런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별의별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생각에 빠져있던 터라 깜짝놀라 하마터면 욕조 안으로 떨어질 뻔했다.

“깜짝이야. 야, 넌 노크....”

놀란 심장에 손을 얹으며 화를 내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얼이 빠져있는 공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왜 그래? 준아, 무슨 일 있어?”

“나.. 나는.. 형이 가 버렸을까 봐....”

공준의 눈에 또 눈물이 맺혔다.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자주 우는 거야!

“바보야, 여기가 내 방인데 가긴 어딜 가.”

공준은 아... 하는 표정으로 욕실에서 나에게 끌려 나왔다. 나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리거 나도 내 몫의 물을 꺼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공준의 시선이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물을 받기는 했지만 바로 마시지 않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공준 건너편에 앉아 물을 마시며 말했다.

“마셔. 너 의외로 술이 약하더라. 지금 술은 다 깬 거야?”

공준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안해요... 혹시... 내가 형에게 뭐 실수한 거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나머지 물을 들이켰다.

“아무 실수도 안 했어. 너 있다가 비행기 타야 하잖아. 이제 방에 돌아가서 쉬어.”

“형...”

“우리 다음에 맨정신으로 이야기하자.”

공준은 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싫어요. 이대로 돌아가면 날 피할 거잖아요.”

“아니야, 안 피해.”

“연락도 잘 안되는데...”

“잘 할게.”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형이 마음먹고 피하면 나는 쫓아가기 어려워요.”

무슨 말을 해도 공준은 믿을 기색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애처롭게 구는지 내 마음이 다 찡해졌다.

“하... 어떻게 하면 믿을래, 응?”

“형은 정말 나에게 어떤 감정도 없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서로가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이 아이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알려달라고 들은 적이 없어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나는 역할에 몰입했을 뿐이야.

표면적으로는 무협극이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동성애였다. 심의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고 원작에 충실하자고, 처음 캐스팅될 때 감독과 프로듀서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해 주기를 부탁받았고 나는 그걸 성실하게 해냈다.

지금 와서 보니 이 아이는 나보다 더 성실했구나.

드라마는 성공적이었지만 나나 공준이나 지금까지 맡은 역할이 지녔던 감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다.

“준아... 우린 그저 역할에 빠져있었던 것뿐이야. 우리에겐 그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거고. 시간이 지나면 분명 사라질 거야.”

“...우리요?”

젠장. 말실수를 해버렸다. 입 안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공준이 얼른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잡고 내렸다. 크게 놀란 듯한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시선을 피했다. 깜짝 놀란 것은 공준 뿐만이 아니었다.

“형, 나 좀 봐요. 지금 우리라고 말한 건 나와 같다는 말 아니에요?”

당황한 나는 공준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내 말 좀 들어봐요. 역할에 빠져 그랬든 말든 나는 지금 형이 좋아요.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은 처음이에요. 드라마가 끝나질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감독에게도 다음 시즌을 제작하게 되면 출연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보기 좋게 거절당했지만. 형과 나는 같은 연예계에 있고, 같은 나라에 있다지만 너무 넓어요.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어요. “

공준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쫓기듯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고민하지 말아요. 같은 마음이라면요 제발.”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5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쌓은 정이 동료로서의 우정인지, 아니면 정말 그를 좋아하게 된 건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동성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게 다 공준 때문이다. 그 과일만 아니었어도...

공준은 손을 내려놓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쳐다보며 내 얼굴을 잡았다.

“그냥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풀어놓으면 안 돼요?”

“준아, 나는....”

갑자기 내 얼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왜,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공준이 입을 맞춰왔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닿았을 때 머릿속에 사고 회로가 정지해버렸다.
잡힌 얼굴은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얼어붙은 채 그가 긴 속눈썹을 내리고 눈을 감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 뺨에 닿는 그의 속눈썹이 간질거렸다.

내 눈은 있는 대로 커졌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그 순간 그의 혀가 밀고 들어왔다.
번개가 치 듯 눈앞이 번쩍거리며 머릿속이 새햐얗게 비워져 버렸다.
그가 내 입 속을 탐색할 동안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쉴 타이밍을 잊었다. 입안이 전부 공준에게 삼켜진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져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게 도화선이 되었는지 그가 더 적극적으로 몸을 붙여왔다.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흘러갔다.

나는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힘겹게 내뱉으며 구명줄처럼 꼭 잡았던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 사이 공준은 내 아랫입술을 물며 천천히 빨았다.
하으....
찌릿-하는 이상한 느낌이 아랫배를 뚫고 지나갔다.

결국 나는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몇 번 내리치고 나서야 떨어질 수 있었다.

크게 숨을 헐떡이며 나는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 있으면 고장난 듯 뛰어대는 심장소리를 그에게 들킬 것 같았다. 무엇보다 쓸데없이 반응해버린 하반신이 위험했다. 그거야말로 더욱 그에게 들켜서는 안 될 곳이었다.

나는 타액을 훔치며 제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내 입술에... 공준의 입술이 닿았다. 아니 그의 혀가 내 입안을 헤집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서로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형, 우리 연애해요.”

그 표정이 얼마나 간절해 보이는지 나는 다시
입안이 바싹 말랐다.






준저
지음비
공준장철한